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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신선하고 맛 좋은 예목원알밤농장의 밤
초록빛이 완연한 밤송이가 툭 터지더니 잘생긴 밤 한 톨이 기다렸다는 듯이 톡 떨어진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견뎌낸 밤나무가 올해 첫 햇밤 수확을 알리는 순간이다. 예목원알밤농장의 신덕영 대표는 일곱 가지 품종의 밤을 수확하고 잘 저장해서 연중 맛있는 밤을 생산한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그는 짓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운 농사를 꿈꾼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장군산 자락에서 맛 좋은 알밤을 생산하는 신덕영 대표(왼쪽)와 로컬 식재료로 차 과자와 발효차를 만드는 이수아 대표. 예목원알밤농장 세종시 장군면 은용2길 91-5 소월당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서하구량길 210-11

다시 밤나무가 있는 고향 품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장군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 2012년 세 종시로 편입되기 전 공주시 장진면이었던 시절 이곳에서 태어나 고 자란 소년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땔감을 주우며 집안 일을 곧잘 도왔던 어린 소년이 끔찍하게 싫어한 계절은 가을. 가 을만 되면 집 주변을 둘러싼 산에 알밤이 지천으로 깔리니 꼼짝 없이 알밤 줍기를 거들어야 했다. 밤나무라면 지긋지긋하다던 소년은 도시로 떠났지만, 1992년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시간만 나면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리면서 다시 밤 농장에 발을 들이게 됐다. 어느덧 소년은 네 딸을 둔 가장이 되었고, 밤농사를 짓는 진짜 농부가 되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꿔온 땅이에요. 아버지는 선산을 관리하면 서 틈만 나면 밤나무를 심었는데, 수확량이 늘다 보니 전문적인 농사로 이어진 셈이죠. 사람의 천성은 바꿀 수가 없는데, 밤나무 는 가능하더라고요. 일반 밤나무에 좋은 품종의 밤나무 가지를 접목해 생산량을 늘리는 일이 재미있더군요. 노력한 만큼 정직 하게 보답하는 밤나무가 기특했어요.”

신덕영 대표는 2007년부터 밤농사를 짓기 시작해 올해로 9년째 다. 밤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동안 신 대표는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밤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팜 파티를 열며 농장을 알뜰살뜰하게 키워나갔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일이 바빠 딸들과 여행을 가지 못한 적도 많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경영난에 시달리곤 했다. 하나 그럴수록 이왕 시작한 농사일을 보란 듯이 해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공주농업대학교의 알밤 아카데미 과정도수강했다. 공주시 기술센터에서 친환경리더학과 과정도 수료하며 그만의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마음 맞는 아내와 함께 공부하니 농사일이 천성인 듯 재미도 점점 더해갔다.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밤 농장을 가꾼다. 이런 그를 보며 밤나무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던 소년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현재 신 대표는 1만 5천 평인 세종시의 제1농장과 3만 평에 이르는 공주시의 제2농장을 오가며 연간 40톤에 달하는 밤을 생산한다. 밤나무밭 외에도 일반 농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체험장과 저온 저장고, 주말농장 등을 갖췄다. 매년 수확한 알밤을 저온 저장고에잘 보관해두고 연중 판매하며, 직거래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양한 품종이 곧 경쟁력이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말처럼 밤송이 역시 입추가 지나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간다. 8월 말이 되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밤송이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하고, 잘 영근 햇밤을 땅 아래로 쏟아낸다. 일일이 손으로 주워 수확하기 때문에5천 그루가 넘는 밤나무에서 밤이 한 번에 떨어지면 알밤을 줍 는 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밤은 습도에 민감한 작물이라 수확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저장을 제대로 하지않으면 수분이 날아가고 말라버려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예목 원알밤농장이 다른 농가와 차별화되는 점은 제각기 수확 시기 가 다르고, 고유한 맛을 지닌 일곱 가지 품종을 심은 것이다.

“가장 먼저 수확하는 품종이 삼조생이에요. 일본에서 들여온 단택이 대표적인데, 과육이 연하고 껍질 벗기기 수월해서 군밤용으로 인기가 많아요. 단맛도 좋고요. 9월 초부터는 중ㆍ만생 품종을 거둬들여요. 축파와 공주밤 1호, 토종 밤인 옥광이 여기에 속하지요. 가장 마지막에 수확하는 품종이 만생입니다. 크기가 큰자봉과 은기, 산림환경연구소에서 개발한 신품종인 대보를 10월 초까지 수확하고 나면 얼추 마무리되지요.”

사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가장 많이 자생하던 나무 중 하나가 밤나무였다. 토종 밤은 단맛이 진해 고구마처럼 구황 식품으로 즐겨 먹곤 했다. 그런데 1950년대 밤나무혹벌이라는 해충이 전 국적으로 번졌고, 1960년대에는 토종 밤나무가 말라 죽으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후 밤나무를 살리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품종이 널리 퍼졌다. 단택과 은기, 축파가 그것으로, 은기는 모양이 예뻐 제수용으로 많이 쓰고, 축파 역시 고소한 맛이 강하며 저장성이 좋다. 그래도 어디 토종 밤만 한 것이 있을까. 여러밤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좋고, 신 대표가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밤이 바로 토종 밤인 옥광이다. 그는 겨울철에 옥광의 나뭇가지를 따서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 이파리가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봄이 되면 크기는 좋지만, 저장성이 다소 떨어지는 자봉 밤나무에 옥광의 나뭇가지를 접지해 품질을 끌어올린다. “크기가 적당하고 당도가 높은 옥광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맛이 일품이에요. 군밤보다 쪄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지요. 옥광보다 알이 크고 길쭉한 대보도 맛이 참 좋아요. 속껍질이 있는 채로 먹어도 무방해요.”


밤 맛을 결정짓는 천연 암반수
제철에 수확해 먹는 햇과일과 햇곡식의 맛을 따라올 식품은 없 다. 햇밤 역시 마찬가지다. 수확하자마자 찌거나 구워서 먹으면 다디단 맛이 난다. 그런데 이곳저곳 쓰임새가 많은 식품이다 보니, 잘 저장해놓았다가 연중 판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덕영 대표의 밤이 맛있고 신선한 이유는 천연 암반수로 깨끗하게 씻어 저온 저장고에 보관하기 때문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농협이 유일한 유통망이었어요. 직거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연중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가공 시설을 갖추어야 했지요. 세종시로 편입되기 전부터 밤을 세척하는 침수장과 보관하는 저온 저장고 등의 설비를 틈틈이 갖추었어요. 물맛 좋은 천연 암반수를 끌어다 밤을 세척하고 보관하는 데 활용했지요.”

신덕영 대표는 농장 한편에 마련한 침수장에 갓 수확한 밤을 우기에는 5~6시간, 건기에는 10~15시간 정도 담가놓는다. 해충과 불순물을 걸러내는 살균 작업과 열이 많은 밤을 급랭시키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거친 밤을 선별기에 넣어 천연 암반수로 한번 더 세척한 후 특, 대, 중, 소로 크기를 선별해 자루에 담는다. 이를 영하 1.5~2℃의 저온 저장고에 넣어 보관하며, 2주에 한 번씩 고압 호스로 자루에 물을 뿌린다.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기 때문에 밤이 부패하거나 상하지 않고 고유의 맛과 향을 유지할 수 있다. 신덕영 대표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2011년 농산물의 생산, 수확, 포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농약, 중금속 등 유해 요소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때 받는 G.A.P(농산물 우수 관리 인증)도 부여받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알밤을 그저 가을 간식으로만 여기는 게 안타까웠어요. 얼마든 지 재미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알밤 줍기 체험 활동을 시작했지요. 수확 철이 끝나도 알밤부침개, 밤 라테, 군밤 만들기 등을 운영하며 밤 맛을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1 매년 8월 말부터 삼조생인 단택부터 수확한다. 옆면이 납작해 다른 밤에 비해 모양은 예쁘지 않지만 겉과 속껍질이 잘 분리된다. 2 수확한 알밤은 선별기에 넣고 천연 암반수로 깨끗하게 씻어 걸러낸다. 이때 속이 비었거나 수분이 빠져나가 가벼운 밤은 분리되면서 속이 알차고 단단한 밤만 남는다. 3 저온 저장고에 알밤을 보관하고 군밤 기계를 갖춘 예목원알밤농장에서는 1년 내내 달고 포슬포슬한 군밤을 먹을 수 있다. 신품종인 대보는 군밤용으로 좋고, 속껍질째 먹어도 맛있다. 4 이수아 대표는 대보 밤으로 식감이 부드러운 밤 과자와 떡처럼 쫄깃한 밤양갱, 다우를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단맛의 매력
이수아 대표는 울산에서 차 과자와 발효차를 만드는 소월당을 운영한다. 직접 농사지은 토종 팥으로 과자를 만들고, 찻잎을 발효시켜 풍미 좋은 차를 선보이는 등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대표 메뉴는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도는 밤 과자다. 울주군 두서면 한적한 시골 언덕배기에 자리해 교통이 불편하지만 밤 과자의 맛을 본 이들은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아올 정도. 단골손 님이 많으니 연중 내내 좋은 밤을 공수하는 것은 필수다. 하나 마음에 드는 건강한 밤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예목원알밤농장의 밤은 맛도 좋고 식감도 부드러워 마음에 쏙 들었단다.

“알밤을 보자마자 보관을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은 겉을 봤을 때 속이 어떤지 알 수가 없어요. 간혹 밤껍질을 까서 보면 속이 시커멓고 벌레가 먹은 것도 많아요. 그런데 이곳 알밤은 속껍질과 알맹이를 분리하기 쉬웠어요. 속도 노랗고, 수분을 다량 함유해 식감도 포슬포슬하더라고요. ”

이날 이수아 대표는 대보 밤을 활용해 밤 과자를 만들었다. 밤으로 만든 얇은 피 속에 팥소를 넣고 살짝 구워 특유의 고소한 향을 살렸다. 단맛이 강한 밤과 담백한 팥소가 어우러지는 맛이 훌륭했다. 그는 울산에서 자라는 재래종 찻잎을 발효시켜 만든 충담차도 곁들여 냈는데, 구수한 맛이 밤 과자와 잘 어우러져 다과상으로 차려도 좋다고 덧붙였다. 집에서 따라 하기 쉬운 조리법으로 밤양갱과 다우라 불리는 구운 과자도 제안했다.

“양갱을 만들 때 반드시 한천을 넣을 필요는 없어요. 밤이랑 팥, 곡물 가루를 넣고 센 불에서 쪄내면 떡처럼 식감이 쫄깃한 양갱으로 즐길 수 있어요. 단맛이 줄어들고 담백해 어른과 함께 먹기에 그만이지요. 밤조림은 밑반찬이나 구운 과자를 만들 때 요긴해요. 아몬드 가루와 녹차 가루, 버터를 반죽해서 만든 과자 위에 밤조림을 올려 구우면 현대식 과자로 맛볼 수 있어요.”

밤농사를 시작한 이래로 신덕영 대표가 추구해온 가치는 한결같 다. 신선하고 맛있는 밤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것. 세종시에서 추진하는 로컬 매장과 농촌진흥청의 팜 파티 사업을 통해 밤 농장을 더욱 살뜰하게 운영해나갈 생각이다.


요리 이수아(소월당, 052-262-3013) 촬영 협조 예목원알밤농장(041-856-5236)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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