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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람이 완성한 양재중어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기마을에 자리한 양재중 대표의 농원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지리산 능선이 포개지고 이어지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따사로운 볕이 쏟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황금빛 어란은 깊은 맛이 든다.

지리산 바람골에서 숭어알을 말려 빛깔이 고운 어란을 만드는 양재중 대표(왼쪽)와 어란의 고소한 풍미를 살려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 데이지 셰프.
살구빛처럼 보이기도 하고 황금빛 같기도 한 것이 참으로 탐스럽다.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풍미는 또 어떤가. 예나 지금이나 참숭어알을 말려 숙성시킨 어란은 미식가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최고의 산해진미다. 조선 후기 요리 연구가였던 서유구는 <난호어묵지>에서 “숭어의 황금빛 알은 햇빛에 말리면 빛깔이 호박같고 맛은 진미”라고 했다. 소설가이자 미식가로도 유명한 성석제는 그의 산문집 <소풍>에서 어란의 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앞니 사이에 끼우고 조근조근 깨물면 입안 가득 향이 퍼지며 구수하니 단맛이 나.” 

참숭어가 알을 배는 시기인 4~5월이 되면 미식가들이 찾는 어란이 있다. 이미 두꺼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찬해원의 양재중어란이다. 그 맛이 완성되는 과정이 궁금해 지리산을 찾았다.


잘나가던 일식 요리사, 지리산으로 귀농하다 
양재중 대표를 말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꽤 유망하고 성공한 일식 요리사였다는 것. 그가 일식 요리사라는 특급 열차에서 내려 돌연 지리산행에 몸을 실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열아홉 살 때부터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냥 요리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1991년에는 남산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호텔) 일식당 미야마에서 처음으로 칼을 잡았지요. 그 당시 미야마는 우동 한 그릇에 1만 3천 원이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 었어요. 제가 장남이라 부모님께서는 남자가 주방이 웬말이냐며 반대하셨지만, 일식을 하면 할수록 재미나더군요. 식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그 특징을 파악하고, 본연의 맛을 살려한 그릇에 담아내는 일식 조리법이 참으로 매력적이었어요.”

1993년 타워호텔을 나와 여러 곳에서 일식 요리사로 경력을 쌓아나갔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일본 도쿄와 간사이 지방에서 기본기부터 혹독하게 다시 배워나갔다. 어린 나이에 주방장을 맡아 주변에서 냉대를 받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그렇게 일식 요리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산내면에는 실상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어요. 어머니는 실상사 주방의 총책임자였지요. 사찰 음식과 저장 음식 전문가로, 매년 된장이랑 고추장을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었어요. 누군가는 어머니의 음식을 배워 이어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픈 어머니를 돌보면서 그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2013년 일식 요리사로 화려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내려온 그는 찬해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고추장과 된장, 어란을 만드는 농사꾼이 되었다. 그중 대표 상품은 어란이다. 요리사 시절부터 주변 지인을 위해 15년 동안 틈틈이 만들어온 어란을 본격적으로 상품화해 세상에 내놓은 것. 양재중어란은 참기름이나 조선간장을 발라 만든 까무스름한 전통 어란이 아니다. 문배주를 발라 풍미를 더하고, 지리산의 선선한 바람으로 말려 말간 빛깔을 띤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어란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이라.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뜻있는 흔적을 남겨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으니, 양재중 대표는 어란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가 이름을 걸고 어란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책임감이다. 때가 되면 자신의 어란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이들에 대한 보답이란다. 어란은 대개 숭어와 민어의 알로 만드는데, 양재중 대표는 4~5월이 제철인 참숭어와 11월이 제철인 감숭어의 알로 1년에 두 번 어란을 만든다. 참숭어가 제철이면 그는 이른 새벽 3시에 집을 나서서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한다. 좋은 어란을 만들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참숭어를 고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죽은 숭어는 절대 사용해선 안 됩니다. 전날 오후에 잡아서 당일 새벽에 올라온 숭어만 사용합니다. 오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해요. 좁은 수족관에서 서로 뒤엉키고 부딪치다 보면 비늘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요. 비늘때깔이 좋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숭어만 선별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알주머니를 꺼냅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업체와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하나 그의 어란이 다른 것과 확연하게 맛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양재중 대표는 지리산으로 향하기 전 1차 작업을 위해 노량진 근처 작은 작업실로 향한다. 숭어의 배를 갈라서 꺼낸 큼지막한 알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피멍이 들어 거뭇하게 변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 다음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알주머니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동맥을 제거해 피를 뺀다.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이 과정이 남들과 다른 어란의 맛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를 제거하는 이유는 비린 맛 때문이에요. 피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미세하게 피비린내가 나면서 숭어알 고유의 풍미를 떨어뜨리거든요. 작은 가위와 바늘을 이용해 최대한 막을 터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피를 빼내야 해요.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종일 앉아서 알을 꺼내고 피를 빼도 하루에 최대한 할 수있는 작업량은 13kg 안팎이에요.”

이 작업을 거치면 입자가 고운 소금으로 알주머니를 완전히 덮어 하루 동안 염장한 후 나무 판에 놓고 3일 정도 말린다. 수분이 빠져 색이 짙어진 알주머니를 진공포장해서 어란을 건조시키기 위한 최적의 장소인 지리산으로 가 2차 작업을 시작한다.

“산 중턱에 있다고 해서 중기마을이라고 불러요. 이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천왕봉과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지요.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남향인 터라 시원한 바람이 종일 불어와요. 한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잘 정도지요. 바람이 통하지 않고 온도가 높으면 어란은 부패해버리거든요. 이곳에서 어란을 말리면 자연스레 맛이 들 수밖에요.” 

양재중 대표는 진공포장한 알주머니를 벗겨 편백나무 판 위에 올린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다. 건조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쯤 지나면 어란 위에 문배주를 바른다. 다른 어란의 경우 참기름이나 조선간장을 바르는데, 이곳은 문배주를 발라 약 20일 동안 건조시킨다. 겉과 속이 일정하게 말라야 하기에 어란의 크기에 따라 5주 가까이 건조시킬 때도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48시간 동안 자신만의 비법으로 발효시킨다. 마지막으로 어란을 문배주에 담가 씻어낸 후 하루나 이틀 정도 말려 완성한다.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보타르가(어란)를 먹은 적이 있는데, 치즈맛이 감도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일본 나가사키에서 먹은 유명한 명인의 어란은 빛깔이 뽀얀데 조금 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짠맛을 줄이고 치즈 같은 깊은 맛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배주를 발라 장처럼 발효시켰어요. 술이란 술은 죄다 사용해봤는데, 문배주만 향이 과하지 않아 어란의 맛을 잘 잡아주더군요. 발효시킨 덕분에 치즈 같은 풍미를 낼 수 있었고요.” 

1,2,3 싱싱한 숭어의 배를 갈라 알 주머니를 꺼내 가위로 동맥을 자르고 피를 빼낸다. 4 피를 제거하기 전과 후, 피를 깔끔하게 제거해야 비린 맛이 나지 않고 숭어알 고유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다.

5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어란을 말리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크기에 따라 약 3~5주 말린다. 참기름 대신 문배주를 발라 발효시킨다. 6 데이지 셰프는 얇게 썬 어란을 브루스케타 위에 올려 고소한 맛을 더했다. 짭조름 하면서도 고소한 어란 파우더를 소금 대신 사용해도 좋고, 해산물 리소토에 뿌리면 감칠맛을 더해준다. 7 고급스러운 패키지에 담긴 어란은 품질에 따라 100g 기준 5만원 이상 가격으로 판매한다.


치즈처럼 고소한 풍미가 넘치는 맛
데이지 셰프가 양재중어란을 처음 만난 건 종로에 있는 일식당 스시이끼에서였다. 우연히 맛본 어란 맛에 반해 양재중 대표를 찾아 지리산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그는 양재중어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깔끔하고 고소한 맛을 꼽았다. 

“1년 전부터 양재중어란만 사용하는 이유는 맛이 깔끔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어란만큼 피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곳도 없어요. 비린내도 전혀 없고요. 깔끔한 맛 뒤에 은근하게 올라오는 어란의 고소한 풍미가 제 요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의 레스토랑 시그너처 메뉴는 양재중어란을 사용한 어란 파스타다. 이날은 브루스케타와 리소토에 어란을 사용했다. “살짝 구운 빵 위에 빈 페이스트와 브라타 치즈, 루콜라, 얇게 썬어란을 올렸어요. 치즈의 부드러운 맛과 어란의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서로 잘 어우러지죠.” 

또 데이지 셰프는 생선 육수에 볶듯이 끓인 리소토에 토마토 스스와 딱새우, 아스파라거스를 넣고 어란 파우더를 뿌려 감칠맛을 끌어올렸다. 그는 해산물과 어란은 궁합이 좋으며, 구운 채소위에 소금 대신 어란 파우더를 뿌려도 좋다고 조언한다. “예부터 어란을 술안주로 즐겨 먹곤 했어요. 문배주랑 마시면 과일의 상큼한 향과 어란의 고소한 풍미가 동시에 올라오면서 뒤섞이는 맛이 정말 빼어나요.” 

돈을 벌기 위한 음식이 아닌, 진정으로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진미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양재중 대표. 일식과 한식, 발효 음식에 관련한 한 강의를 하고 있는 요즘, 그는 된장에 절인 어란을 연구하고 있다. 계속해서 그가 다양한 식재료와 장, 어란을 활용해 앞으로 어떤 진미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요리 데이지 (갈리나 데이지, 02-720-1248) 취재 협조 및 문의 찬해원(070-4823-1747)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