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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술 박사가 빚은 구중구포 홍삼 와인
술을 빼놓고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주객酒客이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실험과 연구로 일평생 술을 빚어온 ‘진안홍삼주’의 김시중 대표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 홍삼으로 술을 만들고, 학교를 세워 제조법을 전수하고 싶다는 그. 그래서인지 홍삼 와인의 맛은 그만큼이나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위로하는 동반자로서 술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장면 중 마음에 와 닿는 것으로 시인이자 애주가이던 이백의 ‘산중대작’을 꼽을 수 있겠다. “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니 산꽃 이 피고/ 한 잔 한 잔에 거듭되는 또 한 잔이라/ 나는 취해 졸리 나니 그대는 우선 가게/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나.” 얼마나 맛있는 술을 마셨으면 오랜 벗과 함께 즐긴 술자리를 한 편의 시로 표현했을까. 서울에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술을 벗 삼아 풍류를 노래한 이백처럼 마음이 동하는 술을 찾았다. 탐스러울 정도로 붉은빛을 발하는 구증구포 홍삼 와인이 그 주인공이다(홍삼 침출주와 복분자주를 혼합한 과실주라서 홍삼 와인이라 부른다).

전북 진안군에서 흑삼으로 홍삼 와인을 빚는 김시중 대표(왼쪽)와 홍삼 와인을 사용한 초코 가나슈로 디저트를 만든 고제욱 셰프.
흔히 술 한잔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빛깔 고운 홍삼 와인을 만드는 김시중 대표에게 술은 인생이요, 삶의 전부다. 그런 그에게 왜 하필 술이냐고 물었더니 “그저 좋아서, 마음이 가서”라고 답한다. 전북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1994년 보배소주(현 하이트진로) 기술연구소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술의 ‘맛’과 ‘멋’에 취해 술 하나만 바라보고 인생을 가열차게 달려왔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새 소주를 만들고···. 남들은 힘들다고 퇴사하는 마당에 저는 오히려 소주를 만드는 일이 정말 즐거웠어요. 연구소에서 6년이란 시간을 보내 면서 국내 최초로 녹차 소주인 휘파람을 개발했고 복분자주, 증류주 옛향, 벌꿀 소주 이몽룡 등을 만들었어요.”

스스로 ‘술의 여행자’라고 말하는 김시중 대표는 보배소주를 퇴사한 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방자치단제를 도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었다. 산수유가 특산물인 전남 구례에서는 산수유주를 만들고, 지평선 쌀과 머루 포도로 유명한 전북 김제에서는 지평선 약주와 지평선 머루 와인을 개발했다. 전북 익산에 서는 옛 문헌에 나오는 호산춘을 최초로 복원해 술을 빚었다. 이뿐 아니다. 진도 홍주와 복분자주, 제주 한라봉주, 제주 감귤주, 제주 복분자주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술이다. 김시중 대표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술 공장을 짓고 싶었지만 부지를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진안군에 빈 건물이 나왔다고 해서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고, 홍삼 특구인 진안으로 가서 술을 빚겠노라 결심했다. 2008년 진안군에 정착한 그는 자신의 경쟁력인 집념과 끈기를 믿고 꼬박 2년이 걸려 홍삼 와인을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술을 와인이라 하는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알코올 표기나 도수가 12도 전후의 과실주를 와인이라고 인정하기에 그는 홍삼주가 아닌 홍삼 와인으로 이름을 붙였다.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
“돌이켜보면 홍삼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 술을 빚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시판 홍삼을 사다 와인을 만들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제 손으로 와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시중 대표가 홍삼 와인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좋은 수삼을 찾는 것. 면적의 80%가 산악 지대인 진안군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제철인 10월이 되면 산속에서 소규모로 수삼을 재배하는 농가를 찾아다닌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수삼을 구하면 바로 아궁이로 향한다. 채반에 수삼을 담아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 넣고 아궁이에 올려 장작 불을 지핀다. 2~4시간 정도 찐 수삼을 꺼내 볕 좋고 바람이 선선 하게 부는 곳에서 말린다.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수삼은 점점 갈변화하면서 홍삼으로 변한다. 이를 아홉 번 반복하면 크기가 점점 쪼그라들면서 새까만 흑삼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흑삼의 사포닌 함량이다. 인삼의 주요 성분이자 약리 효능이 있어 진세노사이드라 불리는 사포닌의 비율이 구증구포를 거치면 약 30% 정도 늘어난다는 것. 실제로 신왕수 석사의 논문 <흑삼의 지표 성분과 생리 활성 연구>를 보면 홍삼 속 진세노사이드는 0.046%인 반면 흑삼은 0.162%로 홍삼보다 약 3.52배 많다. 김시중 대표는 흑삼의 이로운 성분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기 위해 커다란 탱크에 넣고 43도 주정을 부어 석 달에 걸쳐 맛과 향이 진한 홍삼 침출주를 만든다.

“주세법상 홍삼 침출주는 과실주가 아닌 리큐어liqueur로 분류됩니다. 과실이 65% 이상 들어 있지 않으면 과실주로 허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만든 복분자주와 홍삼 침출주를 옹기에 넣고 발효시켜 홍삼 와인을 만듭니다.” 약 45일이 지나 옹기 뚜껑을 열면 달큰한 복분자와 쌉싸름한 홍삼주가 뒤엉켜 발효되면서 붉은빛을 발하는 홍삼 와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홍삼 와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거품이다. 그 정체는 바로 사포닌. 흑삼으로 만들었기에 홍삼 와인 속에는 진세노사이드가 풍부하며, 와인병을 흔들면 거품이 우르르 생기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1 홍삼 와인의 핵심은 구증구포 흑삼이다. 홍삼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면 사포닌 함량이 높은 흑삼으로 변한다. 2 커다란 탱크에 흑삼과 43도 주정을 넣어 약 석 달 동안 기다리면 흑삼 속 이로운 성분이 빠져나오면서 톡 쏘듯 진한 맛과 향을 내는 홍삼 침출주가 완성된다.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세계를 사로잡다
홍삼 와인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와인 하면 떫은 맛의 타닌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주류 시장에서 번번이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복분자주 대신 프랑스 와인 카베르네 소비뇽 원액을 수입해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우리 식대로 가자!”를 고집하며 꿋꿋하게 홍삼 와인을 만들었다. 결국 국내 주류 시장에서 판로가 막히자 김시중 대표는 과감히 해외로 눈을 돌렸다.

“홍삼 와인을 개발하는 2년 동안 꽤 많은 해외 와인 대회에 참가했어요. 실패를 반복하다 2010년 홍콩 국제와인대회에 참가했는데, 동상을 수상했지요. 어안이 벙벙해 주최 측에 이유를 물었더니 맛도 맛이지만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로부터 4년 뒤인 2014년 광주비엔날레가 열릴 즈음, 김시중 대표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회가 찾아왔다. “한 외국 여성이 저를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바누 제네토 글루Banu Cennetoglu라는 터키 작가였어요. 그는 비엔 날레 출품작이자 영혼의 도서관 연작인 ‘스피릿spirits(증류, 알코올 음료)’을 위해 순수한 술을 찾고 있었어요. 비상업화된 술과 장인이 빚은 술 아흔아홉 병이 필요한데,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 저를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마음이 고마워 연구소에서 일할 때 만든 옛향과 밤 증류주 등을 내드렸어요. 이 일로 광주비엔날레 주최 측과 인연이 닿아 2014 광주비엔날레 공식 만찬ㆍ건배주와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 프로젝트 공식 만찬주로 홍삼 와인이 선정됐어요.”

그 후에도 홍삼 와인은 2015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와 2015 영국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테트런던에서 한국 공식 만찬ㆍ건배주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최근에는 베트남 하노이 비어와 MOU를 체결하면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3 옹기 속에 홍삼 침출주 34.46%와 복분자주 65.54%를 넣어 발효시켜 홍삼 와인을 만든다. 거품을 통해 사포닌 함량이 풍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홍삼 와인을 사용해 만든 초콜릿 가나슈로 맛을 낸 마카롱과 타르트. 5 홍삼 와인은 기계식 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아 순수하며, 개봉 후 10일 안에 마시는 게 좋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과 홍삼 와인의 조화
셰프라면 누구나 주관이 있기 마련이다. 주관이 뚜렷해야 어떤 음식을 할지 결정할 수 있고,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메뉴를 식탁 위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저트 전문점 밀갸또의 고제욱 셰프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는 새로운 식재료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개성 넘치는 프랑스 디저트를 만든다. 

“처음 홍삼 와인을 알았을 때 마셔보고 깜짝 놀랐어요. 포도주 보다 부드럽고 뒷맛에서 느껴지는 흙 뿌리 냄새가 굉장히 독특했지요. 건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이곳에 와서 보고 이렇게 좋은 홍삼 와인을 만들기 위해 무쇠솥에서 수삼을 아홉 번 이나 찐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탄했어요. 홍삼 와인의 쓰임은 무궁무진해요. 케이크 시트에 바르는 시럽으로 사용하거나 젤리와 쿠키, 잼으로 얼마든지 그 맛을 즐길 수 있지요.기본적으로 베이킹에서 가나슈ganache나 시럽을 만들 때 과실주를 넣어 향을 내는데, 홍삼 와인을 넣으면 아주 유용합니다. 홍삼 와인의 씁쓸한 맛과 진한 다크 초콜릿의 조화가 정말 훌륭해요.” 

고제욱 셰프는 진한 다크 초콜릿으로 캐러멜 소스를 만든 뒤 홍삼 와인을 넣어 초코 가나슈를 만들었다. 이를 마카롱 사이에 넣었는데,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과 홍삼 특유의 씁쓸한 맛의 조화가 빼어났다. 그는 가나슈 필링을 채워 넣어 생크림을 올린 타르트도 함께 선보였다. 

술을 어떻게 빚어야 할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를 매일같이 고민하는 김시중 대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마음으로 빚은 술이 가장 맛있다는 것.’ 그는 올해 5월부터 우리 술 학교, ‘문화 공간 두울’이라는 프로젝트를 새롭게 진행한다. 두울이라는 이름처럼 혼자가 아닌 모두 다함께 술을 만들고, 그 술맛을 나눌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요리 고제욱(밀갸또, 02-585-9997) 취재 협조 진안홍삼주(063-433-1014)

 

#홍삼와인 #진안홍삼주 #김시중 #고제욱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