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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이 바로 서야 맛 좋은 치즈가 난다 효덕목장의 자연 치즈
치즈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은 이가 있다. 매일 아침 소의 젖을 짜고 우유를 끓여 신선한 치즈를 만드는 천안 효덕목장 이선애 대표의 이야기다. 진심을 다해 정성껏 만든 그의 치즈는 새큼하고 짭조름한 향을 풍기며 천천히 숙성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소의 사료가 되는 풀을 직접 재배하고 소가 생산한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이선애 대표, 건강한 치즈와 우유로 맛있는 빵을 선보인 김영식 셰프.
치즈, 너는 내 운명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을 빌리자면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진실한 사랑은 없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배고픈 일이요, 맛있는 음식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기 때문이다. 효덕목장 이선애 대표에게 사랑이 충만한 음식은 바로 치즈다. 어릴 때부터 치즈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목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났지만, 고된 일과 시집살이로 인해 집중해서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들어볼 시간을 도무지 내지 못했다. 그저 짬짬이 집에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드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다 어느 날 책 속에서 커다랗고 샛노란 치즈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갈망하고 원하던 것이 바로 그 속에 있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마치 운명처럼 치즈에 사로잡힌 지가 어언 10년째다.

“치즈를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후 남편과 함께 곧장 천안 연암대학교 치즈 스쿨로 달려갔어요. 정원이 한 자리밖에 남지 않아 남편 대신 제가 수업을 들었지요.”

그토록 원했지만 치즈를 공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남아 있어야 할 이론이 자꾸만 달아나자 중요한 내용은 메모장에 기록하고 또 기록해서 이론부터 레시피까지 달달 외웠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복습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며 수업 시간에 만들어본 치즈는 집에서 다시 만들곤 했다. 공부할수록 자꾸만 치즈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치즈 스쿨로 만족하기에는 아쉬웠다. 국립축산과학원 한국목장형유가공연구회 회원으로 등록한 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치즈 마이스터가 내한하면 놓치지 않고 워크숍에 참가했다. 그러다 2008년 목장형 자연 치즈 콘테스트에서 처음 출품한 고다 치즈로 은상을 받았다. 그 후 자신감이 붙었고 2013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금상을, 2015년에는 10주년을 맞이한 목장형 자연 치즈 콘테스트에서 또 다시 금상을 수상했다. 치즈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기술을 연마해온 노력과 열정의 결과다.

치즈 만들기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유산균 배양을 마친 후 한 시간 뒤에 응유 효소를 넣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유가 탱글탱글한 순두부처럼 변하는데, 이를 커드라고 부른다.
본질을 고민하고 기본에 충실하다
음식의 본질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한들 몸에 이롭지 않으면 그 본질을 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 때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재배했는지를 깐깐하게 따져 고르는 것이 필수다. 이선애 대표가 치즈를 만들 때 중요시 여기는 원칙도 마찬가지다.

“치즈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유의 품질입니다. 우유가 신선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없어요. 그런데 우유가 신선하려면 소가 건강해야 하고, 소를 잘 키우려면 맛있는 풀이 필요하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려면 기초공사와 다름없는 목장이 올바로 서야 해요. 그래야만 제대로 된 치즈를 만들 수 있어요.”

이선애 대표는 치즈 만들기의 출발인 목장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소가 먹는 사료부터 철저하게 신경 쓴다. 일반적으로 여느 목장이 건초와 알곡 사료 등을 소에게 먹이는 반면, 효덕목장은 근처 드넓은 노지에서 직접 풀 사료를 재배한다. 수단 그라스sudan grass와 청보리, 연맥 등을 심어 1년에 두 번 봄가을에 수확하고 잘 숙성시켜 소에게 제공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풀을 재배하는 땅 역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관리한다는 것.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벌레가 몰려들어 애를 먹은 적도 많다. 한번은 벌레가 밭 한 마지기를 갉아먹어 심은 작물을 모두 갈아엎어야 했다. 주변 환경이 어려울수록 쉬운 길로 가로질러 갈 법도 한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좋은 땅과 풀이 있어야 목장이 바로 설 수 있고, 그 풀을 먹고 자란 소가 제공하는 우유로 최고급 치즈를 만든다’라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며 밭과 목장 그리고 애지중지하는 소를 돌봤다. 그 결과 효덕목장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유기농과 해썹(HACCP) 인증을 받았다.

고다 치즈는 일주일 정도 건조한 후 6개월 정도 숙성실에 놔둔다. 숙성하는 동안 자주 뒤집고 닦아주면서 치즈 속 유산균이 활발히 활동하도록 도와 치즈의 풍미를 끌어올린다.
정성을 들여야 치즈 맛이 든다
“시간에 쫓겨서 치즈를 만들면 당연히 좋은 치즈가 나올 수 없어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여야 저 자신도 만족하는 치즈가 완성되죠. 몸이 고되긴 하지만 치즈를 만들 때만큼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쑥스러운 듯 웃으며 얘기하는 이선애 대표의 하루 일과는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따라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4시 30분부터 착유를 시작한다. 오전 6시쯤 살균차가 목장으로 들어오면 저온 살균한 뒤 우유를 받아 본격적으로 치즈 만들기를 시작한다.

“우유는 반드시 63~65℃에서 30분간 저온 살균을 거쳐 냉각합니다. 우리 몸에 해로운 대장균은 사멸시키고 이로운 유산균만 남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다음 유산균을 접종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유산균 수가 늘어나면서 젖산이 생성돼요. 풍부한 젖산은 치즈의 풍미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죠.”

약 한 시간에 걸친 배양이 끝난 뒤 응유 효소를 넣으면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한 커드가 생성된다. 그런 다음 커드를 잘라 성형 틀에 넣는데, 어떤 크기로 자르느냐에 따라 치즈 종류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커드를 잘게 잘라 성형 틀에 넣고 꾹꾹 눌러 압력을 가하면 수분이 적고 딱딱한 고다 치즈가 완성된다. 반대로 커드를 크게 잘라 성형 틀에 넣고 모양을 잡은 뒤 손으로 쭉쭉 늘어뜨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면 스트링 치즈가 만들어지는 것. 두 치즈 모두 소금물에 담가 간을 들이면 비로소 치즈 만들기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만든 치즈가 맛이 좋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맛으로 입소문이 퍼지고 상도 여러 번 타고 나니 효덕목장은 자연 치즈를 배우고 싶은 이들의 발길로 늘 분주하다. 이선애 대표 역시 치즈를 만드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치즈 수업도 함께 진행한다. 효덕목장에 놀러 오는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목축업과 관련한 직업을 소개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치즈를 만든다.

효덕목장은 와인에 곁들여 먹으면 좋은 고다 치즈부터 카망베르, 푸른곰팡이 치즈, 스트링 치즈, 요구르트 등을 생산한다.
최고의 우유와 치즈로 최고의 맛을 내다
서교동에 위치한 롤 케이크 전문점 쉐즈롤의 김영식 셰프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어떠한 빵을 만들든 간에 좋은 재료를 기본으로 써야 하고 아무리 바빠도 식재료만큼은 직접 꼼꼼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효덕목장의 우유와 치즈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가 흔히 보던 우유 색깔보다 말갛기에 무슨 맛일지 궁금했습니다. 한 모금 먹어보니 시판 우유보다 질감이 훨씬 묵직하면서 고소했어요. 스트링 치즈는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기가 막혔지요. 수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찢을 때마다 쭉쭉 늘어나는 치즈의 결도 차원이 다를 수밖에요. 고다 치즈 특유의 진한 고린내도 제대로더군요.”

효덕목장에서 생산하는 우유와 치즈 맛에 적잖이 놀란 김영식 셰프는 이를 사용해 롤 케이크와 커스터드 크림을 넣은 슈를 만들었다. 우유를 사용한 반죽으로 롤 케이크의 시트를 만들면 고소한 맛이 훨씬 강해진다는 것. 커스터드 크림을 만들 때도 효덕목장의 우유를 사용하면 부드러운 것은 물론 깊고 풍부한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날 스트링 치즈와 고다 치즈를 활용해 짭조름한 맛이 좋은 스콘도 함께 선보였다.

“스트링 치즈는 그냥 먹어도 참 맛있어요. 고다 치즈의 경우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이가 많아요. 샐러드 위에 뿌리거나 와인에 곁들여 간단하게 먹어도 맛있지만, 베이킹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강력분과 설탕, 베이킹파우더, 생크림, 우유를 넣고, 스트링 치즈는 잘게 찢고 고다 치즈는 강판에 갈아서 반죽한 다음 스콘을 만들었어요. 오븐에서 갓 꺼낸 스콘은 반으로 쪼개면 치즈가 쭉쭉 늘어나요.”

그의 말처럼 우유와 치즈는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는 매력 넘치는 식재료가 틀림없다. 이선애 대표 역시 자신이 만든 치즈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집에서 카나페, 샐러드 등을 직접 요리하며 즐긴다. 체험 학습 때는 아이들과 함께 스트링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데, “선생님, 하나도 느끼하지 않고 맛있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단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아이들의 먹거리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연의 맛을 그대로 품은 건강한 치즈를 만들고 싶다는 이선애 대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 뒤로 치즈 콘테스트에서 받은 메달들이 치즈보다 더 샛노란 금빛을 발하며 반짝인다.

김영식 셰프는 우유를 사용해 식감이 부드러운 롤 케이크와 커스터드 크림을, 고다 치즈와 스트링 치즈를 사용해 고소한 스콘을 만들었다.

요리 김영식(쉐즈롤, 070-8152-0401) 촬영 협조 효덕목장(041-553-8795)

#치즈 #효덕목장 #이선애 #김영식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