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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구관모식초의 천연 흑초
산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수백 개의 장독대가 줄을 맞춰 놓여 있다. 뚜껑을 여니 얼굴이 비칠 정도로 새까만 맑은 물이 시큼한 향을 풍긴다. 현미로 만들어 검은빛을 띠는 우리의 전통 흑초다. 아픈 몸을 치유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연구 끝에 전통 흑초의 맥을 20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구관모 장인의 집념과 그런 아버지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는 구익현 대표의 열정이 이룩해낸 값진 결과다.

구관모 장인의 뒤를 이어 전통 흑초를 만드는 구익현 대표와 흑초의 이로운 성분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인 신동민 셰프.
몸소 체험하고 터득하다
서울에서 세 시간 반 넘게 내리달았다. 일본의 장수 마을로 잘 알려진 가고시마 현의 명물인 흑초와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소문난 전통 흑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물 좋기로 유명한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이르자 지붕 위에 커다란 항아리가 있는 건물 앞에 차가 멈춰 섰다. 수백 개의 장독대가 놓인 마당으로 들어서자 구관모식초의 구익현 대표가 반갑게 맞이하며 초란에 벌꿀, 화분을 넣은 초밀란을 내놓는다.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구관모식초는 구익현 대표의 아버지 구관모 장인이 시작했다. 구관모 장인이 식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로지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형과 함께 운영하던 전파상이 문을 닫자 곧바로 택시 기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치료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다 보니 안현필 선생이 지은 <삼위일체 건강법>을 발견했고, 책에 쓰인 대로 천연 식초를 가까이하며 식초의 효능을 몸소 체험했다. 2년 후인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식초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제대로 된 식초 명인을 만나기 위해 산골 오지란 오지는 다 돌아다녔다. 그러한 노력을 4년 넘도록 이어오다 보니 현미와 누룩으로 만들어 향이 진하고 색이 까만 흑초, 즉 우리나라 전통 식초를 빚는 장인이 되었다.

구익현 대표가 본격적으로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은 스무살 때부터다. 항아리 나르기와 청소하기 등 밑바닥 일부터 시작하며 아버지 밑에서 식초를 공부하고 배웠다. “어릴 적부터 초두루미와 같이 나고 자랐어요. 초두루미는 유일무이하게 한국에만 존재하는 식초 항아리예요. 형편이 좋지 않아 방이 달랑 두 칸인 집에 살았는데, 절반은 초두루미가 차지하고 있었지요. 커다란 초두루미에 식초를 담그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상이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건네는 식초가 너무 마시기 싫어 도망가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흑초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관모식초는 우리의 전통 방식을 철저하게 따른 천연 흑초를 만든다. 현미를 발효시킨 식초를 항아리에 담아 최소 3년 이상 최대 15년 동안 자연 그대로 발효시켜 천연 흑초를 완성한다.

1 식초 표면에 엷게 생긴 초막. 그 옛날에 초두루미를 껴안고 흔들어 초막을 제거한 것처럼 뜰채로 자주 제거해야 발효가 촉진돼 좋은 흑초가 만들어진다.
2 시큼한 향을 풍기는 천연 식초는 아직 색이 맑지만, 사계절을 거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빛깔을 띤 흑초로 변한다. 

초야 니캉 내캉 백 년 살자
식초의 효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조상 역시 식초를 단순한 양념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길일을 택해 만들 정도로 식초를 신성시 했다.

“예부터 식초 발효 용기인 초두루미를 부뚜막에 올려놓고 가까이 두었습니다. 부엌을 드나들 때마다 초두루미를 꼭 껴안고 흔들면서 ‘초야, 니캉 내캉 백 년 살자’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재미난 사실 두 가지를 알 수 있어요. 하나는 항아리를 흔들어 발효가 잘되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는 식초를 마시면 1백 년이나 살 만큼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거지요.”

구익현 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천연 식초 속에는 몸에 이로운 성분이 풍부하다. 그 예로 식초의 신맛을 들 수 있다. 인체의 pH는 대부분 중성인데, 스트레스나 과로, 유해 음식 섭취 등으로 산성화되곤 한다. 우리 몸이 산성화될수록 염증과 종양, 암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산성 물질인 식초를 먹으면 체내를 알칼리성으로 바꿔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준다.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식초의 효능을 알 수 없어요. 십이지장궤양으로 꽤 고생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타주신 초밀란을 매일 마셨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따가운 속이 가라앉는 걸 보면서 식초가 천하의 살균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지요.”

구관모 장인 밑에서 자라고 배우며 자연스레 천연 식초 전문가가 된 구익현 대표는 천연 식초는 그 자체로 소화효소요, 장 기능을 좋게 하는 젖산균의 제왕으로 피로를 해소해주고 노화도 방지해주는 그야말로 명약이라 강조했다.

흑초가 진짜배기 전통 식초
식초는 크게 합성 식초와 양조 식초로 나눌 수 있다. 합성 식초는 화학적으로 만든 빙초산을 사용하는 식초를 뜻하며, 양조 식초는 곡물과 과일이 자연적으로 초산 발효된 것을 말한다. 양조 식초의 종류도 수십 가지에 달하는데,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사과 식초, 포도를 발효시킨 발사믹 식초, 그리고 쌀?보리?옥수수로 만든 곡물 식초가 있다. 한국 전통 식초는 고주古酒라고 해서 누룩과 쌀로 빚은 술이 숙성된 곡물초다. 천연 현미 식초가 여기에 속한다.

“좋은 식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술이 필요합니다. 좋은 술을 얻기 위해서는 전분을 당화시키는 곰팡이 효소, 누룩을 만들어야 하지요. 구관모식초는 우리 밀로 만든 누룩과 가마솥에서 쪄낸 현미고두밥, 지하 140m에서 끌어 올린 자연수로 직접 술을 빚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용수에 걸러 맑은 술만 모아 항아리에 담는데, 이를 가리켜 ‘초를 안친다’라고 말하지요.”

구 대표는 여기까지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나머지는 땅과 바람, 하늘을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식초를 만드는 것만큼 발효와 숙성에도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드넓은 마당에 놓인 항아리 속 식초는 천천히 사계절을 견디면서 최소 1년 이상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초막을 제거하는 일. 발효되면서 생성되는 초산균이 식초 표면에 엷은 초막을 형성하는데, 이를 자주 걷어줘야 공기가 유입되고 초산이 쉽게 침투해 발효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미 속 아미노산 작용이 활발해지면서 식초는 점점 까만 빛깔을 띠며 흑초로 완성된다.

“전통 방법으로 식초를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가령 흑초를 1백 통 정도 만들면 2~3통 정도는 썩곤 해요. 잘 만든 흑초는 얼굴이 비칠 만큼 까맣고 맑게 변한답니다.”

구관모식초는 현미 식초를 기본으로 칼슘 덩어리인 송엽, 다슬기, 오미자 등을 넣어 우리 몸에 좋은 약흑초를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송엽흑초와 다슬기흑초, 오디흑초는 천연 식초 제조 발명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3 구관모식초는 현미, 밀 누룩, 송엽, 배, 생강, 도라지, 오미자 등으로 술을 빚어 자연 발효시켜 흑초를 만든다. 현미 속 아미노산 작용이 활발해지면서 변하는검은색 식초 속에는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이 풍부하다.
4 신동민 셰프는 흑초를 활용해 참소라초회와 산미쥬레 소스를 곁들인 구운 가지 요리를 선보였다. 

흑초의 이로운 성분을 더하다
일식당 ‘미코’의 신동민 셰프는 2010년 구관모식초를 처음 알았다. 이후 그 맛과 효능에 반해 주기적으로 오디흑초를 주문해 요리에 사용하고 있다.

“식초는 자연 살균과 해독 작용이 뛰어나요. 게다가 식초는 그 자체로도 체내 흡수율이 매우 뛰어나며, 다른 음식이 체내로 잘 흡수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합니다.”

식초의 이로운 성분을 음식에 효과적으로 더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신동민 셰프가 제안한 요리는 참소라초회. 깨끗하게 씻은 참소라를 찬물에 넣고 한 시간 20분 정도 삶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칠리소스와 유자 폰즈, 오디흑초를 6:3:1의 비율로 섞어 만든 칠리 폰즈 소스를 곁들이면 참소라 초회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시큼한 맛을 내는 식초는 참소라의 살균 작용을 하고 맛도 끌어올려 건강을 고려한 요리로 손색없다. 그는 간단한 나물 무침을 할 때도 흑초를 넣으면 감칠맛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신동민 셰프는 이날 산미쥬레 소스를 곁들인 구운 가지 요리도 선보였다. 가쓰오 국물에 젤라틴을 넣고 얼음물에 식힌 후 사과 식초와 오디흑초를 조금씩 넣어 만든 산미쥬레 소스와 연두부 소스를 구운 가지 위에 뿌린 것. 그는 구관모흑초가 맛과 향이 강한 편이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과일 식초를 섞어서 활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구익현 대표 역시 매일 조금씩 흑초 원액을 그대로 마시는 것이 좋지만, 강한 향이 부담스럽다면 흑초를 물에 희석한 뒤 꿀을 조금 타서 먹으면 건강 음료로 즐기기 제격이라고 조언한다.

“백번 묻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깨닫는 것이 낫고, 백번 깨닫는 것보다 한 번 실행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구관모 장인과 구익현 대표가 흑초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식초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고, 그에 대한 고집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부자는 우리 전통 흑초의 명맥을 이어나가며 많은 이에게 건강을 선물할 것이다.


요리 신동민(미코, 02-3446-1227) 취재 협조 구관모식초(053-588-6666)

#전통흑초 #구익현 #신동민 #구관모식초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김동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