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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푸드 정신으로 키운 팔당한솔농장 자연 양계 유정란
남한강과 북한강이 둘러싼 남양주시 조안면에 위치한 팔당한솔농장의 김병수 대표는 슬로 푸드 가치를 지향하며 자연의 섭리대로 닭을 키운다. 좁은 철창 속이 아닌 넓은 평사 위에서 뛰놀며 자란 닭은 볏이 붉고 자세가 늠름하며 홰치는 소리가 우렁차다. 푸더덕 날갯짓을 하자 말간 달걀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한 자연 양계 유정란이다.

자연 양계 방식으로 닭을 기르며 싱싱한 유정란을 생산하는 팔당한솔농장 김병수 대표, 유정란으로 색다른 요리를 선보인 ‘권숙수’의 권우중 오너 셰프.
슬로 푸드의 가치를 이어가다
지난 5월, 디자인하우스에서 ‘우리밀 맛 워크숍’이 열렸다. 우리 땅에서 자란 금강밀로 만든 바게트 샌드위치와 치아바타를 맛보는 자리에서 우리밀과 수입 밀의 차이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슬로 푸드 정책위원장이자 팔당한솔농장 김병수 대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는 것은 슬로 푸드 정신의 핵심입니다. 지금 먹는 빵이 맛있는 이유는 정직하고 건강하게 기른 농산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빵 속에 들어간 달걀은 제가 직접 친환경으로 키우는 닭의 자연 양계 유정란입니다.”라는 믿음직스러운 말에 그가 생산하는 자연 양계 달걀이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팔당한솔농장을 찾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조안면이 나오는데,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 오래전부터 친환경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1984년 이곳에 정착한 김병수 대표의 농장은 약 4천 평, 그중 1천3백 평에서 약 5천 마리의 닭을 키운다.

“물과 공기 좋기로 소문난 이곳에 정착했을 때 상수원 보호 구역이라 규제가 너무 심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지역의 환경도 보호하고 경제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친환경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닭은 돼지나 소와 달리 된똥을 누는데 이를 말려서 비료로 사용하면 물과 땅을 오염시키지 않아요. 평소 동물을 좋아해서 닭을 자연 양계법으로 기르기로 결심했지요.”

한 우리에서 수탉 한 마리당 암컷을 열다섯 마리 거느리며 교미를 통해 유정란을 낳는다. 이렇게 생산한 유정란은 하루에 두 번 거두어들이고 세척장에서 깨끗이 씻는다. 
행복한 닭이 낳은 건강한 달걀
이미 알고 있듯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이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 닭은 특히나 스트레스에 민감한 동물이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베트남 출신 승려이자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의 책 <화>를 보면 닭이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낳은 달걀 속에는 그 닭의 감정과 에너지가 온전히 응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산한 달걀을 먹으면 그 기운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지요. 푸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할 순 없지만 최대한 자연의 순리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김병수 대표가 선택한 것이 바로 ‘자연 양계’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 양계란 닭을 좁은 철창에 넣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평사(모래펄) 바닥 위에 만든 닭장 안에서 키우는 것을 말한다. 평당 세 마리 이하로 비교적 공간이 넓어 이곳의 닭은 유난히 활기가 넘치고, 일반 양계장처럼 특유의 고약한 냄새도 없다. 일반 양계장에서 지독한 분변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A4용지 반만 한 공간에 닭을 세 마리 이상 가둬놓고 배합 사료만 먹이기 때문.

그가 말하는 자연 양계를 할 때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닭이 원래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최대한 공급하는 것이다. 김병수 대표는 닭의 모이로 항생제와 호르몬제가 들어 있지 않은 배합사료와 풀이나 채소 등의 초사료를 사용해 닭이 처음부터 건강한 사료를 먹고 품질 좋은 달걀을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돌보니 닭들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통 한 우리에서 수탉 한 마리당 암탉을 열다섯 마리 거느린다. 같은 공간에서 자라면서 교미를 하면 암탉이 알을 낳는데, 이런 달걀을 유정란이라 한다. “갓 낳은 유정란을 깨뜨려보면 노른자가 마치 탱탱볼처럼 보일 정도로 탄력이 살아 있습니다. 신선할수록 노른자 색깔이 훨씬 진하고, 모양도 볼록 솟아 있어요. 비린 맛이 덜하고 고소한 맛이 강해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요.”

달걀의 신선도는 닭의 건강 상태와 주변 환경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당한솔농장의 달걀은 슬로 푸드와 가치를 그대로 이어나가며, 철저히 자연 양계를 통해 생산한다. 그런 김병수 대표의 마음 씀씀이를 알기라도 하듯 이곳의 닭은 건강한 달걀을 낳아 보답한다. 아침 9시와 오후 4시 하루에 두번 거둬들이고 세척장에서 깨끗이 씻어 6구나 10구로 포장해 소비자생협 조합원, 외국인 직거래 등으로 팔려나간다.

평당 세 마리 이하로 키우는데 비교적 공간이 넓어 닭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자연 양계법,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
경험만큼 좋은 스승도 없는 법. 김병수 대표는 지난 30여 년 동안 닭을 키우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행 농법과 달리 자연 양계법은 이렇다 할 교과서가 없어요. 그저 경험에 의존하거나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지요.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닭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해보다 한방 영양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스파탐 성분이 없는 막걸리에 당귀, 감초, 계피, 유기농 설탕을 넣고 숙성ㆍ발효시킨 후 물에 희석해 2~3주 정도 먹였더니,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할 때도 이곳은 별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요.” 그는 이렇게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 양계법으로 닭을 관리한다. 항생제나 호르몬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병아리 때부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다. 갓 부화한 병아리는 하루 정도 안정시킨 후 열흘간 유기농 현미쌀을 먹인다. 일반 사료보다 거친 현미를 먹다 보니 이 농장의 병아리는 장이 튼튼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스스로 갖춘다.

“동물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안에 약한 놈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죽이려 해요. 그래서 건강에 문제가 있는 닭은 별도로 마련한 치유사에 넣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지요. 또 가끔은 풀밭에 풀어놓고 마음껏 뛰놀게 하기도 해요. 그렇게 닭이 다시 건강을 찾으면 원래 닭장으로 들여보냅니다.” 닭은 습도에 취약해 바닥이 질거나 장마철에는 쉽게 장염에 걸리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잘게 부순 숯을 닭장에 뿌린다. 살균 효과가 탁월한 숯이 닭장 안의 꿉꿉한 습기, 곰팡이와 냄새를 제거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일둥 공신인 셈. 더욱 놀라운 점은 닭이 이 숯을 쪼아 먹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숯이 닭의 장 속 노폐물의 배출을 돕는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잘게 부순 숯은 곰팡이와 습도, 냄새를 제거한다. 또 숯은 닭의 장 속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
만만해서 좋고, 맛있어서 더 좋다
식탁은 즐거움이 시작되는 곳이다. 음식을 맛있고 건강하게 즐기려면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재배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한식 다이닝 ‘권숙수’의 권우중 오너 셰프가 전국 방방곡곡 우리 땅에서 자란 귀한 식재료를 찾아다니는 이유다. 이런 그에게 질 좋은 자연 양계 유정란은 욕심나는 식재료가 틀림없을 터.

“달걀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 활용도 면에서는 웬만한 식재료를 능가한다고 생각해요. 제철이 따로 없어 1년 내내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지요. 처음 자연 양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그리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닭을 키우는 양계장 환경이 마음에 들었어요. 노른자도 일반 달걀에 비해 크고 볼록 솟아 있어 신선한 데다 직접 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강하더라고요”

그의 말마따나 달걀은 간편한 요리부터 화려한 요리까지 메뉴의 폭이 넓다. 유정란은 노른자 부분이 맛있는데, 익히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사라진다. 그는 노른자의 풍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반숙으로 조리하거나 생으로 먹으라고 조언한다.

“껍질콩달걀프라이는 반숙으로 구운 달걀 프라이에 지금 딱 제철인 껍질콩을 들기름에 볶아서 곁들여 내는데, 껍질콩 자체에 비타민과 단백질이 풍부해 달걀과 궁합이 잘 맞습니다. 맛간장과 매실청을 뿌려 노른자를 톡 터뜨리면 맛과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지요. 또 요리 위에 어란을 올리면 양념 역할을 해 감칠맛과 풍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그가 껍질콩달걀프라이와 함께 선보인 닭찜은 청주를 뿌려 밑간한 닭에 생강, 대파를 넣어 45분~1시간 정도 찐 것. 생강을 갈아서 바나나 식초, 소금을 넣은 소스와 고수무침을 곁들여 먹으면 여름철 보양식으로 더할 나위 없다. 유정란의 맛을 잘 살린 요리들이라 이날 김병수 대표와 그의 아내는 간편하면서도 색다른 달걀과 닭 요리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김병수 대표 역시 유정란으로 빵과 쿠키를 만들며 활용 방법을 적극 고민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강한 식문화를 추구하는 슬로 푸드 운동 한국 지사의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가공하지 않아 ‘좋고’ 지속 가능한 땅에서 생산해 ‘깨끗하며’ 생산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공정한 음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슬로 푸드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의 말처럼 그는 앞으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닭을 기르고 좋은 달걀을 생산하며 농장을 지켜나갈 것이다.

권우중 셰프가 요리한 껍질콩달걀프라이와 특유의 향이 강렬한 고수무침,생강 소스를 곁들인 찜닭.



요리 권우중(권숙수, 02-542-6268) 촬영 협조 팔당한솔농장(02-790-8335)

글 김혜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