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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외갓집 제주의 사계를 도시로 전하는 마을 기업
농부가 재배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에게 바로 전달하는 직거래 서비스인 꾸러미. 그 원조 격인 무릉외갓집이 어느덧 6주년을 맞이했다. 여섯 명의 농부가 뜻을 모아 시작해 스물일곱 명의 조합원이 함께 만드는 튼실한 마을 기업으로 성장한 것. 이제 무릉외갓집은 도시 소비자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의 청정 농산물뿐 아니라 시골의 푸근한 인심과 정까지 전달하려는 것이다.

1 (왼쪽부터) 안대훈 생산자, 홍창욱 운영실장, 강영식 생산자, 고완유 무릉외갓집 초대 위원장, 김정언 무릉리 이장. 이들은 4월의 꾸러미 농산물인 브로콜리, 표고버섯, 천혜향, 잡곡류를 생산하는 농부이며, 무릉외갓집 운영을 맡은 운영이사다.
2 무릉리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생표고버섯과 알배추, 브로콜리, 한라봉, 흑마늘.

매달 제주에서 선물이 도착한다

잊을 만하면 먹을거리와 관련한 사건 사고가 터지니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식당에서도 ‘이건 과연 안심하고 먹어도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은 꼼꼼히 따져 고르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요즘, 우리 사회의 눈에 띄는 트렌드를 꼽으라면 ‘농장에서 식탁까지’다. 이를 이야 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꾸러미’. 지역 농부가 정성껏 재배한 제철 농산물을 외할머니의 꾸러미처럼 이것저것 싸서 집으로 보내주는 직거래 서비스를 뜻하는데, 2000년대 말부터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 곳곳에 수십여 곳이나 된다. 그중 가장 순항 중인 곳은 단연 무릉외갓집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지역사회 환원 프로젝트인 1사 1올레마을 자매결연 사업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와 공기 청정기업체 벤타 코리아가 인연을 맺으며 탄생한 무릉외갓집은 농산물을 중간 유통망 없이 소비자에게 바로 전달하는 회원제 농수산물 직거래 서비스다. 당시 무릉리 이장이던 고완유 초대 위원장과 농촌 체험 사업을 하는 영농조합법인 시골마을의 강영식 촌장 등 마을 주민 몇 명이 주축이 되어 모색한 아이디어다. 이 꾸러미 사업을 통해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생산자가 재배한 신선한 식재료를 집에서 받을 수 있으며, 농부는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외갓집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푸근하고 늘 그리운 곳이기도 하고요. 그뿐인가요? 집에 돌아가는 길엔 먹을거리까지 바리바리 싸주지요. 그렇게 시골 외갓집에서 소포를 받는 기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릉외갓집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마을 기업의 이름을 지은 고완유 초대 위원장은 마을 주민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설득해가며 하나 둘 꾸러미 아이템을 모았다. 아직 꾸러미라는 개념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으니 함께하려는 이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9년 겨울, 여섯 농가가 합심해 꾸린 첫 꾸러미를 육지로 올려 보냈다.

1 동그라미재단과 크리에이티브 그룹 리어는 무릉외갓집의 자연 친화적 패키지 디자인과 무릉리 지역 주민의 손글씨를 활용해 로고 디자인을 제작해주었다.
2 무릉리에서 생태촌을 운영하는 강영식 대표의 누에. 누에 염색과 인형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상시 진행한다.

농사짓기엔 이만한 곳이 없지!
대부분 화산토 지형인 제주에서 무릉리 지역은 특이하게도 점질 토양으로 이루어져 농사가 잘된다. 그뿐 아니라 제주에서 가장 가문 지역이라 과일이 높은 당도를 내기에도 최고 조건을 갖추었으며, 관제 시설도 잘되어 있어 지하 100m 아래의 청정 암반수를 농업용수로 쓸 수 있으니 물 또한 최고 수질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에서도 특히 무릉리는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하다. 성인남자도 휘청거릴 만큼 강한 바람이 공기 중 오염 물질까지 날려버리니 바람 역시 청정 농산물을 만드는 데 한몫 톡톡히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마늘 중 10%가 제주에서 나며, 바로 무릉리가 제주의 대표 마늘 생산지다. 마늘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밀감을 비롯해 참다래, 망고, 당근, 검정콩, 단호박, 표고버섯, 콜라비, 팥, 브로콜리 등 엄청나게 다양한 농산물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우스갯소리로 무릉리는 사람 빼고는 다 생산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게 작물이 많으니 열두 달 꾸러미가 알찬 것은 당연지사. 열 가구도 안 되는 농가가 모여 꾸러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스물일곱 농가가 참여하는 지금도 매달 겹치는 아이템이 거의 없을 정도다.

“육지 사람에게 제주란 설레고 신비로운 땅이잖아요. 청정 농산물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이왕이면 육지에서는 쉬이 접할 수 없는 가시리, 조릿대, 메밀꽃꿀, 청귤발효액 등 제주 특산물을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우도나 모슬포 등 제주 전역의 특산물까지 꾸러미에 담습니다.” 현재 무릉외갓집의 ‘외삼촌’으로 살림을 살뜰하게 꾸려가는 홍창욱 운영실장은 직접 발로 뛰며 가장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별하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3 무릉외갓집 꾸러미를 구성하는 제철 채소와 과일을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 카드를 만들어 꾸러미에 넣어 함께 발송한다.
4, 5 무릉외갓집 전시장에서는 제주 전역의 특산물과 가공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중산간서로 2852.

강방왕 곱써!
지난 3월 4일, 무릉리에서는 벤타 코리아와 자매결연 6주년을 기념해 ‘무릉외갓집 2020 비전 선포식’을 겸한 동네 잔치가 열렸다. 그간의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2014 도농교류 농촌사랑대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벤타 코리아 김대현 대표이사가 자리를 마련한 것.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간 받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의 비전과 미션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무릉외갓집이 우수 마을 기업(행정안전부)으로도 선정됐으니 외갓집의 사랑과 정성으로 많은 이의 행복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는 기회를 가진 것이지요.”

김대현 대표이사를 비롯한 무릉외갓집은 이에 머물지 않고 한단계 더 발전한 마을 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무릉리에는 2백40여 가구가 거주하지만 무릉외갓집에 참여하는 농가는 10분의 1 정도이며, 무릉리의 꾸러미를 받는 소비자는 6백여 명 정도다. 50명도 안 되던 회원이 6년 만에 6백 명으로 늘어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농가에 골고루 수익을 분배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정직하고 정성을 기울여 재배해 제대로 된 농산물을 선보이는 것 못지않게 육지 사람에게 무릉외갓집을 널리 알려야 더욱 많은 소비자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 지난해 서울 신사동에서 무릉외갓집 전시를 진행한 것도 그 일환 중 하나며, 꾸러미 박스에 그달의 제철 농산물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레시피 카드를 제작해 넣는 작업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퍽퍽한 도시살이에 지친 이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진짜 ‘외갓집’ 역할을 하는 농촌 체험과 민박 등 관광 사업도 계획 중이다. 사람들이 무릉리를 일부러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2013년에는 무릉외갓집 전시 판매장을 마련했으며, 근처에 무릉외갓집 카페도 열었다(운영비를 조달하기 어려워 얼마 전, 무릉외갓집 카페는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홍창욱 실장은 유명 음식점이나 카페가 제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제주에서 나는 사계절 진미가 궁금하다면, 여유없이 바쁘기만 한 나날에 위로가 필요하다면 강방왕 곱써!(가서 보고 와서 알려주세요).”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