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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농원의 감귤 기후가 변하면 농사법도 달라져야 한다
흔히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라 한다. 한데 제주에서 만난 드림농원의 김병학 대표는 “하늘을 이겨야 맛 좋은 감귤이 난다”고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극복하고 더욱 맛있는 귤을 생산하기 위해 그는 1년 내내 과수원으로 출근한다. 김병학 대표에게 귤은 한낱 겨울 과일이 아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귀하디귀한 자식이다.

출하를 앞두고 수확이 한창인 드림농원. 이곳의 김병학 대표는 인위적으로 윤기를 더하는 왁스제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나무에 영양을 공급하고 당도를 높이는 칼슘제만 사용하기에 드림농원의 귤은 흐르는 물에 한번 헹궈 먹으면 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귤
지난해 5월 <행복> 제주 특집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수년간 제주를 드나들다 아예 게스트 하우스 ‘이꼬이&스테이’를 오픈한 정지원 셰프를 만났다. 특집 기사에 딱 들어맞는 취재원이기도 했지만, 기자에게 참 감사한 소식통이기도 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귤이 있는데, 제가 이걸 이제야 알았어요. 특히 손으로 일일이 껍질을 벗기고 곱게 썰어 말린 건조 귤이 있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맛보면 당장 제주로 내려오고 싶어질 거예요” 하는 그의 말에 ‘말린 귤이 특별할 게 무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다음 날 <행복> 편집부에 도착한 드림농원의 건조 귤은 눈 깜짝할 새 동이 나고 말았다. 도톰하게 썰어 말린 귤이 바삭하면서도 씹을수록 쫀득해 자꾸만 손이 갔다. 그렇게 드림농원 감귤과 인연을 맺었다.

7개월을 기다려 제철을 맞은 귤을 만나러 제주로 떠났다. 밀감은 품종에 따라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나는데, 드림농원은 ‘조생온주’라는 한 가지 품종에만 집중한다. 11월 말에 수확해 1월이면 모두 동나고,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귤을 구정 즈음에 수확한다. 40여 년 전, 김병학 대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그의 부모님이 심은 귤나무가 6천5백 평 대지에 가득하다. “제주의 귤 재배 농가는 약 3천6백 가구입니다. 일반적으로 2천~3천 평 정도 귤 농사를 짓지요. 저희는 6천5백 평이니 꽤 큰 규모입니다. 그래도 귤나무 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5년 전부터 타이벡 농법을 시작하느라 절반 정도 쳐냈거든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산자가 받는 귤 가격은 그대로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 물가도 수십 배 올랐지만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귤값은 인건비도 되지 않는 수준인 것. 유통시장을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 유통망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소비자에게 직접 귤의 품질을 평가받기로 했다. 수십 년간 이어오던 관행 농법에서 벗어나 금쪽같은 귤나무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만의 농법을 시도하며 직거래로만 귤을 판매한다. 직거래한 지 4년 만에 그의 귤을 찾는 이가 3천여 명이나 된다.

1 선별기가 귤을 크기별로 분류하면 김병학 대표는 다시 신선하지 않은 것이나 상처가 심한 귤을 골라내며 박스에 담는다. 
2 귤은 잎을 들치고 꼭지를 조심히 떼어낸다. 껍질이 얇고 오톨도톨한 귤이 맛있다.

나무의 진이 쏙 빠져야 다디단 귤이 난다

제주에서 귤 농사가 되는 건 땅이 아닌 기후 덕분이다. 특히 해발 80~100m에 과수원이 형성되어 있다. 육지에 비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고 눈도 습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濕雪이라 땅에 쌓이지 않고 그대로 녹아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귤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 영하의 기온이 다섯 시간 이상만 지속되어도 열매가 얼어버리기에 추운 곳에서는 귤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고 해도 도시인은 피부로 느끼기 어려울 거예요. 저같이 농사짓는 이들은 매해 다른 걸 느끼는데 말입니다. 예전엔 제주가 아니면 귤 농사가 안되었는데, 요즘은 전라남도에서도 귤 농사를 지어요. 대신 서귀포 지역의 귤 농가가 줄었고요. 온난화로 인해 국지성 소나기나 폭우가 잦아 물 관리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귤나무는 5월에 꽃이 피고 6월이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이때부터 귤 과수원은 물과 전쟁이 시작된다. 땅에 수분이 많으면 열매가 뿌리 속 수분을 빨아들여 맛이 심심해지므로 인위적으로 물을 끊어 나무의 영양분이 열매에 모이도록 해야 한다. 김병학 대표는 이를 위해 땅속에 관수 시설을 설치하고 위로는 타이벡tyvek 섬유를 깔아 나무가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물만 공급한다. 투습 방수지인 타이벡은 200m를 까는 데만도 50만원이 넘는다. 나무에 열매가 매달린 7월 즈음 깔아 수확이 끝난 뒤 다시 제거해야 하니, 보관을 아무리 잘해도 2년 정도밖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재료비도 비싸지만 빗물이 밖으로 흐르도록 이랑을 높이려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를 절반 가까이 쳐내야 하기에 수확기 한철 수입이 곧 1년의 수익인 농가에서는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타이벡 감귤이 일반 귤보다 훨씬 맛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주 전체 감귤 농가 중 3분의 1 정도만 시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귤나무는 수분과 영양분이 위로 올라가는 특성이 있어 위로 갈수록 가지도 충실하고 위쪽에 열리는 열매도 훨씬 크다. 큰 귤보다 작은 열매가 더 맛있다고 하는 건 위에 매달린 큰 것은 수분을 가득 머금어 맛이 심심하고, 귤나무의 아래쪽에 매달린 작은 열매들은 위로 올라간 수분 대신 영양분을 서로 흡수하기 위해 애 쓰며 자라 새콤달콤한 맛을 진하게 머금기 때문이다. “눈으로 나무를 직접 볼 수 없는 소비자는 알 길이 없지만 귤나무를 살펴보면 어떤 나무는 열매가 빽빽하게 매달리고, 또 어떤 것은 열매 수가 매우 적습니다. 한 해 열매가 많이 달리면, 타이벡 때문에 물도 부족한 데다 열매가 양분을 뺏어가 나뭇잎이 노르스름해집니다. 힘들다고 나무가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열매가 많이 매달릴수록 귤 맛이 좋으니 열매를 쳐내지는 못해요. 한 해 진을 뺀 나무는 자연히 이듬해 열매를 적게 맺어요. 스스로 한 해 쉬며 기운을 보충하면 그다음 해에는 다시 주렁주렁 귤이 매달립니다.”

드림농원은 현재 우수 농산물 인증 농가(GAP)로 선정되었다. 수년이 걸리는 유기 농산물 인증도 앞두고 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매년 대여섯 번씩 직접 예초를 하며, 봄이면 전정작업도 김병학 대표가 혼자 도맡는다. 수확철이 아니고는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다른 농사를 일절 짓지 않고 오직 귤 농사에만 집중하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농원으로 출근한다. 나무가 제대로 잘 크는지 꼼꼼히 살필 수 있기에 직접 전정을 하는데, 혼자 하려니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이 작업이 끝나면 가지와 풀을 파쇄해 퇴비로 만들어 과수원에 다시 뿌리고, 고등어나 갈치 등 생선에 당밀 등을 넣어 발효시켜 액비로 만들어 사용한다. 귤이 노랗게 여무는 넉 달간 나무는 목마름을 견뎌야 하니 나머지 계절에는 나무에 이렇듯 공을 들인다.

3 껍질을 벗겨 20시간 말린 귤은 한 봉지에 5천 원, 껍질째 얇게 썰어 말린 귤은 한 봉지에 3천5백 원에 판매한다. 
4 잔류 농약 검사, 당도와 산도를 측정하고 포장 작업이 이루어지는 드림농원의 선과장.

예쁘지 않아도 달다

물심양면으로 공들여 키운 드림농원의 감귤은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하기에 완전히 다 익을 때까지 두었다가 수확한다. 일반적으로 70~80% 정도 익은 뒤 수확하는 귤보다 맛이 좋은 비결이기도 하다. 특히 귤은 익는 동안 나무를 힘겹게 만드므로 조금이라도 일찍 수확하면 나무가 회복할 시간이 늘어나 매해 일정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농가에도 이득인 셈. 한데 완전히 익은 귤이 맛도 좋지만 사과나 배 등 다른 과일과 달리 앉은자리에서 열 개는 거뜬히 먹을 수 있기에 완전히 익은 후 수확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직거래가 가장 좋은 건 소비자의 이야기를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들 저희 귤은 중독성이 있다고들 합니다. 구입한 지 며칠 만에 다 먹었다며 다시 주문하는 고객도 많습니다.”

수확한 귤은 선과장으로 옮겨 솔로 먼지를 닦아 크기별로 선별한다. 작은 것부터 1~10번으로 분류하는데, 1번과 9, 10번은 주스용으로 사용하고 2번부터 8번까지 고루 섞어 박스 하나에 담는다. 병든 것은 버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껍질에 상처가 난 것은 파치로 분류한다. “깨지거나 흠이 난 걸 파치라고 하지만,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날짜도 기억합니다. 지난 6월 2일에 태풍이 온 것처럼 강풍이 몰아쳤어요. 가장 여릴 때 큰바람을 맞아 서로 부딪히며 겉에 상처가 많이 났습니다. 올해는 유독 껍질이 예쁘지 않은 귤이 많아 걱정입니다.” 상처가 심한 귤을 파치라고 하기에 아까워 몇 해 전부터 드림농원에서는 건조 귤을 만든다. 귤을 식촛물에 깨끗이 씻은 뒤 껍질을 벗겨 60℃에서 20시간을 말려 완성한다. 슬라이스한 것 열두어 개를 한 팩에 포장하는데, 당도가 높아 말린 뒤 틀에서 떼어낼 때 부서지는 것이 반이라 한 팩을 만드는 데도 귤 대여섯 개가 들어간다. 단골 고객에게 서비스로 한두 개 넣어 보냈는데, 찾는 이가 많아 지난해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냉장 보관하면 여름에도 새콤달콤한 귤을 즐길 수 있어 귤 마니아에게 고마운 제품이다.

김병학 대표에게 “하늘을 이겨야 한다”는 말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거스른다는 뜻이 아닌, 부모님이 물려주신 과수원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리라.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새로운 농법을 연구하고, 더욱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재배하니 드림농원은 매년 풍년이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