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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 오아로 파프리카 21세기식 안심 농산물
요즘에야 파프리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밥상에 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 즈음부터다.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은 이 채소를 국내에 대중화하고, 이제 일본과 캐나다 등에 수출까지 하는 데는 바로 ‘오아로 파프리카’라는 브랜드의 공이 크다. 아날로그의 대표 주자라 여기던 농업에 첨단 과학을 접목해 ‘21세기식 농사’를 짓는 농업 회사 법인 농산을 찾았다.

농가끼리 힘을 합쳐 돌파구를 찾다
식물학적으로는 같은 품종에 속하지만 육질이 질기고 매운맛이 나는 것은 피망, 단맛이 돌며 식감이 아삭아삭한 것은 파프리카라고 구분한다. 비타민 A와 C가 오렌지에 비해 4배나 많은 파프리카는 샐러드나 주스 등의 재료로 빠지는 법이 없다. 1990년대 말부터 분 웰빙 열풍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재배하기 시작한 대표 서양 채소로, 몸에 좋은 것이 맛도 좋아 금세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 파프리카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유럽으로 전해지며 품종 개량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나는 파프리카 품종의 대부분은 네덜란드에서 개량한 것이다. 국내에 들어오며 기온이 따뜻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심었고, 전라북도 김제에서 토마토와 장미 재배를 전문으로 하던 참샘영농조합에서 대규모 재배를 시작했다. 파프리카의 상품성을 주목한 것은 바로 이곳의 조기심 대표. 수십 년간 일본을 상대로 의류 사업을 하던 그는 농업에 종사하던 부모님과 동생에게 파프리카 얘기를 듣고 일본 시장을 살폈다. 그 당시 일본 시장은 네덜란드산 파프리카가 대부분이었는데, 농산물은 신선도가 제일이니 이동 거리가 훨씬 가까운 우리나라가 얼마든지 공략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파프리카 농사에 올인했다. 한데 네덜란드에서 종자를 비롯해 재배 노하우, 설비 등을 모두 들여와 만족할 만한 품질을 만들어낼 즈음, IMF 사태가 닥쳐 위기에 봉착했다. 그는 한국 시장에서 농가끼리 경쟁하기보다 서로 협력해 시장 경쟁력을 갖추자는 혜안으로 온실 시설이 있는 주변 영농조합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영농조합 10여 개를 모아 농민이 주주가 되는 농업 회사 법인 농산을 설립했다. 파프리카 재배를 시작한 지 5년 만의 일이다. 이제 전국 각지의 18개 영농조합에서 한 해 5천5백 톤의 파프리카를 생산하며,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파프리카 전문 농업 회사로 성장했다.

파프리카가 자라는 유리온실에는 사다리차가 다니는 레일이 깔려 있다. 위로 높이 자라는 파프리카를 수확하려면 이동식 사다리차가 필수기 때문이다.

초록색 열매는 노르스름한 색을 거쳐 점차 붉게 익는다. 여름에는 제 색의 70%, 겨울철엔 90% 정도 들었을 때 수확한다.
직접 보지 않고도 수확 시기를 정한다

보통 농가 5~7곳이 모여 하나의 영농조합을 조직하는데, 영농조합 십수 개를 합친 곳이니 농가 관리가 곧 품질 관리인 셈. 이곳에서 생산하는 파프리카는 ‘오아로 파프리카’라는 이름을 다는 만큼 품질이 일정한 농산물을 내기 위해 종자부터 재배 환경, 유통 과정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각 온실마다 농사짓는 걸 모두 모니터링하는 거지요. 온실 내·외부 온도도 시간별로 체크하고, 물 주는 시간, 물양 등 파종부터 수확까지 성장 과정을 전산으로 관리합니다. 따라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프리카가 자라는 유리온실은 실험실을 연상케 한다. 흙이 아닌 휘록암, 석회암 등을 고온에서 용해시킨 뒤 솜 반죽 모양으로 섬유화해 장시간 수분 유지가 가능한 암면岩綿에 뿌리를 내려 키우는 양액 재배법이다. 파종해 뿌리가 나면 암면에 다시 옮겨 심고 여기에 영양과 물을 공급한다. 파종 후 첫 수확까지 일반적으로 4개월이 걸리는데, 3m 이상 자라 높은 유리온실의 천장까지 이르면 걷어내고 다시 파종한다. 온실 면적도 큰 데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게 자라 이동식 사다리차를 타고 다니며 수확한다. 컴퓨터와 신소재가 곳곳에 가득한 첨단 과학이 난무하는 재배 현장인 것.

단, 화학 농약 없이 천적을 이용해 해충을 없애는 친환경 천적 재배법만은 고수한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심 먹거리를 만든다’는 조기심 대표의 철칙 때문이다. 무당벌레, 진딧물 등을 키워 해충을 막는데, 농약을 뿌리는 것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씻지 않고 먹어도 될 정도로 안전한 파프리카를 키우기 위함이다. 품종과 재배법을 테스트하고 연구하는 온실을 따로 두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병충해에 강하고, 맛도 좋은 파프리카를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품종을 들여와 시험 재배 과정을 거쳐 시판한다. “파프리카는 색에 따라 영양소가 약간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이보리색을 띠는 파프리카와 보라색 파프리카도 재배했습니다. 그런데 단맛이 덜해서인지 소비자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세 가지 색의 파프리카만 재배합니다. 작은 농가였다면 판매할 물량을 수확하는 일만으로도 벅차 감히 품종 테스트를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겠지만, 여럿이 함께 만들다 보니 가능한 일입니다.”

1 해충 방제를 위해 진딧물이 좋아하는 보리를 온실 곳곳에 두었다.
2 파프리카를 직접 구입하러 들르는 고객을 위해 부지 내 판매 숍을 운영한다.

수년에 한 번 정도 천적으로도 해충 관리가 되지 않을 때만 햇빛에 자연 분해되는 농약을 사용한다. 햇빛에 의해 3일에서 일주일 정도면 자연 분해되는 값비싼 농약만 고집하는데, 이때도 수확 시기를 하루 이상 늦춘다(햇볕이 강하지 않은 겨울철에는 3~4일 정도 더 기다리기도 한다). 잔류 농약이 검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수확 후 농약 잔류량 검사도 필수로 거친 뒤 시판한다.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채소인 파프리카는 18~24℃의 온도를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유리온실 내 천장에는 자동 스크린을 부착해 햇볕이 너무 강한 계절에는 스크린을 여닫는 시간도 관리한다. 열매가 자라는 시기와 색이 변하는 시기의 온도 설정도 달라야 해 성장 속도가 다른 빨강 파프리카와 노랑 파프리카는 온실을 분리해 재배한다. 그런데도 한 줄기에 열리는 열매 수가 겨울에는 여름의 절반 정도다.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더딘 겨울철에는 열매가 크고 뚱뚱하며, 여름에는 그 반대다. 줄기에 초록색 열매가 달린 뒤 점차 커지고, 다 자란 후에야 비로소 제 빛을 찾아간다. 이렇게 매일의 온도와 착화 시기, 성장 과정을 전산으로 관리하고, 예상 수확일이 되면 외부 농가로 냉장차를 보낸다. 수확하자마자 선별장으로 들여와 선별, 포장 작업을 빠른 시간 내로 끝내 하루가 채 걸리지 않고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열매가 직접 흙에 닿지 않고, 농약도 쓰지 않아 꼭지 부분을 솔로 가볍게 털어내 포장한다.

3 수확 후 냉장차로 들여온 파프리카는 색, 크기별로 등급을 매기는 선별 작업에 들어간다.
4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유리온실. 온도 유지와 혹시 모를 오염 방지를 위해 온실 내 유리문을 이중으로 설치했다.

우수 농산물 수출 공동 대표 브랜드를 달다

하루가 달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시대이니 농업도 과학화, 기업화해야 한다는 조기심 대표는 농산물 브랜드 마케팅의 중요성에도 주목했다. 현대 소비자는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믿을 수 있는 브랜드, 잘 알려진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영농조합 10여 개에서 생산하는 파프리카 모두 ‘오아로’라는 브랜드를 달고 국내 시장과 일본에서 판매하는데, 재배 농가는 더욱 품질에 신경 쓰고 소비자는 브랜드 네임 하나만으로도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뿐 아니라 파프리카 포장지에 바코드를 부착해 어떤 영농조합에서 재배했는지부터 파종일과 수확일까지 재배 과정 정보를 담아 국내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납품하고, 일본 최대 유통 기업 돌 재팬Dole Japan을 통해 일본에도 유통한다.

이 같은 노력은 정부 지정 최우수 원예 전문 수출 단지로 지정받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우수 농산물 수출 공동 대표 브랜드 ‘휘모리Whimori’를 부착할 수 있었다. 파프리카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곳만이 휘모리 브랜드를 달고 일본 시장에 수출한다. “일반 농가는 계절에 따라 여러 작물을 재배하지만, 우리는 파프리카만 전문으로 재배해 전문성을 강화한 것도 성공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생채소가 아닌 가공식품으로도 개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오이와 토마토에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조기심 대표는 회사 구내식당 메뉴에 하루도 빠짐없이 파프리카를 올리게 한다.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먹는 농산물’이니 더욱 안전하게, 제대로 키우고자 함이다. 최신 농업 기술과 과학기술 그리고 자연이 함께 키운 파프리카라니 한 송이 열매가 더욱 값지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