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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랑 장독대 더욱 완전한 발효 식품으로 태어난 장醬
전국을 돌며 바쁘게 살아온 부부는 집 앞에 콩을 심고 키우며 사는 평온한 노후를 꿈꿨다. 한데 1천 평에 씨를 뿌려 키운 콩이 그들에게 선물한 건 더욱 바쁜 인생 2막이었다. 수확한 콩과 벌꿀 발효 농축액을 더해 ‘기능성 장’을 만드는 고시랑 장독대의 고상흠ㆍ지민정 부부의 이야기다.


수십 년을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로 지내온 고시랑 장독대의 고상흠ㆍ지민정 대표.


틈새시장을 공략하다
충북 보은 속리산 자락에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마을이 있다. 제주 고씨 집성촌인 신문리는 주민 모두가 이웃이고, 친척이다. 고시랑 장독대 고상흠 대표는 신문리에서 앞집의 아버지와 옆집의 큰형과 함께 어울려 산다. 불교 관련 액세서리 도매업을 하느라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을 돌아다니는 것이 일이던 고상흠ㆍ지민정 부부가 몇 날씩 집을 비워도 걱정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집보다 타지에서 머무는 날이 많은 삶에 지친 부부는 가족과 함께 어울려 살기로 결심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형과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집 앞에 콩을 심고, 대추나무를 키우고, 땅을 일구며 감자, 수세미, 복숭아 등 농사를 지었다. “10여 년 전, 1천 평에 콩을 심어 수확해 공판장에 내다 팔았더니 14만 원이라 하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들은 재배한 콩으로 장을 담그기로 마음먹었다. 맞벌이를 하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직접 장을 담가 먹었으니, 장 담그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것. 노후를 책임질 일이기에 시장조사부터 철저하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시판 장 제품은 이미 대기업이 시장을 80% 이상 점유하고 있었다. 남다른 제품 없이는 소비자를 공략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아내의 건강을 수십 년째 지켜온 약초 발효 농축액이었다. 20여 년 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그녀는 지인의 권유로 일본 만다 효소(일본의 마쓰우라 신고로 이학박사가 만든 50여 종의 식물을 숙성 발효시킨 효소)를 구해 먹었다.

그 때문인지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만다 효소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직접 효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추, 인삼, 칡 순, 돼지감자, 개복숭아 등 주변에 서 나는 재료에 시아버지가 양봉해 뜬 꿀로 청을 담가 숙성시켰다. 각종 식용작물과 약재ㆍ약초와 관련한 수십 권의 책을 뒤지고, 한의사와 교수 등 주변의 지인들에게 물어가며 틈틈이 공부해 만들어온 보물 같은 효소를 장에 넣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장은 세계적으로도 건강에 이로운 발효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니, 발효 농축액을 더하면 더욱 건강한 먹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인은 믿을 수 있는 먹거리,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으니 내가 정직하게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분명 알아봐주는 이가 생길 거라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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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띄운 메주 위로 하얀 고초균이 예쁘게 피었다.좋은 짚과 충분한 햇볕이 메주를 발효시킨다.
2 고시랑 장독대에서 현재 판매 중인 2010년 정월 장. 이곳의 장은 겉면에 모래알처럼 까끌까끌한 알갱이가 뜨는데, 이는 아미노산이 올라온 것이라고.


전통과 현대를 모두 존중할 것
햇볕과 바람ㆍ물이 좋은 장을 만들지만, 장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다. 메주와 소금물이 든 항아리에 햇볕이 내리쬐고 바람이 지나가며 익는 동안 그저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고시랑 장독대’의 이름을 내건 제품이 시장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10년. 이날을 위해 고상흠ㆍ지민정 대표는 10년을 준비했다. 매해 장을 담그고 맛을 보며 만족할 만한 맛과 일정한 품질을 만들어낼 때까지 수차례 시도하고 기다렸다. 다른 계절에는 할 수 없어 그저 꾸준히 한 해 농사가 끝나면 콩을 수확해 메주를 띄웠고, 정월 즈음에 좋은 날을 골라 장을 담갔다. 충청북도 보은에서 나고 자란 고상흠 대표는 타고난 성격이 느긋해 기다리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대추, 황기, 가시오가피 등 일곱 가지 한약재를 넣어 담근 장을 3개월 후에 가르며 대추 발효 농축액을 더해 숙성시켰다. 1년 후 맛을 보니 신맛이, 한 해를 더 묵히니 쓴맛이 돌던 장이 제맛을 내기 시작했다. 항아리에서 3년을 오롯이 보낸 뒤에야 얻은 맛이었다. “3년 묵은 된장 맛을 본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3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만하면 되었다는 안도감도 들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민정 대표는 된장을 시작으로 자신감을 얻어 마늘 발효 농축액, 인삼 발효 농축액을 넣은 고추장을 만들며 차근차근 고시랑 장독대만의 맛을 만들어갔다. 해마다 약재와 농축액의 비율을 조금씩 달리하며 마침내 완성한 고시랑 장독대의 발효 된장은 3년을 숙성시킨 뒤에야 병에 담아 소비자에게 전해진다. 제품을 시판하기 전에 기능성 장, 마늘 고추장의 성분 검사를 받아 특허도 냈다.

현재 고시랑 장독대의 마늘 고추장과 제조법, 기능성 장류의 조성물과 제조법, 청국장, 청국장 환, 건강 보조식품 농축 조성물 등이 모두 특허로 등록되어 있다. 장 소비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부부의 다음 과제였다. “장은 우리 밥상의 근간이라지만,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밥 먹을 시간이 적은 요즘 가정에서는 1년에 소비하는 장이 1kg 남짓인 경우도 허다해요. 먹기 편하게, 조리하기 쉽게, 더욱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장 소비량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약재와 발효 농축액을 더해 짠맛과 냄새를 줄인 된장을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만든 것처럼 한 번 끓이면 사방에 퀴퀴한 냄새가 퍼지는 청국장도 그 단점을 보완해보기로 했다. 또 청국장을 발효 농축액과 접목해 건강 기능 식품으로 만들 계획도 세웠다. 

5분 만에 끓여 먹는 퓨어 청국장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고시랑 장독대의 청국장은 ‘퓨어 청국장’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를 만드는 데도 수일이 걸리지만 된장에 비하면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저농약으로 재배한 콩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린 뒤 가마솥에서 여섯 시간을 삶는 것. 메주 만들 때는 손으로 누르면 사르르 으깨질 때까지 열 시간 정도 삶아야 하지만, 청국장은 알알이 살아 있을 정도로 삶아야 씹는 맛이 좋다. 그런 다음 짚 위에 얇은 면포를 깔고 삶은 콩을 올려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랩과 젖은 수건을 덮어 발효실에서 30~40℃로 이틀간 저온 발효를 시키면 바실루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lis 균이 번식해 찐득한 실이 생긴다.

1 발효기술과 제조법으로 특허 받은 고시랑 장독대의 대추꿀발효고추장, 퓨어 청국장, 발효된장.
2 삶은 콩을 이틀간 저온 발효해 청국장을 띄운다. 흰실이 쭉쭉 늘어나면 제대로 발효가 된 것이다. 이를 한 김 식혀 건조실로 보낸다.


콩을 뒤저을 때마다 실이 쩍쩍 늘어나면 제대로 발효가 된 것이다. 보통 이 콩을 으깨 고춧가루, 마늘, 소금 등의 양념을 해 버무려 청국장을 만드는데, 고시랑 장독대의 퓨어 청국장은 여기에 몇 가지 과정을 더 거친다. 발효한 콩을 찬찬히 펼쳐 50시간 동안 저온 건조시켜 분쇄기에 넣고 굵게 간 후 새우 가루, 표고버섯 가루, 조선간장, 황태채와 꿀대추 발효 농축액을 섞어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퓨어 청국장은 특유의 냄새가 확연히 덜 할 뿐 아니라 조선간장과 발효 농축액이 산패를 방지해 냉장고에 보관하면 1년 넘게 두고 먹을 수 있다.

끓여 먹는 법도 간단하다. 끓는 물에 김치, 두부, 채소를 넣어 익히다 퓨어 청국장을 풀고 후루룩 끓이면 된다. 조리 시간이 짧아 간편한데다 청국장의 영양소도 오롯이 섭취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퓨어 청국장으로 찌개를 끓였더니 청국장 냄새라면 딱 질색하던 부부의 자녀들도 맛있게 잘 먹더란다. “저도 청국장을 끓이면 집 안에 가득한 냄새 때문에 요리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았어요. 전통 식품을 젊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변형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먹기 꺼리는 식품은 결국 뒤처지게 마련이니까요.”

전통 방식과 새로운 발효 기술을 결합한 고시랑 장독대의 남다른 발상은 건조 청국장을 가공한 청국장 가루와 건강 기능 식품인 청국장 환으로 발전했다. 여덟 종류의 청국장 환을 만들어 판매하는데, 퓨어 청국장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콩을 삶아 저온에서 발효시킨 뒤 건조해 분쇄기에 곱게 갈아 각각 여덟 가지 꿀발효 농축액과 배합해 동글동글하게 만든다. 충북 보은의 특산물인 대추 발효 농축액을 넣은 ‘대추청국장환’을 비롯해 봄에 나는 칡 순, 매실, 이른 여름에 나는 개복숭아, 쇠비름, 수세미, 가시오가피, 돼지감자에 각각 벌꿀을 넣어 청을 담가 거른 발효 농축액을 청국장과 배합해 환을 만든다.

된장을 활용한 요리 소스 등 레시피 개발에도 열심이다. 소스류를 시판하기 위해 작은 생산 설비도 짓고 있으며 제조 허가를 받아 올해부터는 시판할 계획을 세웠다. 다양한 유통 채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 식품 박람회에도 부지런히 참여하는 등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고상흠ㆍ지민정 부부는 바로 그들이 만드는 ‘지극히 전통적이며 완전히 새로운 장’의 힘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