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제천 얼음딸기 작목반 이승윤 씨 모진 추위를 견딘 야무진 딸기
충청북도 제천 의림지, 겨울이면 꽝꽝 언 얼음 위에서 빙어 낚시와 눈썰매를 즐기러 많은 이가 이곳을 찾는다. 여기서 차로 5분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다디단 딸기를 만날 수 있다. 이름 하여 얼음딸기다. 추위가 절정에 이르는 한겨울, 바로 지금이 가장 맛있는 딸기를 맛볼 수 있는 때다.


해 뜨기 전부터 비닐하우스에 내려가 딸기를 수확하는 농부 이승윤 씨.그가 키우는 얼음딸기는 단단한 속살과 달큰한 맛이 일품이다.

얼음 속에서 열리는 딸기
행정구역으로 제천은 분명히 충청도인데, 이곳에서 만난 농부 이승윤 씨는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1km만 가도 강원도에 닿는 충청북도 동쪽 끝자락에 있어서인지 이 동네에서는 어디를 가도 강원도 억양을 들을 수 있다. 말뿐만 아니다. 매서운 추위도 강원도의 겨울과 꼭 닮았다.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영하 10℃까지 떨어지는 날도 흔하다. 모든 생명력이 눈 속에 파묻혀버린 듯한 이 겨울에 싱그러운 봄의 대표 산물인 딸기가 이곳에선 제철을 맞는다. 제천의 특산물 중 하나인 ‘얼음딸기’는 한겨울에 맛과 향이 가장 다디달다.

충청남도 논산과 예산을 우리나라 딸기의 주산지로 꼽지만, 제천에서는 11월 말부터 시작해 6월 초까지 딸기를 수확한다. 봄에 절정을 이루는 충청남도 지역의 딸기와 달리, 초겨울부터 초 여름까지 딸기 농사를 지으니 이승윤 씨는 이를 ‘틈새 농업’이라 한다. 남들보다 먼저, 그리고 늦게까지 수확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농사라는 뜻이다. 제천에서 딸기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 년 전의 일.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논산에서 묘목을 얻어다 비닐하우스 한편에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저를 비롯해 동네 사람 모두 이렇게 추운 데서 딸기가 제대로 자랄 리 없다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딸기가 열리더라고요. 신기한 마음에 자주 들여다봤어요. 그러다 나도 한번 해보자 싶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딸기 농사가 벌써 올해로 7년째에 접어듭니다.”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 말하던 제천 딸기가 ‘얼음딸기’라는 이름을 얻은 사연도 재미있다. 추운 날씨 탓에 비닐 한 겹만으로는 하우스 내 온도를 조절하기 어려워 그 위에 비닐을 한 겹 더 덮었는데, 그 사이로 얼음 터널이 생겼다. 이 모습이 마치 얼음속에서 딸기가 열리는 듯해 이런 이름이 붙은 것. 현재 제천 시내 스무 가구가 제천 얼음딸기 작목반을 꾸려 농사를 짓는다.


1 딸기의 반을 가르면 속살이 빈틈없이 단단하게 차오른 것이 얼음딸기의 특징이다. 식감도 좋지만 일주일을 두어도 잘 무르지 않는다.
2 딸기는 벌을 이용해 자연 수정한다. 사람 손으로 인공수정하는 것보다 벌이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훨씬 수정률이 높다.


고생스럽게 자라 단단히 들어찬 속살
평생 여름 농사만 짓던 이승윤 씨는 딸기 농사를 시작한 후로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 여름 토마토 농사가 끝나자마자 딸기 모종을 심어 키운다. 60㎡(약 18평)짜리 비닐하우스 열 동을 아내와 함께 관리하는데, 새벽 5시면 비닐하우스로 내려가 딸기를 따고 오전 9시면 집으로 돌아와 딸기 선별ㆍ포장 작업을 이어간다. 경매가 열리는 오후 4시까지 공판장에 딸기를 배달한 뒤에야 그의 하루는 끝난다. “이렇게 새벽부터 딸기를 따야 수확한 후 10시간 이내에 소비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내년이면 환갑이라 하루 종일 몸을 부려야 하는 고된 일이 슬슬 힘에 부치지만, 딸기를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이지요.”

이승윤 씨가 귀히 여기는 얼음딸기가 자라는 하우스에는 새콤하고 달큰한 딸기 내음이 진동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릇에 딸기를 한 줌 담아 차 안에 두기도 하는데, 웬만한 방향제보다진한 향을 낸다. 강렬한 향 못지않게 맛 또한 일품이다. 평균적으로 딸기의 당도가 6~7브릭스brix인 데 반해, 이곳의 딸기는 10~12브릭스에 이른다. 딸기를 한 입 깨물면 속살이 빈틈없이 가득 들어찬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도 시련을 겪은 뒤 더욱 단단해지고 철이 드는 것처럼 이곳의 딸기도 추위를 견디며 자라 속이 야문 것이리라. 한데 이곳 딸기 품종이 별난 것은 아니다. 충청남도 지역에서 재배하는 딸기와 마찬가지로 충청남도 논산원예시험장에서 국산 품종인 설향과 금향 원종을 보급받아 묘목을 키워 농사를 짓는다.

이승윤 씨가 처음 딸기 농사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일본산 품종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 국내 딸기 농가의 80% 이상이 국산 품종만 사용한다. 같은 품종을 사용하지만 기후가 다르니 재배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제천 얼음 딸기 작목반원들이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농사법이 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이제는 강원도 평창의 몇몇 농가에서도 저온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이곳 딸기 농사의 가장 큰 특징은 남다른 비닐하우스에 있다.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는 100㎡(약 30평) 크기로 짓는데, 이 곳은 온도 관리를 위해 그보다 작은 60㎡로 한 동을 지어 수막 시설을 한다. 3중으로 친 비닐 사이로 물을 흘려 보내 얼음이 비닐하우스 내 온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치 에스키 모인의 이글루 같은 것. 실내 온도가 3℃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중요한데, 난방을 하면 잎이 마르기 때문에 온도가 많이 내려갔을 경우 열등을 켜두어 온도를 관리한다. 하지만 2중, 3중으로 비닐을 쳐도 비닐하우스 가장자리 쪽은 냉해를 입는 일이 다반사다. 몇 년 전에는 실내가 따뜻하면 딸기가 더 빨리 자라고 냉해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비닐을 4중으로 쳐보기도 했지만 햇볕이 부족해 딸기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속도에 맞추기로 결심했다. 남쪽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수확할 때 이곳에선 한 두 번 수확하니 생산량은 적지만, 냉해를 입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들여다보며 공을 들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딸기로 딸기를 키우다
이승윤 씨가 재배하는 딸기는 가지에서 따서 흙만 훌훌 털어바로 먹어도 된다. 저농약, 유기 농법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농약은 초기에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소량을 한두 번만 사용한다. 딸기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유황 훈증기를 이용하거나 진딧물, 벌 등의 천적을 이용한 자연 농법으로 농약을 대신한다. 딸기알을 크게 키우기 위해 비대제 등을 과육에 주사하는 일도 절대 하지 않는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한다는 농부로서의 신념과 가족이 먹을 것이니 더욱더 건강하게 키워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또 이곳의 추운 날씨도 한몫한다. 기온이 워낙 낮으니 벌레나 병균도 활동하지 못해 여름 농사보다는 병충해 걱정이 덜하다. 비료도 유기 비료만 사용한다.

효모균을 배양해 퇴비로 만들어 쓰는데, 이마저도 2~3년간 작물에 들어가도 안전한 상태가 될 때까지 두었다가 뿌린다. 비료는 물에 희석해 땅속에 꽂아둔 영양관으로 흘려 보내 이파리와 열매 부분에는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얼음딸기는 겨울에 가장 맛이 좋다지만, 그의 딸기는 처음 나오는 초겨울부터 끝물까지 계속 진한 단맛을 낸다. 이승윤 씨는 그 비결로 딸기액비를 꼽는다. 딸기 수확이 끝나갈 무렵, 못생기고 무른 열매를 골라 항아리에 설탕과 함께 넣어 청을 담가 1년간 숙성시킨 뒤, 효소만 걸러 비료로 뿌린다. 버리기 아까워 담근 청을 딸기밭에 한번 뿌려보았더니 이듬해에 딸기가 더욱 달고 맛있었기에 수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그만의 딸기 재배 노하우다.


3 딸기꽃이 피고 나면 작은 열매를 맺고, 30~40일이 지나야 탐스럽게 여문다. 꼭지가 처지지 않고 살포시 들린 것이 맛 좋은 딸기다.
4 골대를 3단으로 만들어 날씨가 추워질 때마다 비닐을 한 겹 한 겹 더 덮는다. 비닐과 비닐 사이로 물을 흘려 보내 실내온도를 유지한다.


유원지로 인기가 높은 의림지가 지척이라 ‘동계 민속 대제전’이 열리는 겨울이나, 봄맞이 나들이를 나온 인파가 몰릴 때는 직거래 장터를 열어 딸기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직거래로 판매하는 양이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 정도다. 한번 딸기를 맛보고 구입한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전화를 걸어 주문하지만 이는 한사코 마다한다. 이곳 딸기가 일반 딸기에 비해 단단해 쉽게 무르지는 않지만, 딸기 자체가 약한 과일이라 택배로 배송하면 그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매달 스토리샵을 통해 만날 수 있던 ‘건강의 고향을 찾아서’에서 소개한 농산물을 이달에는 구입할 수 없는 것도 이 까닭이다).

완충제 등을 더해 포장해 여러 번 택배 배송을 시도해보았으나, 부부가 직접 모든 작업을 하려니 일손도 부족하거니와 생산 단가도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제가 키우는 딸기지만 진짜로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맛있는 딸 기가 없어요. 이렇게 맛있는 딸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 록 해야지요. 제 자식같이 소중한 딸기니 조금 덜 팔더라도 신 선하고 맛있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딸기를 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더 빨리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새벽에 따야 낮에 딴 딸기보다 훨씬 당도가 높으니 부지런히 일어나 작업한다. 천천히, 느리게 자라는 제천의 얼음딸기는 이토록 부지런하고 고집스럽게 곁을 지키는 이승윤 씨같은 농부가 있어 더욱 야무지게 단단히 영근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