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경북 영주, 김단 사과 자연과 농부의 합작품, 모쫄한 사과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소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영주는 봄이면 온통 사과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발그스름한 빛을 내는 사과나무가 황홀한 풍광을 자랑한다. 지천에 가득한 달큰한 사과 내음은 덤이다. 사과 하나만으로도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자연에 발맞춰 느리게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 자연이 짓는 사과 농사에 그저 손을 보탤 뿐이라는 농부 김단 씨의 과수원을 다녀왔다.


사과가 잘 자라는 땅 경상북도 영주시, 국내 최고 사과 생산지다. 영주에 다다르니 과연 첫눈에 들어오는 것도 사과나무로 가득한 과수원들이다. 부석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달려 영주시 부석면 상서리에 이르렀다. 사과나무 수백 그루가 자라는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농부 김단 씨의 집이 자리한다. 그는 일흔을 코앞에 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하다. “뒷산에 1천2백여 평, 또 저 앞 1천2백 평 평지에 사과나무 1천여 그루가 있어요. 사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집사람이랑 둘이 지으려니 벅찹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사과나무니, 아버지가 그러셨듯 저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돌봐야지요.”

제대하고 돌아와 1977년부터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35년이 넘는 세월을 사과만 바라보고 산 셈이다. 벼와 콩, 고추 등 몇몇 작물도 기르지만, 사과가 가장 손도 많이 가는 데다 투자 비용도 많이 든다. 그는 사과만큼 ‘고비용 저효율’ 농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그가 사과에 가장 애착을 느끼는 까닭은 바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맛있어지는 사과 맛 때문이다. 영주 지역은 배수가 잘되고 가뭄에도 땅에 수분이 오래 머물러 사과의 당도가 높고, 일교차가 매우 커 달고 단단한 사과가 잘 자라는 땅이기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어 사과 재배의 최적지로 꼽히던 대구 등 경북 남부 지역보다 이제는 경북 북부인 이곳이 사과가 훨씬 더 잘 자라는 지역이 된 것이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모쫄한’ 사과가 그를 붙잡았다. ‘모쫄한’은 단단하게 속이 꽉 찼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단단하게 속이 꽉 찬 이곳의 사과는 아삭거리는 육질이 일품이다. 왼쪽 수확이 한창인 김단 씨의 사과밭. 김단 씨가 나무에서 사과를 따면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는 것은 아내 이정숙 씨의 몫이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 아직 제 빛을 내려면 한 달은 더 두어야 하는 겨울 사과인 후지(부사) 품종을 제외하고 히로사키, 시나노 스위트, 시나노 레드 등의 중생종 사과 수확이 한창인 사과밭 한가운데에 들어서니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린 사과가 장관을 이룬다. 올해 사과 농사는 대풍인 것 같다며 한마디 건넸더니 지난해만 못해 걱정이란다. “지난겨울이 어찌나 추웠는지 동해가 심해 수 그루를 잃었어요. 봄에도 날씨가 따뜻히지 않아 꽃이 늦게 펴 대과가 없는 데다, 꽃이 피고 나니 또 서리가 내려 냉해도 입어 착화가 잘 안 되었지요. 여름에는 또 장마가 길고 폭염이 기승을 부려 병충해가 심했고요.”

공부하는 것보다 농사짓기가 훨씬 힘들다는 김단 씨는 한 가지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1년 치 일기예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해마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젊은 시절에는 자연이 참 야속했다. 나이를 먹은 뒤에야 ‘농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짓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의 농사 철학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자연이 하는 일을 그저 묵묵히 거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한다.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뿌려 자연을 억지로 뒤흔들지 않고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명력을 발하게 두니 신기하게도 날이 갈수록 나무도 튼튼해지고 사과도 탄탄해졌다.

흔적 없이 농사를 짓는다고 그저 가만히 앉아 사과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농약과 제초제를 치고, 화학비료를 뿌리는 일은 눈앞의 이익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이 편하자고 하는 일. 그러나 나무를 편안하게 하려니 그는 갑절로 힘들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수시로 나무 밑의 잡초를 뽑아서 땅의 영양분이 오롯이 사과나무로 모이도록 해야 하고, 타작하고 남은 콩깍지를 모아 사과밭에 비료로 뿌리고, EM 미생물을 발효해 비료도 직접 만들어 뿌린다.

“화학비료를 치면 나무가 그 영양소를 빨아들이려 뿌리가 위로 올라옵니다. 결국 뿌리가 땅속 깊이 자리하지 않으니, 겉으로는 반들반들하고 건강해 보여도 나무가 자생력을 잃고 온실 속 화초처럼 약해지지요.” 그럼에도 여름이 되면 영주는 날이 너무나 뜨거워 사과에 까만 점이 생기기 쉽고, 흑점이 생기면 금세 여기저기로 번지고 썩어버리는 통에 김단 씨는 농약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는 저농약 농법을 고수한다. 그마저도 8월 말이후로는 농약을 절대 뿌리지 않는다. 저독성 농약만 사용해 잔류 농약이 일주일 이상 남아 있지 않으니, 이곳의 사과는 먹기 전 한 번 씻어 껍질째 먹어도 안심할 수 있다.

수확할 때는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꼭지를 남겨두고 가위로 똑똑 딴 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담는다. 수십 년 호흡을 맞춰온 부부가 함께 움직이니 바구니 두어 개가 금세 무거워진다. 바구니를 옮기며 틈틈이 아직 익지 않은 과실 주위 나뭇잎을 떼어낸다. 잎이 지나치게 무성하면 열매가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해 제대로 여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잎을 떼고 나면 햇볕을 고루 쬐도록 열매를 일일이 돌린다. 1천 그루가 넘는 사과나무를 훤히 꿰고 있는 그는 수확은 물론이고 꽃을 추려내는 적화摘花 작업도, 지난해 많은 열매를 맺은 가지는 전지해 쉬게 하는 일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 비바람에 떨어진 사과를 선별해 사과즙을 만들고, 사과를 얇게 썰어 말랭이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사과 가공품 작업까지 1년 내내 쉴 틈이 없다.


1 사과를 수확하면 바로 선별기에 올려 무게와 크기별로 분류한 후, 또다시 눈으로 일일이 확인 작업을 거쳐 판매한다. 2 타작하고 남은 콩깍지, 발효 미생물 등 직접 만든 비료를 사과밭에 뿌린다. 화학비료 없이도 단단하게 속이 꽉 찬 사과가 나는 것은 그의 이런 정성 때문이다. 3 비바람에 떨어져 상품성을 잃은 사과 중 건강한 열매만 골라 사과즙을 만들어 판매한다. 50포들이 1박스는 3만 원.

농부의 땀과 정성을 응원하다 수확한 사과는 줄을 세워 선별기위에 올린다. 크기와 무게별로 한 번 추리고 김단 씨가 직접 한 번 더 꼼꼼히 선별해 대부분 농협공판장으로 옮겨 포장해서 전국으로 보낸다. 그리고 수확한 사과 중 일부는 ‘김단 사과’라는 브랜드로 판매한다. 고르고 또 골라 엄선한 특상품만이 김단 사과의 이름을 달 수 있다. 브랜드를 달고 판매한 지는 이제 3년째. 이를 기획하고 추진한 이는 바로 레스토랑 컨설팅 회사 비마이게스트의 김아린 대표다. 국내 내로라하는 레스토랑과 푸드마켓 등의 오픈과 운영, 메뉴 컨설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는 김단 씨의 조카다. 작은아버지가 편의와 타협하는 일 없이 그저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바지런히 땀 흘린 공을 잘 알기에, 또 어려서부터 먹고 자란 사과이기에 ‘귀한 사과’가 ‘귀한 값’을 받을 수 있도록 김단 사과의 브랜딩을 맡았다.

“몇 해 전, 지인들에게 추석 선물을 하려고 작은아버지께 사과를 부탁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 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색이 덜 들어 수확할 수 없다고 말이지요. 백화점이나 마트에는 사과가 풍년인데, 왜 작은아버지 댁 사과만 아직 익지 않았나 궁금해한 적이 있었어요. 비료도 있고, 얼른 색이 들도록 하는 착색제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빨리 익도록 할 수 있을 텐데…. 제가 다 안타깝더라고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때를 기다려 꽉 차게 여문 사과만 수확하는 작은 아버지의 농사 철학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곧은 마음을 응원하고픈 마음을 담아 작은아버지의 ‘작품’인 사과를 잘 판매하는 방법을 오래도록 고심했다.

스테이셔너리 전문 디자인 회사 켈리타앤컴퍼니(Kelita&Co.)의 최성희 대표와 사진작가 강운구 씨가 참여해 농장 사진을 더해서 만든 소박하고 정갈한 패키지에 김단 사과를 담아 소비자에게전달하는 일을 담당한다. 소비자와 농부의 직거래 네트워크를 마련해 매년 사과가 나올 때를 기다려 주문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사과 맛 하나로 이룬 성과이기에 김단 씨에게도 뿌듯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되 농부의 인내와 정성을 더해야 최고의 사과가 열리는데, 그것이 바로 김단 씨가 키운 사과다. “여자들이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듯 과일도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에 끌리기 쉽지요. 그런데 못생겨도 제맛이 든 것을 찾아 먹어야 합니다. 몸에 이득이 되는 것을 먹어야지요. 충분히 기다려 자연이 익혔으니 우리 사과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수십 년간 사과 농사를 함께 지은 김단 씨와 이정숙 씨의 작업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5 김단 씨의 아내 이정숙 씨가 직접 만드는 사과 말랭이.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서야 만드므로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쫄깃하고 달큰한 맛이 일품이다. 한 봉지에 7천 원. 6 김단 사과의 부석 세트. 사진작가 강운구 씨가 찍은 농장 사진이 프린트된 박스를 광목 보자기로 싸서 판매한다.


제 빛과 맛이 들 때를 묵묵히 기다려 수확한 사과중 최상급 품질만을 선별 해 담은 김단사과는 본지 311쪽 3 스토리샵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