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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즌’ 이소영・김현정 씨 사계절을 켜켜이 담아낸 자연의 산물 산야초 효소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살다 보니, 도시에 홀로 남은 딸의 건강이 걱정되어 부모는 지천인 산야초를 뜯어 효소를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었다. 수년의 정성이 담겨야 효소 한 병을 얻을 수 있다니 우리 농촌이, 농부의 땀이 달리 보이게 되었다는 젊은 딸은 농촌의 산물을 고부가가치로 만드는 ‘농촌 디자인’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산야초 효소를 시작으로 우리 농산물을 브랜딩하는 인시즌의 이소영, 김현정 대표의 이야기다.


1 가을 효소의 재료가 되는 박하와 참다래, 인진쑥, 머루, 방아꽃, 오가피 열매. 2 식초는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어야 제맛이 든다. 항아리에는 배 식초가 담겨 있다. 3 벌레 먹어 볼품은 없지만,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지 않아 건강한 생명력이 넘실대는 야생의 풀들이 바로 산야초 효소의 재료가 된다.

모정으로 하나 둘 모은 산야초 수십여 종 인시즌의 생산 기지는 이소영 씨의 부모님이 일구는 충북 괴산의 배나무골 농원이다. 인시즌의 꿈이 시작된 곳이자 현실로 만들어준 곳이다. 귀농하면서부터 담그기 시작한 산야초 효소와 배식초가 인시즌 브랜드를 론칭하며 선보인 첫 번째 아이템이다. 철마다 청을 담가 1백 일~6개월간 1차 발효시켜 거른 사계절의 진액을 항아리에 담아 산 밑 가장 서늘하고 어두운 저장고에 넣어두고 5~6년 넘게 숙성시킨 산야초 효소와 농원에서 수확한 배로 담가 해가 잘 드는 배나무 밑 항아리에서 맛이 든 배식초. 인시즌 브랜드를 달기 전부터 소영 씨의 건강을 지켜주는 음료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암 환자들의 기력 보충용으로 쓰였다. 봄이면 새순, 여름에는 이파리, 가을에는 꽃과 열매, 겨울에는 뿌리 등 약초는 철도 쓰임새도 제각각이다. 산야초 효소와 배식초를 한 병씩 담아 ‘산야초 효소 디톡스 세트’로 판매하는 것은 식초의 건강 유지와 다이어트 효과 역시 널리 잘 알려져 있는 데다 효소와 식초를 반반씩 섞어 물에 희석하면 새콤달콤해 훨씬 마시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소영, 김현정 대표는 이 효소를 대학원 지도 교수의 전시회와 ‘2012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등을 통해 첫선을 보였고 좋은 반응을 얻어 인사동과 제주 박물관 갤러리샵 등 오프라인 판매처는 물론, 온라인 판로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판매를 시작한 지 이제 1년째지만 지난해 준비한 수량이 모두 동이 날만큼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의 이목을 끄는 제품임이 분명했다. 부모님이 딸에게 먹일 요량으로 담근 효소와 식초이니 한의사에게 일일이 자문을 구하고, 약초 관련 서적을 외울 만큼 공부해 채워 넣은 약초가 80여 종에 이른다. 쿠바산 원당만 사용하지만, 설탕량을 줄이기위해 농장에서 수확한 배도 함께 사용하며, 작년에는 괴산군에서 임대한 6만여 평의 군림이 미국, 일본의 인증 기관에서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청을 거르고 난 약초 중 씀바귀 등 장아찌를 담그는 몇몇 재료를 제외하고는 모두 퇴비해 배 과수원에 활용한다. 이 약초 찌꺼기를 퇴비해 뿌린 뒤로 배가 훨씬 달아진 것은 물론 토양도 건강해졌다.

배나무골 농원에서 시작한 일 서늘한 바람이 여름을 밀어내는 초가을, 뒤로는 아담한 산이, 앞으로는 잔잔한 강이 흐르는 배나무골 농원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반할 만큼 운치가 있었다. “낚싯대 드리우고 고요히 여유도 만끽하고, 그저 배가 노랗게 익으면 며칠 따면 되나 보다 싶었어요. 도시에서보다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지요.” 대기업을 다니다 은퇴한 후 배나무골 농장 주인이 된 이소영 씨의 아버지 이지호 씨는 아내 장정해 씨와 함께 우연히 발견한 농원 딸린 집의 정취에 반해 일주일 만에 괴산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자식들에게 귀농을 통보하고 이사했지만끼니마다 딸들의 밥상이 마음에 걸리고, 건강이 염려되었다. 끼니를 챙겨줄 수 없으니 밑반찬이라도 챙겨 보내려 동네 할머니들을 따라 산이며 들로 자연을 ‘배우러’ 바삐 움직였다. “처음에는 쑥과 냉이도 구분하지 못했어요. 할머니들을 따라다니며 익혔죠. 그렇게 눈으로 익히고 입으로 맛보며 10년을 보내고 나니 준전문가 수준이 되더라고요.” 서울에 살 때도 10년 가까이 장 담그기 봉사 활동을 하며 발효 음식 예찬론자이던 장정해씨는 수십여 가지 약초를 채취해 효소를 담그기 시작했다.

이지호・장정해 씨의 큰딸 이소영 씨는 부모님이 귀농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시즌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마케팅 일을 하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홍익대학교 국제 디자인 전문 대학원에 진학했다. 인시즌을 함께 운영하는 김현정 씨도 여기에서 만나 인연이 시작된 것. 건축을 전공한 현정 씨와 마케팅 일을 하던 소영 씨는 디자인과 마케팅, 둘의 특기를 모아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국가 공모전에 도전했다. 태풍으로 발생하는 농가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청북도에서 시작한 이 공모전은 그들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소영 씨 부모님의 농원이 위치한 곳도 충청북도이다 보니, 단지 상상 속 아이디어가 아닌 실제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살폈고, 태풍으로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에 한방 농축액을 넣은 숙취 해소 음료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상품성을 잃은 과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 그들의 아이디어는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공모전 입상이라는 결과물을 얻은 그들은 상금을 들고 일본과 유럽의 식품관을 찾아 떠났다. “향토 음식을 가업으로 이어가는 시골농가도 찾아가고, 프리미엄 푸드 마켓이니 고급 백화점 식품관 등을 다 찾아 다녔어요. 우리나라에선 농부가 생산자 역할에 그치는 데 반해, 외국에서는 농부가 직접 자신의 생산물을 가공하고 포장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판매하더라고요. 그럼 농부가 키워낸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전하는 과정을 우리가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1 인시즌을 함께 경영하는 젊은 사업가 김현정 씨와 이소영 씨. 2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과 호박을 주워 한 소쿠리 담아왔다. 이를 키우기까지 흘 린 농부의 땀을 알기에 상품성을 잃은 이 런 과일을 부가가치 높은 상품으로 만드는 것, 인시즌이 하는 일이다. 3 아직 덜 여문 산사 열매.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는 각종 열매가 효소의 주재료가 된다.


4 수많은 풀의 이름과 효능까지 줄줄이 외는 배나무골 농원의 안주인 장정해 씨. 5 효소는 냉암한 곳에 두고 5~6년간 발효시킨다. 온도변화와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장실의 출입은 최대한 자제한다. 6 약초를 채취하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두었다가 쿠바산 유기농 원당과 1:1의 비율로 섞어 청을 담근다. 이것이 효소를 만드는 첫 번째 과정이다.

한 끗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브랜딩 이소영・김현정 씨는 그길로 특산물 브랜드를 조사했다. 그들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업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흙보다는 아스팔트가 익숙한 삶을 살아온 두 청춘에게 우리 농촌의 현실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공들여 키운 작물을 헐값에 넘겨야 하는 일은 다반사더라고요. 유통 과정을 줄이고자 요즘은 온라인 직거래를 하는 농가도 많지만, 현대 소비자에게 온라인 소비란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실제로 농부가 얻는 이익은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농산물 생산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내기어려우니, 한 번 가공 과정을 거쳐 특산물을 내놓아도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우리 농촌의 현실과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직시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생산자 입장을 알았으니, 다음 단계는 소비자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 유럽의 백화점 식품관 진열대에 우리의 된장 소스, 쌈장 소스가 일본 브랜드를 달고 진열된 것을 본 것이 충격이었다. 직접 사서 맛보니 우리나라의 시판 장 제품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었다. 시장에 내놓아도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제품과 고급 백화점 식품관에서 팔리는 제품은 품질보다는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임을 절감했다. 세계 시장을 둘러보고 난 뒤 그들이 내린 결론은 현대인은 ‘내가 먹는 이 식재료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는 데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식재료만큼은 믿고 안심할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제대로 브랜딩해 선보이는 일, 바로 인시즌이 탄생한 것이다.


1 지난 8월에 마련한 첫 번째 ‘팜 테이블’에서는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와 과일, 어머니가 담근 효소와 장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다. 구운 바게트에 곁들인 인시즌의 자두, 밤, 오디 잼. 2 뽕잎장아찌를 올린 연두부 카나페와 우엉배생채 카나페, 바질 페스토를 올린 방울토마토 카나페. 3 구운 채소에 산야초 효소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4 데친 곤드레 잎 쌈밥, 농원 엄마의 오이소박이, 입맛대로 골라 먹는 다섯 가지 건강 장아찌와 시골 돼지고기 수육 등 소박한 시골 밥상이 이날 팜 테이블의 메인 메뉴였다.

인시즌 브랜드 론칭 후 1년여를 보내며 이소영・김현정 대표는 농촌과 도시의 소비자 간극을 줄이는 데 몰두한다. 농장에서 수확한 배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배를 가공하는 일뿐 아니라 농장 주변 농가의 오미자와 생강, 도시형 장터 마르쉐@혜화에서 알게 된 농부가 재배하는 밤 등 좀 더 다양한 농산물을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일도 시작했다. 이미 포화 상태인 배즙 시장이 아닌 배로 주스와 잼, 콤포트를 만들고, 오미자와 생강으로는 시럽, 밤으로는 잼을 만들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한 제품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 올가을에는 배 중에서도 사과와 교배해 새콤달콤한 맛이 강한 레몬빛 껍질의 황금 품종으로 주스를 만들어 한정 판매해볼 계획이다. 탄산수와 시럽을 함께 구성해 판매하거나, 시럽을 편하게 마시도록 디자인한 텀블러를 제작해 판매할 계획도 세웠다. 대학원 졸업 논문을 준비하며 셰프와 함께 개발한 산야초 효소로 만든 드레싱과 소스 등은 시설비와 유통 문제로 제품 생산과 판매가 어려워 농원에서 기르는 갖가지 채소와 과일, 어머니가 담근 장아찌와 장 등과 함께 차려 내는 ‘팜 테이블’에서 소개한다. 지난 8월 서울 서교동 매터앤매터에서 열린 첫 팜 테이블에서 여름 제철 채소위주로 선보였는데, 10월에는 가을빛을 내는 풍성한 재료로 도시 사람들에게 농원의 가을 맛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기적으로 마련하는 행사가 아닌 제대로 된 다이닝 공간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 목표라는 두 젊은이를 통해 우리 농촌이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고 피어날 날을 고대해본다.


1 소영 씨와 현정 씨는 청을 담그는 날이면 농원에 내려와 부모님을 돕는다. 아직도 낯선 약초가 어찌나 많은지, 하루 종일 어머니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풀들의 이름과 효능을 배운다. 2 인시즌의 오미자 시럽, 생강 시럽, 모과배 시럽. 3 산야초 발효 효소와 배식초로 구성한 인시즌 디톡스 효소 세트.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