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고제순 교장 흙으로 행복을 짓다
회촌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품’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마을. ‘흙집 짓는 철학 박사’ 고제순 씨가 10여 년 전에 인생 항로를 백팔십도 변경해 뿌리내린 터다. 그는 그곳에 ‘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자연을 닮은 건강하고 소박한 흙집을 손수 지었다. 학자에서 흙집 전도사로 변신한 그는 메말라 있던 마음 밭에 생명의 비를 내려준 그곳에서 오늘도 몸과 마음을 다해 행복을 짓는다.


친구 같은 아내 지해진 씨와 함께 손수 가꾼 정원을 산책하는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고제순 교장.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깨달음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오스트리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에서 강의를 하던 고제순 씨는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 세상에 ‘행복’ 만큼 규정하기 힘든 단어가 있을까. 누구나 그것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막상 행복이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그동안 너무 머리만 굴리고 살아왔다’라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정신노동에만 치우친 삶을 살았구나, 그래서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하려면 몸과 마음, 영혼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죠.”

그는 자신을 박사博士가 아닌 협사狹士로 규정한다. 보통 삶의 여러 영역을 통찰할 수 있는 지혜와 경험,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박사라 부르는데, 자신은 철학 중에서도 근대 철학, 그중에서도 철학자 한 사람만을 잘 아는 사람이니 어떻게 넓을 박博 자를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협사’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던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를 몸에서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 생명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역을 진지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바로 먹는 것(食), 사는 곳(住), 몸을 돌보는 것(醫)에 관한 것이었다. 삶에서 중요한 이 세 가지 영역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정말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본채를 완공한 후에 지은 아늑한 느낌의 원형 흙집 사랑방 내부.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해 노력한 시간을 모두 뒤로하고 전혀 준비하지 않은 미지의 길로 들어서기로 했다. “차라리 귀농을 하자,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제도권 교육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고 단계인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삶의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을거리, 집, 건강 모두 철저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자 농사 공부, 집 짓기 공부, 의학 공부를 시작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의 아내는 남편의 이 같은 파격적인 ‘인생 유턴’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걱정하는 그에게 “이왕 내려갈 거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시골에 가자”라고 그를 독려하기까지 했다. 무엇을 먹을까, 어디서 살까, 애들은 어떻게 키울까 등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고제순 씨는 ‘입을 달고 태어났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떻게든 뭐가 들어간다는 것’이라는, 다소 대책 없어 보이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 생존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일에 집중해서 살아야겠다’라고 결심했다.


1 손수 한 장 한 장 황토 벽돌을 쌓고 너와 지붕을 올려 완성한 사랑채.
2 원형 흙집 사랑채의 서까래.
3 거실에 마련한 벽난로. 거실 공기도 훈훈하게 만들고, 안방 구들 침대에 열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4 온 가족이 모여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했다는 고제순 씨의 집 2층은 아이들이 원한 다락방으로 꾸몄다. 햇빛이 잘 드는 다락방 창가에 풍금이 놓여 있다.


새도 벌도 다 손수 집을 짓는데
1990년대 중반, 가족과 함께 일단 고향인 원주 시내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집을 짓고 농사지을 땅을 알아보다가 2000년에 흥업면 매지리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건강하고 생태적인 주거 공간을 고민하면서 집 짓기 공부를 혼자 시작한 고제순 씨는 이사 준비를 하면서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며 건축 기행을 했다. 낙안읍성, 민속촌, 하회마을, 사찰 등 흙・나무・돌 같은 자연 소재로 지은 한국의 전통 가옥들을 찾아다녔다. 가족들과 함께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를 토의하면서 설계도도 그렸다. 다락방을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소망도 설계도에 반영했다. 1997년에 일단 땅을 사고, 돈이 조금 생기면 비닐하우스를 지었고, 또 돈이 생기면 공구나 흙벽돌 찍는 기계 같은 것을 구입했다. 집을 지을 때 필요한 흙벽돌을 직접 만들고 비닐하우스에서 말렸으며, 나무도 미리 사서 말렸다. 그렇게 집을 짓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 걸린 기간만 3년. 그리고 드디어 2000년, 고제순 씨는 손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고제순식 집 짓기’의 핵심은 ‘손수 짓는’ 것이다. “어느 순간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손수 자기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만 건축업자에게 모든 걸 맡기죠. 미물도 손수 짓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수 집을 지으면 여러 가지 좋은점이 많습니다. 일단 건축비가 적게 들고요, 무엇보다 집 짓기는 육체와 정신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대인은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에 서성거리거나 미래를 기웃거리거나 온갖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살죠.” 그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고 있다’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수행 과정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그는 미완성 상태지만 손수 지은 집에 들어가면서 “이걸 내 손으로 짓다니 믿을 수가 없다!”라며 벅찬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살 집을 내 손으로 만들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있겠다’라는, 살아가는 데 큰 자신감을 얻었다. 실제로 그의 집은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거실에 들어가면 통창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아이들이 원한 2층 다락방 역시 이곳이라면 어디 나가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기운이 감돈다. 특히 탐나는 것은 거실에 설치한 벽난로. 겨울이 되면 나무를 때는 벽난로로 실내 공기를 데울 뿐만 아니라, 그 열기를 안방 구들 침대에도 이용한다. 벽난로 위에 얹은 항아리에 물을 담아놓으면 가습기 역할도 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기특한 난방 기구가 아닐 수 없다. 혼자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책을 읽고 싶을 때, 부부 싸움을 하고 피할 곳이 필요할 때도 이용할 수 있는 본채 옆 작은 사랑채도 아주 근사하다. “휴대폰, 컴퓨터 못지않게 현대인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작은 황토 구들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쉼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죠.”


1 황토는 자연을 닮은 집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2 황토 벽돌이 아니라 흙과 나무를 이용해 독특한 느낌을 낸 창고 벽.
3 흙집학교에서 사용하는 황토 벽돌은 경북 의성의 협력 업체를 통해 OEM(주문자 위탁 생산) 방식으로 만든다.
4 흙집의 가장 큰 매력은 따뜻하고 효율적인 난방 시스템 구들. 흙집학교에서는 구들을 놓는 방법을 가르친다.
5 작은 원형 흙집을 짓기 위해 알아야 할 주요 공정은 4일 정도면 배울 수 있다.


흙집 짓기, 일주일 만에 배운다
본채를 지은 후, 그 옆에 사랑채로 사용할 작은 황토방과 창고 등을 지으면서 흙집을 짓는 노하우를 쌓은 고제순 씨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살아보니 흙집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 집에 살면서 만성 피로 증후군, 아토피 피부염, 천식 같은 증세가 모두 사라졌고, 예전에는 늘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팠는데 적당한 육체노동을 한 후 구들방에서 자고 나면 그렇게 몸이 개운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내 집 장만 아닙니까. 입을 거 못 입고, 먹을 거 못 먹고, 심지어 대출까지 해서 모은 돈으로 산 집이 대부분 콘크리트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그런 집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해치니 너무 억울하고 원통한 일 아닙니까.”

그는 2004년 8월, 딸의 도움을 받아 ‘흙집학교’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주거 문화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한 때인데, 대부분 전문 건축업자는 콘크리트 건축 전문이니 집 몇 채 지은 경험밖에 없는 자신이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카페를 개설하자마자 10여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강 신청을 했다. 모 방송사에서 취재도 했다. 2004년 추석 연휴밤 9시 뉴스에 소개되면서 ‘고제순의 흙집학교’는 더 빨리 알려졌다. 흙집학교를 시작한 지 10년이 안 되었는데 벌써 교육과정 수료생이 1천5백여 명이나 된다. 그중에 약 20~30%는 손수 흙집을 지어 그 공간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매달 1회 진행하는 초급반(2박 3일), 중급반(7박 8일) 과정에서는 기초부터 지붕 마감까지 전반적인 건축 공정에 관한 이론은 물론이고 고제순 교장이 지은 흙집 견학, 작은 원형 흙집을 짓는데 필요한 주요 공정에 대한 간단한 실습을 진행한다. 한 해에 몇 차례 진행하는 고급반(4주) 과정에서는 약 50㎡(15평)짜리 흙집을 실제로 지으면서 공부한다. 구들 놓는 법, 벽체 조적組積 방법, 천장 공사 등 흙집 짓기에 필요한 주요 공정을 배우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린다고 한다. 흙집은 생명의 원천인 흙을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흙뿐 아니라 돌, 나무, 참숯 등대부분 천연 소재를 이용한다.

보통 흙집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비용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싸고 좋은 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이란 구조적으로 튼튼해야 하고, 실용적이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 건강해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시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집을 짓기 위해서는 제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최소 평당 5백만 원 정도가 듭니다.” 사실 이 비용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 심지어 콘크리트 건물은 수명이 길어야 30~40년인데, 자연 소재로 지은 집은 습기만 잘 차단하면 수백 년도 갈 수 있다.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 집인 셈이다. 또 많은 사람이 흙집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옛날 조상님들이 지은 흙집은 불편하지만 요즘 흙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뿐 아니라, 의외로 보수가 거의 필요 없는 손이 별로 안 가는 집입니다.”


1 고제순 씨는 손수 지은 흙집 사랑채에서 명상도 하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2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회촌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흙집학교 모습. 자연 재료로 만들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잘 이룬다. 
3 집을 짓고 남은 목재와 너와로 만든 개집. 
4 고제순 씨의 흙집학교 이름은 ‘흙처럼 아쉬람’이다. 아쉬람은 인도어로 수행자가 거하는 작은 움막을 뜻한다.


행복한 삶을 짓기 위하여
흙집학교에 온 사람들은 흙집을 짓고 싶은 이유로 하나같이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를 꼽는다. 물론 흙집은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집이다. 하지만 고제순 씨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싸움질하면서 살면 그런 사람에게 흙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건강한 집보다 삶이 행복한 집을 짓는 게 본질적이고 더 중요하지요. 저는 흙집학교가 단순히 집을 짓는 기술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꿈꿉니다.”

그는 강단 위 철학자로서의 삶은 접었지만, 여전히 삶 속에서 철학을 하고 있다. 그때는 머리로만 하는 반쪽짜리 철학을 했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모두 움직이면서 하는 철학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고제순 씨의 흙집학교 이름은 ‘흙처럼 아쉬람’이다. ‘아쉬람’은 인도어로 수행자가 거하는 작은 움막, 수행처라는 의미다. 소박하게 만든 작은 흙집이 몸과 마음과 영혼의 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겨 있는 이름이다. 흙집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그가 예전에 그러했듯 필자도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잘 살고 있는가. 내 마음 밭에 행복이란 씨앗을 뿌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흙처럼 아쉬람’ 취재는 원주 학성감리교회 김홍구 목사의 추천이 단초가 되었습니다. 흙집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난방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이가 흙집학교 고제순 교장이라고 귀띔하면서요. 흙으로 보금자리를 짓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 이는 조물주가 태초에 만든 세상과 가장 닮은 모습이 아닐는지요.

주소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3리 739 문의 033-766-7755 www.mudashram.com

글 전은정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