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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욕지도 고구마 바다의 땅에서 캐낸 보랏빛 보석
통영 삼덕항에서 카페리호에 몸을 싣고 물길 따라 가다 보면 저 멀리 ‘바다의 땅’ 욕지도가 서서히 얼굴을 드러낸다. 고구마를 캐낸 황토밭 때문에 겨울이 되면 유난히 홍조 띤 얼굴로 사람을 맞이하는 섬. 북동해안 한가운데 깊숙한 만에 자리한 항구에 가까이 갈수록 마치 두 팔을 벌린 대지에 안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추운 겨울을 감내하는 저 붉은 땅은 조만간 다디단 자줏빛 열매를 주렁주렁 달게 될 고구마 순을 품을 것이다.


땅은 토질이 마사황토라 물 빠짐이 좋다. 비탈진 곳에 밭이 있어 평지보다 햇빛 투과율도 높고,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도 더 잘 받을 수 있다. 고구마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땅도 없다.



황토밭과 해풍이 빚어내는 최고의 고구마
욕지欲知. “도道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으로 나올 법한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유래야 어찌 됐든 ‘알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의 이름은 이 섬과 꽤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먼 옛날 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섬은 ‘알고 싶은’ 미지의 땅이었을 것이다. 뿌리내리고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섬으로 들어간 사람들에게도 이 섬은 ‘알고 싶은’ 곳이었을 것이다. 알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그 옛날 개척민에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것도 바다 위에 고립된 척박한 땅에서 먹고 사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쌀을 생산하기 어려운 토질의 땅에서 먹을 것을 만들어내야 하던 사람들에게 고구마는 고마운 작물이었다. 고구마는 비교적 나쁜 기상 조건 속에서도 잘 자라는지라 흉년이 들 때마다 진가를 발휘하는 구황작물의 대명사가 아닌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던 욕지도 사람들은 1887년 무렵부터 비탈진 황토밭을 개간해 고구마를 심어 수확했다고 한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던 시절에는 고메밖에 없었지요.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져서 건강식이니 별미니 해서 일부러 비싸게 주고 사 먹지만….” 통영 사람들이 ‘고메’라 부르는 고구마 이야기는 이렇게 언제나 배고픈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욕지도에 딸린 봉도에서 태어났다는 옥돌농원 최쌍돌 대표는 욕지고구마작목반 부반장으로 일한다. 그가 욕지도 고구마 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서울 사람들을 제일 처음 안내한 곳은 깔끔하게 관리하는 욕지고구마작목반의 저온 저장고. 저장고 문을 여니 냉해를 피하기 위해 실내 온도를 13℃ 정도로 맞춰놓아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구마가 잔뜩 쌓여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저장고는 거의 비어있었다. “욕지도 고구마는 이제 소문이 나서 수확하자마자 거의 대부분 비싼 값에 팔려 나갑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태풍 때문에 수확량이 적어 일찍부터 동이 났지요.” 허기를 달래던 음식에서 고가의 웰빙 식품으로 신분이 급상승한 고구마. 어르신들이 들으면 웃음 지을 만한 이야기다.

설명을 들으니 욕지도에 있는 밭의 90% 정도가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현재 섬의 인구는 2천8백여 명인데, 1백90여 가구가 고구마를 재배하고, 전문 재배 작목반에 가입한 농가는 50가구 정도다. 욕지고구마작목반이 재배하는 면적만 해도 63헥타르(63만㎡, 약 19만 평)나 된다고 하니, 고구마가 욕지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욕지도 고구마가 인기인 이유를 물었다. “땅과 해풍 때문이지요. 욕지도땅은 토질이 마사황토라 공기가 잘 드나들고 물 빠짐이 좋아요. 밭작물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땅이 없죠. 게다가 비탈진 곳에 밭이 있어 평지보다 햇빛 투과율도 높고,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도 더 잘 받을 수 있습니다. 해풍에 간이 들어 더 맛있어지는 거지요.” 이때 옆에 있던 작목반 총무로 일하는 나들목펜션농원의 심맹호 대표가 한마디 더 거든다. “욕지도 고구마는 대부분 밤고구마로 잘 알려진 신율미라는 품종입니다. 모양은 긴 편이고 속살은 연한 노란색이 돌지요. 저장성은 좀 약한 편인데 맛은 아주 좋습니다. 욕지도의 재배 환경이 이 신율미라는 품종과 궁합이 잘 맞아서 다른 고구마보다 당도가 아주 높습니다. 그 맛을 본 사람들이 잊지 못하고 단골이 되어 매년 욕지도 고구마를 찾고 있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갓 쪄내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구마를 신 김치나 차가운 동치미와 함께 먹는 그림이 떠올라 입에 군침이 돈다.

1, 2 욕지도 최초로 모노레일을 도입한 옥돌농원의 최쌍돌 대표는 모노레일 덕분에 비탈진 밭에서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3 통기성과 배수성이 뛰어난 마사황토는 욕지도 고구마를 더 달고 맛있게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농부의 마음
자리를 옮겨 옥돌농원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올라가다가 숨을 고르며 잠시 쉬는데, 밭 앞으로 남해 바다의 절경이 펼쳐진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그림 같이 수려한 풍경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의 눈에는 매일 이런 경치를 보며 일하는 이곳 농부들이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높은 곳에 위치한 경사진 땅은 고구마 당도를 높이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농부들을 괴롭히는 악조건이다. “욕지도 고구마밭은 기계화가 아직 10%도 안 되었습니다. 땅이 이렇게 경사져서 기계를 사용할 수가 없지요. 지금도 소를 이용하고 사람들이 직접 쟁기나 호미를 들고 허리 구부려 농사를 지어요.” 최쌍돌 대표는 약 3만 3000㎡(1만 평) 규모의 땅에서 부인과 함께 고구마 농사를 짓는데, 욕지도 최초로 모노레일을 도입해 농사에 이용하고 있다. 투자 비용이 좀 들기는 했지만, 모노레일 덕분에 수확기마다 하던 고생을 덜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구마를 수확한 땅에 파릇파릇 올라온 것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보리란다. 보리도 재배하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고구마 하나 잘 키우는 것도 벅차다고 한다. “보리를 심는 것은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어요. 공기층이 많은 토질이라 비가 오면 쓸려 나가기 쉬운데, 보리를 심어놓으면 토양 유실을 막을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자란 보리는 소의 좋은 먹이가 됩니다. 땅 위로 자란 것은 소가 먹고, 땅 밑의 뿌리는 갈아엎으면 퇴비가 되지요. 수확하고 나서 생기는 고구마 줄기도 잘 말려 소에게 주는데 정말 좋아합니다.” 최 대표의 말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순환한다는 자연의 원리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4 욕지도에 반해 아예 농사꾼으로 눌러앉은 욕지고구마작목반의 심맹호 총무.
5 해풍에 일주일 정도 말린 삶은 고구마 ‘쫀득이’. 그냥 건조기에 말린 것보다 훨씬 맛있다.
6 저온 저장고에서 잘생긴 상품上品 고구마를 선별해 박스에 담고 있다. 욕지도 고구마는 신율미라는 품종으로 모양은 긴 편이고 속살은 연한 노란색이 돌며 당도가 아주 높다.



요즘 욕지고구마작목반 농부들은 고구마를 좀 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기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올해 작목반 총무가 된 심맹호 대표는 44세로 젊은 축에 속한다. 창원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던 심 대표는 부인과 낚시하러 다니다가 욕지도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욕지도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부부는 바로 땅을 구입했고, 50대 중반에 해보자던 농사일을 계획보다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3년 전에 욕지도로 이주해 일몰이 아름다운 덕동마을에 펜션도 짓고 농사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격증을 무려 20여 개나 가지고 있다는 심 대표는 머리도 잘 돌아가고 의욕도 넘치는 젊은 농부인지라 좋은 고구마를 얻기 위해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해본다. 고구마밭에 불가사리를 가공한 액을 섞은 액비를 뿌리기도 하고, 종모를 기를 때 병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여 한약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농촌진흥청과 통영시농업기술센터가 공동으로 참여해 녹비작물(풋거름으로 쓰기 위해 기르는 작물)인 헤어리베치로 화학비료 없이 고구마를 재배하는 실험에 성공했는데, 심 대표도 이 방법을 자신의 밭에 적용해 고구마를 수확하기도 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심 대표가 기른 고구마의 당도는 월등히 높다고 한다. 당연히 그가 애지중지 기른 고구마의 몸값은 아주 높은 편이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난 욕지도의 비탈진 땅에서는 보리가 자란다. 토양 침식도 막아주고 소의 먹이와 밭의 거름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통영 고구마의 색다른 변신
욕지도를 비롯해 통영에서 나는 고구마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늘 인기다. 하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방식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통영시와 농부들이 힘을 합해 통영 고구마를 전국에 알리기 위한 작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욕지도 고구마의 경우 전국 유통망을 개척하기 위해 2011년에는 한국유통참다래사업단을 통한 판매도 시도했고, 2012년에는 GS슈퍼에 납품하기도 했다. 통영의 자랑 고구마를 알리기 위한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1년 8월, 고구마를 이용해 만든 가공식품 브랜드 ‘야미얌yummyam’을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 제일 처음 만든 제품은 빼떼기죽, 양갱, 고구마라테. 이 사업은 농촌진흥청에 지역 농산물 가공 기술 표준화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했는데, 농업기술센터에서 육성하는 향토음식연구회를 주축으로 경상남도 제1호 조리명인인 정계임 씨가 연구 개발을 맡고, 통영꿀빵 대표인 소웅철 사장이 제품 개발과 제조, 유통과 마케팅을 맡아 추진한다.

현재 출시되는 ‘맛있는(yummy) 고구마(yam)’라는 뜻을 지닌 야미얌 브랜드의 대표 제품은 ‘빼떼기죽’과 ‘쫀득이’ 그리고 ‘고구마꿀빵’이다. ‘빼떼기’는 이곳 사투리로말린 생고구마를 의미하는데, 빼떼기죽은 오래전부터 배고픈 시기를 견디게 해준 대표 음식이다. 먹기 편하게 가공한 야미얌 빼떼기죽은 통영산고구마, 차조, 강낭콩 등을 주재료로 만들었으며 봉지째 끓는 물에 넣거나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기만 하면 된다. 언뜻 보기에는 단팥죽처럼 생겼는데 한 입 떠먹어보면 말린 고구마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감돌면서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난다. 빼떼기가 생고구마를 말린 것이라면 쫀득이는 삶은 고구마를 말린 것이다. 말 그대로 쫀득쫀득한 게 씹을수록 단맛이 도는 훌륭한 웰빙 간식이다. 충무김밥과 함께 통영을 대표하는 먹을거리 ‘꿀빵’에 팥소 대신 고구마소를 넣어 만든 고구마꿀빵도 인기 제품이다.

“시 홈페이지에서 공고를 보고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채택되어 사업을 실행하는 주체가 되었죠.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야미얌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요즘 소웅철 사장의 관심은 온통 야미얌과 고구마에 쏠려 있다. 그렇게 ‘올인’한 덕분에 카페로도 운영하는 통영시 도남동 본사는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고, 통영타워에도 야미얌 매장을 오픈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락 쇼핑몰과 신세계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의욕적인 젊은 경영인답게 신제품 개발에도 열심이다. 흑미를 사용한 꿀빵은 이미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고구마라테에 이어 야콘라테도 개발 중이다. 현재 빼떼기죽(270g)은 3천 원, 고구마꿀빵(1팩 6개)은 7천원, 쫀득이(200g)는 6천 원, 야미얌통영꿀빵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고구마라테는 4천 원에 판매하고 있다.


1 야미얌이 선보이는 통영 고구마 가공식품. 고구마꿀빵과 고구마라테.
2 생고구마 말린 것에 차조, 강낭콩을 넣어 만든 빼떼기죽.
3 삶은 고구마를 말린 쫀득이.
4 야미얌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야미얌통영꿀빵 소웅철 사장.
5 먹기 편하고 보관하기 쉽게 가공한 야미얌의 제품. 인터넷이나 전화로도 주문할 수 있다.

 취재 협조 욕지고구마작목반, 야미얌(yummyam.net, 055-643-9080) 

글 이은석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