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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야콘 토종농장의 야콘 땅속에서 나는 인디오의 과일
이름만 들으면 옥수숫과에 외모는 고구마 사촌쯤 되는 것 같고, 한 입 베어 물면 아삭아삭 달콤한 배 맛이 난다. 과일인지 채소인지 구분도 애매한 이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뭘까? 잉카 제국을 건설한 안데스 지역의 인디오들이 먹은 야콘을 만난 곳은 강원도 강릉시 대관령 부근이다. 귀농 후 5년째 유기농 야콘을 생산하는 최용순 씨에게 야콘은 ‘신대륙’과 다름 아니다.


외모는 고구마, 맛은 배
요즘 야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센터의 김수정 연구사의 분석에 따르면 야콘은 열량이 적어 배 채우는 데 급급하거나 전쟁터에서 적을 무찔러야 하던 옛날에는 환영받지 못한 작물이지만 열량 과다인 현대인에게는 딱 맞는 웰빙 아이템이다. 열량은 50kcal밖에 되지 않으면서 수분 함량은 86~87%에 달해 우리 몸을 가볍게 그리고 깨끗하게 한다. 또 야콘은 한 개당 8~10% 정도가 프락토올리고당 성분으로 바나나의 26배에 해당한다. 식이섬유, 칼륨, 폴리페놀 등 항산화 성분도 다량 함유해 변비, 당뇨, 혈관계 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콘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고랭지에서 재배하는 작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저 멀리 안데스 지역에서 건너왔다. 원산지인 안데스 지역의 원주민은 야콘을 ‘땅속에서 캐는 배’라고 부른다. 과육이 부드럽고 사각거리면서 단맛이 시원하고 개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산지에서는 야콘을 감자나 고구마를 파는 야채 가게가 아닌 과일 가게에서 볼 수 있다.

“깎아줄 테니 한번 맛을 봐요. 먹으면 방귀가 무지 나와요. 그러니 변비에 좋죠. 야콘이 좋다는 게 많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없어서 못 팔아요. 7년간 고지혈증으로 고생하던 분이 우리 야콘을 두 달 먹고 다 나았다는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저는 주로 생으로 먹거나 우유, 요구르트와 함께 갈아서 수시로 먹는데, 피로라는 걸 몰라요.”

11월 초 밭에서 수확한 생야콘을 칼로 쓱쓱 껍질을 벗겨 맛부터 보라는 강릉야콘 토종농장의 최용순 대표. 귀농 5년차의 초보 농사꾼이지만, 전국의 야콘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대표적 야콘 생산 농가를 운영한다. 강원도 강릉시 해발 450m의 대관령 중턱에서 1만 3천 2백23㎡(4천평) 대지에 야콘만 전문으로 재배하는데, 친환경 농사를 짓다가 올해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아 더욱 경쟁력을 높였다.

최 대표는 원래 가시오가피 농사를 지었다. 충북 임곡리가 고향인 그는 귀향을 염두에 두고 강릉을 오가며 가시오가피를 생산했지만 판로가 원활하지 않아 과감하게 접었다. 2008년 아예 귀농하면서 야콘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 야콘 재배 농가가 있었는데, 맛이 좋고 재배하기도 쉬워 친환경으로 키우면 ‘돈’이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콘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야콘만큼 우리 몸에 좋은 것도 드문 것 같았다. 야콘연구회를 만들어 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서 승인 받고 비닐하우스도 설치하는 등 야콘 재배 환경을 조성했다. 첫 해는 총 매출이 6천만 원 정도였고 이듬해에는 1억 1천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야콘은 국화과에 속하지만 해바라기처럼 키가 크고 꽃도 오렌지 색깔을 띤다. 씨앗을 심고 180~200일 정도 지나면 개화하는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한다.


1 11월 초 야콘 수확을 마치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최용순 대표. 야콘 재배 5년 만에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야콘 농장을 일궜다.
2 햇빛에 노출되면 고구마처럼 붉은빛으로 변하고 껍질을 벗기면 상아색의 투명한 속살이 보이는데, 배처럼 달고 아삭아삭하다.


최 대표가 재배하는 야콘은 재래종인 ‘페루 A’와 신품종인 ‘안데스의 눈’ 두 종류다. 페루 A는 연해서 잘 갈라지는 대신 맛은 더 달달하고, 안데스의 눈은 표면이 잘 갈라지지 않으면서 물기가 적고 단단해 저장성이 뛰어나다. 재래종 위주로 재배하다가 작년부터는 신품종도 재배하고 있다.

야콘은 고구마와 달리 먹는 부위와 종자가 따로 분리돼 있다. 수확 후 종자와 열매를 분리하고 종자는 눈만 따서 직파한다. 모종을 키워서 옮겨심기하는 것보다 결주가 적고 표면이 매끈하며 크기도 커서 상품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종자는 보통 4~5월에 심으면 9월부터 11월 초까지 수확한다. 야콘의 줄기는 해바라기처럼 키가 커서 250c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에서 가지가 열 개씩 뻗어나가기 때문에 한여름에는 숲을 이룬다. 10월 중순 첫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하기 시작하는데, 줄기를 잘라내고 땅속을 파면 우리가 야콘이라고 하는 고구마 같은 열매가 뿌리째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야콘은 병충해가 없어서 유기농 재배가 가능하고, 농작물 재배지의 골칫거리인 멧돼지 피해도 없어요. 잎에 쓴 성분이 많아 멧돼지가 싫어하거든요. 이번에 연작을 피하기 위해 야콘 대신 마를 심었는데, 멧돼지가 다 파먹어버렸어요. 하는 수 없이 6월 초에야 야콘을 파종했는데, 수확해보니 품질이 깨끗하고 개수도 엄청 달렸더라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 땅에 맞는 농사법을 터득해가는 재미도 꽤 쏠쏠합니다.”

야콘김치나 절임, 고기 요리에 활용
최 대표는 재배하는 것만큼이나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가시오가피의 실패를 거울삼아 야콘은 재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쇼핑몰을 통해 직거래하고 있다. 오픈 마켓을 활용하는 등 판매 전략을 세웠더니 적중했다. 한 해 평균 20톤 정도 생산하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란다. 가을에 수확해 비가림 비닐하우스에서 보관하는데,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판매가 끝난다는 것.

“제가 전국 야콘 시세를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다른 곳보다 한 달 먼저 수확해서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죠. 그러면 다른 농가에서 판매하기 시작할 때 제 가격에 맞춰 시세를 결정해요. 그 시점에서 저는 20% 할인에 들어가죠.”

야콘은 과일처럼 껍질을 벗겨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여러 가지 요리로도 활용할 수 있다. 김수정 연구사는 야콘을 이용해 1백여 가지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열을 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요리로 생채나 김치, 샐러드, 초무침, 절임 등을 들 수 있다.

야콘김치는 야콘을 네모나게 썰어 배추와 섞어 담거나, 믹서에 갈아 배추김치 버무릴 때 넣고 섞어 담아도 된다. 일반 깍두기 만드는 방법과 같이 무 대신 야콘을 깍둑썰기해서 넣으면 야콘깍두기가 된다. 된장이나 절임 등 장기간 보존하는 경우 껍질을 벗겨서 절이는 게 좋다. 얇게 잘라서 하룻밤 절이거나 즉석 절임을 해도 맛있다. 열을 가해 조리할 경우에는 연근과 비슷하면서도 단맛이 나는데, 껍질을 벗겨 삶으면 무와 달리 잘 퍼지지 않고 단단하다. 구이, 조림, 볶음, 전, 튀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찌개나 탕을 끓일 때 넣으면 개운한 맛을 즐길 수 있고, 갈비・주물럭・불고기 등을 할 때 야콘을 넣으면 기름이 흡수되면서 고기가 연해지고 비린내가 없어져 달콤한 맛이 난다. 야콘즙, 한과, 냉면, 된장 등은 현재 야콘 재배 농가에서 가공해서 판매하고 있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이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즐겨 먹은, 열량 과다인 현대인에게 딱 맞는 이 신기한 작물이 감자나 고구마처럼 우리 식탁에 단골로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3 야콘은 고구마와 달리 종자가 따로 열매 위에 달려 있다. 페루 A 종자가 좀 더 붉다.

야콘, 다양하게 즐기는 레시피
야콘 크림수프
버터(1큰술)를 프라이팬에 녹여 밀가루(2큰술)를 볶아 루를 만든다. 농도를 약간 묽게 만들면 좋다. 야콘(1/2개)은 채 썰어서 식초에 담그지 말고 물에만 담근다. 양파(1/4개)도 채 썬다. 물기를 제거한 야콘과 양파를 센 불에서 버터(1작은술)에 재빨리 볶은 후 믹서에 간다.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우유(2컵)를 붓고 끓이다 루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되직하게 끓으면 생크림(1큰술)을 넣어서 부드럽게 만든다.

야콘짱아지 야콘(2kg)은 깨끗이 닦아 껍질을 벗긴 후 5cm 크기로 썬다. 초절임물(물 5컵, 소금 5큰술, 식초 2컵, 설탕 2컵, 월계수 잎 5장, 피클링 스파이스 1큰술, 통후추 1/2컵)을 넣어 끓인 후 식으면 야콘과 청양고추(3개)를 넣는다.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며 먹으면 아삭아삭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야콘김치 우선 채소 국물에 찹쌀가루(1/2컵)를 넣고 풀을 쑤어 식힌 다음, 고춧가루(4큰술)와 사과즙・볶은 소금・집간장 약간씩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야콘(3개)은 껍질을 벗겨 씻은 후 나박썰기하고, 밤(1개)은 모양을 살려 저며 썬다. 미나리(5~6줄기)는 입을 떼어내고 줄기만 사용해 3cm 길이로 썰고, 풋고추(4개)는 씨를 제거하고 채 썬다. 모든 재료를 한데 모아 양념장을 넣어 버무린다.

야콘 샐러드 야콘(1/2개)은 껍질을 벗겨 2cm 크기로 사각썰기 한다. 빨강 파프리카・노랑 파프리카(1개씩), 브로콜리(1/4개)도 잘 씻은 후 야콘과 같은 크기로 썬다. 볼에 마요네즈(5스푼), 꿀(2스푼), 레몬즙(1/2큰술), 소금(1작은술), 통후추 약간을 섞어 드레싱을 만든다. 그릇에 채소를 넣고 드레싱을 뿌린다.


4 고령지농업연구센터에서는 안데스 작물의 조직 배양을 통해 우리 환경에 맞는 새로운 종자 개량을 연구하고 있다.
5 인디오들의 곡물 아마란스와 키노아의 씨앗으로 좁쌀과 비슷하게 생겼다.


차세대 건강 밥상의 주역으로 기대되는 안데스 작물
안데스 작물인 야콘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85년이다. 세 뿌리를 들여와서 종자를 증식해 각 농가에 배포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 농가의 수익 작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센터에서는 야콘 외에도 곡물의 어머니로 불리는 아마란스amaranth, 인디오의 쌀 키노아quinoa, 땅속에서 열리는 콩으로 인디언 감자로도 부르는 아피오스apios, 형형색색의 덩이뿌리 작물인 울루코ulluco 등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 작물들의 개발 가능성을 연구 검토하고 있다. 이들 역시 독특한 모양뿐 아니라 고산
식물 특유의 탁월한 기능성을 갖고 있다. 현재 아마란스, 키노아의 적응성을 검토한 결과, 대관령과 진부 등 고랭지에서 적응성이 우수하고 수량도 높게 나타나 재배 가능성에 파란불이 켜진 상태다.

취재협조 강릉야콘 토종농장 (www.tojongfarm.com),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 농업연구센터(033-330-1820)

글 김민선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