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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영양잣마을의 잣 고소하고 영양이 풍부해 신선이 먹었다던 그 열매
알려드립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견과류를 섭취하는 당신이라면 귀가 솔깃한 정보입니다. 5개월 동안 햇볕을 받고 자란 호두도 좋지만, 잣은 그보다 세 배나 오랫동안 추위와 더위를 이겨낸 대단한 녀석입니다. 이 조그마한 알 속에 15개월 동안 농축된 영양소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잣을 신선이 즐겼다고 하나 봅니다. 그런데 잣이라고 하니까 왠지 허전하지 않습니까. 가평 잣이라고 해야 비로소 완성된 단어 같지요. 진정한 슬로푸드 ‘잣’을 따러 가을 끝으로 함께 달려가보실래요?


축령산은 축령백림이라 불릴 정도로 잣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잣을 수확하려면 높이 30m의 잣나무에 긴 장대를 들고 사람이 직접 올라가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잣은 임금님께 진상하던 가평 잣이 으뜸 잣나무는 사람을 닮았다. 묘목을 심고 나면 20년 동안은 수시로 돌봐줘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돌보는 것처럼. 사람 키만큼 자랄 때까지 주변에 난 풀을 베어줘야 나무가 고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중간에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고 거름도 2~3년에 한 번씩 줘야 잘 자란다. 15년 정도 지나면 1차 간벌을 해줘야 하는데, 수령이 30세가 될 때까지 총 세 번을 해야 한다. 20세 성목이 되면 비로소 잣나무는 열매를 품기 시작한다. 우리 인간도 스무 살이 되면 부모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처럼. 그뿐인가. 잣나무도 사람처럼 30~40년에 가장 성숙하여 이 시기에 수확량이 가장 많다. 그리고 80년까지 잣을 생산하니 ‘80 평생’ 사람과 싱크로율 100%다.
그래서일까, 가평축령산잣영농조합 이수근 대표는 잣나무를 ‘이놈’이라고 부른다. 이수근 대표에게 이놈은 느림과 기다림의 아이콘이다.
“호두나 밤은 봄에 꽃을 피워 가을에 수확합니다. 즉, 생육 기간이 5개월 정도인데 이놈은 5월 말에 꽃이 피어서 그다음 해 8월에야 수확을 시작합니다. 겨울철 세찬 눈보라에도 끄떡없고 뜨거운 여름도 견뎌내고 나서야 15개월 만에 결실을 맺는 게 이놈의 매력이죠. 조그만 잣알 안에 농축된 영양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입니다.”

잣의 영양에 대해서는 몸이 먼저 보증한다. 심하게 앓고 나면 으레 잣죽을 찾는다. <동의보감>에는 “잣은 어지럼증을 치료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오장을 건강하게 하며 기를 보충한다”고 나와 있다. 그 이전에도 영양 만점으로 인정받았는지 잣은 신선이 먹는 음식으로 전해 내려온다. 현대에서도 잣의 효능은 이미 검증을 마쳤다. 뇌세포 구성 성분인 레시틴 성분의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되어 신경 조직을 발달시키고, 뇌세포 형성을 촉진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또 불면증 치료, 변비 개선, 탈모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잣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특산물로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신라 잣’이 가장 약효가 좋다고 <본초강목>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인삼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특산품으로 중국과 서역 지방에 수출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잣을 ‘korean pine’이라고도 부르는 게 이 때문이다.
잣 중에서도 가평 잣은 임금님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 받았다. 가평 잣은 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며 맛은 담백하고 고소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잣 하면 두말할 것 없이 가평 잣이다. 가평 잣은 전국 잣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가평은 잣나무가 자라는데 적합한 기후와 토질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굴곡진 지형은 잣나무가 자라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잣나무는 뿌리에 물이 차면 죽는데, 평지에서는 물이 고일 수 있기 때문. 특히 축령산 일대에는 30년 이상 된 잣나무 수십만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들어차 있다. 1헥타르(3천평)당 2백50그루의 잣나무가 자란다고 하니 어림잡아도 25만그루 이상이다. 그래서 이곳 잣나무 숲 이름도 ‘축령백림’으로, 세월을 견뎌낸 꿋꿋한 푸름을 자랑하며 진한 송진 내음과 잣의 고소한 냄새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잣나무 존zone을 형성한다.


1 이수근 대표는 30년 동안 잣 농사를 지어왔다. 올해가 대흉년이라 걱정도 많지만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 지금도 잣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2 가을옷을 입은 가평 잣. 사람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야 수확이 가능한데, 이렇게 딴 잣송이의 껍질을 떼어내면 1백20여 개의 알이 빼곡하게 박혀 있다.


30m 높이 잣나무에 사람이 오르는 이유 가평군 내에서도 행현1리 영양잣마을은 대표적 잣 생산 지역이다. 2000년도에 가평축령산잣영농조합을 만들고 축령산에서 수확한 가평 잣만을 가공, 판매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영농조합을 만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령화되다 보니 현재 20여 농가만 잣 농사를 짓고 있다.

그중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이수근 대표는 잣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잣을 재배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올해가 10년 만의 대흉년이라 걱정이 많다.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90%로 줄었는데, 내년에도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신기한 게 잣은 수확하면서 이듬해 수확량을 가늠할 수 있어요. 한나무에서 열매와 꽃이 공존하기 때문에 열매를 수확할 때 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호두나 밤 등 다른 견과류는 열매가 많이 열리면 솎아주면 되지만, 잣나무는 열매가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어서 불가능해요. 열매가 많이 열리면 영양분이 맨 꼭대기에 피어 있는 꽃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다음 해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다시 영양분을 보충해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거든요.”


3 잣은 탈각한 후 그대로 낸 황잣과 삶아서 내피를 벗겨 건조시킨 백잣 두 종류로 구분된다. 아무래도 공정 과정을 덜 거친 황잣이 더 고소하다.
잣나무에 오르려면 지형도 파악하고 나무의 결도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녹록지 않은 잣나무 재배만큼 어려운 게 수확이다. 아니,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힘든 일이다. 30m 높이에 달려 있는 잣송이를 따려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헬륨 풍선 기구를 띄워보기도 하고 십 몇 년 전에는 원숭이를 훈련시켰으나 송진을 질색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잣나무에 오르려면 먼저 나무를 잘 골라야 한다. 나무 기둥이 너무 두껍지도 가늘지도 않고 결이 일정해야 한다.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명 사가리라 불리는 등산용 아이젠 비슷한 것을 신발에 채운다. 끝에 갈고리가 달려 있는 8m의 장대를 나뭇가지에 걸어둔다. 두 손으로 나무 기둥을 잡고 사가리로 찍어가면서 마치 계단이라도 있는 양 턱턱 밟고 올라간다. 어느 정도 올라갔다 싶으면 장대를 뻗어 잣송이를 딴다. 나무 기둥이 가늘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나무에 올라가서 주변 나무의 잣송이도 따야 한다. 촬영을 위해 무려 세 번이나 나무에 올라갔다 내려온 이 대표가 숨을 고르면서 이야기한다.

“나무의 특성을 파악하고 결을 따라 올라가지 않으면 곱절 힘들 뿐 아니라 위험합니다. 아마 잣 따는 사람들 중 나무 위에서 안 떨어져 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지금도 가평군 내에서만 1년에 사고가 서너 건씩 발생하니까요. 우리 같은 사람은 말이 30년이지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까 위기 상황에서 바로 대처할 수 있는 거지 노하우란 건 따로 없어요.” 


1 잣은 탈각한 후에도 내피를 제거하기 위해 삶고 다시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다. 
2 가평축령산잣영농조합에서 판매하는 잣은 가평 잣 중에서도 고소하고 담백하기로 유명하다. 홈페이지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140g 개별 포장 가격은 1만 2천 원.


보통 처서 무렵부터 따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잣송이는 파랗다. 시간이 갈수록 가을빛을 입어 잣송이 색깔은 점점 진해진다. 공정 과정 또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잣송이를 한데 모아 탈각부터 해야 한다. 잣송이 하나에는 대략 1백20개의 알이 들어 있는데, 껍질 안쪽에 촘촘히 박혀 있어서 기계로 이루어진다. 잣 크기에 따라 5등급으로 분리한 후 끓는 물에 삶아서 내피를 분리한다. 다시 60℃에서 다섯 시간 동안 건조시킨 후 제품의 향과 맛을 균일하게 보존하기 위해 진공 포장해 보관한다. 올해같이 흉년일 때는 풍년인 해에 저온 저장고에 보관해둔 잣을 활용해 가격 변동이 크지 않도록 한다. 판매는 영농조합 인터넷 홈페이지(www.koreanut.co.kr)를 통해 주문을 받거나, 오프라인은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이루어진다. 포장으로도 구분되지만 탈각 과정만 거친 상태는 황잣, 내피를 제거한 것은 백잣으로 나누어 판매한다. 보기에는 백잣이 예쁘지만 아무래도 삶는 과정을 생략한 황잣이 좀 더 고소하다.

버릴 것 없는 잣, 가공식품으로도 개발 예정 “잣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어요. 다른 것에 비해 가진 것이 많은데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는 목재로 사용하고 이파리는 톱밥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이파리와 송진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잣알은 식용 외에도 정유를 추출할 수 있거든요.”

이 대표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모든 생활의 중심에 잣이 있었다고 한다. 잣나무 숲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아플 때면 으레 잣죽을 먹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잣에 기름 성분이 많아 불이 붙는 원리를 이용해 ‘잣불놀이’를 했다. 잣 열두 개를 꿰어 불을 붙여서 밝게 타면 한 해 신수가 좋고 어둡게 타면 신수가 나쁘다고 믿는 풍속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쓸모 많은 잣이지만 실제 쓰임새는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영양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잣을 이용해 만든 음식은 많지 않다. 잣죽과 수정과에 들어가는 잣알 몇 개, 그리고 최근에 판매 는 가평잣막걸리 정도다. 이곳 영양잣 마을에서도 잣을 이용한 요리를 개발하고 있는데, 잣을 갈아 잣칼국수를 만들거나 잣두부, 잣주먹밥, 잣죽, 약과 등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잣을 활용한 2차 가공식품, 건강 보조 식품 등 다양한 상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 잣과줄 반죽은 밀가루에 설탕, 들기름, 소주, 곱게 간 잣을 넣는다. 
4 잣을 믹서에 갈아 넣고 끓인 고소한 잣칼국수. 
5 가평에서는 잣죽을 만들 때 콩을 갈아서 같이 끓인다.


“잣이 가진 성분에 대해서는 이미 의학적으로 검증되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피톤치드는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휘발성 물질이에요. 이것을 채취해서 초, 비누, 치약, 방향제 등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현재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잣나무의 피톤치드는 각종 감염 질환이나 아토피 질환 등은 물론 면역력을 높여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축령산 잣나무 숲에 아토피 치유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잣나무 숲에 머무르면서 아토피피부염을 치유하고 더불어 다양한 잣 체험도 할 수 있다.

고려 현종 때 송나라에서 들여온 의약 서적의 하나인 <성혜방>에는 잣을 극찬한 문구가 기록돼 있다. “잣을 1백 일 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3백 일이 지나면 하루에 5백 리를 걸을 수 있다. 심지어 오래 먹으면 신선이 된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서 잣 한 움큼을 쥐고 입에 털어 넣으면서 떠올려보자. 이 잣알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과 수고를.

취재 협조 가평축령산잣영농조합(www.koreanut.co.kr)

글 김민선 | 사진 한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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