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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농산의 아스파라거스와 특수 채소 느린 걸음으로 키워낸 이국의 맛
언뜻 붓처럼 요상하게 생긴 식물 줄기를 무슨 맛으로 먹을까 싶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아스파라거스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궁 안에 전용 온실을 설치하고 재배해 ‘식품의 왕’이란 작위까지 내린 채소로 귀족 채소로도 불린다. 서양의 대표 건강 채소인 아스파라거스를 비롯해 이름도 생소한 여름철 특수 채소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우보농산을 찾았다.


아스파라거스의 품질은 잎으로 불리는 머리 부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꽃피듯 벌어지 면 하품, 봉오리가 붓처럼 오그라진 상태에서 초록색과 보라색을 띠면 상품에 속한다.


1 아스파라거스 전도사인 우보 농산의 설동준 대표. 국내에 비가림하우스 재배법을 시도한 것도 그다. 
2 위에서 부터 고추, 주키니, 펜넬, 로켓으로 30일 정도 파종한 것.


여름에 만난 귀족 채소, 아스파라거스 잘 가꾼 채소밭에 들어서면 농부의 땀내가 나는 듯하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키워낸 땀의 결실인 까닭이다. 한여름 아스파라거스 농장에 들어서는 느낌은 그와 많이 달랐다. 가슴께까지 자라난 줄기와 하늘하늘 가냘픈 이파리에서는 풍요로움보다 아련함이나 이국적 신기함이 더 크게 와 닿는다. 마치 잘 가꾼 화원에 들어선 듯하다. 실제로 아스파라거스의 이파리는 꽃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쓰기도 한다. 식탁에 오르는 것은 뿌리에서 막 자라난 어린순이다. 아스파라거스는 백합과 다년생 식물로 만물이 소생하는 3월에 순이 자라나는데, 4~5월경에 땅 위로 25cm 정도 자라면 땅속으로 2cm 깊이로 잘라 수확한다. 그대로 두면 줄기가 굵어지고 이파리가 무성해진다. 그 때문에 봄에만 나는 채소로 아는 이도 많지만, 실은 가을에 줄기와 잎이 시들기 전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봄에만 수확을 하고, 가을에는 줄기와 잎을 고사시키지요.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면서 ‘가을까지 수확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는데,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더군요. 자연의 섭리는 종족 번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니까요. 아스파라거스도 줄기를 계속 잘라내면 뿌리에서 어린순을 꾸준히 키워냅니다. 쉽게 말해 억제 재배로 작물을 속이는 것이지요. 봄철 것만은 못해도 맛과 영양이부족하지 않은 아스파라거스를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으니 농가 살림에도 도움이 되고 일석이조지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기 시작해 ‘아스파라거스 전도사’라 불리는 우보농산 대표 설동준 씨((사)한국아스파라거스생산자협회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자리에서 10년 이상을 수확하는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는 일이 만만한 듯 생각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채소는 모두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작은 밭이라도 제때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보살피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아스파라거스는 다른 농작물처럼 1년안에 승부가 나는 농작물이 아니에요. 3년 후부터 수확이 가능하지만, 제대로 된 수확은 5년부터 가능합니다. 15년이상을 내다보는 작물이니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는 농부의 가장 큰 미덕은 인내라 하겠지요.”


1 우보농산은 주키니와 주키니 호박꽃, 오크라 등 특수 채소를 유기농・무농약 재배하는 착한 농장이다. 
2 아스파라거스는 한 번 심으면 3년이 지나야 첫 수확이 가능하고, 본격적인 생산을 위해서는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로 키운 채소인 것. 
3 유럽의 노란 배추 엔다이브는 수경 재배를 한다. 섬유질과 비타민의 보고로 성인병 예방에 특히 좋다. 
4 소금을 뿌려 구워 먹기만 해도 맛있는 서양가지로, 아시아 가지보다 짧고 통통하다.


국제적 장돌뱅이에서 농사꾼으로 힘차게 뻗은 싱싱한 줄기가 마치 곧게 자란 대나무 같은 아스파라거스가 입맛을 당긴다. 죽순처럼 순을 먹는 채소로 4월에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지만, 약 4545㎡(1만 5천 평) 규모의 유기농 직영 농장을 운영하는 우보농산에서는 가을까지 아침저녁으로 어린순을 잘라낸다. 농장 이름으로 ‘소
의 걸음’이란 뜻의 ‘우보牛步’를 선택한 그 마음처럼 27년을 올곧게 아스파라거스 재배에 헌신한 설동준 씨지만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동남아 등을 돌며 무역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스파라거스를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일상에서 즐기는 건강 채소로 인기더군요. 그땐 아스파라거스가 채소인지, 먹는 것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맛을 보곤 그 매력에 반했지 뭡니까. 일본이 아스파라거스만 1억 달러어치를 수입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까운 한국에서 재배해 수출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지요.”

그의 말마따나 국제적 장돌뱅이 기질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그 길로 일본으로 떠나 우리나라와 지형이 비슷한 아스파라거스 산지를 찾아다니며 3년간 재배 기술을 습득하고 단단히 공부했다.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아스파라거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국내에서 재배 농가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직접하쇼!” 한결같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아스파라거스를 “아서라 캐가라”라고 우스꽝스럽게 부르기도 했다. “사기꾼으로 몰리는 일도 허다했어요.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좌우명이 ‘우보천리 대기만성牛步千里 大器晩成’이거든요.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이 천천히 우직하게 한길을 걷다 보면 결국은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땀에는 거짓이 없다는 말을 믿고 농사꾼이 되기로 결심했지요.”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채소과 성기철 박사와 유인철 연구원의 도움을 받으며 약 3636㎡(1천1백 평) 규모 농장에 아스파라거스 농사를 지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채소다 보니 판매에 어려움이 많았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는 애용하는 채소지만 한국에서는 그러지 않아 유통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유기농・무농약으로 정직하게 재배해도 수입산 아스파라거스가 판치다 보니 판로가 막혀 애써 농사지은 것을 팔아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뚝심 있게 30여 년을 한결같이 한길만 걸어온 그의 노력과 투자가 기반이 된 진정성은 결국 통했다. 10여 년 전 강남의 한 백화점에 임시로나마 어렵게 좌대를 얻어 직접 삶은 아스파라거스를 마요네즈에 찍어 시식하도록 했더니 맛을 본 소비자들이 찾기 시작한 것이다. 슬슬 입소문이 나고 그가 재배하는 아스파라거스가 유기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러 찾는 이가 끊이지 않았다.

“더운 지역보다는 해발 400~500m의 고지대가 아스파라거스 재배에 적합합니다. 날이 덥고 습하면 병충해가 생기가 쉽지요. 수입품은 주로 필리핀・태국 등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한 것인데, 이런 곳에서는 비만 오면
병충해 피해를 막기 위해 수시로 농약을 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할 때는 우선 3백여 품종 중에서 기후와 풍토에 맞는 것을 잘 골라 비를 맞지 않게 해야 병충해에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맞게 고 안한 재배법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비가림하우스’지요.”

제철인 봄이 아닌데도 그 맛을 보니 연하고 특유의 향에 달기까지 하다. 최근엔 인지도가 높아져 일반 가정에서도 소비가 느는 추세일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는 자신이 재배한 아스파라거스를 일본에 수출하는 기쁨도 맛보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를 국내에 정착시키는 데 20여 년이 걸렸습니다.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면서 보니 특수 채소라 분류되는 서양 채소를 전량 수입하더군요. 다른 것도 재배해달라는 소비자들 요구가 그간 꾸준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한번 해보자!’ 했지요. 덕분에 엔다이브, 아티초크, 주키니, 서양가지, 오크라 등 이름부터 이색적인 작물이 농장에 한가득이지요.”


1 셜럿shallot 양파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양새로 외국 요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기 채소다. 생김새는 물론 맛과 향도 양파의 달콤함과 마늘의 알싸함을 동시에 갖고 있어 양파 대신 넣으면 풍미를 더할 수 있다. 피클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커리, 볶음밥, 고기 요리에 넣는다. 
2 주키니 호박꽃 요리에 장식용으로 주로 쓰며, 튀김으로 즐기기도 한다. 
3 주키니zucchine 일반 호박과 달리 모양과 색이 다양해 관상용으로도 사용한다. 보통 껍질째 요리하는데, 은근한 쓴맛이 특징으로, 애호박보다는 맛이 덜해 전이나 볶음보다는 찌개나 국에 넣어 먹는다. 소화 흡수가 잘되는 당질과 비타민 A를 많이 함유한다. 
4 엔다이브endive 배추속대 모양으로 벨기에에서 처음 생산해 벨지움엔다이브 혹은 벨지언엔다이브라고도 한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으로 약간 쌉쌀한 맛은 인티빈이라 성분 때문. 소화를 돕고 노화 예방과 항암에 효과적이며 혈액순환 개선에 좋다. 
5 서양가지 달걀 모양으로 ‘에그플랜트’라 불린다. 안토시아닌이란 항산화・항암 성분이 들어 있다. 아시아가지보다 진한 보라색을 띠고 윤기가 나며, 찌거나 굽기만 해도 맛있다. 
6 오크라okra 꽃 하나에 열매가 하나씩 맺히는 오크라는 꽃이 핀 다음 7〜10일 된 어린 깍지를 먹는다. 우아한 모양 덕분에 ‘귀부인의 손가락’으로도 불리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다. 볶아 먹거나 수프로 즐긴다. 
7 콩bean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콩류 중 새팥을 제외하곤 전부 외국에서 들여온 종이다. 
8 아티초크artichoke 브로콜리처럼 꽃봉오리를 식용하는 채소로 파인애플 껍질처럼 생겼다. 시나린이라는 성분이 소화 촉진과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 삶아서 심 부분만 먹거나 수프로 즐긴다.



1 아스파라거스 냉면 ‘아스파라냉면’의 면을 풀어 끓는 물에 넣고 1분 30분 정도 삶다 바닥에 있던 면이 위로 끓어오르면 건져 찬물에 2~3회 비비며 헹군다. 그릇에 면을 담고 육수를 부은 후 고명을 올린다. 면이 부드럽고 시원한 육수 맛이 일품이다. 
2 엔다이브 샐러드 엔다이브를 깨끗이 씻어 잎을 한 장씩 뗀다. 파프리카, 양파, 콘옥수수, 셀러리 등 각종 채소를 작게 잘라 시판용 샐러드 소스에 버무린 다음 엔다이브 잎 위에 한 숟갈씩 올린다.
3 삶은 아티초크 밑동과 꽃봉오리 윗부분을 자르고 옆 부분의 잎도 가위로 손질한다. 끓는 물에 갈변을 예방해주는 레몬이나 레몬즙과 함께 소금을 넣은 후 손질한 아티초크를 넣고 30분 정도 삶는다. 젓가락으로 찔렀을 때 부드럽게 들어가면 완성. 마요네즈 등 소스를 찍어 잎끝의 통통한 부분만 이로 긁어 먹는다.

식탁을 채우는 약 채소 “<동의보감>에도 아스파라거스가 ‘천문동’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전쟁 중에 이뇨 작용과 진통・진정 작용의 약재로 썼다고 전해집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약이 되는 채소인 게지요. 요즘도 가끔 처방전을 가지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스파라거스 원물이나 분말 가루를 약으로 처방하는 한의사가 있는 모양이더군요. 통풍이 있거나 혈압이 높은 분들이 많이 찾으세요.”

그뿐만 아니라 아스파라거스에는 비타민 C, B1, B2,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이 풍부해 피로 해소와 신진대사에 도움을 준다. 대표적 숙취 해소 물질로 콩나물에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진 아스파라긴산이 처음으로 발견된 식물이기도 하다. 이름만 봐도 연관성이 짐작되는데, 1806년 프랑스의 보클랭과 로비케 박사가 발견해 아스파라긴이란 이름을 붙인 것. 아스파라긴산의 양도 아스파라거스 한 쪽에 든 양이 콩나물 4kg짜리와 맞먹는다고 한다.

중세만 해도 귀한 채소로 왕실과 귀족만 먹을 수 있어서 ‘채소의 귀족’이라 불린 아스파라거스는 오늘날엔 서양식 스테이크 요리의 곁들이(가시니)로 자주 사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녹색과 백색, 자색이 있는데, 그린 아스파라거스가 주류를 이룬다. 생으로 먹어도 좋고 삶거나 볶아도 맛이 좋기 때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올리브유나 버터에 볶아 소금을 살짝 뿌리면 전채 요리로 손색없고, 다진마늘과 함께 볶다가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해도 반찬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 바비큐 요리에 곁들이는 채소로도 훌륭하다. 숯불에 구워 소금만 조금 뿌리면 된다. 연어 같은 담백한 생선이나 닭 등의 가금류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길쭉한 아스파라거스에 베이컨을 돌돌 말아 구우면 술안주로 제격이다.

“우리 집 식탁에는 아스파라거스가 빠지지 않습니다. 엔다이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의 아스파라거스라 생각할 정도로 애착이 가는 작물이지요. 특히 샐러드로 즐기는데,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합니다. 구운 아스파라거스의 질감이 뻣뻣하다고 느껴질 경우에도 끓는 물에 3분 정도 삶아 먹으면 좋습니다.”

그의 아스파라거스 사랑은 가공식품으로 개발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우보농산의 자매 회사인 아스파라 식품에서 유기농 아스파라거스를 원료로 한 ‘아스파라녹즙’과 아스파라거스 분말이나 진액을 원료로 한 ‘아스파라냉면’ 그리고 아스파라거스와 돼지갈비를 함께 숙성시켜 만든 ‘아스파라갈비’를 생산하는 것. 특히 아스파라 냉면은 한 그릇만으로도 아스파라거스의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소개한다.

“순수하게 아스파라거스만 이용해 면을 비취색으로 만들었어요. 그런 만큼 영양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비결요? 급속 동결 건조 공법으로 만든 분말과 즙을 이용했지요. 냉면 육수도 아스파라거스의 즙을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아스파라거스를 일상식으로 가까이 즐기다 보면 절로 건강해질 겁니다. 음식이 보약이니 바로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실천이지요.”


4 아스파라거스 갈비 아스파라거스와 돼지갈비를 함께 숙성시켜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없애고 육질이 부드럽다. 갈비 안에 아스파라거스가 함께 들어 있어 곁들이 채소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5 아스파라거스 무쌈말이 아스파라거스는 눈을 떼고 밑동의 질긴 부분을 1~2cm 잘라낸 다음 적당한 길이로 썬다. 끓는 물에 1~2분간 삶은 후 물기를 뺀다. 아스파라거스는 오래 삶으면 쓴맛이 나므로 주의. 노랑・주황 파프리카는 꼭지와 씨를 제거한 후 아스파라거스와 같은 크기로 썬다. 시판용 무쌈에 아스파라거스와 파프리카를 올리고 돌돌 말아낸다. 손님 초대 요리나 술안주로도 좋다. 
6 우보농산의 밭에서 캔 특수 채소는 아내 김이슬 씨와 설 대표가 흘린 땀의 결과이다.

촬영 협조 우보농산(033-435-5332, www.asparagus.co.kr)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민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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