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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참외와 아카시아 벌꿀 부지런한 꿀벌이 키워낸 다디단 맛
지난봄 옥양목처럼 눈부시게 하얀 아카시아꽃에 몰리던 꿀벌이 참외밭 덩굴 사이를 누비면, 어느새 연둣빛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곧이어 노랗게 익어간다. 대구 곁에 자리한 칠곡은 벌꿀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카시아 벌꿀과 꿀벌이 수정해 다디단 꿀벌참외 맛이 일품인 고장. 꿀벌이 만들어 영양분 가득한 참외와 벌꿀로 여름의 향내마저 달콤한 경북 칠곡군을 찾았다.


벌은 한 번에 0.02~0.05g의 꿀을 모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온 몸에 꽃가루를 묻힌 꿀벌이 수꽃에서 암꽃으로 옮겨다니면서 자연 수정이 이루어진다.


생활에 밀착한 우연한 발견
참외밭 덩굴 아래 칠곡의 참외가 노랗게 익어간다. 부지런한 꿀벌이 돕고 농부의 땀이 키워낸 과실이다. 일명 꿀벌참외, 벌꿀참외로도 불린다. 맛이 꿀처럼 달고 아삭한 식감과 향기가 일품이지만 그 때문에 붙은 이름은 아니다. 이는 꿀벌로 자연 수정한 참외를 이르는 것으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무공해 과일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등에 매우 취약한 것이 꿀벌인 만큼 토질을 개량하기 위해 다른 데에서 파다가 옮긴 양질의 흙인 ‘객토’에서 미생물 발효 퇴비만을 사용해 재배한 것.

흔히 참외라고 하면 성주참외를 떠올리는데, 칠곡은 이 꿀벌참외로 명성을 다져가고 있다. 칠곡군은 참외 주산지로 알려진 성주군(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과 이웃한 고장으로, 성주에도 물론 꿀벌참외가 있다. 하지만 이는 칠곡의 꿀벌참외 자연 수정법이 참외 주산지 성주 지역으로 역보급되어 생산되는 것이다. 칠곡의 자연수정법이 참외 재배 기술의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 1995년 꿀벌참외를 개발한 이도 칠곡양봉연구회 회장인 칠곡양봉영농조합의 박명우 대표다. 그는 양봉 외에 꿀벌참외를 개발, 보급한 공로로 2006년 신지식 농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참외가 자라는 비닐하우스 안에 벌통을 두고 꿀벌을 이용한 자연 수정 방식으로 재배해 그야말로 친환경 농법을 그대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양봉을 하면서 칠곡 지역의 많은 농가가 그렇듯이 참외 농사도 지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재배가 일반적이다 보니, 수정약과 식물 호르몬제를 사용해 강제 착화하는 것이 당시의 수정법이었지요. 초여름만 돼도 40~50℃를 육박하는 하우스 안에서 붓을 들고 일일이 꽃에 수정약을 바르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어요. 그 노고를 줄이고자, 말하자면 잔머리를 좀 썼습니다(웃음). 평생을 꿀벌과 동고동락했으니 ‘양봉과 참외 재배를 접목할 수 없을까’ 고민했지요. 하우스에 벌통을 넣고 암꽃과 수꽃을 날아다니는 꿀벌 덕을 보면 일석이조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답답한 하우스 안의 고온을 꿀벌이 견딜 수 없는 것이 문제였어요. 그래서 개폐가 가능한 환기창을 설치해 온도를 조절해주었습니다.”

참외가 가장 잘 자라는 온도는 18~25℃. 다행히 꿀벌도 그 정도의 온도에서 가장 번식력이 좋고 활동을 활발히 한다. “고된 농사꾼의 일손을 좀 줄여보고자 한 일인데, 사람이 인공 수정한 참외보다 꿀벌이 자연 수정한 참외가 색깔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은 것은 물론 신선도도 뛰어났습니다. 저장성도 좋았고요.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었지요.”

(오른쪽) 자연수정을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꿀벌참외를 개발한 칠곡양봉영농조합 박명우 대표에게 꿀벌은 인생 그 자체다.

꿀벌이 만들고 농부가 키운 꿀벌참외
천재 물리학자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며, 식물의 번식에 절대적 역할을 하는 꿀벌을 칭송한 바 있다. 지구에 있는 전체 작물의 3분의 1이 꽃 사이를 누비며 암술에 수술의 꽃가루를 묻히는 곤충의 ‘수분受粉’ 활동으로 열매를 생산하는데, 그중 80%가 꿀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꿀벌참외도 그 결과물 중 하나다.
“벌들이 붕붕대며 참외밭 사이를 누비면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예요.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꿀을 따는 ‘채밀’을 해서, 배속 꿀주머니에 유붕(어린 벌)에게 줄 양식을 저장하지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수꽃에서 암꽃으로 꽃가루가 묻어 수정이 이루어지고 과실이 맺히는 겁니다.”

칠곡의 꿀벌참외 농가는 5백여 호, 재배 면적은 700헥타르에 이른다. 이 가운데서도 참외 농사를 정직하게 잘 짓기로 소문난 이가 정병인・김노미 씨 부부다. 이 부부도 참외 농사를 처음 시작한 30여 년 전에는 물론 노지에서 재배했다. 고랑에 짚을 깔고 참외를 심었다. 이후 대나무 골주를 이용한 터널 재배 방식을 거쳐 대나무 하우스, 철제 하우스로 변화되면서 오늘날 꿀벌로 자연 수정한 참외를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부부에게 꿀벌은 자식이나 다름없다. 벌은 온도에 민감한 편이라 간혹 기온이 높거나 낮으면 활동을 안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도 절대 약품을 사용해 수정하는 일은 없다.

“인공 수정약을 사용하는 것은 벌을 믿지 못하는 것인데, 자식을 믿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잖아요. 게다가 벌이란 녀석이 얼마나 영리한데요. 하우스 안의 온도가 20℃ 정도면 활발하게 움직이고, 30℃가 넘으면 활동을 딱 멈춰요. 아침에 꽃이 피면 오전 9~12시에 수정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꿀벌이 한창 활동하며 부지런히 꿀통인 벌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에요. 하우스 안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이때 온도계를 보면 여지없어요. 그러다 한낮에 온도가 올라가면 벌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거나 가까운 곳으로 채밀을 나갔다가 오후에 하우스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활동을 시작해요. 요즘 같은 여름철엔 오후 4시 정도가 되어야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죠. 나름 출퇴근 시간이 확실하답니다.”

벌 한 마리의 채밀권 활동 영역은 반경 2km로, 벌집까지는 왕복 4km 정도. 한 번 채밀을 나가면 평균 5백 송이 꽃을 들를 정도로 부지런하다. 그러니 하우스에 벌 한두 마리만 있어도 벌써 꽃이란 꽃은 거의 거친 셈. “여름철 한낮의 하우스 안은 숨이 턱턱 막히게 덥습니다. 이때를 피해 벌이 활동할 온도면 사람도 견딜 만한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꿀벌과 일하는 시간대가 겹치죠. 꿀벌이 참외 수정을 도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손이 제법 많이 간답니다.”

(오른쪽) 맨 위가 3일 된 열매이고, 그 아래로 일주일, 보름, 20일, 25일 된 것.

1 꿀벌이 마치 자식 같다는 정병인ㆍ김노미 씨 부부. 꿀벌 덕분에 예전보다 일손을 많이 덜었지만, 그래도 양질의 참외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사람 손이 적잖이 필요하다. 착과가 과하면 줄기를 쳐주고, 수확도 일일이 선별해야 한다.
2 여름철 대표 과일로 꼽히는 참외의 ‘참’은 ‘허름하지 않고 썩 좋다’는 뜻의 우리말로, 오이보다 맛과 향기가 좋다는 의미. 칠곡 꿀벌참외는 반 갈랐을 때 속살이 깨끗하고 씨앗이 탱글탱글해 모양부터 다르다.

3 겨울철엔 하우스 안에, 여름철엔 문 가까이에 벌집 상자를 둔다. 벌집에 있는 동안에도 일벌은 일을 멈추지 않는다. 밀랍과 타액, 프로폴리스를 혼합해서 정육각형의 집을 짓고, 집 안의 온도 조절을 위해 날갯짓을 쉬지 않고 붕붕대며 선풍기 역할도 한다. 
4 하우스의 온도 조절을 위해 환기창을 설치했다.

농가에서 직접 참외를 선별해 상자에 담아 출하한다.


꿀벌참외 농사는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벌집 상자를 하우스 한 동당 한 군씩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무 상자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스티로폼 상자인 것은 운반하기 용이하고 보온성이 좋기 때문. 이때부터 주・야간 온도 차가 심하므로 밤에는 12℃ 정도로 보온 관리를 철저히 해주고, 낮에는 30℃가 넘지 않도록 늘 신경 써야 한다. 수정이 되면 암꽃 아래로 엄지손톱만 하게 열매가 맺히고 보통 한 달쯤 되면 어엿한 참외로 노랗게 익는데, 착과가 과다하면 품질은 당연히 떨어지기 때문에 막 수정된 열매가 맺히면 가지치기를 하듯 손으로 줄기를 적당히 제거해줘야 한다. 이렇게 맺어진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기온이 낮을 때는 40일 정도 걸리고 요즘 같은 제철에는 25일이면 충분하다. 첫 수확은 4월 초순쯤 하는데, 이때도 손으로 일일이 선별해야 한다.

“참외는 노란색이 선명하고 골이 깊이 패어 있되 선이 곧은 것이 맛있습니다. 꼭지가 싱싱한 것이 신선하지만, 향기가 지나치게 강한 것은 오히려 수확한 지 오래된 것일 수 있으니 잘 살펴보고 골라야 합니다. 특히 참외는 꼭 반 잘라 속을 봐야 해요. 칠곡 참외는 모양부터 다릅니다. 속살이 깨끗하고 씨앗이 탱글탱글하게 영글어 있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지요. 일명 쭉정이가 없습니다. 씨를 땅에 심으면 싹이 날 정도니까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키운 덕분에 살아 숨 쉰다는 증거지요.”


5월 10일경, 일주일간 만개하는 칠곡의 신동재 아카시아 군락지.


벌꿀의 여왕, 칠곡 아카시아 벌꿀
꽃꿀을 모으는 벌과 상부상조해 꿀벌참외를 얻었지만, 그에 앞서 칠곡군은 ‘벌꿀 고장’이라 불릴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꿀의 명산지다. 2008년 양봉 특구로 지정받았는데, 이는 칠곡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벌꿀은 원료가 되는 꽃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꿀벌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바로 아카시아. 아카시아 벌꿀을 ‘벌꿀의 여왕’이라 부르는 이유다. “꿀벌은 한 장소에서 군락을 이루어 피는 꽃, 작은 꽃이 밀집되어 피는 꽃, 다량의 꿀이 분비되는 꽃을 좋아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꽃이 아카시아입니다. 아카시아 벌꿀은 이른바 국가 대표 꿀인 셈이지요. 품질도 좋지만 양도 많아 한국에서 생산하는 양봉 꿀의 70% 정도를 차지해요. 색이 엷고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나지만 지나치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칠곡 아카시아 벌꿀이 명품이 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신동재 아카시아 군락지라는 천혜의 조건이다. 해마다 5월이면 해발 200m에 위치한 5.2km의 신동재 숲과 길이 눈이 온 듯 하얀 아카시아꽃으로 덮이는데, 환경도 벌통을 이동하기 배치하는 데 편리하게 갖춰져 있다. 이 아름드리 아카시아 군락지의 면적은 무려 330만㎡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 신동재를 가리켜 ‘양봉의 성지’라 일컫는 이유다. 둘째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벌통을 들락거리는 벌이나, 아침 저녁 지극정성으로 벌통을 돌보는 사람이나 모두 한마음으로 통해야만 꿀 한 방울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가 바로 꿀벌참외를 개발한 칠곡양봉영농조합 박명우 대표다.

“개화기에 맞춰 이동하는 양봉인 사이에서 칠곡 신동재는 오래전부터 메카요, 꿀의 금광이에요. 양봉인이라면 이른 봄 제주에서 유채꽃 채밀을 하는 것으로 한 해 양봉을 시작합니다. 봄이 끝나갈 무렵 신동재 아카시아 군락지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하지만 이른 봄에 피는 유채꽃 등의 채밀은 꿀보다 꿀벌의 증식에 더욱 중점을 둔 것으로, 제주에서 벌 증식을 끝낸 양봉인들이 대부분 신동재 아카시아 군락지에서 비로소 그해의 첫 채밀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신동재가 가장 좋은 꿀을, 가장 많이, 가장 쉽게 채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양봉인들 사이에서는 ‘한 해 꿀 농사의 성패는 칠곡 신동재가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랍니다.”

(오른쪽) 꽃이나 나무 수액에서 뽑아낸 당분을 벌이 먹고 효소와 더불어 내놓는 것이 바로 꿀이다.

1 ’꿀이네’는 칠곡양봉영농 조합의 자체 브랜드.
2, 3 일벌은 태어난 지 3일 후부터 꽃꿀에 체액을 섞어 꿀벌 유충의 영양 섭취에 필요한 꿀벌 분비물을 만드는 일을 한다. 바로 로열젤리로 자신보다 어린 새끼 벌인 유붕을 키우는 것. 

4 검오산 아래 있는 박명우 대표의 양봉장.


천혜의 환경을 갖춘 것만으로 칠곡의 벌꿀을 프리미엄 벌꿀이라 칭하는 것은 아니다. 칠곡의 꿀이 프리미엄 벌꿀의 명성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아카시아를 비롯한 풍부한 밀원에서 물어온 꿀을 벌들이 날개 바람을 통해 적정한 수분 농도를 맞추고 벌집을 완전히 밀봉한 후에 채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명우 대표를 필두로 한 칠곡군 양봉인들의 남다른 노력이 더해졌다. 칠곡양봉영농조합에서 생산하는 브랜드 ‘꿀이네’의 모든 제품은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기준보다 품질관리를 더 엄격하게 한다.

“소비자 사이에 여전히 가짜 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게 사실입니다. 벌꿀에 대한 규격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칠곡양봉영농조합은 양심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고자 양봉협회 내 양봉산물연구소에 탄소 동위원소 검사를 자진해서 의뢰하고 있습니다. 설탕이 1mg도 섞이지 않고 자연 농축된 꿀만 ‘꿀이네’ 이름을 붙일 수 있으니, 이 모두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서지요.”

촬영 협조 꿀이네(054-974-2369), 정병인 참외(054-972-1900), 칠곡농업기술센터(054-974-1607)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