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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한라산을 품은 한라봉 맛을 봐야 알 거우다
제주의 감귤은 제주가 아니고서는 나지 않는, 제주 섬사람들의 꿈을 안고 영그는 과일이다. 귤 하면 떠오르는 온주밀감부터 제주 감귤의 대명사 격인 한라봉에 이르기까지 혀를 자극하는 단맛과 신맛에는 3백만 감귤 농가의 땀이 짙게 배어 있다. 3월의 제주를 찬란하게 빛내는 황금빛 열매는 한라봉으로, 그 맛이 다디달다.

철 따라 맛이 든 제주도 꿈의 과일
“산은 험하고 바다는 사납다.” 옛사람들이 제주를 두고 표현한 말이다. 이는 아마도 화산섬인 제주가 높은 한라산을 품고 있는 데다 오름이 많고 바람이 거세 고요한 바다를 만나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비롯한 말일 터.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한반도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한라산과 ‘어머니 품’ 같은 오름이 있어 늘 푸근하고, 힘찬 바다는 속내를 묵묵히 들어주는 속 깊은 동무 같다. 제주는 육지인에게 신선이 놀기에 딱 좋은 곳으로 달뜬 마음을 안겨주는 무릉도원인 셈이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맺어진 황금빛 싱그러운 감귤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그 옛날에는 신선이 사는 세상인 ‘선계仙界의 맛’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반 백성은 맛보기도 힘든 귀한 과일이었다. 제주도에서만 감귤이 났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집 안 텃밭인 우영팟에 키우기도 해 감귤나무 없는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흔 하지만, 육지인에게 감귤은 황금빛 열매였다.

귀한 작물이 나는 것은 축복이지만, 귀하면 탐욕이 생기는 법. 빛깔이며 자태가 고운 감귤에는 제주 사람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배어 있다. “탐라(제주의 옛 이름)에서 백제나 신라에 감귤을 바쳤다”는 기록을 보면 귤의 상납 역사는 무려 1천 년을 헤아린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감귤은 임금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진상품 중에서도 어찌나 귀했던지 감귤을 진상하면 임금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과거 시험의 일종인 황감제黃柑製를 실시했다. 조선 후기 과거 시험이 늘어나 급제자가 증가해 폐단이 생겼을 때, 다른 과거 시험은 줄였으나 황감제는 계속 시행할 정도로 감귤 진상은 의미가 특별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관리들의 횡포도 심했다. 조선시대에는 제주의 귤나무에 열매가 달리면 수까지 하나하나 세어가면서 공납용으로 걷었다. 바람의 땅에서 빚어낸 열매이니 바람에 떨어지는 귤도 있을진대, 그 수가 맞지 않으면 농민이 직접 물어내야 했다. 그래서 원래의 맛이 시고 품종도 다양한 토종 감귤은 거의 없어지고, 일본에서 수입한 온주밀감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대표적 감귤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11년 프랑스 엄탁가(Emsile, J. Touguet) 신부가 제주산 벚나무를 일본에 있는 신부에게 보내고, 그 대가로 온주밀감 15주를 받아 심은 것이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하는 온주밀감의 효시인 것.

과거에는 고통을 주는 나무였을지언정 요즘은 제주 사람에게 꿈을 주는 작물이 감귤이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가만 3백만 호에 이를 정도로 제주 농가를 살리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동안 품종도 다양해졌다. 노지에서 재배해 10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인 일반 노감귤뿐 아니라 한라봉, 천혜향, 진지향, 레드향, 청견, 청희오렌지 등도 모두 감귤이다. 그 때문에 1년 내내 철 따라 맛이 든 감귤을 즐길 수 있다.

노지에서 재배해 10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인 일반 감귤뿐 아니라 한라봉, 천혜향, 진지향, 레드향, 청견, 청희오렌지 등도 모두 감귤이다.


1 한라봉은 모양이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 과실이 맺힌 가지에 일일이 끈을 달아 모양을 고르게 만든다.
2 노지 감귤밭에는 방수 기능을 하는 피복 자재를 깔아줘 수분 공급을 차단해 당도를 높인다. 
3 수확은 서너 차례로 나눠 한다. 잔가지째 잘라내야 그다음 수확 때에 실한 과실을 얻을 수 있다.
4 한라봉은 제주 오름의 이름을 딴 ‘삼배봉’ ‘월라봉’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선택된 이름. 명성에 가깝게 재배도 까다롭고 손도 많이 가지만 철저한 관리로 명품 한라봉을 키워내고 있는 제주푸른농장의 강창민 대표.

작지만 강한 제주 강소농의 명품 한라봉
꽃 피는 춘삼월에 감귤 시즌이 지났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1월부터 5월까지는 제주도의 고급 감귤 중 으뜸으로 꼽히는 한라봉이 제철이다. 초봄이면 단맛과 새콤한 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한라봉이 감귤 농가의 짙푸른 잎사귀 사이에서 금빛 자태를 뽐내며 익어간다. ‘비타민의 보고’로 불리며 막판 한파를 이겨낼 훌륭한 면역제 역할을 한다. 톡 튀어나온 꼭지가 한라산을 닮았다고 해 이름 지은 ‘한라봉’이 제주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 년 남짓. 원래 일본의 품종명은 부지화不知火로, 청견과 폰캉(중야 3호)의 교잡종이다. 한라봉은 제주도에서 재배하면서 새롭게 명명한 것이다. 울퉁불퉁 생김새는 못났지만 당도 13~15브릭스brix(과일이나 와인 같은 어떤 액체에 있는 당의 농도를 대략적으로 정하는 단위)로 일반 감귤(당도 9~12브릭스)보다 높고 향이 좋아 소비자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는 제주 감귤의 대명사로 불린다.

“한라봉이 제주 특산물이기는 하지만 제주에서도 남부 지역인 서귀포시와 남원읍 쪽이 주산지여서 일반 감귤밭과 주로 겹쳐 있습니다. 감귤은 크게 노지露地 감귤과 하우스 감귤로 나뉘는데, 비가림 감귤도 하우스 감귤의 일종이라 할 수 있지요. 비가림은 말 그대로 비를 가렸다는 뜻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노지 감귤은 밖에서 키워 11월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출시하는데,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1년에 단 1백 일만 출시하지요. 노지 감귤이 끝난 2월 말부터 한라봉과 비가림 감귤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는 겁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제주푸른농장’의 강창민 씨는 노지 감귤 9백 평에 1백 주, 한라봉은 5백 평에 1백20주를 키우고 있다. 가을에 생산되는 귤은 온주밀감으로, 이보다 늦게 생산되는 밀감을 대부분 ‘만감滿柑류’로 부른다. 만감류란 나무에서 완전히 익도록 오래 두었다가 따는 밀감이란 뜻으로, 한라봉은 만감류의 대표 상품이다. 지금 나오는 한라봉은 모두 비닐하우스에서 가온加溫을 하지 않고 재배한 비가림 감귤로, 당도는 높은 반면 산도는 낮아 맛과 향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수확해 제주농협감귤조합으로 출하하거나 판매한 것도 많지만, 일부는 숙성 중이고 아직 수확하지 않아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도 있다.

(왼쪽) 관상용 하귤.


(왼쪽) 달콤한 향기가 일품인 하얀 귤꽃은 일일이 손으로 털어줘야 착과가 잘된다.
(오른쪽) 한라봉은 1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로, 3월에서 5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한라봉의 품질을 결정짓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당도와 산도, 크기입니다. 일반 감귤은 작아야 맛이 좋지만, 한라봉은 특유의 깃이 불쑥하게 올라오고 알이 큰 것을 선호하지요. 당도는 최소한 13~15브릭스 이상, 신맛은 1.2% 정도로 300g가량 나가는 한라봉이 최고 상품으로 꼽힙니다.”
그가 감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은 10여 년전. 2002년에 결혼하면서 40년 동안 아버지가 꾸려오시던 감귤 농장을 물려받았다. 1헥타르에 이르는 농장이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작은 농장에 속했기에 ‘작지만 강한 농민’, 즉 강소농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강소농이 되려면 우선 생산하는 농산물의 품질이 월등히 좋아야 한다. “감귤 농장에 일대 개혁을 단행했어요.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감귤의 품질을 높이는 거예요.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기로 한 거죠. 품질과 상관없이 무조건 수확량을 늘리기보다는 당도가 높은 감귤을 생산해야 차별화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장 제주감귤시험장과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해 선진 농업 기술을 전수받았어요. 노지와 시설 하우스 재배에 따라 재배 농법에 차이를 두고 지나친 밀식 재배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노지 재배의 경우 높은 이랑과 피복 자재 설치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감귤류는 ‘빗물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감귤은 수분이 많으면 산도가 상승해 신맛이 강해지는데, 품질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에 토양에 물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면 물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는 한라봉은 토양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뿌리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빠짐을 좋게 하고 퇴비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야 토양 내에 틈이 생겨 뿌리가 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두 감귤밭은 옆에 나란히 붙어 있어도 모양부터 차이가 난다.

한라봉밭은 약간의 경사면을 준 반면, 노지 감귤밭에는 방수 기능을 하는 피복 자재를 깔아 수분 공급을 차단해 당도를 높인 것. 햇빛 반사율이 높아 감귤나무 중・하단부 감귤의 숙성과 당도를 높이는 기능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이랑 설치다. 제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부분 감귤 농장은 평지 재배로 배수가 잘 안 된다. 여름 장마나 집중호우에 과수원이 물에 잠겨 품질 저하의 원인이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감귤나무 배열에 맞춰 중간에 홈을 깊이 파내 감귤나무가 높은 부분에 있는 이랑 재배법을 도입한 것. 그뿐만 아니라 감귤과 한라봉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다른 농장에 비해 푸른농장의 과수에는 숨통이 트여 있다.

“사람도 만원 버스에 타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빈틈없이 빽빽하게 심어 재배하는 것을 밀식 재배라고 하는데, 나무를 심은 데서 자연적으로 죽은 것이나 잡목을 솎아내고, 나무 간의 간격도 조율하는 간벌 등의 작업을 통해 나무의 밀도를 낮췄습니다. 아버지는 옛날 분이다 보니 반대가 만만치 않았어요. 멀쩡한 나무를 솎아낸다고요.” 자식 같은 과수를 솎아낸 것이 속이 상하셨는지 감귤 농장에 발걸음을 뚝 끊으신 아버지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농법을 열심히 실행했단다. 그랬더니 35~40년생의 수령이 높은 과수에서도 맛 좋은 감귤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된 것. 토양 관리와 새순 관리도 철저하게 한다. 토양 검정은 연초에 기술센터에 의뢰해 처방을 따른다. 수확 횟수도 일반 농가가 1~2차에 그치는 반면, 이곳은 과일의 품질을 검사해 3~4회에 나눠 균일한 품질의 과실만 수확한다. 이른바 성실한 농부의 자세에 과학 농법을 더해 명품 감귤과 한라봉을 얻을 수 있는 것. 그의 자식 같은 감귤과 한라봉은 여느 농장과 다름없이 제주감귤농업협동조합과 지역 농협으로 출하한다. 그곳에서 상품과 중품으로 자동 분류하는데, 그의 과실들은 세 배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는다.

“시험 보러 간 자식이 성적표를 잘 받아오면 어느 부모가 기쁘지 않겠습니까.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반면 책임감도 큽니다. 뒷바라지를 꾸준히 해야 하니까요.”


(왼쪽) 제주의 전통음식을 계승하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는 정경애 씨.
(오른쪽) 제주감귤과즐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지만 가격은 250g에 5천 원, 500g에 1만 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제주 향토의 맛, 제주감귤과즐
감귤류는 제주 전통 음식을 살리는 데도 한몫한다. 감귤과 한라봉을 첨가한 제주과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과즐은 멩질떡(명절 떡의 제주 방언)의 한 종류로, 옛날 제주에서 보릿가루를 반죽해 기름에 튀겨내 조청으로 좁쌀 튀밥을 붙여 만든 전통 한과다. 해방을 전후해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밀과 엿 등을 이용한 것이 지금의 과즐 형태를 띤 것. 척박한 제주에서 변변한 주전부리 하나 없던 시절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던 귀한 먹을거리였고, 여전히 서귀포와 남원읍, 성산읍 지역에서는 제사나 명절에 차례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다.

“과즐은 제주에서도 제주시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향토음식연구회’에서 7~8년 정도 활동했는데, 손맛 좋은 이들에게 향토 음식을 전승할 기회를 준 거지요. 손이 많이 가는 반면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만 짓고 살던 아낙이 솜씨 부릴 것을 찾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서귀포시 남원읍 ‘맛고을한과’의 정경애 씨는 벌써 3년째 제주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제주감귤과즐을 선보이고 있다. 농업기술센터는 지역에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는 향토 음식을 지원해 농촌에 농외 소득 사업으로 꾸릴 수 있게 했다. 전통 제주과즐을 대물림하는 한 곳 외에 과즐을 선보이는 곳은 제주 지역에서도 단 세 곳뿐이다. “감귤즙을 더해 만드는 감귤과즐은 전통적인 과즐은 아니에요. 어린 시절에 먹던 과즐도 밀가루에 물만 넣어 반죽한 것이었지요. 감귤과즐을 만든 지는 올해로 3년 정도 되었는데, 감귤 농장을 하고 있으니 따로 재료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부담도 적어요. 과즐의 특성상 오래 두면 맛도 덜하고 모양도 변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주문에 맞춰 양을 조절하며 만든답니다.”

정경애 씨의 감귤과즐에는 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즐에서 감귤 향이 짙게 나는 것은 아니다. 귤 향은 껍질에서 나오는 것인데, 과즐에 넣을 감귤 과즙은 껍질을 벗겨낸 후 믹서에 곱게 갈아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감귤 과즙과 밀가루만 섞는데, 비율은 감귤 과즙 13.5%, 밀가루 45% 정도. 여기에 분유를 약간 넣는 것은 그만의 비법으로 고소한 맛을 더한다. 올리고당, 물엿, 소금 등을 넣어 반죽한다. 반죽은 얇게 밀대로 밀고 사각으로 잘라 두 번 튀기는데, 낮은 온도에서 익히고 높은 온도에서 한 번 더 튀겨 기름을 뺀다. 그런 다음 물엿이나 조청을 고루 바른 뒤 쌀튀밥을 붙이면 완성된다. 전통 교육의 일환으로 제주 지역의 초등학생에게 체험 학습을 하기도 한다.

“감귤이 들어가면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고 맛과 향도 더 좋지만 식감도 부드러워져요. 자칫 사장될 뻔한 전통 음식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감귤뿐만 아니라 호박과 검은콩 등 청정한 제주 땅에서 자란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니 만들 때도 신명 나요. 제주 분들에게는 옛 향수에 젖게 하고, 관광하러 온 분들에게는 제주 향토의 맛을 선사할 수 있으니 촌 아낙이 출세했지요?



어시스턴트 윤호준 촬영 협조 제주푸른농장(010-7172-2099), 맛고을한과(010-6274-8212)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