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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작물에서 건강식품으로 거듭난 고구마 선비의 마을에서 자라나 사람을 살리다
영주에는 살아 있는 자연이 생생하다. 봄에는 소백산 줄기에 야생화와 산야초가 돋아난다. 입하를 지나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빛을 내면 포도가 꿀맛이다. 가을이 한창이면 사과는 활짝 핀 처녀처럼 고운 색이 돌고 인삼에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겨울이 다가오면 첫서리가 내리기 전 청정한 흙에 묻혀 있던 잘생긴 고구마를 캔다. 고구마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더욱 단맛이 돌아 봄이 가까울수록 꿀이 된다. 정월 즈음은 고구마가 물이 올라 맛이 다디단 때다. 하늘이 내린 땅 영주에서는 농부들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고구마가 한창 맛이 든다. 이른바 ‘선비의 마을’에서 점잖게 잘 자란 고구마로, 잘 키운 자식만 같다.


(왼쪽) 1차 산업에 머물고 있는 재배 농가와 2차 산업인 가공업은 물론이고, 3차 산업인 유통·서비스를 연계한 ‘6차 산업’을 통해 고구마를 고부가가치 특산품으로 키워나가고 있는 김주영 영주시장.
(오른쪽) 예부터 대표적인 구황작물 중 하나인 고구마는 이제 모름지기 국민 건강식품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경상북도 최북단에 자리 잡은 영주는 해발 500m 첩첩 산중에 있다.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처럼 맑고 수려한
자태로 백두대간 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소백산을 서남쪽으로 두르고 있어 그 기운이 남다르다.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럽고 순후함마저 느껴진다. 영주를 가리켜 “사람을 살리는 땅”이라 예찬하는 이도 있는데, 양질의 먹을거리를 키워내고 있으니 그 이름이 아깝지 않다. “영주는 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소백산에 기대어 있어 물
과 공기가 맑은 청정 무공해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일조량이 풍부하지요. 그 때문에 영주 하면 대부분 사과와
인삼을 떠올리지만 겨울에는 고구마, 여름에는 포도 등 각종 농산물이 맛있기로도 유명합니다.”

전국에서 태양열발전소가 가장 많은 영주는 전국 2위를 자랑하는 일조량에, 토질 대부분이 배수가 잘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사질토(모래가 주성분으로 찰흙이 섞인 토양)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란다고 지역 자랑을 한 바탕 늘어놓는 김주영 영주시장. 그뿐인가. 그가 “영주의 어머니 산이다”라고 칭한 소백산의 영향으로 일교차가 크다 보니 이곳의 농산물은 색이며 향은 물론 당도가 뛰어나다. 농산물은 대체로 밤에 자라는데, 일교차가 커야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스스로 몸을 단단히 채비하고 당도도 높이는 거라고.

“영주는 잠재력이 많은 도시입니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지요. 그중에서도 사과와 인삼, 한우에 이어 영주를 대
표할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할 날이 머지않은 식품이 고구마입니다. 고구마의 맛과 상품 상태를 결정하는 가
장 중요한 요소가 일조량과 토양(사질토), 일교차인데, 영주는 이 모든 요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영주야말로
고구마를 재배하는 데 최적지라 할 수 있지요.” 영주 땅의 위도가 사람의 체온과 같은 36.5도라는 점 또한 우연이 아닐 터. 그 옛날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선조를 먹여 살리던 구황작물인 고구마는 오늘날 미국 우주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 시대 식량 자원으로 선택할 만큼 이 시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영주시도 고구마를 가공한 건강한 먹을거리 개발에 힘을 쏟는데, 이 모두가 최근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덕분에 영주 고구마의 가공식품인 ‘영주고구마라떼’를 프랜차이즈 커피 체인점인 할리스 커피에서 만날 수 있다. 그 밖에도 ‘미소머금고’ ‘고구마명가’를 브랜드로 한 고구마 빵도 맛볼 수 있다. “작년에 농수산식품부 향토 산업에 선정되어 ‘고구마 클리스터 사업’으로 가공식품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에 좋은 영주의 고구마를 다양한 맛으로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기 위해서죠.”


1 그린웰영농조합의 손대준 대표.
2 영주 고구마는 10kg, 5kg 등 다양한 단위로 포장해 택배로 보내준다.


자연의 기운 그대로 키우는 고구마 매년 5월 중순께 심어 9월 하순께가 되면 영주에서는 고구마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수확하는 고구마는 뭐니 뭐니 해도 호박고구마. 일반 밤고구마에 비해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수분이 풍부하고 육질이 호박처럼 노란색을 띤다고 해 붙은 명칭으로, 당도가 어찌나 높은지 ‘꿀고구마’로도 불린다. 한데 호박고구마가 처음 탄생한 곳이 바로 이곳 영주라는 사실을 아는지.

“고구마는 영주의 대표적 특산물인 사과와 인삼 농사에 비해 노력이나 투자 비용이 모두 절반 이하로 듭니다. 반면 소득은 사과와 비슷하니 빠듯한 살림의 농가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적은 작물이지요. 뿌리 작물이라 태풍과 우박에도 안전하고요. 한데 고구마 하면 퍼석퍼석한 맛을 먼저 떠올리잖아요. 게다가 15~16년 전에는 고구마가 밤고구마밖에 없었거든요. 식감이 부드러우면서 단맛이 강한 고구마 품종을 찾던 중, 옛날에는 육질이 부드럽고 당도가 높은 재래종 고구마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종자가 씨가 마른 거예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종자를 1백~2백년간 보관해오는데, 안타까운 일이었죠. 결국 전북 무안에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의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 에너지작물센터에서 그 옛날 재래종 고구마와 비슷하게 개발한 것이 지금의 호박고구마 품종입니다.”

3 고구마를 감별해내는 10여 년 차 베테랑 아주머니.

영주 지역의 여든여섯 가구 농가와 더불어 고구마통합 작목반을 이끄는 이는 ‘그린웰영농조합(www.greenwell.biz)’의 손대준 대표. 호박고구마의 대부 격인 그는 “내륙성기후이면서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도 큰 곳은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흔치 않은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고구마를 재배하기에 영주가 제격”이라고 말한다.호박고구마와 함께 신자미(자색고구마)·신황미(황색 고구마) 등 컬러 고구마는 영주가 원조라고 자부한다. “밤고구마는 황토에서 재배해도 괜찮아요. 습기가 많은 황토에서 자라면 흔히 말하는 물고구마가 되는 거예요. 한데 호박고구마는 달라요. 호박고구마 자체에 수분이 많아 황토에서 자란 것은 수분 함유량이 지나치게 높아 맛도 물론이거니와 저장성이 떨어지거든요. 게다가 황토는 비가 온 뒤엔 딱딱하게 굳어 호박고구마 모양새가 좋지 못합니다. 비가 와도 물 빠짐이 좋은 사질 토여야 맛도 달고 모양도 수려하지요. 이것이 영주의 호박고구마 맛을 최고로 치는 이유입니다.”


4 조선시대 풍수가 남사고가 말에서 내려 절을 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지는 소백산.

음식에도 낯가림이 있는 법. 지금에야 호박고구마가 단연 인기지만 처음부터 찾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따로 홍보를 한 것도 아닌지라 품질이 최상품이었는데도 소비자의 환심을 사는 데만 5년이 걸렸다. 고구마 자체가 농약을 거의 쓰지 않는 친환경 작물인 데다 한결 같은 품질관리에 공을 들이다 보니 입소문을 타고 영주 고구마를 찾는 이들이 자연스레 늘었다고. 찾는 이가 많은 만큼 품질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자 영주 특산물을 브랜드화한 ‘소백흙향기’에 영주 고구마도 사과, 포도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그린웰영농조합원은 대표부터 회원까지 모두 농부로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땅 파서 고구마 캐서 먹고사는 농사꾼이다 보니 파종할 때부터 자식 키우듯이 정성을 다한다. 종자를 손으로 심고, 캘 때도 껍질에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룬다. 고구마에 흙이 묻었을 경우 손으로 쓸어내리는 게 아니라 해에 말려 흙이 저절로 부스러져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좋은 땅에만 심어두면 쑥쑥 잘 자라는 고구마지만, 일단 땅 위로 나오면 마치 아기 다루듯 해야 하는 것. 아기 살처럼 연해 상처가 쉽게 생겨 부패하기 때문이다. 소량씩만 재배하던 시절에는 하루 이틀 뒤집어가며 잘 말린 뒤 보관했다가 햇볕에 말리면 캐면서 생긴 상처를 소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수확하자마자 큐어링curing 실에서 2~3일간 보관한다. “큐어링은 쉽게 말해 상처 치유실입니다. 온도 34~35℃, 습도 90% 이상의 큐어링 저장실에서 치유를 마친 고구마는 8백여 평의 작목반 저장고에 보관합니다. 고구마는 성질상 추위에 약하므로 저장고 온도를 알맞게 유지해야 하는데, 적정온도는 13~15℃ 정도입니다. 9℃이하에 오래 두면 맛이 변해 보관할때도 신중을 기합니다. 작업장 창고에는 출하 직전 열흘에서 보름간만 보관하지요.”

5 큐어링실에서 저장고를 거쳐 물류센터에서 최종 세척·건조 작업을 거친다.



1 ‘선비의 고장’답게 영주에는 뿌리 깊은 옛 유적지와 보물이 많다.
2, 4 2008년 선보인 미소머금고 고구마 빵. 고구마 파이와 만주 등 모두 12종으로 으깬 고구마를 주재료로
하여 밀가루보다 식감이 좋은데다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는건강식이다.
3 영주 고구마의 주요 품종으로는 속이 노란색을 띠는 호박고구마(왼쪽 위)와 그 아래 주황색을 나타내는
신황미, 속이 하얀색을 띠는 밤고구마(오른쪽 위), 그 아래 자색을 나타내는 신자미가 대표적이다.


그린웰영농조합이 타 지역의 농작물 작업반과 다른 점은 각 농가에서 고구마를 수확한 후 저장고에 모아 공동으로 작업한다는 것. 공동 선별·공동 출하·공동 정산 개념이다. 영주 고구마가 맛은 물론 모양에도 상품 규격에 변화가 없이 일정한 이유다. 출하하기 전 물류센터에서 10여 년 차의 베테랑 감별사 여러 명이 공동으로 양질의 고구마를 선별하기 때문. 이렇게 감별한 고구마는 다시 한 번 물로 세척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상자에 담긴다. 이 때에도 혹여 고구마에 상처가 생길까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담으니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최상의 품질을 갖춘 만큼 가격은 다른 지역의 것보다 약간 비싼 편이지만, 1년 농사를 지어 생산하는 1천5백여 톤의 저장 고구마도 4월 말에서 6월 사이면 동이 난다.

“농가에서 농사지어야 수확하고 생산할 수 있으니 매년 3개월 정도는 휴지기가 생깁니다. 하지만 찾는 분이 있어도 어쩔 수 없지요. 농부가 직접 땀 흘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농작물이니까요.”

선비의 고장, 영주로 나들이 영주를 가만 들여다보면 키워드가 적잖다. 풍기 인삼, 영주 사과, 단산 포도,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볼거리, 먹을거리, 휴식, 선비의 품위까지 네 박자가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잘 맞는다.

“영주는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선비의 고장입니다. 조선 중기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10승지 중 제1승지지요. 풍수지리상으로도 명당으로 살기 좋은 고장이지요.”

김주영 시장의 말대로 영주는 예부터 풍요로운 고장인데, 그중에서도 풍기읍 금계촌은 세상에 난리가 나도 화를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꼽힌다. 게다가 옛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자랑자랑 들려올 듯한 소수서원도 영주에 있다. 이곳은 최초의 사학 서원으로, 내력 있는 지방의 공인 사립 고등 교육기관이라는 얘기다. 서원은 물을 끼고 있어 한껏 운치를 자아낸다. “연화산 기운과 죽계의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취한대 앞에 서면 퇴계 이황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여기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근래 전통 가옥을 복원한 민속촌인 선비촌이다. 근래에 영주를 찾는 이들에게 각광받는 곳으로, 영주 선비들의 생활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숙박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부석사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화엄종 본찰로 봉황산 중턱에 있다. 이곳은 워낙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전통 건축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어 국내 사찰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일상의 묵은 피로를 풀기에 제격인 온천도 있다. 시설은 평범하지만 100% 원수인 풍기온천은 불소를 함유한 알칼리성 유황 온천수로 예부터 피부에 좋다고 입소문이 났다. 그리고 어디서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옛 노래처럼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쓴” 풍경의 소백산이 눈에 들어온다. 두 팔을 벌려 자식을 안은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소백산 산세가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영주에는 늘 고즈넉하며 편안한 기운이 감돈다. 그 밖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무섬마을. 물이 마치 뱀장어처럼 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는 형태로, 영주 수도리에 있다. 인위적인 민속촌이 아니라 오랜 삶이 묻어나는 생활촌으로 17세기 중반부터 이뤄진 반남 박씨와 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전통 가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에는 ‘ㅠ’ 자 모양이 손을 맞잡은 형태의 수도교가 길게 이어져 있다.

“영주는 관광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명소까지 동선이 자동차로 모두 10분 이내 거리고, 열차 여행로 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모두 15분 거리지요. 고구마를 비롯한 ‘스타 식품’도 많은 곳이니, 전통문화를 즐기며 몸과 마음을 튼실하게 하고 싶다면 영주만 한 곳도 없지요.”

몇 해 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소백산 자락길을 테마가 있는 최고의 생태 문화 탐방로로 조성하고, ‘백두대간 테라피단지’ ‘한국 문화 테마파크’ 등이 곧 들어설 계획이라니 영주가 지향한다는 ‘살기 좋은 고품격 도시’가 머지않다.


촬영 협조 영주시청 유통마케팅과(054-634-3100), 그린웰영농조합(070-7257-0708)

글 신민주 기자 사진 김정한 어시스턴트 윤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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