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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장인을 만나다]감 깎는 권복순 할머니 처마 밑에 매달린 60년 세월
권복순 할머니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상주의 곶감 마을로 시집오면서부터 오늘날까지 가을이면 늘 감을 깎습니다. 감을 깎아 말린 세월이 어느덧 할머니의 한평생이 되었습니다. 감을 손으로 일일이 깎아 말린 곶감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시부모를 봉양하느라 작은 감 하나 쉬이 입에 넣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귀한 마음이 곶감에 담겨 있습니다.

“그때는 감을 손으로 다 깎았지. 요즘처럼 감 깎는 기계가 있었나 뭐. 난 요새도 손으로 깎아.”

올해 여든 되는 권복순 할머니는 스무 살 시집오던 해부터 시작해 지금껏 감을 깎고 있습니다. 두 손만으로 말입니다. 햇수로 따지면 60여 년 동안 감을 깎으셨군요.

“감은 10월 서리 오고 난 다음부터 한 달 남짓 깎았어. 젊은 양반, 감 깎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하다고 사진 찍고 이야기를 해달라는겨? 감 깎는 것을 어린애 요술 보듯이 보네그려. 이야기해달라고하면 하지. 그깟 산 사람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겠나.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내 친정은 지금 사는 모서면 대포리에서 한 2km 떨어진 소정이라는 곳이야. 배만 안 곯았으면 살기 좋은 곳인데, 그때는 먹을 것이 왜 그렇게 귀하던지….”

할머니는 옛 생각을 하시면서 혀를 끌끌 차십니다. 힘겨웠던 시절을 회상하시기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연애! 아이고 무시라. 요새야 남녀가 손도 잡고 연애도 하지만 그때는 내외한다고 얼굴도 똑바로 못 봤어. 볼 기회나 있었는감?” 살면서 신랑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애 낳고 키웠다고 하던데요. “신랑 얼굴 쳐다보는 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어른들 모시고 사느라 똑바로 볼 여가도 없었고. 결혼하기 전 하루는 디딜방아를 찧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슬쩍 보고 가더라고. 며칠 있다 이웃 사는 동무가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해. 할 일이 많아 안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가라고 하지 않겠어. 전에는 할 일을 다 해도 못 나가게 했는데.”

할머니 좋은 소식이 있었는가 보죠?
“동무 집에 갔더니, 가만있자 그 동무 이름이 뭐더라? 요새 들어 기억이 깜빡깜빡하네. 생각나면 알려줄게. 마당에서 함께 얘기하고 있으니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젊은이가 먼발치에서 우리를 흘깃 보며 지나갔어. 시골집 담장이 야트막하잖아. 신랑 될 사람이더라고. 옛날에는 그렇게 선을 봤어. 우리 영감 참 잘생겼지.”

1 예쁘게 깎는 것이 좋은 곶감을 만드는 일의 시작이라며 할머니는 조심조심 감을 깎는다.
2 일정한 간격으로 감을 매다는 할머니의 노련한 손길.


3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할머니 집 담길.
4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늙은 호박.


잘난 신랑하고 살면 애먹지요, 할머니?
“내가 가마 타고 시집오는 날, 친정 부모님이 그렇게 우시더라고. 나도 얼마나 울었던지. 잘난 사위 때문에 딸이 마음고생할 거라 생각했나 봐. 살아보니 마음이 아니라 몸 고생을 많이 했어.”

잘난 신랑 때문에 몸 고생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신랑이 일을 못했어. 공부하느라 농사일을 못 배웠어. 내가 남정 네 하는 일 다 했지. 한 해 새경 여섯 섬과 옷 세 벌 주는 머슴을 두고 농사지었어. 재 넘어 열한 마지기(1천6백50평) 논, 마을 앞 밭, 감나무 열한 그루, 누에 두 장….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정말 힘들게 사셨네요.
“모심기할 때는 장정 스무 사람 밥을 이고 지고 날랐어. 신랑이야 공부나 하고 있었고, 그때 시어른이 많이 도와주셨지. 논밭 갈 때는 나무로 된 쇠죽통에 머슴밥과 소 먹을 짚과 등겨를 넣어 머리에 이고 갔어. 가다가 힘이 들면 큰 바위에 기대 쉬었지. 내려놓으면 혼자서는 머리에 올릴 수 없어 그렇게 했지. 요즘 지나가다 그 바위를 보면 ‘네가 나를 살렸구나’ 하며 속으로 고마워하지.”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 살겠지요?
“나도 못 살 거야. 가마에서 내려 어른들에게 인사하니 시어른이 처마 밑에 달아 둔 곶감을 주시더라고. 그때 처음으로 곶감을 먹어봤어. 얼마나 맛있던지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나 싶었어. 그날이 2월 스무하루야.”


할머니의 시어른이 심은 감나무는 이제는 장대를 길게 늘여도 닿지 않을 만한 크기로 자라났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친정에서는 곶감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나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군요. 옛날 모서면에 서는 시댁 대포리에서만 곶감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감은 두 종류가 있는데 떫은 감과 단감이야. 떫은 감의 껍질을 깎아 널어 말리면 곶감이 되는 거지. 시어른이 심은 감나무의 크기가 내 키만 했어. 감을 따면 서른 접 정도 됐는데 한접이 1백 개니까 몇 갠가 알겠지. 3년 지나니까 두 동 반이나 됐어. 한 동이 1백 접이니 몇 갠가?”

2만 5천 개, 어이구 많기도 합니다. 이 곶감을 일일이 손으로 다 깎으신 거예요?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어? 감이 많이 달릴 때는 이웃을 품앗이로 부를 때도 있지만. ‘감또개’란 말 들어봤어? 상품 안 되는 감을 여러 조각으로 자른 것인데 말리면 곶감처럼 돼. 감 껍질을 말리면 뽀얗게 분이 나는데 이것도 간식 삼아 먹었어. 요새야 다 버리지. 품앗이로 온 사람들은 감 껍질을 가져갔어. 여럿이 깎으면 이야기하는 맛에 밤 깊어가는 줄 몰랐고, 예쁘게 깎으면 예쁜 딸 낳는다고 해 잘 깎으려고 노력했어. 밤참으로 동치미 국물에 밥 먹고. 보통 때는 혼자서 하룻밤에 열 접씩 깎았지. 졸면서 깎다 너무 힘이 들어 곶감 동네에 시집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어. 깎은 감이 수북이 쌓이면 기분이 좋았지. 고달파도 그 재미에 감을 깎았는지도 몰라.”

고달파도 곶감 빼 먹는 재미는 있었지요?
“큰일 날 소리. 감을 싸리나무에 매달아 말렸는데 한 묶음에 1백개씩이야. 이것 팔아서 자식들 공부시켰어. 한 개라도 빼 먹으면 아귀가 안 맞잖아. 곶감 빼 먹는 재미가 아니고 시어른에게 예쁨받는 재미가 좋았어. 그때는 처마 밑에 달아놓은 곶감을 낫으로 잘라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네들이야 곶감 서리로 재미 삼아 했다지만 나는 학비 없어지는 소리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지.”

(왼쪽) 하나하나 깎은 감은 처마 밑에 매달아둔다.
(오른쪽) 할머니가 손수 감을 널어 말리는 풍경.


할머니, 좋은 곶감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좋은 감을 골라야지. 맛있는 음식은 재료가 좋아야 하는 것처럼. 곶감에 좋은 감은 빨갛게 익되 말랑말랑하면 안 돼. 그러면 깎을 때 힘이 들고 매달기도 힘들어. 그리고 감을 깎아야지.감을 깎고 말려서 곶감을 얻는다고 해야 맞는 말인데, 요즘 사람들은 곶감을 깎는다고 해. 하여튼 감은 깎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칼을 갖다대는 것이야.”

이때 옆에 있는 아들 임영배 씨가 한마디 거듭니다. “손 빠른 요리사들이 과일을 돌려 깎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감을 매달 때 조심해야지. 옛날에는 싸리나무에 끼워 말리다가 실에 꼭지를 매달아 말렸어. 요즘에는 플라스틱에 매달아. 싸리나무에 말릴 때는 많이 못 말리는 대신 맛이 좋고, 실에 매달면 많이 말릴 수 있지만 꼭지 부근이 물러져. 기후 조건이 좋으면 플라스틱에 매다는 것이 아주 좋지. 낮에는 맑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좋은 날이어야 하고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야 해.”

다시 임영배 씨가 설명해줍니다. “날이 맑고 따뜻해야 단맛이 나오고 기온이 내려가야 건조된다는 말씀입니다. 습기가 많거나 포근하기만 하면 곰팡이가 피고 꼭지가 떨어져 못 먹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요새는 선풍기를 많이 이용합니다만 자연 바람만 하겠어요?” “좋은 곶감은 약간 검붉은색에 하얀 분이 골고루 난 것이야. 껍질은 사람 살처럼 말랑말랑하여 부드럽고 곶감 속은 젤리처럼 쫀득하게 된 것이 정말 맛있는 곶감이지. 골병이 든 감은 마르면서 대개 탈이 나지. 사람도 젊어 골병들면 나이 들어 안 좋잖아. 산짐승이든, 농작물이든 매 순간 건강하게 자라야지. 그래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어.”

곶감 농사로 삶의 이치를 터득한 할머니의 지혜입니다.

할머니가 이때까지 깎은 감 껍질을 일렬로 죽 늘어놓으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하나 깎으면 80cm에 2만 개를 60년 동안 깎았으니 자그마치 1000km나 됩니다. 상주에서 서울까지 다섯 번이나 가는 거리예요.

글과 사진 하춘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