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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예술이 만난 '청송사과축제' 사과를 키우다, 사과를 그리다
하늘이 내린 땅으로 명품 사과의 고장, 청송이 올해 유난히 시끌벅적하다. 3월에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전통 재료인 도석을 이용해 전통 공예 장인과 현대 디자이너가 협업해 재해석한 청송 백자가 수상했는가 하면, 6월 25일에는 슬로 시티로도 지정되어 화제를 모은 것. 10월 22일부터 30일까지는 여덟 돌을 맞은 청송사과축제가 열렸는데, 전례 없이 <사과밭 주인과 화가전>으로 청송 사과에 예술의 옷을 입힌 77인의 화가가 청송을 방문했다. 인기를 모으는 청송 사과의 매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왼쪽) 꿀사과 일구는 청송의 ‘키 작은 사과나무’.

청송 사과, 자연을 노래하다 해발 200m 첩첩산중에 무릉도 원처럼 사과밭 가득한 마을 하나가 단정히 앉아 있다. 세상과 등진 듯 고요한 이곳은 바로 청송靑松, 지명에서 느껴지듯 수령이 오래된 푸른 소나무도 많은 이 군락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이다. 예로부터 청송을 찾는 길손은 인적이 끊긴 산길을 수백 리 이상 걸어 하늘과 맞닿은 고개를 넘거나, 깊은 하천 계곡을 따라 기망 없이 걸어야 당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물과 공기가 맑은 청정 무공해 지역이다. 연평균 기온이 12.6℃, 낙동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비가 적은 지역인 탓에 4월부터 11월까지 일조 시간이 1천5백20시간으로 일조량도 풍부하다. “청송은 예부터 산 좋고 물 맑아 병충해가 적어 농작물이 잘 자라는 곳입니다. 특히 붉은 과실 사과가 잘 자라지요. 그 맛이 일품이라 ‘꿀사과’로도 불립니다. 청송 사람이라면 매일 아침 꿀사과 하나를 껍질째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청송 사과 예찬론을 펼치는 이 생기 넘치는 신사는 바로 한동수 청송군수. 그의 설명에 의하면 청송의 사과가 유독 맛있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기후는 물론 토양도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마사토)여서 가뭄에도 수분이 오래 머물러 사과의 당도가 높고 부드러우며, 과즙도 풍부한 것이라고. 일교차가 크면 사과가 달고 단단해지는데, 일교차가 13.4℃로 타 지역보다 1~2℃ 더 큰 것도 천혜의 조건 중 하나다. 청송군 곳곳에 사과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과수원이 많이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여름, 청송의 낮은 몹시 뜨겁습니다. 매미조차 오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할 정도지요. 사과가 한창 익는 9~10월에는 일교차가 20℃씩 납니다. 그러니까 밤이 되면 사과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아, 겨울이 왔구나. 내가 빨리 영양분을 축적해 내 새끼를 번식시켜야겠구나.’ 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과도 하루가 다르게 해를 닮아 빨갛고 동그랗게 익어가는 겁니다.”

(왼쪽) 청송 사과를 명품으로 만든 한동수 청송군수. 앞으로 영양, 봉화, 강원도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 트레킹 코스도 만들 계획.

지구 온난화도 한몫했다. 사과 주산지로 유명한 지역의 연평균 온도가 모두 1℃ 이상 올라가면서 ‘사과 도시’로 꼽히던 대구, 영천, 경산에서 청송, 영주, 봉화 등 경북 북부권으로 옮겨간 것. 이제는 전국 사과 생산량의 66%를 경북 북부 지방에서 생산한다. 청송 사과만 해도 1년에 5만 톤을 생산해 전국 사과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고. 눈에 띄는 것은 청송군 농업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과 농가 수는 2천5백 가구, 그중에서 60%에 이르는 1천3백 가구가 저농약으로 재배하는 친환경 사과 농가다. 이것이 2010년 농식품 페어 브랜드에서 원예작물과 가공 식품 분야를 통틀어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한 청송 사과의 힘이다.

껍질째 먹는 청송 사과 사과나무는 재배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때가 오면 꽃이 피고 철이 바뀌면 자연스레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사과를 키우는 것은 자연이지만, 돌보는 것은 역시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바로 능금농원의 조재현 씨같은 ‘깨인’ 농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터.

“자연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과학 영농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과가 1년에 13회 정도 병충해 농약을 치는 반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사과는 7회 미만 정도 햇볕에 분해되는 저독성 농약을 사용합니다. 그마저도 7월 이후에는 하지 않지요. 정확히 8월 25일 이후면 청송의 친환경 사과를 재배하는 곳에서는 농약의 빈 병도 찾기 어렵습니다. 사과 농장의 바닥에 풀이 자라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제초제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과를 재배하는 곳은 전국에서도 드문데, 친환경 청송 사과를 위한 병충해 달력도 있다. 과학적으로 경북대학교 엄재일 교수팀과 협업해 사과 재배 과정을 관리하고 있는 것. 과거에는 약국에서 편리한 대로 약을 사 먹다가 요즘은 처방전대로 약을 조제해주듯이, 사과에 쓰는 농약도 전문가에게 처방전을 받는다. 1년동안 언제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 모두 정해져 있다고. 예찰 요원도 있는데, 젊은 농사꾼이 수시로 농장을 방문해 사과 생육 상태를 살피며 이를 대학에 보고하는 일을 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 처방도 해준다. 말하자면, 청송 사과는 주치의와 간호사가 있는 것. 덕분에 사과 껍질에 농약 성분이 거의 없으니 껍질째 먹어도안심할 수 있다.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살다 보니, 사과도 사람과 같더군요. 사람도 나이가 들면 아이를 낳을 때 힘든 것처럼 사과도 늙은 것은 열매를 아무리 많이 맺어도 크기가 작고 맛이 덜해요. 대개 5~10년 된 ‘키 작은 사과나무’에서 얻은 것이 크고 맛있지요.”

청송 사과가 꿀 사과라는 명성을 얻은 것은 이미 13~14년 전에 도입한 키 작은 사과나무 덕이 크다. “사과나무는 해마다 새잎이 돋아나고 꽃이 핍니다.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사과 열매가 맺히지요. 꽃의 꽃받침이 자라서 사과가 되는 겁니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지요. 그런데 꽃잎이 다 지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꽃잎이 너무 많으면 사과알이 작고 서로 영양분을 가져가느라 맛이 덜하니 그 수를 사람 손으로 일일이 조절해줘야 더 맛있는 꿀사과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꽃이 피면 꽃잎을 적절하게 남겨둬야 합니다. 이렇게 꽃을 추려내는 작업을 적화摘花라고 해요. 그리고 사과가 굵기 시작하면 또 그 수를 조절해줘야 해요. 한 줄기에 열매가 세 개 정도 열리면 그중에서 제일 실한 것은 남겨두고, 나머지 두 개는 따내는 거죠. 이것은 적과摘果라고 합니다. 한데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사과 한 알을 만드는 데 약 50장의 잎이 필요하며 사과 주위의 쓸데없는 잎은 일일이 떼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가 햇볕을 많이 받아서 색이 곱고 속도 꽉 차니까요.”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일반 사과나무는 대략 20년 정도 기다려야 열매를 맺는다. 나무 심는 간격도 6~7m 정도지만 키 작은 나무는 2~3m 정도로, 4년 정도면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물론 15년 정도 지나면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하지만, 사다리를 타지 않고 서서 일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작업하기는 훨씬 수월해졌다고. 사과 키우는 농부에게 키 작은 사과나무는 애지중지 키워야 하는 귀한 자식이지만 전교 1등 하는 속 깊은 효자와 같다.

(오른쪽) 사과의 종류는 무려 7천9백 가지가 넘는데, 청송 지역의 가을・겨울 대표 사과는 위로부터 로열후지, 하이랜드후지, 챔피언후지, 미시마, 미얀마.


사과 농장, 화가의 아틀리에가 되다 농부가 커다란 농토에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어 거름도 주고 가꿔서 최고의 사과 생산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화가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스케치와 붓으로 최고의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자신들의 땀과 열정으로 명품과 명작을 만드니, 농사와 예술은 닮은 데가 많다. “청송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전통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자연・환경・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고장입니다. 올해로 청송사과축제가 여덟 돌을 맞이했는데, 민속놀이 일색이던 기존의 축제에서 벗어나 도시민과 젊은 층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고 싶었지요.”


1 고품질의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머리뿔가위벌, 호박벌을 이용해 사과꽃을 수정한다.
2 사과는 껍질과 껍질 바로 밑의 과육에 영양분이 축적되어 있어 껍질째 먹는 것이 가장 좋으며, 깎아 먹을 때도 얇게 깎아야 한다.
3 사과씨가 열 개에 가까울수록 크고 동그란 사과가 된다.
4 <사과밭 주인과 화가전> 조직위원장으로 수고한 이순형ㆍ김보연 작가.


‘청송 하면 사과, 사과 하면 청송’ 이라는 공식을 세우고자 쉼 없이 노력하는 한동수 청송군수에게 힘을 더해준 것은 77인의 화가였다. 청송사과축제에서 <사과밭주인과 화가전>이라는 타이틀로 77인의 화가는 청송사과를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고, 77인의 사과밭 주인인 농부가 일상의 언어로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하여 함께 전시한 것.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고, 현대미술이란 동시대 이슈가 되는 사회현상을담아내는 것이 아니던가.

전례 없이 미술계 화가들이 대거 참여한 <사과밭 주인과 화가전>은 화가의 작품과 농부의 비평이 화합하여 사과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한 기획전이었다. 문화 행사가 대부분 대도시 중심으로 기획되어 소외받기 쉬운 소도시에 전시를 연 것은 지방 문화 발전을 위해 애쓰는 화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류 최초의 과일이며 세계인이 모두 즐겨 먹는 과일인데, 청송의 사과가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으뜸 농산물인 것이 흥미로웠어요. 반면, 청송 하면 일부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명산 주왕산과 고려 명찰 대전사, 주산지가 있고, 현비이던 세종의 비 소헌왕후와 <객주>의 작가 김주영씨의 본향으로, 인평대군도 있는 자랑거리가 많은 곳인데, 청송의역사와 문화가 정체성을 찾는 데 일조하고 싶었어요.”

(왼쪽) 청송 사과는 병해충종합관리(IPM)로 생산한다.

이번 기획전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화가 이순형 씨는 사과는 물론 전통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청송을 통해 문화 예술의 힘이 곧 지역의 힘이 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청송처럼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1912년부터 지금까지 야외 연극제를 이어오면서 세계인을 불러들이는 스위스 인터라켄의 ‘빌헬름텔 사과’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는 화가들이 우물이 되어서 농부들 곁으로 간 것입니다.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우물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는 법이잖아요. 빌헬름텔 하면 사과를 떠올리듯이, 사과 하면 청송을 떠올릴 수 있도록 청송 사과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지요.” 뜻을 함께한 화가를 모으니 운 좋게도 럭키 세븐의 ‘77’이라는 수 가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축제 형식에 문화 예술 형식을 입히는 것은 만만치 않았을 터. 화가의 화폭에 담기지 않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마는 소규모 전시 공간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산골에서 전시를 진행하기에는 환경이 이만저만 열악한 게 아니었다. 결국 청송민속박물관의 여러 유물을 전시 중인 곳에서 그대로 가변벽을 세웠을 정도. 전시 공간은 협소했지만 사과라는 친숙한 소재를 여러 화가의 다양한 표현으로 담아낸 작품을 한곳에서 감상할수 있었는데, 화가와 짝을 이룬 농부들이 쓴 소박한 작품평도 있어 인기가 넘치고, 볼거리는 충분했다.

사과에 예술 옷을 입힌 <사과밭 주인과 화가전>
전시에 참여한 77인의 화가 중 눈에 띤 작품과 그들과 짝을 이룬 농부들의 솔직한 코멘트.


화가 서성근 ‘생명의 유희-황금 사과’, 석채・면・혼합 재료
농부 이승욱 “노란 사과 하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색을 담은 사과. 둥근 달 보름달같이 느껴집니다.”


(왼쪽) 화가 김보연 ‘Still Life’, 캔버스에 유화, 40×31cm
농부 김창호 “은은한 사과의 자연색. 그 내음 향기롭구나, 청송 농민의 땀 내음. 사과 그림 두 개면 더 좋을 텐데…. 맛보자! 꿀맛 사과.”

(오른쪽) 화가 장지원 ‘숨겨진 차원’, 53.0×45.5cm
농부 최태원 “한 쌍의 새가 다정히 있는 모습이 가정의 행복을 주는 행운의 새 같고, 새들의 다정다감함에 과실은 탐스럽게 열리고, 한 송이 꽃은 행복을 주는 듯합니다!”


화가 이순형 ‘음악 미학-사계절 사과 노래’, 나무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75.0×45cm
농부 장영진 “좋은 작품으로 예술적 평가는 못합니다만, 사과의 형상이 청송 사과의 참맛, 부사사과의 형상이면 더욱 좋을 듯싶어요. 노력하신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청송 사과 파이팅!”


화가 이광수 ‘시뮬라크르’, 캔버스에 유화, 40.9×31.8cm
농부 김규 “속까지 붉은 사과, 과연 명품이로다. 인심조차 후덕하니 지상의 낙원일세. 명품 사과 많이 먹고 불로장생하리라.”


화가 신한철 ‘Sphere’, 스테인리스 스틸, 60×40×60(h)cm
농부 이원만 “아! 맛있는 청송 꿀사과다. 친환경으로 재배한 청송 꿀사과. 한 입 깨물어 먹으니 아주 맛있다. 사과즙이 입가에 흘러내린다. 자꾸자꾸 먹으니 더 맛있다.”


화가 구자승 ‘사과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화, 73×73cm
농부 김후석 “선생님의 그림은 살아 숨 쉬는 것보다 더 생생합니다. 평생 사과 농사에 매달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마음의 쉼터에 머무는 곳인 듯 보입니다. 매우 아름답고 좋습니다. 사과와 떨어져 있는 감이 정겨워 보입니다.”


화가 금동원 ‘사유의 숲- Apple’, 캔버스에 아크릴, 53.0×45.5cm
농부 김순선 “사과의 색감은 좋은데요, 멀리서 보면 잘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꽃과 사과, 푸른 색깔이 멀리서 보면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잘 봤습니다.”


촬영 협조 청송군청 문화관광과(054-870-6227)

글 신민주 기자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