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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지켜낸 뿌리의 힘, 연꽃마을 대지의 품에 깊이 뿌리내리다
첫서리가 내리기 전, 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지난봄 새 씨앗을 품은 이래 얼추 반년 가까이 감싸 안아 키운 생명을 이제 온전히 세상에 내놓아야 할 때다. 온 힘을 다하는 대지의 노고에 수십 명의 일손과 트랙터, 땀을 씻어주는 청명한 가을바람 한 줄기가 힘을 보탠다. 길을 내주는 대지도, 땅을 가르는 트랙터도, 그 사이로 대지의 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 올리는 일손도 모두가 더없이 흥겹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어디선가 노동요가 들려올 것만 같다.


2만여 평의 드넓은 우엉밭에 오전 7시부터 모여 수확의 노동을 나누는 이웃들. 연꽃마을에서는 우엉을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고, 가을에 파종해 이듬해 여름에 수확하는 연 2회 농사를 한다.

데자뷔déjà vu라고 하던가. 좁다란 시골길을 따라 달린 지 수십분, 남한강 줄기를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2만여 평의 여주 우엉밭을 마주하고는 두 눈을 의심한다. 분명 처음 본 풍경이거늘 마음을 녹이듯 낯설지 않다. 수수께끼는 금세 풀린다. 중학교 시절 필독서이던 펄벅의 소설 <대지>를 읽으며 머릿속에 그렸던 그 풍경이다. 왕룽 일가가 일구어낸 대자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왕룽이 땅에서 고단한 삶의 희망을 구했듯, 수십 명의 일손이 땅에서 족히 1m 가까이 뿌리내린 우엉을 힘껏 끌어 올린다. 10월의 대지는 생명의 온기로 가득하다. 가진 걸 모두 내어주는 대지가 벌이는 잔치가 한창이다.


수확한 우엉은 굵기별로 분류한다. 우엉은 가늘수록 연한 맛이 나며 너무 굵은 것은 가공류로 쓴다.

엄마의 자궁처럼 푹신한 흙, 흙이 내어준 우엉
한 바퀴 도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리고도 남을 드넓은 우엉밭은 이미 절반 이상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트랙터가 한 번 지나가면 가슴까지 찰랑이던 우엉 잎은 후두두 떨어지고 흙은 돋우어져 땅속 깊이 숨어 있던 우엉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들이 나설 차례. 돋운 흙 사이로 우엉을 뿌리째 뽑으면 초록빛 잎으로 무성하던 대지는 어느새 면도라도 한 듯 깔끔해진다.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쭉 뻗은 우엉은 샤워를 마친 양 촉촉하면서도 달큰한 향내를 뿜어낸다. 땅속 어디에 이토록 보드랍고 향기로운 내음이 있단 말인가.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굴곡 한 번 없이 쏟아지는 햇살, 습하지 않은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낸 사질토(모래가 주성분으로 찰흙이 섞인 토양)가 그 주인공이다. 우엉 농사에서 땅은 생명을 잉태하는 엄마의 자궁과 같다. 자신의 피와 살로 생명을 불어넣는 자궁처럼, 대지는 우엉의 뿌리가 더 깊이 뻗어내릴 수 있도록 미네랄을 비롯한 온갖 영양분을 기꺼이 내준다. 2만여 평의 우엉밭을 함께 일구는 연꽃마을 김동우 대표는 이 착한 땅을 찾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말한다.

“우엉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게 땅 선택이에요. 땅에 뿌리를 내린 우엉이 썩지 않도록 물이 잘 빠져야 하고, 우엉 뿌리가 잘 뻗을 수 있도록 영양분도 충분해야 하죠. 하지만 우엉 농사에 적합한 땅을 찾기란 쉽지가 않답니다. 그동안 개간한 땅만 해도 어마어마할 거예요.” 우엉 농사를 짓기 위해 여주 땅을 밟은 지 10년째. 그간 남한강 주변의 모래땅이란 땅은 모두 엎었다. 오랜 수고 끝에 찾아낸 이 땅을 두고 김동우 대표는 ‘천혜의 땅’이라 소개한다. 토질과 풍광이 빼어나듯 경작하기 위해 부담하는 임대료 또한 여느 땅의 두 배에 다다른다. 그뿐인가. 김 대표가 땅에 들이는 노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매해 토양 분석을 실시함은 물론 친환경 축분 발효 퇴비에 아미노산과 해초, 당밀 등을 배합 발효한 영양제까지 직접 만들어 땅에 공급 해주고 있으니 우엉 농사는 곧 땅을 일구어내는 땅 농사다.

(왼쪽)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긴 우엉을 들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김동우 대표.


(왼쪽)
 밭에서 캐낸 우엉은 공장으로 옮겨가 완성 제품으로 변모, 소비자를 찾는다.
(오른쪽) 손에 쥐어만 봐도 우엉의 굵기를 가늠하는 할머니는 농장의 숨은 베테랑이다.


주인장 발소리 들으며 작물도 쑥쑥 큰다 “처음 농사지을 때만 해도 친환경이 무엇인지도 몰랐죠. 그저 제초제를 치지 않고 김은 직접 매고, 자재와 액비를 만들어 썼을 뿐인데, 나중에 보니 그게 친환경이더라고요.”

17년 전 사업에 실패해 농사짓기 시작했다는 김동우 대표. 사 형제 중 막내인 그는 양잠업을 하는 첫째 형에 이어 대구에서 연근 농사를 짓는 둘째 형의 설득으로 첫 농사를 시작했다. 형제는 연꽃마을이라는 이름을 짓고 형은 대구에서, 동생은 여주에서 친환경 농사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기를 몇 년, 지난 2001년 국내 최초로 ‘연근 무농약 인증’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2년 뒤에는 연근에 이어 우엉과 마에 대한 무 농약 인증도 획득했다. 물론 그사이 겪어낸 시행착오도 숱하다.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 처음에는 산에서 동물이 내려와 우엉 순을 다 따 먹고, 두더지까지 나타나 뿌리를 캐 먹더군요. 수확할 게 없었죠. 우엉이 달고 맛날수록 진딧물이나 굼벵이 같은 해충들이 몰려드니 당최 버텨낼 재간이 없었죠.”

그가 찾아낸 방법은 혼작과 돌려짓기다. 우엉은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고, 가을에 파종해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하는 연 2회 농사가 가능한데, 같은 땅에서 연이어 짓는 연작 대신 다른 작물을 번갈아가면서 심는 돌려짓기와 혼작을 하는 것이다. 우엉을 심은 뒤 마와 토란, 감자, 단무지용 무 등을 심어 땅의 내실을 다졌다. 올가을에는 냉이도 심었다. 대신 주위에 유인 작물로 단내가 나는 호박과 옥수수를 심어 해충을 유인하고, 밭 주변에는 병충해 기피 작물인 결명자도 심었다. 유인 작물이라고 해서 허투루 키우지 않는다. 제초제 한 번 안 뿌리고 정성껏 키운 호박과 옥수수를 해충에게 배부르게 먹이고 우엉에까지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땅을 일구고 땅이 내어주는 것만큼 다시 주변의 생태계를 일구는 것이 건강한 우엉을 길러내는 그만의 비결이다.

“농사 철학이 없다면 오랫동안 농사를 짓기가 어렵죠. 농약 치고 화학비료를 뿌려서는 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뿌리가 모두 썩어버리니 3년 이상 못 견디는 거예요. 땀 흘릴 각오 없이는 농사지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죠. 어르신들 말씀처럼 농작물은 사람들 발소리 들으며 크거든요.”

사랑스러우면서도 한없이 미운, 그의 우엉 여름과 가을, 1년에 두 번 수확하지만 늦가을부터 초겨울인 이맘때 캐내는 우엉이 가장 맛있다. 다가올 추위를 앞두고 땅속 영양분을 가장 많이 응축하기 때문이다. 수확한 우엉은 밭 한쪽에서 굵기별(지름 1.5cm 굵기가 가장 맛나다고)로 나눈 뒤 곧장 수분이 증발하지 낳도록 비닐 팩에 담아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천의 가공 공장 저온 창고로 옮긴다. 가을 우엉은 이렇게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내년 여름 새 우엉을 수확할 때까지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다.

연꽃마을은 성장을 거듭해 현재 여섯 명의 농업인이 뭉친 생산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무려 8만 평의 땅에서 우엉, 연근, 마 등을 생산하는데 농사에만 그치지 않고 가공 작업까지 직접 시작한 것이다. 1m가 넘는 우엉 뿌리를 소비자가 사용하기 좋게끔 적당히 잘라 포장한 벌키 제품부터 조리하기 쉽도록 채 썰어 포장한 우엉채, 조청과 국내산 재료로 맛낸 우엉조림까지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렇게 키우고 만든 제품은 모두 친환경 업체인 한살림과 생협으로 전량 공급한다.

“예전만 해도 우엉을 찾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10년 전 초창기에는 한 달 매출액이 3천만 원을 넘지 않았죠. 그게 지금 연간 30억 원이 되었어요.”

특히 우엉이 무와 무청, 당근, 표고버섯과 더불어 암 환자를 위한 채소수프를 만드는 데 필요한 5대 채소로 꼽히면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어떤 이는 물에 넣고 끓여 우엉 물로 마시고, 또 어떤이는 아예 생식을 하기도 한다. 실제 우엉은 폴리페놀 성분을 함유해 뛰어난 항균 작용을 한다. 당뇨병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 체내에서 나쁜 세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등 몸에 이로운 작물이다. 하지만 그에게 우엉은 또 다른 의미다. “내게는 우엉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미운 작물이기도 해요. 여름내 고생해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해 속 끓인 적도 여러 해였으니까요. 올해처럼 비가 많이 내린 해에는 내 눈에 눈물도 많이 났죠. 강 옆에 있는 밭에 큰 홍수가 나지는 않을까, 비가 너무 많이 내리지는 않을까… 여름내 밭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 날도 숱했죠.”

다행히 올해 우엉 농사는 성공적이다. 1년 내내 분주하게 움직인 주인장의 발소리를 들으며 대지에 뿌리를 튼실하게 내린 것이다. 내년도, 후년도 그의 우엉은 앞으로도 쑥쑥 자라날 것 같다. <대지>속 왕룽의 땅이 그러했듯 땅은 온 힘을 다하는 인간의 땀방울을 외면하지 않을 테니.

우엉김치
재료
우엉 150g, 당근 ½개, 대파 3대, 젓갈 4큰술, 고춧가루 3큰술, 다시마 물 2큰술, 조청 1큰술, 정종ㆍ소금 약간씩
만들기 1 우엉은 어슷 썰어 소금에 절인다. 당근은 편으로 썰고, 대파는 어슷 썬다.
2 ①의 숨이 죽은 우엉은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다.
3 큰 볼에 썰어둔 당근과 대파, 젓갈, 고춧가루, 다시마 물, 조청, 정종을 넣고 양념이 섞이도록 잘 버무린다. 4 ③에 씻어둔 우엉을 넣고 버무려 소금 간을 한다.

우엉볶음
재료
우엉채 150g, 참기름(또는 들기름) 1큰술, 다진 파ㆍ다진 마늘ㆍ꿀ㆍ소금 1작은술씩, 참깨 약간
만들기 1 채 썬 우엉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 데친 우엉채를 꼭 짜 물기를 없앤다.
3 우엉채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취향껏 넣고 다진 파, 다진 마늘, 꿀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4 달군 팬에 ③의 우엉채를 넣고 살짝 볶은 뒤 소금으로 간하고 참깨를 뿌린다.



촬영 협조 연꽃마을(www.yeontown.com)

글 문영애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