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슬로 라이프]서울 시내 도서관 기행 우리가 도서관에 가야 하는 이유
대학 입시와 취업 전쟁을 치르느라 도서관에 앉아 졸음과 씨름하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젊은 날의 한 조각 추억을 떠올리며 남산과 가회동, 종로의 도서관을 거닐었다. 말없이 책을 꽂던 사서 언니도, 째깍째깍 흘러가던 커다란 벽시계의 시간도, 자판기 커피 맛도 모두 그대로인데 한 가지만은 변했다. 이제 도서관은 전시회를 열고, 영화제를 상영하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독서 삼매경.


한창때 지옥보다 가기 싫었던 곳이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독서의 계절인 덕분일까. 하늘이 높고 바람이 서늘해지니 도서관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시내 ‘도서관 기행’은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고, 한편으론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교육청 산하 스물두 곳의 도서관이 존재한다. 그중 다섯 곳은 ‘평생학습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마포, 영등포, 노원, 양천, 고덕평생학습관이 바로 그곳이다.

말 그대로 평생 학습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곳이다. 나머지 열일곱 곳은 흔히 ‘공공도서관’이라 부르는 곳으로 경치 좋은 남산도서관이나 유서 깊은 종 로도서관,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있는 정독도서관이 여기에 속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설 도서관도 하나 둘씩 늘어나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이라든지, 광진구정보도서관 같은 곳이 속속 생겨났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은 그저 조용히 공부만 하는 곳이었지만 요즘의 도서관은 문화와 소통의 장으로 변했다. 전시회, 영화제, 작가와의 대화, 취업 설명회, 도예 강습, 어린이 놀이 학습, 노후 설계까지 도서관에서 돌보지 않는 일은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발급하는 회원증 하나만 있으면 이 모든 혜택을 아무 조건 없이 누릴 수 있는데, 그간 왜 모르고 살았나 싶다. 독서의 계절, 도서관이 베푸는 ‘문화 서비스’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가을이 가기 전 동네 도서관에 나가 문화의 향기에 취해보자.

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남산도서관

1 남산도서관 입구에 ‘조용히’ 놓여 있는 푯말. 
2 <상록수>를 쓴 소설가 심훈의 친필 원고본.

3 지난 1백10년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 전시. 
4 남산도서관 정문에서 바라다보이는 N서울타워.

5 시험 공부하던 시절 째깍째깍 잘도 흘러가서 야속하던 벽시계.
6 저 수레를 끌고 다니는 사서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염불 보다는 잿밥에 관심 있어 찾아간 남산도서관. 책을 빌려볼 생각보다는 주변 경치를 눈에 담고 싶어 도서관 주위를 한참 배회했다. 남산도서관 뒤편으로 지난해 새로 생긴 안중근기념관과 남산문화교육체험관이 이웃하고 있었다. 실제로 남산도서관에서는 이용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 세 곳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922년 지금의 명동 롯데백화점 자리에 문을 연 남산도서관은 1964년에 남산으로 이전해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시내 어떤 도서관보다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 특히 지난 1백10년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집을 거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덕분에 9월 한 달 동안 남산도서관에서는 <노벨문학상 110년을 돌아보다>라는 기획전을 만나볼 수 있다. 남산도서관 어문학실 김민서 씨는 서가를 거쳐 창고에 들어간 수 천 권의 책을 찾아내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전한다. “철학을 전공한 한 이용자 분이 오셔서 그러더군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쉴리 프뤼돔의 작품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어 매우 반갑다더라고요. 프뤼돔은 1901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예요. 그의 작품집 <시절과 시>가 이곳에 소장돼 있더라고요. 도서관을 찾는 분들께 지난 1백 년 동안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주요 작품 목록을 나눠드리면서 장기적인 독서 계획을 세워드리고 있어요. 덕분에 저도 공부를 많이 했어요.”

남산도서관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심훈, 조지훈, 서정주, 박경리 등 한국 문단을 이끌어온 대작가들의 친필 원고본을 모아 책과 함께 소개하는 전시다. 지난해에 비슷한 전시를 연 적이 있는데, 도서관 이용자들이 방명록을 통해 큰 호응을 전하는 것을 보고 올해도 열게 되었다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작가들의 친필 원고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니 9월이 가기 전에 꼭 한 번 들러보길 바란다.
매월 첫째, 셋째 주 월요일은 휴관. 문의 02-754-7338

남산도서관이 운영하는 문화 서비스
독서 치료 서비스
인간의 심리적, 사회적 부적응의 문제를 책을 통해 해결해주는 서비스로 http://cafe. daum.net/namsantheraphy에 접속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동차 문고 서울 전 지역 아파트를 대상으로 ‘자동차 문고’가 찾아간다. 행당동 한진아파트, 자양동 우성아파트, 홍제동 한양아파트, 불광동 미성아파트, 송파구 삼익아파트, 광장동 청구아파트, 현대아파트를 대상으로 한다.


배움의 상아탑,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은 옛 경기고등학교 건물에 지었다.

1 문방구, 교복, 도시락 등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옛 문화를 그대로 복원한 정독문화관.
2 정독도서관 정원에 있는 조선 전기의 학자 성삼문 옛 집터.

3 정독도서관 4층에서 바라본 북촌 방향.
4 족보에 관심 많은 어르신들이 하루 일과를 보내러 오는 ‘족보실’.
(아래) 정독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오래된 안경.


북촌의 명소로 꼽히는 정독도서관은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준다. 종로구 북촌길 19번지,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1977년 1월에 문을 연 정독도서관은 50만여 권의 장서와 1만7천여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시립공공도 서관이다. 성삼문의 옛 집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정원이 아름답고, 멀리 인왕산이 바라다보이는 풍경은 차분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 옛 학교 문화를 그대로 복원한 ‘정독문화관’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달 서너 차례씩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 덕분에 이용자들이 문학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시인 김용택 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씨,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황석영 씨 등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작가들이 정독도서관 시청각실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정독도서관에 처음 와보는 작가들은 이곳 정원에 한번 놀라고,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한 독자들 수에 놀란다고(작가와의 대화가 열리는 시청각실은 1백50석 규모다). 시청각실은 평소 영화관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10월의 상영작으로는 <말타의 매> <알파치노의 광란자> <도쿄 택시> 등이 있다. 정독도서관 회원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해서는 아트선재 코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할 경우 1천 원을 할인해준다.

종로구에 속하다 보니 정독도서관을 방문하는 이용자 중 상당수가 노년층. 도서관 측은 이용자의 연령대를 고려해 족보실을 따로 갖추고 있는데 호응이 꽤 좋다. 족보의 종류와 족보를 보는 방법 등을 알려주는 전시관을 마련해 상시 운영 중이다. 정독도서관은 일본 네 개 현과 협력을 맺고 도서를 교환하기 때문에 다양한 일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 밖에도 문인화(목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세필화(화요일 정오, 오후 2시), 명상과 태극권(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7시,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서예 (금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요가(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명심보감(금요일 오전 11시), 역사(월요일 오후 7시 30분), 논어(월요일 오후 7시) 강좌가 마련돼 있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과 글쓰기 수업(토요일 오후 2시)도 있다.
문의 02-2011-5773


대한민국 도서관의 역사를 쓰다,
종로도서관

1 종로도서관의 열람 좌석발급 시스템.
2 배화여고 학생들이 주로 타고 다니는 마을버스. 정류장 아래에서 여고생들은 수다 꽃을 피운다.

3 고시생이나 취업 준비생 등 도서관을 장기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사물함.
4 도서관 자판기 커피 맛은 쓰디쓴 원두커피와 비교할 수 없다.
(아래) 종로도서관 옥상에서는 청와대가 보인다.


종로도서관은 현존하는 도서관 중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1920년 11월 27일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여든 살’이 넘었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이범승 씨가 지식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탑골공원 옆 구한국군악대 자리에 경성도서관을 지은 것이 시초다. 설립 초기에는 소수의 도서와 일간 신문, 잡지 등을 주로 열람하는 소규모 시설이었으나 서서히 서가를 늘려갔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휘문학교 설립자인 민영휘 씨가 건축비 1천만 원을 기부받아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식 도서관 건물을 지으면서부터다.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한 것이 특징인데, 당시엔 어려운 집안의 아이들을 위해 초등학교 수업을 가르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도서관 앞까지 마을버스가 다니고, 인근에 배화여자중고등학교가 있어 학생 이용자가 많다. 남산도서관이나 정독도서관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오랜 역사 때문인지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장기 이용자가 많다. 휴게실로 이용하는 도서관 옥상은 저 멀리 청와대가 바라다보인다. 지역 주민들과 이용자를 위해 도예실을 운영하는 것도 종로 도서관만의 특징. 매주 목요일 도예 수업에 참가한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작품 발표회를 열기도 한다. 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 02-721-0703

그 밖에 가보면 좋은 도서관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딸을 잃은 한 가족이 평소 책을 좋아한 딸을 위해 기부한 건립 기금으로 지은 도서관이다. 2003년 불의의 사고로 딸 이진아 양이 숨지자 가족들은 딸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의 건립 기금을 기부하였고, 시민들을 위한 구립도서관이 이진아 양의 생일날 개관했다. 문의 02-360-8615

4.19혁명기념도서관 자유, 민주, 정의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4.19혁명의 정신과 역사적 사실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설립한 전문 특수 도서관이다. 전체 소장 자료 중 16%가 4.19혁명과 관련한 것들이다. 문의 02-737-9556

국립중앙도서관 국가 문헌의 보고로서 1945년 개관한 이래 국내에서 발행하는 출판물과 정보를 총망라하여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문의 02-535-4142

국회도서관 세계의 정보 자원을 수집해 국회와 국민에게 제공하는 국회도서관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지적 문화유산을 보존, 전승하는 기관이다. 온라인 도서관(www.nanet.go.kr)을 통해 의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문의 02-788-4211

마포구립서강도서관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폴란드 동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강연(9월 25일), 우리나라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 홍성찬 화백이 함께하는 어린이 강좌(9월 29일) 등이 열린다. 문의 02-3141-7053

중랑구립면목정보도서관 다문화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문화와 전래 놀이를 경험할 수 있는 동화 인형극 <엄지동자>(9월 29일)를 공연한다.
문의 02-432-4123
글 정세영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