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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근절 캠페인 벌이는 더바디샵 창립자 아나타 로딕 세상에 맞서라 주름이 건강해진다
환경운동의 개념조차 없었던 30년 전. 구멍가게 같은 화장품 가게를 열어 벽을 온통 녹색으로 칠하고 천연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팔던 한 여성이 있었다. 이 여인은 훗날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더바디샵 창립자 아니타 로딕은 요즘 한창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평범한 기업가, 평범한 사회운동가, 평범한 아내의 자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photo01 영국의 해변 도시 브라이턴에 살던 34세의 주부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아이가 둘이었고, 당장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남편마저 말을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미국까지 횡단하러 집을 떠나버렸다. 고민 끝에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진정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그녀는 1976년, 구멍가게 같은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이름은 ‘더바디샵The Body Shop’. 여기서 그녀는 손수 만들고 포장한 화장품을 팔았다. 남과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할머니들의 민간 미용 비법부터 약초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까지 샅샅이 탐독했다. 결국 선조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자연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을 판매하자는 전략 수립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30년 뒤, 더바디샵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 1천8백 개 매장을 가진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성공 요인은 창립자 아니타 로딕의 독특한 경영 철학. 30년 동안 그녀는 기업의 대표라기보다 사회운동가라는 직함이 어울릴 정도로 전 세계적인 캠페인을 주도했다. 환경 에너지 쓰기 캠페인, 고래 살리기 캠페인, 반세계화 운동, 동물 실험 반대 캠페인, 커뮤니티 트레이드community trade 등은 지금까지 활발하게 지속되고 있다. 더바디샵 3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아니타 로딕 여사를 만나보았다.
 
이미 30년 전에 손님이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덜어 판매하고 용기를 리필했다니 놀랍습니다. 재활용이나 소비자 맞춤식 판매 전략은 최근의 트렌드인데요. 당시 내 절박한 처지가 묻어난 아이디어였어요. 일단 돈이 없으니 용기를 끊임없이 생산할 수 없었고, 따라서 다 쓴 용기를 가져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사실 내 상황을 간파한 친정 엄마께서 제안해준 아이디어입니다. 게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부터 뭐든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가 많아졌는데, 더바디샵이 다른 회사와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지요? 천연 성분을 활용한다는 점은 요즘의 다른 기업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천연 재료의 생산 방법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첫째, 동물 실험을 하지 않습니다. 또 ‘커뮤니티 트레이드’라는 협약을 맺어 제3세계 생산지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고요. 둘째, 플라스틱 용기를 대폭 줄였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화학 비료가 제거된 유기농 성분이 포함된 뷰티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앞으로 미용 산업에 있어 우리의 관심은 어디로 옮겨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은 화장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분이며 모든 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입니다. 그런데 물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물을 쓸 수 있는 권리는 인권만큼 중요해질 겁니다. 따라서 물을 가능하면 적게 쓰는 코스메틱 산업이 유망해질 것입니다. 또 실버 뷰티 제품 산업이 커질 것입니다. 영국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85세를 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누구도 저 같은 노년층의 뷰티 제품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건조하고 칙칙한 피부, 가늘어지는 머리카락 등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 사업을 누군가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저라도 당장 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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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의 상징인 데이지 꽃을 들고 있는 아니타 로딕. 2 8년 전 한국에 더바디샵이 처음 문을 열 때 방문한 뒤로 처음 내한한 아니타 로딕여사. 언뜻 보면 60세 중반의 평범한 사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장난꾸러기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말문을 열자 터프한 수다쟁이 아줌마가 되었다. 3 영국 브라이턴의 더바디샵 1호점에서 일하던 아니타 로딕의 모습. 현재 더바디샵의 대표색인 녹색은 30년 전부터 매장의 주조색이었다. 환경 보호를 상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벽을 지저분하게 만든 습기 자국을 가리기 위해 녹색을 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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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더바디샵에서는 매년 4월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입니다. 최근 가정과 관련된 문제에 일관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대개 개인사로 치부합니다. 한국 사회는 더 심하고요. 그러나 가정폭력은 범죄입니다. 게다가 잘사는 집에서 더욱 교묘하게 벌어지고 있지요. 이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기업은 특정 사안에 대해 때로는 정부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요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이시죠? 기업은 단지 상품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관계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즉 비즈니스란 제품이 아닌 사람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기업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화장품 사업과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은 언뜻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죠. 대개의 기업은 판매하는 제품과 관련된 캠페인을 하지요. 가령 최근 미국의 식품 산업체들과 슈퍼마켓 체인에서는 비만 아동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설탕이나 지방 함량을 줄여 식품의 열량을 낮추는 운동입니다. 자신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는 철학이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화장품을 판매하면서 엉뚱하게 가정폭력 문제를 개선해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의 소비자는 여성 아닙니까? 우리는 적어도 수천 수만 명의 여성 고객의 신상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휴대폰 문자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더바디샵 매장이 여성들에게 정말 안전한 곳이라는 정보 같은 것 말이죠. 매장에 있는 어떤 버튼을 누르면 경찰이 바로 달려오거든요.
 
photo01 혹시 개인적인 경험이 캠페인의 동기가 되지는 않으셨는지? 하하, 아니요. 운 좋게도 이런 폭력을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제가 타고난 성향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업 방향이나 캠페인, 사회 사업 등 모든 아이디어는 기업가 성향의 연장입니다. 더바디샵 곳곳에는 저의 지문이 찍혀 있습니다. 내 생명의 일부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사실 거품 목욕 제품보다도 인권 옹호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마치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 ‘야생의 습성’처럼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지요.
캠페인을 하는 동안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경찰의 협조입니다. 경찰이 도와주면 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집에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우리 집안일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대응하기 때문에 경찰은 나서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명백히 범죄이니 반드시 경찰이 관여해야 합니다.
가장 감명 깊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전 세계를 돌아다녔으니 딱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몇 년 전 영국에서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간 일이 기억나네요. 주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유명한 아침 토크쇼였습니다. 이날 가정폭력을 행사한 남성 세 명이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왜 폭력을 저지르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이제 어떤 점을 용서받고 싶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여성들로 이루어진 방청객 중에는 폭력 피해자도 많았습니다. 이들 앞에서 과거를 고백한다는 건 정말 드물고 귀한 일이지요.

1 아프리카 가나에서 한 아낙이 아니타 로딕에게 시어 버터를 발라주고 있다. 시어 버터는 카리테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물질로 버터처럼 부드러워서 시어 버터라고 불렸다. 전통적으로 가나 여성들의 피부 보습 및 유연제로 사용되었다. 2 코코아 꼬투리로부터 열매를 분리하고 있는 가나의 쿠아파 코쿠족 사람들. 코코아 버터는 체온에서도 부드럽게 녹으며 피부를 오랫동안 촉촉하게 유지시켜준다. 3 동물 실험 반대 캠페인 포스터. 더바디샵은 동물 실험을 반대하기 위해 한 해 동안 4백만 명의 서명을 받아냈으며 마침내 1998년 영국에서는 화장품을 위한 동물 실험이 금지되었다. 4 젊었을 적 아니타 로딕의 모습. 5 시어 버터를 생산하는 가나의 텡테이야 커뮤니티. 이 커뮤니티는 농사에만 의존해 살던 10여 개 마을에서 모인 여성들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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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바디샵 인생 30년’을 정말 열정적으로 살아온 당신은 요즘 거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는 지금 자체로 완벽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껏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다 했거든요.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요. 60세 즈음 비로소 지나온 삶을 긍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젊을 때는 달랐습니다. 한창 아이들을 키울 때는 ‘혹시 내가 죽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못다 해준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는 애들의 엄마로서는 최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만약 지금 무덤에 간다고 해도 ‘이걸 했어야 하는 건데’ 하는 식의 후회는 결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눈가의 주름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말인가요? 오른쪽 눈가 주름은 남편과 논쟁하다 생겼고, 왼쪽 것은 깜찍한 손녀딸이 “싫어”를 외칠 때, 입가의 주름은 딸내미가 속 썩일 때, 그리고 이마의 주름은 일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낄 때 만들어진 주름입니다. 아, 제가 종종 하는 농담입니다. 근데 재미있지 않나요? 보세요, 내 팔뚝 살이 얼마나 흐물흐물해졌는지! 손자들도 제 곁에 와서 탄력 없이 늘어진 살을 흔들어보고 잡아당기며 깔깔대곤 합니다.
 
photo01 주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주름은 곧 삶의 여정map of life, mark of journey입니다. 제가 책에도 썼듯 주름살은 여성이 가정 안팎에서 어떻게 일을 했고, 아이들을 키우고, 술 한잔 마시고, 웃고, 울고, 발버둥쳤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톡스를 맞아보세요. 얼굴에 새겨진 이 사람의 삶의 궤적을 지운다고요? ‘나’란 사람 고유의 캐릭터는 사라지고 말 텐데요? 여성의 주름이 문제시된 것은 불과 60여 년 전부터입니다.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시각적 매체에 의존하면서부터죠. 이것은 인간의 개성을 짓밟는 테러 행위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주름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건강한 주름이라고요?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답은 사람들의 웃음! 여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참 잘 웃습니다. 정말 마음 놓고 웃고 있을 때는 거짓이나 환상이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자유로워지지요. 저는 큰 소리 내어 웃길 잘하는 편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말을 하다가 즐거우면 어느 때고 고개를 젖혀가며 웃음 삼매경에 빠진다) 사실 내 나이가 되면 시야가 흐려져 얼굴 주름이 잘 안 보이긴 합니다, 하하.
여성들이 특히 잘 웃나요? 폴리네시아에서도, 아프리카나 스리랑카에서도 여성들은 늘 모여서 결혼이나 출산 같은 큰일부터 모발이나 피부 가꾸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함께 나누고 웃다가 또 떠듭니다. 이는 여성들이 타고난 이야기꾼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지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신선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글쎄, 어릴 적 엄마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엄마는 항상 “특별해라, 평범은 거부해라! Never be mediocre!”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결혼이든 사업이든 캠페인이든 무언가를 할 때 지루하고 뻔한 것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지금 92세인 저희 엄마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재미있는 양반입니다.
65년여간 사회운동을 해오셨습니다. 앞으로는 또 무얼 하고 싶으십니까? 앞으로도 계속 캠페인을 구상하고 사회운동에 앞장설 것 같습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에 관한 이슈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게는 돈과 명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최소 25년간은 말입니다.
캠페인 말고 다른 일은 없을까요? 그게 다죠! 글쎄, 또 무엇이 더 있을까요? 좀 추천해봐요. 누워서 마사지나 피부 관리를 받고 있을까요? 인권운동은 지구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취재 후기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니타 로딕 여사는 참 많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었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 담긴 교훈적인 메시지도 좋았지만, 톡톡 튀는 유머와 럭비공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종일관 주위를 즐겁게 했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 인터뷰가 있은 뒤 얼마 후 더바디샵이 로레알에 인수합병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동물 실험 반대’와 같이 다른 곳과 차별된 기업 이념이 이제는 달라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경영권을 놓은 뒤에도 창립자로서 회사의 캠페인을 그대로 이끌어왔듯이, 로딕 여사는 이번 합병 뒤에도 여전히 더바디샵의 고문 역할을 맡아 고유의 가치를 지켜갈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껏 어떠한 변수가 닥쳐도 공익을 위한 캠페인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이기에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을 상징하는 데이지 꽃 피켓을 들고 있는 아니타 로딕. 2 잠비아 남서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천연 유기농 꿀을 생산한다. 보습력이 좋은 이 꿀은 더바디샵의 ‘허니 모이스처라이저 샴푸’ 등의 원료로 쓰인다. 3 여성의 자아 존중 캠페인을 대표하는 인형 ‘루비’. 루비의 친근한 몸은 바비 인형의 몸매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이 캠페인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유행에 재단되지 말고 자신의 몸을 존중하고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포스터에는 “슈퍼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여성이 여덟 명이라면, 여성 30억 명의 몸매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적혀 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