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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서 모임 삶에 갑자기 물음표가 뜬 당신에게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 그 사이에서 멋을 찾아 헤매는 사람. 온갖 욕망이 뒤섞인 을지로 한가운데에서 무해한 얼굴로 철학을 말하는 서점과 모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꽤 복잡하다. 철학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 기르기. 정치철학 고전 읽기 모임으로 대장정을 시작하는 소요서가의 윤상원 대표를 만났다.


지인들의 공부 모임에서 시작했다는 소요서가 탄생기가 인상적이에요. 비밀 조직의 작당 모의처럼 느껴지는데요?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끼리 을지로 작은 사무실에 모여서 철학책을 읽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친목 모임이 있었어요. 우리의 공부가 취미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 ‘연구소 오늘’을 만들었죠. 작년 7월에 좋은 책을 큐레이션해서 소개 하는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를 열었고, 이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훌륭한 철학 및 예술 서적을 번역 출판하는 출판사도 운영하고 있어요. ‘소요’의 뜻처럼 우리는 사람들이 걸으면서 보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음을 던질 수 있기를 바라요. 철학적 일상을 위한 사유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목수, 회계사, 미술 교육가, 예술가, 철학 전공자, 출판인···. 운영진의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철학은 모든 분야의 기저에 깔린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철학은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굉장히 전문적인 학문인 동시에 대중적 관심을 받는 분야예요. 생각해보면 실체, 원인, 우연과 필연 등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어요. 우리의 언어 안에 철학적 단서가 들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본질적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소요서가는 사람들이 자기 안의 철학적 물음에 조금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답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소요서가의 책꽂이에서는 전문 철학 서적도 있지만 예술·정신분석·여성학 등 다양한 장르의 책도 만날 수 있는데요, 모두 철학이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자리하면 더욱 깊어질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독서 모임과 클래스도 다양한 주제로 열리고 있고요.

올해 10월부터 12개월간의 ‘정치철학 고전 읽기’ 모임을 시작합니다. 정치철학이란 주제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철학과 정치는 전문 학문이면서 우리 일상의 평범한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정치도 국가와 사회의 범위로는 전문가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누구나의 삶에도 개인적 정치 활동이 필요하거든요.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 자체가 이미 정치적 문제인 거잖아요. ‘정치 철학 고전 읽기’ 모임에서는 철학과 정치를 동시에 다루며 내 삶의 문제, 타인과 만들어가는 관계의 문제를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사고 패턴을 만들어보고자 해요. 그런데 우리가 아무 이야기나 하며 생각을 주고받을 수 없으니 고전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고요. 과거에 유명한 철학자들은 정치 문제를 어떻게 고민했고, 그 정치를 철학적인 사유와 연결해서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살펴보는 거죠.

중요한 주제인 건 알지만, 막연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 어려운 철학 고전을 여럿이 모여 함께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필요할까요?
스피노자의 명언 중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 어렵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공동체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력이 오랫동안 필요하죠. 좋은 몸을 갖추고 싶으면 오랜 기간 훈련하고 운동을 하듯이 말이에요. 이 모임이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이유도 정치·철학적 문제와 물음을 소비하듯 빨리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지금 만약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던 삶의 문제가 크게 다가오거나, 타인과 더 좋은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치철학 고전 읽기’가 하나의 모티프이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플라톤의 <국가>로 시작해 매달 한 권씩 유명 철학자의 고전을 읽는데요,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돼요. 내 인생과 무관하다고 여긴 책이 어느 순간 옆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해요. 고전 속 모범 사례를 통해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는 방법, 그 생각을 타인에게 제기하는 방식을 길러보자는 거죠. 긴 시간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을 테니, 관심이 생기거나 파고들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언제든 함께하면 됩니다.

철학 외 주제의 독서 모임도 소개해주세요.
‘필로소피’에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이 있어요.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죠. 상대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사유하는 행위로 드러날 것이고요. 소요서가에서는 철학을 전문적 학문인 동시에 넓은 의미의 사유 방식으로 보며, 예술·환경·문화·페미니즘 등의 분야에서 동시대의 물음을 던지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을 함께 읽고자 해요. 10월에는 ‘서양 미술사의 명저를 읽는다’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페미니즘 SF 소설 읽기’를 주제로 여러 모임을 진행해요. 저희 독서 모임들은 큰 축을 두고 세부적인 기획 방향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데요, 소요서가의 홈페이지에서 현재 진행 중인 독서 모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신청할 수 있어요. 앞으로 소요서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나요? 삶에 어떤 문제가 닥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선배들은 어떤 교훈을 남겨뒀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을 때 이곳이 떠오르면 좋겠어요. ‘정치철학 고전 읽기’ 모임이 끝나면 현대 철학 주제의 모임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www.instagram.com/soyoseoga, 홈페이지 soyoseoga.com


소요서가의 추천 철학 고전

플라톤의 <국가>
정치철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고전. 민주주의가 발달한 아테네에서 국가가 믿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계기로 철학과 정치 사이의 조화와 긴장을 보여준다.

이마누엘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칸트의 에세이를 포함해 18세기 계몽 개념을 실현하고자 논쟁한 당대 지식인의 글을 엮었다. 칸트가 말하는 계몽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성을 사용할 용기다. 이 자율적 주체 형성의 과정은 소요서가의 뜻과 닮았다.

글 박근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