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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장예전長藝展>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터, 이어령을 기억하며
2022년 2월 26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 그러나 ‘지知의 거인’은 언제나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영인문학관과 디자인하우스, 각 분야 크리에이터들이 선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전시를 열었다. 몸은 우리 곁을 떠나겠지만 정신의 힘을 통해 언제나 가까이 있을 선생의 예술을 기리고자 함이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를 주축으로 선생을 존경하는 후배들이 여러 차례 만나 ‘장례식葬禮式’ 대신 ‘장예전長藝展’을 기획했다. 그리고 선생의 49재를 맞아 그 ‘길고 긴 예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사진·설치·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선생의 저서와 자료를 골라 전시 중이다.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이런 전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일 것이다. 우리 장례식이 따듯하게 바뀌도록 캠페인하고 싶은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더욱 관심 있게 지상 중계한다.

사진작가 김아타가 촬영한 이어령 선생의 사진, 황수로 궁중채화장이 만든 홍매, 선생의 머리카락이 담긴 전용복 칠예장의 옻칠 함, 아티스트 김희원의 촛불 영상이 추모객을 맞는다.
이어령 송가頌歌
이어령 선생은 한옥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구조적 불편함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한국식 가옥보다는 서양식 가옥이 취향에 맞는다. 그는 모던 스타일을 좋아한다. 울트라 모던한 것은 더욱 좋다. 네오필리아neophilia이기 때문이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가구는 선이 간결하다. 그는 간결한 것보다 장식적 예술을 좋아하며, 대칭보다는 비대칭의 선을 선호한다. 그가 전통적 예술 양식에 주저앉지 않는 것은, 가능하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어제와 다른 곳에 살고 싶고,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어제와 다른 생각을 하고 싶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처럼 그는 ‘만족을 모르는 지식욕(insatiable)’을 지니고 있다. 그런 탐욕스러운 지식욕 때문에 그는 쉴 시간이 없었다. 새로운 지식이나 문물은 창조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것을 흡수하고 작품화하느라 쉴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새로운 글을 쓰며 사는 것이 소원이며, 글을 쓸 수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그에게 새 글을 쓰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풀타임 잡’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글을 쓰거나 읽을 시간이 항상 모자랐다. 그렇게 달리며 사느라 그는 한가해본 적이 없다.

2015년 2월과 11월에 대장암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도 일어나 앉자마자 시를 쓰고, 교정을 보았다. 알파고에 대한 책을 출판하기 직전에 입원했기 때문에 교정지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준비할 때도 그는 새 일을 창안해내느라 날마다 밤잠을 축냈다. 자고 나면 고칠 부분이 생각나는데, 고맙게도 박세직 위원장이 새 아이디어를 조건 없이 수용해주어서 올림픽 개폐회식이 성공할 수 있었다. 장관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화부는 예산이 적으니 그가 아이디어를 방송국에 제공해서 돈 안 드는 행사를 하느라 다른 장관들보다 바빴다. 예술단을 해외에 보낼 때도 그 방면의 비디오를 전부 보고 나서야 인선을 마무리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그는 완벽주의자여서 예술이 완결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최고의 예술가를 만나면 넋을 잃었다.

문학 전시의 산실 영인문학관. 긴 예술을 형상화한 로고는 그래픽 디자이너 채병록이 작업했다.

이어령 선생이 우리 음식 문화의 특징과 개념을 잡아준 . 오뚜기함태호재단 후원으로 디자인하우스에서 제작했다. 그리고 이어령 선생의 명저 중 하나로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개념이 남달라 크리에이터에게 꼭 읽히고 싶은 <우리 문화 박물지>(디자인하우스).
그에게는 책의 목차만 보아도 구조가 훤히 보이는 통찰력이 있고, 같은 책 속에서도 남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더듬이가 있다. 그것으로 그는 항상 자기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독창적 글쓰기를 시도한다. 한국인은 추상 사고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는 추상 사고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적분을 잘하는 특이한 국문학도이기도 하다. 존재론과 생성론에 관심이 많으며 우주의 원질, 언어의 음과 의미, 예술품의 미적 구조, 지정학, 생명자본주의 등 알고 싶은 분야가 많아서 지적 탐색의 자장이 한없이 넓다.

그는 다각적인 관심의 더듬이로 찾아낸 새것으로 자신의 오늘을 채우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다. 대장암 수술 후 남은 시간을 책 읽고 글 쓰며 보내기 위해 항암 치료를 거부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치료로 낭비하고 싶지 않을 만큼 그에게 읽고 쓰는 일은 중요했다. 그의 버킷 리스트는 글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는 창조적이지 않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술도, 노래도, 춤도 즐기지 않았으며, 바둑도 두지 않았다. 오로지 글만 쓰면서 산 외골수의 삶이다. 그렇게 읽고 창조하는 일에 전력투구하면서 체중이 30kg이나 준 마지막 시간까지 크리에이터로 살았다.

그의 창조 정신을 기린 예술가들이 영인문학관과 손잡고 <이어령 장예전>을 준비했다. 디자인하우스 팀은 영인문학관 내부를 흰 헝겊으로 둘러 전시장 전체를 성소처럼 만들었다. 아늑한 휘장 안에 이어령의 저서, 사진, 애장품, 원고 같은 것을 참신한 방법으로 모셔놓은 경이로운 전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첨단 기술로 재현해놓은 굴렁쇠 소년의 홀로그램이다. 최첨단 기술 문화를 사랑한 이어령 선생이 흡족해할 것 같다. 관람이 끝나면 김아타 선생이 찍은 이 선생의 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게 되어 있다.

이영혜 대표가 꾸린 팀이 최첨단 기법을 동원해서 知의 최전선에 서는 송별의 자리를 만들어주어 자료를 제공한 문학관 측도 덩달아 승격되는 느낌이다. 그 일을 위해 수십 명의 예술가가 밤샘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크리에이터끼리의 동족 의식에서 우러난 아름다운 오마주였다. 이영혜 대표와 정성을 쏟아준 그 순수한 영혼들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강인숙(영인문학관 관장, 이어령 선생의 아내)

정희기 섬유 작가가 자수와 원고지로 표현한 이어령 선생의 생애, 허성하 가든 디자이너가 만든 이끼 정원, 조문객의 헌사가 만장처럼 전시되어 있다.
이영혜 전시 총감독이 ‘장례식’ 대신 ‘장예전’을 해드린 이유
국문학자이자 기호학자였던 선생님은 여러 개념의 조합 방식을 잘 아셨습니다. 그런 특유의 시선으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통해 공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인 디자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문학을 기반으로 조각, 사진, 그림, 그리고 ‘디지로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디지털과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통섭을 하셨기에 K-Culture가 전 세계적 화제가 될 것도 가장 먼저 예견한 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지식을 바로 꺼낼 수 있는 초능력적인 기억력으로 이 나라의 문화 해석과 개념을 짚어주신 어른이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터, 우리나라 문화 지식의 곳간, 남다르게 분류된 도서관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최근 개정판을 낸 <우리 문화 박물지> 출간을 앞두고 만난 선생님은 본인 장례식도 바꾸고 싶다고, 무엇보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 하셨습니다. ‘움 투 툼Womb to Tomb’, “인생은 생명이 자궁으로부터 시작해 무덤까지 가는 여정”이라며, 몸은 약해졌지만 지력은 잃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거워지면 자유로움에서 멀어지는 것을 아는 선생님과 웃으며 장례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께는 ‘장례식’이 아니라 ‘장예전’을 해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고, “내 장례식을 디자인해줄 테야? 내 처와 의논해줘”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눈물로 들은 것이 하필 돌아가시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닭의 상징성을 자주 이야기한 선생의 뜻을 담은 김병종 화가의 닭 조형물.
부부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고 부인 강인숙 관장님이 운영하는 영인문학관에서 <이어령 장예전>을 엽니다. 선생님의 인생 후배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공간을 구성하고, 사진·설치·영상·조경을 기획했습니다. 수많은 저서, 자료를 챙긴 영인문학관 팀 그리고 선생님 가족과 의논하는 과정도 선생님을 다시 한번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회를 다니셨지만 49일까지는 이승에 있으시다니 잠깐 돌아보고 떠나실 수 있도록 서둘렀습니다. 동시대를 호흡한 열정적 문화 거인을 기리는, 작은 추모 전시에 여러분이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영혜(디자인하우스 대표)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한 선생을 기리며 아텍컴퍼니가 새롭게 재생한 굴렁쇠 소년 홀로그램.
<이어령 장예전>을 둘레둘레 보다
닭해에 태어난 이어령 선생은 ‘새벽에 외롭게 외치는 소리’라는 의미로 닭의 상징성을 자주 이야기했다. 광명을 기다리는 새벽닭의 외침처럼 이번 전시는 어둠에서 시작해 밝음으로 끝난다. 기획팀은 이를 위해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올라오는 동선을 제안했다. 외부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 김병종 화가의 ‘닭’ 조형물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닭은 공간 곳곳에서 길 안내자 역할을 한다). 임태희 공간 디자이너는 추모를 위한 ‘장례’ 의식과 ‘긴 예술-장예’ 전시에 모두 어울리도록 휘장과 나무 구조물을 전면에 배치했다. 이는 관람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동선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는 역할도 한다.

지하 2층에 들어서면 ‘일상의 기호학’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독서대, 안경, 필기구 같은 일상용품과 자필 원고와 가족사진 등으로 구현한 89년간 지성과 열정 연대기다. “90년을 살았는데 책을 90권 썼다”는 선생의 대표 저작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 문화 박물지> 등이 김용호 작가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다. 휘장을 걷고 옆방으로 들어가면 암흑 같은 공간 속 ‘정적’이 관람객을 맞는다. “정적을 들려주고 보여주자. 이 침묵을 보여주자, 인류가 가장 못한 게 침묵이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한 선생의 굴렁쇠 소년이 아텍컴퍼니의 홀로그램으로 새롭게 재생된다. 그 옆방 ‘지知의 최전선’에는 선생이 1974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한 책상이 놓여 있다. 선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록한 TV조선 프로그램 <고맙습니다 이어령>도 함께 상영한다.

임태희 공간 디자이너는 전시 공간 전반에 광목 휘장을 둘러 집중도를 높이고, 동선을 자연스럽게 구분했다.
지하 1층으로 올라 ‘크리에이터들의 크리에이터’로 들어서면 백남준, 이우환, 김병종, 임옥상 등 당대 최고 아티스트와 교류한 이어령 선생의 소장품이 빼곡하다. 경계를 넘어서 지식과 예술을 통섭하고자 한 선생의 세계가 드러나는 현장이다. 다시 휘장을 걷고 옆 칸 ‘지성에서 영성으로’로 이동하면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는 장예 공간이 자리한다. 김아타 작가가 찍은 영정 사진, 황수로 작가의 홍매紅梅, 후대의 DNA 연구를 위해 선생이 남긴 머리카락을 담은 전용복 칠예장의 옻칠 함, 촛불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지는 소멸’을 말하는 김희원 작가의 영상이 추모객을 맞는다. “생명과 죽음은 서로 등을 대고 있다”던 선생의 말씀을 기억하고,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옆방으로 이동하면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이 대미를 장식한다. 섬유 작가 정희기가 바느질로 원고지와 선생의 자필 문구를 수놓았다. ‘찢어진 旗를 꽂고 人間의 敗北는 아름다웠다’ ‘너는 새벽이며 반쯤 피어난 꽃이며 가지를 박차고 날갯짓을 하는 새이다’…. 허성하 가든 디자이너가 만든 이끼 정원 위로 조문객의 헌사가 휘날린다.

정리 김은령(디자인하우스 부사장)



1, 2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전시 총감독을 맡고, 김은령 부사장이 에디토리얼 디렉팅을 담당했다.
3, 4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이어령 선생의 며느리인 김경희 영인문학관 이사장.
5 화제가 된 LCDC 서울, 두수고방 등을 디자인한 임태희 공간 디자이너. 추모장례, 긴 예술-장예라는 의미를 전시 전반에 담았고, 광목 휘장과 나무 구조물을 사용해 공간을 나누고,
집중도를 높였다.
6 이끼 정원을 연출한 허성하 가든 디자이너는 가드닝 스튜디오 폭스더그린을 이끌고 있다.
7 자수 작업에 문학적 감수성을 담는 정희기 섬유 작가. 선생의 자필 문구를 원고지에 수놓았다.
8, 9, 10 굴렁쇠 소년을 새로 재생한 주역. 양정웅 아텍컴퍼니 공동대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총연출자로, 공간과 미디어를 넘나드는 연출로 이름 높다. 황지영 아트 디렉터는 K-Culture 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2022 월드 서밋 특별 공연을 연출했다. 지동익 아텍컴퍼니 공동대표는 첨단 기술을 결합한 전시·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11 전시 기획과 디렉팅으로 참여한 서영희 비주얼 디렉터는 탁월한 스타일링 감각으로 전시장 곳곳의 디스플레이를 책임졌다.
12 선생의 사진을 촬영한 김용호 작가. 상업 사진과 예술 사진을 오가며 대중과 소통 중이다.
13 전시 기획으로 참여한 최시영 건축가. 타워팰리스, 시그니엘 등 고급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을 설계했다.


<이어령 장예전>
기간 4월 15일(금)~5월 14일(토)
오전 10시 30분~오후 5시, 일·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81 영인문학관
관람료 무료

구성 최혜경 기자 | 사진 이기태,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