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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환경을 이야기하는 예술가 5인 지구에 무해한 예술 - 2
예술의 책무 중 하나는 지평을 열어젖히고, 아이러니를 파헤치는 것에 있다. 다섯 명의 예술가, 우리가 딛고 선 지구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때론 논쟁적으로, 때론 유쾌하게, 때론 첨예하게.


버려진 목재로 가구와 새를 탄생시킨 설치 작품 ‘icaro milano uccelli’와 유일무이한 장난감 컬렉션. 그의 알리 쿠시오 스튜디오는 폐기물을 또 다른 생명으로 재탄생시키는 공간이자 전시장이다.
재활용 재료로 가구 만드는 아르칸젤로 파바타
버려진 것을 구해 미래를 이어가요

아르칸젤로 파바타Arcangelo Favata는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 알리쿠시오Alicucio에서 버려진 것을 이용해 독특한 가구 작품을 선보인다. 어린 시절 그는 시칠리아 해변 근처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바다에서 항구로 떠밀려온 아이가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마을 주민들은 그 아이를 ‘알리쿠시오’라고 불렀고, 그때의 감동이 파바타의 작가 인생에 선명하게 기록되었다. 스튜디오 이름을 알리쿠시오라 짓고, 지구에 버려진 물건이나 조각을 구해주는 것을 임무로 여기며 작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전시하고 있다. “대도시 밖에는 또다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물건과 재료가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습니다. 이런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일상 사물이 여전히 자연에서 온다는 것,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희생으로 탄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해요. 책이 찢어지면 붙여야 하듯, 삶의 이야기도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다시 붙여야 하겠지요.”


파바타 작가는 인류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 즉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 들어섰음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한다. “이제는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보다 비판적이고 의식적인 자원 소비를 해야만 지구환경이 변화할 수 있는 시대예요. 가장 우선적으로 ‘덜 분주하고 느린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직선 도로, 가장 빠른 도로가 항상 최고는 아니에요.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은 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인지, 더 나은 삶을 위해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줘요. 결국에는 구불구불하고 긴 길을 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지구의 아름다운 미래 환경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 당신이 시칠리섬의 구불구불한 해변에 온 듯 인생에서 분주함을 덜어내보라. 느린 템포의 삶으로 버려진 무언가를 돌아보고, 그것을 구해 새로운 가치와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인류의 세기도 멈춤 없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김민정 사진 제공 아르칸젤로 파바타

광주비엔날레에 전시한 ‘Sea Saving Whale’은 폐철골, 플라스틱 용기, RGB 조명, LED 모듈 모니터 등 버려진 재료로 만든 정크 아트다. 우주를 부유하는 듯한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가 몽환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정크 아트에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조형 예술가 김상연
고래를 살리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공간에 부유하듯 떠 있는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 세 마리가 관객이 다가서자 더 화려한 색채로 변화한다. 그 화려한 색채를 따라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관객은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의 몸통 곳곳에 해양 쓰레기인 폐철골과 플라스틱 용기가 박혀 고통의 빛을 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고래를 살리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관객이 작품에 다가가면 센서가 작용해 고래의 색채가 화려하게 변합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반어적으로 사람이 접근하면 치명적 파괴가 일어나는 것이죠.” 지금 시대의 화두인 지구 환경보호 문제가 예술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김상연 작가는 기존 정크 아트에 첨단 기술을 결합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고래를 살리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라는 작가적 서술로 작품명을 대신했다.


수인 판화와 회화 작품을 주로 선보여온 김상연 작가는 지난여름 전남 고흥군 남열해수욕장에서 해양 폐기물로 만든 정크 아트 작품을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였다. 그 후속작으로 폐철골과 플라스틱 용기 등에 AI 기술을 결합한 고래 작품을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 중이다. “지구를 위해, 고래를 위해 당신을 포장하는 모든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감싸는 모든 것, 즉 입는 것, 자는 것, 먹는 모든 것의 포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왕이면 마음까지도 포장하지 말고 담백하게 마음먹는 게 더 좋겠습니다. 사람의 겉과 속이 포장을 벗을수록 지구 환경이 제 자신의 담백함을 찾아가니까요.” 폐철골의 화려한 빛 대신 제 살갗의 편안한 빛을 가진 고래가 사는 지구. 그 작은 회복은 우리의 포장을 벗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과 자연이 저마다 본연의 살갗으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인류가 소망해야 할 가장 첨단의 미래가 아닐까?

김민정 작품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