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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가 주재환 말하자면 길지만
“아버지가 저를 그려준 그림이 훨씬 젊죠? 아이디어가 내가 더 없어. 큰일 났어.”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이 아버지 주재환의 ‘호민 초상’을 보고 유튜브 채널에서 한 말이다. “제도권 미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사의 경지”라는 평이 떠도는 주재환 작가를 만났다.

여백만 남은 도인 같기도, 비밀을 집어삼킨 노인같기도 한 주재환 화백. 그 앞의 인형은 만만찮은 세상을 겪은 동심을 뜻한다.
스스로 ‘1천 원 예술가’ ‘광대형 작가’ ‘30여 년 장노(장시간 노는 사람)’라 일컫는다. ‘미술관적 교양을 벗어버린 작가’ ‘무소속 몽상가’…. 세상이 그에게 붙인 별호도 많다. “내가 뭘 알겠어. 엉터리 같은 작품만 ‘맨들고’ 있는 거지” 눙치지만, 1979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내놓은 ‘몬드리안 호텔’이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한국형 다다DADA 예술로 경배하는 작가도 있다. 그는 최근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전(서울대학교 미술관)을 통해 ‘초기 포스트모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 받았다. 웹툰 작가 주호민(<신과 함께> <무한동력>을 그린)의 아버지로 최근에서야 알려진 그는 지금 아들과 함께 <호민과 재환>전을 열고 있다(8월 1일까지 서울시립 미술관 서소문 본관). 미술관 앞 구절양장 같은 젊은 관람객 행렬을 두고 “아들 거 보러 왔다가 애비 거 덤으로 보고 가는 거지, 뭐” 겸양할 뿐이다. 그러나 강속구로 날아와 꽂히는 작품 속 호통·풍자는 그대로 MZ 세대와 화통 중이다.

<호민과 재환> 설치 전경. 주호민의 만화, 주재환의 회화에는 공통적으로 한국인의 무속 신화, 내세관 그리고 이야기꾼의 면모가 스며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왜 ‘1천 원짜리 예술’ ‘분리수거 미술’입니까?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예술 하니까 그렇지 뭐. 플라스틱 제품, 인쇄물, 못 쓰는 장난감, 테이프 같은 거 있잖어. 재활용 수거함으로 실려 갈 만한 것으로 작품을 만들거든. <호민과 재환>에도 전시한 ‘물 vs. 물의 사생아들’ 보라고. 빨랫줄에 드링크병, 페트병 같은 게 매달려 있잖어. 물보다 병에 든 인공 음료를 즐겨 마시는 현실을 풍자해봤잖어. ‘아침 햇살’이란 작품도 그렇고. 장마에 캔버스는 썩고 액자만 남았길래 거기에 비닐 테이프를 붙였더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처럼 눈부셔. 공해의 대표 주자 비닐로 만든 무공해 시절의 맑은 햇살이지 뭐야.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이면서 문명 비판으로 만든 거지.

‘몬드리안 호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호민과 재환> 에서 봤습니다. ‘몬드리안 호텔’은 “모더니즘의 차가운 정신성을 풍자한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 작품”으로 평론하던데요.
‘몬드리안 호텔’은 몬드리안의 격자를 호텔 방의 세속적 풍경으로 둔갑시켜봤고.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와 연결해서 나부 대신 오줌 줄기가 계단을 내려오게 한 거지. 몬드리안을 알아야 ‘몬드리안 호텔’을, 뒤샹을 알아야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돼.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고. 평론 가지고 뭐라 하기는 막연한 게, 작가는 제가 좋아서 그리는 거야. 가치 평가는 미술 전문가와 평론가가 하고, 관람객은 그들이 발표하는 것만 듣게 되는 거 아니우? 하나로 얘기하기는 힘들고 복잡한 산술, 관계 속에서 예술이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들어.

주재환. 드로잉, 인쇄물 콜라주, 오브제 회화, 설치 등 그의 표현 재료는 다양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또한 한 줄기로 꿰지지 않는다. 풍자, 은유, 속담, 수수께끼를 변화무쌍하게 사용한다. 민중미술 진영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회적 함의를 끌어내는 작품도 선보였다. 그래서일까. 독자적 위치의 작가임이 분명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민중미술 작가’라는 얼개에 갇혀 있었다.

작가님은 누구입니까?
나는 ‘광각 작가’라고 할까. 직간접 체험이 무의식중에 들어왔다가 쌓여서 작품으로 나오는데, 이게 참 다양해요.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으니까 내 가슴을 찌르는 게 있으면 정치 비판도 되고, 인간은 뭐냐 우주는 뭐냐 이런 질문도 되고. 그렇기 때문에 질도 들쭉날쭉하고, 엉터리지 뭐. 너무 광각이라 어떤 것이 내 정체인지 나도 모르겠어. 내 안에서 자꾸 막 섞여서 나오니까 해석하기도 힘들다나. 나라고 뭘 알겠어. 그저 그림만 붙들고 있는 거지.

주재환, ‘귀찮아’, 1998/2020. “이 작품이 2030 세대 선호도 1위래. 눈도, 귀도, 입도 집게로 막고, ‘귀찮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게’라고 써놨잖어. 취업이니 주택 문제니 코로나니 겹쳐서 다들 우울해. 그래서 그들에게 와닿은 모양이야.” 그의 설명이다.
주재환, ‘물에게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2021. A4 크기보다 작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 ‘물방울’의 낙찰가는 8천 2백만 원, 주재환 작가의 작업실 한 달 수도 요금은 7천2백90원. 둘 다 물방울이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보십니까?
<신과 함께>는 호민이가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성과를 얻은 거야. 제주 신화를 만화 형식으로 복원한 거 아냐? 개발하고 개척하고. 거기에 내가 높은 점수를 주는 거야. 애비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 젊은 친구들이 우리 신화를 알게 됐잖아. 큰 공헌을 했다, 나는 그렇게 평하지.

<호민과 재환>에 전시한 ‘비깨도 시리즈’를 보면 그의 작품 앞에 따라붙는 ‘신화적 상상력’ ‘무속’ 같은 단어가 비로소 이해된다. 색종이를 오려내고 간략한 형상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만화적 요소를 읽는 이도 많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한국의 민속 신을 현대 언어로 재해석한 웹툰이다. 죽음의 세계, 신화의 세계에 대한 두 사람의 접점을 우리는 애써 찾아낸다.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바탕으로 네모 칸에 그린 주재환의 ‘몬드리안 호텔’에서 주호민의 웹툰을 발견하는 이도 많다. 부자는 서로 삼투압 현상을 일으켜왔으리라, 불가불 짐작한다.

이번 <행복> 표지 작품이 주호민 작가의 초상이라고요.
<호민과 재환> 전시장 입구에 걸린 ‘호민 초상’이지 뭐. 그 아이스크림 껍질 코 있잖수. 손주가 가끔 갖고 놀던 장난감이야. 그걸 붙이고 얼굴처럼 그렸지. 처음엔 제목을 ‘우주인K’로 붙이려고 했어. 그런데 맨들어놓고 보니까 호민이 얼굴 닮았잖어. 해서 ‘호민 초상’이 된 거지.

외판원, 민속 가면 제작자, 미술 강사, 연구원, 잡지사 편집장…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도 미술을 놓지 못하셨는데, 작가님에게 미술은 뭐였습니까?
결론은 ‘모른다’. 모르는 거야. 예술 한다는 건 자동사 아녀? 굶어 죽어가면서도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어. 박수근이니 이중섭이니. 자동사라고 이게. 강제로 누가 시켜서 하는 타동사 아니라고. 그냥 업보 같어. 업보. 그렇잖어. 사는 것도 업보고.


주재환 작가는 한국민속극연구소 연구원, <미술과 생활> 기자, <독서생활> 편집장 등을 거쳤습니다. 민족미술협의회 창립 회원이며 1987~1988년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냈습니다. 2001년 <이 유쾌한 씨를 보라>, 2007년 , 2016년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 등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