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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10억에서 연 매출 5천억 CEO, 켈리 최 꿈이 나를 움직였고 만날 이들을 만나게 했다
즉석 초밥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파리지앵은 물론이고 세계 굴지의 대형 마트, 한국 모 마트 회장, 유명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견학을 왔을 정도다. 2년 동안 마트 직원보다 더 자주, 더 오래 마트를 오가고 머무른 끝에 거둔 성과다. 그렇게 파리에서 초밥 도시락을 팔아 글로벌 기업을 일군 그녀를 독자들과 함께 만났다.

사업이 안정되면서 2017년 안식년을 지내는 동안 가족과 함께한 세일링 여행. (왼쪽부터) 남편, 켈리 최, 딸, 시아버지.

파리 대형 마트 안에 자리한 스시 데일리 매장 전경.

첫 사업 실패로 우울증을 겪는 동안 체중이 많이 늘었는데, 건강 회복을 위해 자기 관리를 시작하면서 SNS 팔로어들에게 약속한 대로 10kg을 감량하고 그야말로 ‘머슬퀸’이 되었다.
“나 회 싫어해요.” “안 먹어봤잖아요. 어떻게 알아요? 회 싫으면 다른 거, 이거 먹어볼래요?” “음… 어, 맛있네!” “그렇죠? 이것도 한번 먹어봐요!”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든지 그녀에게 따라붙는 질문이있다. 마케팅 비법이 무엇이냐는 것. 안타깝게도 ‘짠’ 하고 보여줄 마술 같은 비법은 그녀에게 없다. 메뉴를 샘플링할 때마다 ‘줄기차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시식을 권하는 것이 전부다. 기대를 저버리는 식상한 대답이라는 것을 그녀도 안다. 한국 마트에서 시식 코너는 너무 흔하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로 그게 전부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영혼을 담아 손으로 빚었고 쉴 새 없이 발품을 팔아 현장을 돌았다. 그렇게 파리에서, 아니 이제는 유럽 대륙에서 10년째 그녀는 즉석에서 만든 초밥 도시락을 팔고 있다. 2020년 현재 유럽 12개국 대형 마트 안에서도 가장 목 좋은 자리에 1천여 개 매장이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각 매장에서는 아시아 국적의 요리사들이 멋진 공연을 펼치듯 초밥을 만든다. 신선하고 맛있는 초밥을 만들기 위한 의식같은 이벤트에도 놀라워하며 모여들지만, 즉석에서 만든 초밥 맛에 고객들 반응은 더욱 열광적이다. 회사의 매출액이 그 증거다. 덕분에 사업 시작 7년 만에 연 매출 5천억원 기업의 반열에 글로벌 기업 ‘켈리 델리’와 그녀의 브랜드 ‘스시 데일리’가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주인공 켈리 최, 그녀의 이름이다.


결핍에서 싹튼 꿈
2017년, 사업이 안정된 후 그녀는 남편과 다섯 살 딸과 함께 안식년을 지냈다. 1년 동안의 세일링 여행 중 만난 친구들과 함께 정박한 도시의 고아원을 찾아 선물을 건넨 적이 있다. 쉽게 얻고 누리는 자신의 아이들과 달리 그 아이들은 꿈이 명확했다. 부족한 게 많으니 갈급과 갈망이 생기고, 꿈꾸는 게 그녀 눈에는 읽혔다. 그녀가 그랬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이다. 어릴 때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사니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집에 돈이 없는 탓에 학교 대신 공장에 취직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와이셔츠 생산 공장이다. 그녀의 일에 대한 근성은 그때부터 남달랐다. 남들이 하루에 와이셔츠 1백 장을 만들면 그녀는 두 배를 만들어내는 탁월함이 있었다. ‘와이셔츠를 만들 게 아니라 정식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해볼까!’ 사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남과 다른 것은 생각에 머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꿈을 향해 곧바로 움직였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패션 디자인이 일본에서 건너온다는 것을 알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공부해보니 일본 패션 디자인의 대부분이 파리에서 건너온다는 새로운 사실이 그녀를 다시금 자극했다.


실패를 겪은 꿈은 더 여물다
호기롭게 날아간 파리는 일본과 달랐다. 워낙 낙천적인 그녀이지만 일단 언어 때문에 기가 죽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학업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미국으로 유학지를 변경할 것인지 번민하던 이 시기에 친구가 자기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머리도 식힐 겸 시작한 일은 승승장구했다. 좋은 집과 고급 차… 그때만 해도 실패는 그녀의 인생과 한참 멀었다. 하지만 경기를 타면서 사업이 기울었고, 급기야 뭉개진 자존감과 10억 원의 빚만 남기고 잔치는 끝나버렸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2년 동안 집 안에 갇혀 지냈다. 파리에서 극과 극을 체험한 그때는 몰랐다. 당시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던 것은 10억 원의 빚이 아니라, 꿈이 사라져버린 현실이었음을! 나쁜 생각이 그녀를 센강 앞에 세운 날이다. 문득 어린 시절 밤마다 엄마 옆자리를 두고 형제끼리 다투던 기억이 났다. 작고 초라한 방 한 칸이 전부였지만, 누구도 가난하다고 서러워하지 않았다.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고를 감당하던 엄마의 인생이 너무 불쌍했다. 원래는 8남매였으나 두 자식을 돌을 못 넘기고 먼저 보낸 엄마 가슴에 자신마저 묻을 수 없었다. 뿌리가 깊고 단단한 나무는 메마른 땅에서도 샘을 찾는 법이다. 그날 잘나가던 켈리, 동굴에 숨어 지내던 켈리를 센강에 던져버린 힘의 뿌리는 엄마였다.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딸의 행복만을 소원하는 엄마가 바싹 말라 있던 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샘물이었다. 과거의 자신은 교만하고 무지했음을, 사업이 쫄딱 망해서 10억 원의 빚더미에 앉아 있음을 ‘인정’한 그 지점, 그때가 켈리 델리의 출발점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꿈은 사막에도 물길을 낸다
빚 10억 원에 공부는 사치였기에 다시 일을 해야 했다. 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미치도록 좋아서 할 수 있는 일, ‘초밥’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초밥을 만들려면 세계 최고의 초밥 장인 야마모토 선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트에서 파는 초밥이라고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초밥이 되지 말란 법 있나요?” 그에게 여러 번 거절당해 생겨난 단순한 오기가 아니었다. 초밥 장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한시간씩 줄 서서 먹는 최고급 초밥을 1만 명, 10만 명, 1천만 명에게 먹여보고 싶었다. 여러 번 거절하다가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그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저 정도 열정이라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야마모토 선생은 그녀의 초밥 스승이 되어주었다.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생선 손질법, 초 만드는 법, 재료 거래처, 기타 레시피 등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회사가 안정되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했다. 유럽 다른 나라의 법과 문화의 장벽을 넘기 위해 또다시 도움이 필요했다. 요식업계 최고의 글로벌 프랜차이즈라면? 바로 맥도날드였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유럽 맥도날드 CEO까지 오른 드니 하네칸 회장을 꼭 만날 거라고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이 자기 친구가 드니 하네칸의 수행 비서였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녀의 부탁에 감사하게도 자전거를 타고 초밥 매장으로 찾아와준 드니 하네칸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 가맹점 구축 관련 법적 문제, 패키징, 브랜딩 방향 등에 대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축복은 인생의 동반자요, 동업자인 제롬 카스탕Jerome Castaing과의 만남이다. 사업도 힘든데 남편과 함께 동업을?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게 뭔지 그녀도 안다. 그러기에 남편과 사업상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심지어 각자의 업무와 관련한 문의조차 직접 하지 않고, 담당 팀원을 통해 소통한다. 사업상 두 사람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남편은 자타가 공인하는 외조의 왕이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게 그녀 스타일.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꺼내놓는 이야기지만 남편은 허투루 듣지 않는다. 가볍게 나눈 이야기를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핵심만 정리해서 회사에서 추진할 때가 많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그 어떤 선물보다 감사하고 큰 기쁨이다. ‘강심장’인 그녀도 프랑스 상류사회에서나 엘리트 직원들 사이에서 언어나 문화 때문에 주눅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남편은 눈치채고 “켈리는 언제나 창의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먼저 칭찬한다. 남편의 그런 태도를 정말이지 그녀는 존경한다.


모두와 함께하는 꿈의 선순환 ‘윈윈윈’
탄탄한 회사를 운영하며 돈을 많이 버니 세상 사람들은 그녀에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돈많고 몸 건강해도 시간이 없다면 불행하다는 게 그녀 생각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간 부자’가 되고자 애쓴다. 엄마와 형제자매들, 친구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또 그럴 여력이 생겼다. 그녀가 챙기는 모든 것에는 물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내다 보니 그녀는 또 자연스레 ‘관계의 부자’가 되었다. 가족은 물론, 힘든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 봉사로 연을 맺은 인연들, 그녀 인생과 사업의 역전에 함께해준 스승들, 직원들, 가맹점주들, 사업 파트너들, 그들 모두 그녀가 행복한 이유다.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관계를 맺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줄 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녀 역시 건강한 관계 가운데 수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이제는 받은 도움을 나누어주며 모두가 ‘윈윈윈’하는 선순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스스로 “성공했다” “행복하다”고 정의한다.

(왼쪽부터) 남윤정 독자, 이정민 독자, 켈리 최, 김희진 독자

“달변가가 아님에도 온전히 집중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 힘은 그녀의 선한 의지와 진솔함이라고 봐요. 이 두 가지를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고요.” _남윤정 독자

“빛나는 열매 뒤에 숨어 있는 엄청난 노고, 긍정 마인드, 추진력, 치열한 공부, 사람에 대한 사랑까지 모든 내공을 전수받은 시간이었어요.” _이정민 독자

“행복은 자신에 대한 애정·열정과 사람을 향한 진심에서 우러나고, 기적은 움직이는 자에게 나타난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와닿았어요.” _김희진 독자


켈리표 간장과 매출 1조 원을 향하여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니?” “응!” 어느 직원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매일 아침 일어난 직후, 머리와 가슴에 소망을 각인한 날이 얼마였던가! 그렇게 새긴 소망은 현실이 된다. 몸과 영혼이 정체되지 않고 꿈을 향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처럼 지금도 그녀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더 큰 행복을 펼쳐갈 꿈을 되뇌고 새긴다. 전 세계 어느 마트에 가든 만날 수 있는 타바스코와 콜라, 그 옆에 기적의 소스, 마법의 소스 ‘켈리표 간장’을 함께 세우는 일이다. 또 연 매출 1조 원에 도달할 목표도 세워놓았으며, 현재의 코로나19 같은 갑작스러운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나도 끄떡없이 1백 년 이상 지속되는 탄탄한 기업이 될 준비 역시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꿈 역시 진행 중이다. 내년 이맘때쯤 그녀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눈부신 햇살과 파도와 뒹굴고 있을 것이다. 이번 세일링 여행은 3년 여정으로 최종 도착지는 우리나라다. 바다 위에서도 마냥 쉴 생각은 없다. 한때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찌질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함칠 준비를 SNS에서 하고 있는 중이다. 가장 힘들었을 때 자신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그녀 역시 그들에게 ‘소소한 잔소리’ 같은 도움이라도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글 황혜정 |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