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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400호 기념 전시 <행복을 만나다>
하루 세 시간씩 10년간 노력하면 누구나 무언가 이뤄낸다는 1만 시간의 법칙대로라면, 1987년 9월호를 시작으로 33년 4개월간 잡지를 펴낸 <행복>은 3만 시간 동안 무엇을 이뤘을까. 우리나라 라이프스타일 역사를 ‘그때’ ‘그’ 시선으로 매달 통찰한 <행복>. “생활의 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사람의 정다운 벗”으로 지낸 4백 개월을 기념하며 12월 3일부터 18일까지 디자인하우스 갤러리 모이소에서 뜻깊은 전시를 열었다. 팬데믹 상황에 사전 예약제로 오붓이 모여 4백 권의 잡지를 함께 읽고 나눈 독자들, <행복>과 참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두 사진작가의 전시 현장을 지상 중계한다.

두 작가와 맺은 인연을 <행복> 과월호 사진으로 만나는 작은 자리도 마련했다.

구본창은 사라져가는 것, 작은 것, 불완전한 것, 다소곳한 것들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사물과 고요히 교감한다. 대상과 배경을 채우고 비운다. 그렇게 완성한 사진은 ‘그’ 존재의 증명인 동시에 부재의 증거다. 바 로 구본창의 ‘비누’ 시리즈.

백과사전. 수많은 말이 책으로 묶이면 단단한 침묵이 된다. 박찬우의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묵언을 들어준다. 그리고 들려 준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내고 찍고 중첩한 박찬우의 ‘engram’ 시리즈. engram은 ‘기억흔적’이라는 심리학 용어다.
01 구본창ㆍ박찬우 2인전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다. 구본창은 <행복>에 집을 세 차례 공개했고, 2000년대 초 유명 인물을 모델로 삼은 <행복> 표지를 찍은 작가였으며, 2003년 ‘그녀의 드라마’ 캠페인에서 여성 오피니언 리더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후 한국 현대사진 대표 작가로서 활동하는 중에도 최근까지 <행복>을 위한 화보 작업에 참여했다. 1997년부터 <행복>과 함께한 박찬우는 남다른 취향을 지닌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라이프&스타일’, 리빙 화보 ‘감성 아이디어’ ‘건축가가 지은 집’ 등 주요 칼럼을 매달 촬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구본창의 대표작 ‘백자’와 ‘비누’ ‘지화’ ‘incognito’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박찬우를 예술 사진으로 견인한 ‘stone’ 시리즈, 시간과 공간을 중첩한 ‘engram’ 시리즈가 그 맞은편 공간을 채웠다.

구본창



1988년 2월호 구본창의 여의도 아파트 시절
6년 만에 고국에서 느낀 ‘낯섦’. 당시 그의 심경은 아파트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음울함을 나타내는 푸른색 거실, 회색으로 마감한 벽과 문, 어두운 조명과 조용한 재즈가 흐르는 공간. 민감하지 않은 이에게는 모던하게도 읽힐 수 있던 그의 집이 사실은 절망을 얘기하고 있었던 게다.



2000년 11월호 표지 모델 윤정
구본창은 2000년 9월호 배우 이혜숙을 시작으로 2001년 9월호까지 모델 윤정, 배우 김미숙·심혜진·김성령, 동시 통역사 배유정, 소프라노 조수미 등을 모델로 <행복> 표지를 촬영했다. ‘표지이야기’ 기사 안에서 가족 또는 특별한 인연과 함께한 유명인들의 사진도 함께 담겼다.



2006년 4월호 교토의 천연염색 작가 심연경씨
전통 공예품 오비를 가업으로 삼은 교토의 야마구치 다카시 씨와 결혼해 105년 된 집에서 아들딸과 사는 심연경 씨. 작가 구본창의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오비는 기모노를 묶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묶는 것이다”라며 사뭇 비장하던 이들이 갑자기 일본 전통극 교겐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2015년 2월호 백미예찬
순백색을 사랑하는 한민족의 설 명절을 축하하며 잡스러운 맛이 섞이지 않은 백색의 음식, 그 白味를 화보에 담았다. 곧 흰떡, 만두와 밀쌈, 두부, 국수, 백반, 죽, 백설기까지 그야말로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구본창은 천, 그릇까지 직접 준비하며 白味의 百美를 담았다.


박찬우



2005년 7월호 天下寒凉
‘북한산 계곡으로 떠난 현대판 고전 피서’라는 부제가 붙은 화보를 위해 여름날, 스태프들이 한복·장기판·목침·지게·수박까지 짊어지고 바위산을 올랐다. “선비라도 된 듯 한량寒凉을 즐기니 세상 어느 한량閑良도 부럽지 않더이다”라는 기사가 거짓부렁 같았지만, 잡지에 인쇄된 사진을 보니 ‘하늘 아래 가장 시원한 풍경’이긴 했다.



2008년 9월호 화가 이강소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말하던 블루칩 작가는 촌부 같은 담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맑은 웃음과 노작가의 진중함이 함께 묻어나는 표정이 좋았다. “왜 그 좋은 재능 가지고 작품을 안 하고 있냐”라는 화가 이강소의 말이 사진가 박찬우의 작업을 예술 사진으로 넓히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3년 1월호 대한성공회 카타리나 수녀
‘대한성공회 성가수녀회’. 다름 아닌 수녀원으로 일반에 쉬이 공개되지 않는다. 특히 이곳은 ‘금남의 집’. 어렵사리 들어간 곳에서 박찬우는 ‘일, 기도, 공부’로 빼곡히 짜인 수녀님들의 일상을 살폈다. 카타리나 수녀님과 눈 내리는 명동 거리도 거닐었다. 아이스크림을 사드리자 수녀님이 눈처럼 웃었다.



2007년 7월호 건축가 조병수 씨의 ㅁ자 집
가로세로 13.4m의 정사각형 집은 기이하도록 아름다웠다. 바깥에서는 드러난 문도, 창도 없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 한가운데 수정원이 있고, 그 수정원을 모든 방에서 바라볼 수 있게 통유리창이 나 있는 집. 공간을 찍는 사진가 박찬우에게 기억에 남는 집이다.


02 <행복이 가득한 집> 400권 아카이브

<행복>의 표지 연대기를 볼 수 있도록 진열해놓은 최근식 작가의 레일셸프. 그동안 변화해온 잡지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400호 기념 전시가 열린 모이소 전경.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러그와 간접조명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 베르너 판톤 하트 셰이프 콘 체어.
1987년 9월 창간한 <행복이 가득한 집>은 미국의 인테리어 매거진 와 판권을 공식 제휴하고, 주거 문화부터 음식 문화, 패션, 뷰티, 문화 예술을 총망라하는 대한민국 대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매년, 매달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을 발굴하며 <행복>이기에 가능한 깊이와 진정성으로 ‘더 나은 생활’을 제안해왔다. 편집부는 우리 역사에 중요한 사료로 남을 4백 권의 <행복>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다. 디자인하우스 사옥 지하 1층에 자리한 갤러리 모이소에 <행복> 아카이브를 마련한 것. 사전 예약 시 누구나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종이 잡지와 디지털기기를 통해 400개월의 라이프스타일 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호의 글씨체와 표지의 주제가 바뀌어가는 모습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솟아났다. <행복>을 거쳐간 많은 이의 애정과 헌신,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물씬 풍겨 나왔다.

비트라를 대표하는 암체어, 그랑 르포와 USM의 수납가구로 꾸민 코너. 안락한 착석감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암체어와 티 트롤리, 조명, 스크린, 벽 선반까지 아르텍 가구로 꾸민 공간.

의자 혹은 책을 꺼내는 사다리로 다채롭게 활용 가능한 비트라의 스툴-툴.

앉았을 때 나만의 독립 공간을 만들어주는 아르니오 오리지널의 볼 체어.

<행복> 400권을 e-book으로도 만날 수 있다.
전시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독자들은 각자에게 의미 있는 해(年)와 달(月)의 잡지를 꺼내 읽으며 당시 기억을 조금 더 선명하게 되뇌었다. 독자 서미원 씨는 “외국에 살다가 2005년 귀국해 <행복>을 정기 구독하며 서울 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987년 9월생 아들이 있어 더욱 뜻깊은 잡지입니다. 80살이 되어도 구독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부탁드린다.”는 감사 인사를 글로 남겼다.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잡지를 읽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비트라, 아르텍, 유에스엠, 몬타나, 스트링, 루이스 폴센, 쿤식의 가구와 던-에드워드의 페인트, 유앤어스의 러그, 이솝의 향 등이 한데 모였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공간을 위해 각각 독립적으로 구획하고 가구를 배치했다. 북 라운지 설치는 2016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이너스 초이스>로 인연을 맺은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루밍의 박근하 대표가 맡았다. 전시는 12월 18일 막을 내렸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기에 우리의 세계는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


4백 권의 <행복>을 모으기까지…
편집부 책장에도, 디자인하우스 사내에도 수많은 <행복>이 꽂혀 있지만, 이것을 다 모아보니 아쉽게도 80여 권의 <행복>이 비었어요. 그렇다고 영인본으로 수장고에 보관하는 책을 전시할 순 없었고요. 이 빠지듯 빈 과월호를 어떻게 모으나 고민하다 독자들께 도움을 청하기로 했지요. 깨끗하게 잘 보관하다 기증해주신 독자 스물네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곽경희, 김위한, 김윤희, 김주순, 김준현, 김춘화, 박유미, 백운자, 서기종, 손진, 송수진, 송혜자, 신세자, 신은주, 안진희, 이소라, 장성옥, 장지성, 전순이, 정연옥, 천둘선, 최시영, 한선주, 황재연


Interview 400호 기념 전시 공간 디렉터
루밍 박근하 대표

“디자인 가구를 통해 <행복> 읽는 즐거움을 더 느꼈으면 합니다”

박근하 대표가 앉은 의자와 테이블은 비트라, 펜던트 조명은 루이스 폴센, 책장은 몬타나 제품.
<행복> 400호 기념 전시를 함께 기획했는데 감회가 어떠한가?
전시에 함께하게 되어 굉장히 영광이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중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잡지라고 생각한다. 타 매체에 비해 폭넓은 연령대와 내공도 더욱 깊이 있다고 생각한다. 편집장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는데, 선뜻 응했다.

이곳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랐나?
텅 빈 공간을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처럼 책만 나열한 공간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데 <행복이 가득한 집>이지 않나.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로망인 집을 연출해보면 어떨까!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읽는 거다. 2008년 오픈해 이제 13년 차를 맞이한 루밍 고객들에게 유독 사랑받는 디자이너 가구로 채워서 관람객이 이곳에서 온전히 즐기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브랜드 중 선택하는 것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루밍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가 비트라와 아르텍이다. 그 가구들을 메인으로 그와 잘 어우러지는 수납장과 의자를 찾았다. 비트라처럼 스위스에서 시작한 브랜드 유에스엠, 아르텍과 잘 어우러지는 스트링 시스템, 어느 곳에나 잘 어우러지는 몬타나. 특히 입구에 배치한 베르너 판톤의 하트 셰이프 콘 체어는 화사한 컬러와 모양의 의자로 모두를 환영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옆에 세운 몬타나 와이어 책장도 베르너 판톤이 디자인한 제품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랑 르포 라운지체어는 허먼밀러의 임스 라운지체어를 제외하고 비트라에서 선보인 유일한 라운지체어다. 각도 조절도 가능하고 굉장히 안락해 자신있게 추천한다.

공간 디렉터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하나 꼽아달라.
장 프루베 가구로 꾸민 공간이다. 40대가 되다 보니 무게감 있는 공간에 대한 열망이 생긴 듯하다. 언젠가 집에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은 스타일이랄까. 몇 년 전까지 북유럽이 대세이던 가구 시장에 요즘 프랑스 바람이 부는 중이다. 알바 알토와 더불어 장 프루베가 디자인한 가구가 인기가 많다. 샤를로트 페리앙을 시작으로 르코르뷔지에, 장 프루베 등의 가구가 주목을 받는 것 같다. 특히 스탠다드 체어는 학교에서 사용하기 위해 디자인한 의자로 어느 곳에나 잘 어울린다. 최근식 작가의 레일셸프 앞에 장 푸르베 라운지체어와 테이블을 배치했다.

완성된 공간은 만족스럽나?
물론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곳을 찾은 모든 분이 <행복이 가득한 집> 400권을 보는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셨다면 더할 나위 없다.

글 최혜경, 김민지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스튜디오 집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