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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종학 위로하는 꽃
공기가 아무리 맑아도 맘 놓고 들이마시지 못하는 수상한 시절. 김종학 화백의 그림은 그럼에도 봄은 온다고, 봄이 오면 늘 그렇듯 만물이 생동한다고 기운찬 위로를 전하는 듯하다.

2016년 조현갤러리에 전시한 그림 '수세미 (Cucumber)' 앞에 선 김종학 화백.
화폭을 가득 채운 원색의 꽃들이 저마다 자기를 보라는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기운생동氣韻生動’하다. 설악산에서 30년 넘게 살며 그곳의 자연, 특히 꽃을 많이 그린 화백의 이름 앞에는 늘 ‘설악산의 화가’ ‘꽃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백화만발한 화백의 그림은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지만, 미술 관계자들은 소재가 꽃이라는 이유로 대개 그림을 반기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는 설악동 집에서 혼자 지내니까 어느 순간 자연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더군요. 자연 앞에서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 에고ego를 많이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김종학 화백은 마흔 즈음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설악산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세상을 등지려고 마음먹은 화백에게 다시 그림 그릴 기운을, 그래서 살아갈 힘을 준 것은 다름 아닌 그곳의 대자연이었다. ‘스스로 그러한’ 질서에 따라 무심하게 피고 지는 꽃들 앞에서 ‘엘리트 화가’라는 에고는 미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화백은 누구의 기대도, 시선도 상관하지 않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설악의 자연, 특히 ‘원색의 근원’인 꽃을.

설악산의 대자연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에서 백화만발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종학 화백.
화백은 꽃을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세밀하게 그리지 않고 ‘마음대로’ 그린다. 이달 <행복> 표지작인 ‘과반-풍경’ 이나 ‘닭 나들이’ 작품에서처럼 꽃에서 본 “선, 색, 면의 요소들을 추상적으로 배치”하고 때로는 동화적으로, 때로는 우악스럽게 화면을 구성한다. “캔버스에 엄청나게 크게 그린 꽃들을 산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보면 실제로는 아주 쪼끄마해요. 또 며칠 안 피고 금세 지는 꽃들이에요. 산속을 누비면서 구석구석 열심히 관찰했지요.” 자기 나름의 오묘한 색과 형태를 지녔지만 너무 작거나 흔해서 눈여겨보지 않는 꽃, ‘잡초’라 불리며 무리로만 여겨온 꽃. 화백은 자신과 닮은 이 꽃들을 저마다의 진한 얼굴로 그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화백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걸 알아보는 매서운 눈을 지녔다. 1960년대에 조선 시대 목가구와 민속품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농기구까지 모았는데, 당시에는 집집마다 흔하게 있던 그 물건들을 누구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투박하지만 이유 있는 옛 물건의 형태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알아보았고, 이는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동화적인 꽃 그림 ‘닭 나 들이’. ‘닭 나들이’, oil on canvas, 2001

김종학 화백에게 사람은 걸어 다니는 꽃이다. 최근에 조현갤러리에서 화백이 그린 초상화를 모아 전시했다.

“사람이 꽃 같고 꽃이 사람 같다”
사람들은 화백의 꽃 그림에 열광하지만 그 자신은 설악산의 겨울 풍경을 그리는 일도 즐긴다. 색이 빠져나가고 선만 남은 겨울 풍경은 선禪적인 동양화 같기도, 시詩적인 추상화 같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전시한 초상화는 설악산으로 들어가기 전, 뉴욕 유학 시절부터 그려온 것이다. 딱히 멋지거나 아름답지 않은 얼굴들인데, 화백에게는 “걸어 다니는 꽃”과 같다. 애정을 갖고 살펴볼수록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는 꽃처럼 사람 얼굴도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열린 아트부산&디자인에서 선보인 화백의 작은 꽃 그림.
여든이 넘은 화백은 요즘 매일 아침 10시면 작업실에 나와 그림을 그린다. 바닥 한가득 깔아놓은 대양 같은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고 서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성실하게 채워나간다. 설악산에서 내려와 부산 해운대에 자리 잡은지 5년이 되었다. 화백은 여전히 꽃을 그리고 겨울 풍경을 그리고 사람 얼굴도 그린다. “주말도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주 모범적인 화가로 생활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설악산을 활보하던 시절이 지금을 받쳐주는 것 같아요. 두세 달 매달려야 하는 4×10m 정도의 대작도 그리고. 이렇게 그림 그리다가 세상을 떠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살면서 좌절할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말이 있다. 화백의 삶을 반추하면 맞는 말이지 싶다. 그는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것 같은 막막한 시절에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냈다. 지금의 우리를 위로하는 건, 그렇게 꽃피운 그림만이 아니라 그림에 각인된 화백의 삶, 그 이야기가 아닐까.


김종학 화백은 1937년 신의주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35년간 설악산에 머물며 주변의 자연 풍경, 특히 꽃을 그렸고, 부산 해운대에서 지 내는 요즘도 ‘모범적인 화가’로 그림을 그리며 전시를 열고 있다. 2011년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했고, 올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초기작과 신작, 목가구·민예품 컬렉션을 아우르는 전시를 개최했다.

글 박진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