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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활동가 김산하 박사 인간 중심에서 생명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인류세의 대멸종 속에서 어떻게든 생명 다양성을 지키고자 애쓰는 한 사람.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인 김산하 박사와 아름드리나무 그늘 아래 마주 앉았다.

이화여자대학교에 자리한 생명다양성재단은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립한 공익 재단법인. 김산하 박사는 이 재단의 사무국장이다.
“그들은 나무에 앉아/ 자신이 앉아 있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중략) 그리고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을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은/ 톱질을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톱질을 계속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톱질하는 사람들’

누가 사람들에게 톱을 쥐여주었을까? 누가 신과 인간을 이어준다고 믿던 우주수에 올라 제가 앉은 가지를 자르게 했을까? 자연의 무질서를 인간의 합리적 지성으로 통제함으로써 인간 진보의 거대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고 부추기던 이들은 이제라도 저 추락에 대해 답해야 하지 않을까? 어서 톱을 던지고 내려오라고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와 함께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은 바로 우리가 앉은 가지를 자르고 있는 인류세의 톱질처럼 보인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났다는 페름기 절멸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는 인류세의 대절멸 속에서 생명 다양성 방주에 한 생명이라도 더 태우고자 애쓰는 한 사람을 만나러 갔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비숲> <김산하의 야생학교> <STOP!> <습지주의자>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산하 박사가 바로 그이다.


숲에 생명이 사라지는 이유
이화여자대학교 안쪽으로 들어서자 도심에서 보기 힘든 아름드리나무들이 맞아주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의 근육질 줄기를 따라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아득한 수관 사이로 긴팔원숭이가 건너갈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그이와 마주 앉았다. 나는 뜻밖에 거목을 만난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채 “숲이 참 좋군요?” 하며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그이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학교 숲의 조경이 점점 후퇴하고 있습니다. 가지를 함부로 자르고 하층 식생을 단조롭게 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설마 멀쩡한 가지를 자르랴? 태풍에 대비해 구조적으로 취약한 가지를 자르겠지 싶었다. 그이가 숲 한쪽에 있는 거대한 플라타너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나무 왼쪽에 있는 흉터를 보십시오. 수십 년 묵은 건강한 가지를 잘라버렸습니다.” 2006년부터 이 캠퍼스를 지켜보아왔다는 그이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이 점점 더 가공의 자연을 원하고, 날것으로 된 자연을 싫어합니다. 숲바닥에 낙엽이 쌓이거나 풀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지저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벌레 한 마리만 나타나도 민원을 넣습니다. 조경을 담당하는 이들이 낙엽을 긁어내고, 풀을 뽑아내고, 살충제를 뿌립니다. 먹이식물이 아닌 맥문동이나 비비추를 잔뜩 심어놓으니 곤충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아, 나는 무릎을 쳤다. 숲으로 올라오면서 맥문동의 보랏빛 꽃과 비비추의 넓은 잎에 감탄하던 나의 생태적 무지가 부끄러워졌다.

김산하 박사는 우리 주변 숲이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잃어가고 있음을 경계한다.

2015년에 출간한 <비숲>은 김산하 박사가 다양한 생명체를 품은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안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담은 책이다.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 내에 자리한 그의 공간.
“학교뿐 아니라 아파트며 공원을 비롯한 도심 조경이 모두 저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여치나 귀뚜라미나 사마귀 같은 곤충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매미만 남았지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빈약한 자연 체험이 걱정입니다. ‘생태 망각 기준점 이동 신드롬’이라는 게 있어요.” 다니엘 파울리라는 어류학자가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새로운 세대는 자기가 경험한 생태 환경을 기준으로 삼기에 과거에 소멸된 생물종을 알지 못하는 세대 간 지식 소멸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멸종된 검치호랑이나 매머드를 당연하게 생각하듯 부모 세대가 익숙하게 접촉하던 생물들이 사라져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자식 세대는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년 시절 자연에 대한 원체험이 중요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기상이변이 잦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산불, 폭염, 홍수, 태풍, 폭설이 그치지 않는 걸 보면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를 말하는데요, 인류세와 기후변화를 인정하지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올해와 같은 상황이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후변화가 와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눈 감고 사는 사람인 거죠.”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평소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인간과 자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뒤늦게 이 정도 수준의 각성만 하는 것은 너무 여유로운 태도입니다. 개인적 차원이든, 기업적 차원이든, 정부적 차원이든 실천이 미약한 상황입니다.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채택한다든지, 소비자들이 저탄소 제품을 구매한다든지 이런 구체적 행동이 없어요. 정부도 아직까지 탈석탄 에너지 정책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냉난방을 하고, 수십 건씩 배달을 시키고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도시의 실체를 보려면 도시에 자원을 공급하는 토지의 면적까지 봐야 해요. 지구상 육상 면적 중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이 71%쯤 되는데, 그 땅의 절반이 농지입니다. 인간이라는 한 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지구 생명이 함께 사용해야 할 육상 면적의 반을 빼앗은 것이죠.”

“박사님은 강연을 다니면서 기업과 정부 관계자도 만나실 텐데 그분들 반응은 어떤지요?” “제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해서인지 잘 안 부릅니다만, 결정권자는 큰 관심이 없어요. 모두 남 탓만 합니다. 기업은 소비자 탓을 하고, 정부는 기업 탓을 하고, 방송국은 시청자 탓을 합니다. 미국에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라는 회사가 있어요. 이 회사의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 회장이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정부 안 믿고, 기업 안 믿고, 오직 국민만 믿는다고 말입니다. 국민이 움직여야 기업과 정부가 움직인다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는 왜 위기가 닥쳤는데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는 걸까요?”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저는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성향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사람들도 모두 삶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보다 큰 단위가 세계이고, 우주이고, 자연인데 전체적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사회가 구축해놓은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성공만 추구하는 소시민을 기르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정책 결정권자가 산업화의 과실을 따 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맞습니다. 한국은 지금 최상위 부자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그저 ‘먹고살 만한 수준’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공공연한 거짓말입니다. 이제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모두의 삶을 통찰해야 합니다. 최근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잊고 있던 문제들, 가령 노동자 문제, 여성 문제, 소수자 문제 등 고민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비라는 하늘과 숲이라는 땅의 맞닿음과 상호 침투. 지구상의 가장 완벽한 자연 현상. 정글, 밀림, 열대우림. 이것이 바로 비숲이다. 나는 비숲에 살았다.” -<비숲> 중

벼랑 끝에 매달린 생명 다양성
“생명다양성재단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데요, ‘생물 다양성’이 아니라, ‘생명 다양성’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생물 다양성은 생물학적 용어로 기술적 느낌이 납니다. 생명 다양성은 기술적인 걸 포함해서 인문학적 느낌이 나지요.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사람의 문화까지 포함해서 모든 삶의 방식을 아우를 수 있는 포용적 단어로 선택했습니다.” “다양성이 화두가 되는 것은 그것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일 텐데요, 지금 어느 정도인가요?” “지구의 건강 검진표라고 부르는 IPBES(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보고서가 있어요. 2019년 발표
한 내용에 따르면, 지금 약 1백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포유류의 경우 생물량으로 치면 인간이 36%, 가축이 60%, 야생동물은 겨우 4%밖에 안 됩니다. 그들은 벼랑 끝 에 매달려 있어요. 곤충은 포유류보다 열 배나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고요. 멸종의 60~70%가 1970년대 이후에 일어났어요. 대부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집중되었으니 우리 책임이 크죠. 우리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데, 사실 공존은 물 건너간 것이고 죽어가는 나머지 생명들을 최선을 다해 살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도시 바깥에는 아직도 넓은 야생의 숲과 들, 그리고 동물과 곤충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도시와 야생을 딱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죠. 그런데 도시의 실체를 보려면 도시에 자원을 공급하는 토지의 면적까지 봐야 해요. 지구상 육상 면적 중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이 71%쯤 되는데, 그 땅의 절반이 농지입니다. 인간이라는 한 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지구 생명이 함께 사용해야 할 육상 면적의 반을 빼앗은 것이죠.” “우리나라의 동식물들은 어떤 상황인가요?” “한국은 이미 한꺼번에 많은 동식물이 멸종해 사람들이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죠. 생태적 풍부함은 최상위 포식자로 이야기하는데, 한반도에는 호랑이와 표범과 곰과 늑대와 여우와 스라소니까지 있었어요. 먹이동물까지 생각하면 종의 다양성이 무척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다 사라져버렸지요. 지금도 멸종 위기 리스트에 있는 맹꽁이라든지 흑비둘기, 수원청개구리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최근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하셨습니다. ‘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 선언’인데요, 인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동물들 이야기가 그 내용은 심각하지만 형식은 신선했습니다.” “정보와 지식으로 는 행동이 변하지 않으니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타자 되기’를 일상으로 삼는 작가들로 하여금 동물들 이야기를 하도록 한 거죠.” “크릴새우 이야기는 처음 알았습니다. ‘바다의 쌀’이라고 부를 정도로 바다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크릴새우가 80%나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세계 크릴 어획량의 상당수를 우리나라가 잡고 있다는 것을요.” “사실 크릴유가 별다른 효능이 있는 게 아닌데, 한 회사에서 광고를 하면서 그렇게 됐어요. 한국은 경제력이 강하기 때문에 소비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잘못 선택하면 생태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칩니다.”

“‘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 선언’을 보면서 저는 모든 생명과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을 떠올렸습니다. 흔히 애니미즘은 원시적 형태의 신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모든 생명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애니미즘으로부터 굉장히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의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 애니미즘을 무시함으로써 생긴 후과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제가 존경하는 나카자와 신이치라는 학자는 ‘옛날에는 동물과 인간이 쉽게 치환되는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웅녀가 사람을 낳을 수 있는 거죠. 사람이 되기도 하고 곰이 되기도 하는 그런 걸 대칭적 관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비대칭적 사고가 만연하고, 자연과 나를 동등하게 보는 사고가 무너졌습니다.”

나는 북해도의 아이누족이 떠올랐다. 그들은 사람을 아이누라 부르고,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과 주변 세계를 가미(神)라 불렀단다. 덕분에 그들은 일생을 ‘신과 함께’ 살다 갈 수 있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그것’이라 부르는 우리는 ‘물건과 함께’ 살다 가고 있다. 일본의 철학자 야마오 산세이가 펴낸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에서도 그이는 “우리가 너무 대문자 신(GOD)에만 주목하지말고, 소문자 신(god)에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에콰도르의 헌법에는 애니미즘이 보장되어 있다고 한다. 열대우림의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땅과 절벽도 있는 그대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선언이 담겨 있단다.


나만의 야생학교를 만드는 법
“박사님이 펴내신 <김산하의 야생학교> 발상이 재밌습니다. 혼자서 가상의 학교를 만들고, 선생님이자 학생이 되어 야생의 이야기를 쓰고 계십니다. 일반인에게도 야생학교 입교를 권하시던데 어떻게 하면 자기만의 야생학교를 만들 수 있을는지요?” “일부러 야생을 찾으러 나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야생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우리가 처한 가장 중요한 문제인 환경 파괴와 생명의 사라짐에 대해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을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커피를 마실 때 일회용 잔을 사용한다면 플라스틱 뚜껑을 누군가 처리해야 하거나, 바다에 둥둥 떠다닐 걸 생각하면서 텀블러를 준비하는 거죠.” 직접 대면하는 자연이 아니더라도 나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생활용품, 음식 문화와 야생의 관계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득 어깃장을 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박사님은 개인의 생태적 각성과 실천을 중요하게 말씀하시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시민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먹다가 성분 표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호두에, 호주 밀가루에, 중국 팥 앙금이 들어 있었는데, 그 밖에 달걀이나 우유나 식용유는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호두과자 한 알이 만들어지기 위해 무수한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육대주의 재료가 오대양을 건너왔습니다. 한입에 지구를 털어 넣는 기분이었지요.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물건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현명한 소비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죠. 그러니까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건데, 개인이 변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이 모든 정보를 알고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의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행복> 독자를 위해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 “첫째,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세요. 둘째, 가능하면 재래시장을 다니세요. 재래시장은 포장이 안 된 게 많습니다. 셋째, 에코백에 비닐봉지와 반찬통을 넣어 가세요. 팁이 있어요. 가게 주인한테 ‘사과 몇 개 주세요’ 하면 벌써 담을 비닐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그 전에 ‘제가 가져온 비닐 써도 되죠?’ 하고 묻는 겁니다. 넷째, 육식을 줄이세요. 육식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일 먹는 사람은 이틀에 한 번으로라도 줄이세요.” “박사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야생 영장류를 연구하셨죠. 자바긴팔원숭이를 보고 느낀 생각을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땅에 붙어서 살고 있는데 그들은 3차원의 숲을 누비며 삽니다. 아기는 엄마 배를 붙잡고 매일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그게 그렇게 부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도 정글에서 저렇게 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뱀이나 호랑이에게 잡혀 죽을 위험도 있지만, 차에 치여 죽는 거보다 나은 것 같아요.”

나는 은하수에 닿을 듯 아득한 열대우림의 나무 위에서 태어나, 나무와 나무 사이를 유성처럼 휙휙 옮겨 다니다가, 긴팔을 뽐내며 열매를 따고, 높은 곳에서 똥을 싸며 아득한 씨앗을 뿌리고, 바람과 빗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잠잠하면 우주의 적막에 주파수를 맞추는 긴팔원숭이를 떠올려보았다. 왜 그들이 살고 있는 숲은 1천 년 그대로인데, 호모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는 불모가 될까? 나는 한 생태 활동가의 눈빛에서 사람이 지나온 발자국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생명이 깃들기를 바라는 ‘바이오필리아(생명 사랑)’의 순수한 열망을 보았다.

글 반칠환(시인) | 사진 이주연 | 진행 류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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