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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화가 박현웅과 의학박사 오은영 나를 치유하는 찬란한 추억의 힘
‘국민 육아 멘토’ ‘국민 동심 화가’라는 타이틀을 떼어내고 보니 직업이 같다. 까맣게 잊고 살던 유년 시절을 알록달록한 작품으로 소환하는 화가와 행복하던 추억을 그러모아 상처를 다독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응축해내는 의사가 만났다. 이들의 진짜 직업은 동심 연금술사다.

화가로, 육아 멘토로 대중과 쉼 없이 소통해온 두 사람의 만남. 박현웅 화가의 동심 가득한 작품 세계를 동경해온 오은영 박사는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달성했다.
초면에 그림은 처음입니다만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 나오는 이야기다. 워킹맘이자, 엄마들이 부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육아 처방전을 전하는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에겐 두 번째 질문이 속수무책이었다. 늘 미루기 바쁘던 ‘인간 오은영’의 소소한 기쁨을 찾기로 다짐하고 향한 곳은 디자인하우스의 디자인갤러리 모이소.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혀버린 시대 ‘작업실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을 주제로 개최한 박현웅 화가의 개인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부모의 사랑이 아이 뇌를 발달시키고 예술이 아이 마음을 발달시킨다고, 엄마들에게 제가 늘 이야기하거든요. 저도 그림 감상을 참 좋아합니다. 박현웅 화가의 그림은 꽃 한송이도 마치 불꽃놀이처럼 역동적 에너지를 분출해요. 색감은 따뜻하고 이미지는 포근하지만, 인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 정신까지 다양한 에너지가 함축돼 있어요.”

그림 보는 심안心眼이 밝았다. 오은영 박사의 감상대로 박현웅 화가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살펴보면 세상살이의 잔정과 설움이 읽힌다. 작품에 등장하는 비밀스러운 소녀, 겁 많은 사자, 순수한 여우 등 정겨운 캐릭터가 긍정의 감정뿐 아니라 숨기고 싶은 인간의 본성까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늘 액자 밖에서 그림 속 이야기를 상상하던 오은영 박사가 오늘은 용기를 내 박현웅 작가와 함께 ‘나의 행복한 순간’을 직접 그려보기로 했다. 그가 내민 사진 속에는 그와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본 대지진 때 피신했던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 것이 가족사진이었대요. ‘나의 행복한 순간’ 클래스 참가자들도 대부분 가족사진을 가져오셨고요.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관계를 중요시하고, 가장 소중한 순간에도 관계에 관해 말하고 싶어 합니다. 저의 그림에서도 여행, 꿈 등의 소재는 하나의 장치일 뿐, 모든 작품이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어요. 그림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결국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고 성찰이 아닐까요?” 박현웅 작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오은영 박사는 밑그림을 그린 자작나무를 재단하고, 신중하게 색을 채워나갔다. 붓을 잡은 것이 학창 시절 미술 시간 이후 처음인지라 수월하지 않았지만, 인간 오은영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그림 그리기를 달성한 순간이었다.


‘Race’, acrylic on wood, 166×208cm, 2017

‘호크니와 함께’, acrylic on wood, 100×64cm, 2019
행복한 추억이 최고의 치유제다
“유년 시절은 우리 속에서 죽어버려 자기 순환기를 끝내면 시드는 그런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생생한 보물이며, 계속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라고 벨기에 작가 프란츠 헬렌스P. Hellens가 말했다. 동심을 그리고 치유하는 두 사람에게 유년의 추억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그림을 보고도 우리는 각자 다른 추억을 소환하고 감상에 빠져듭니다. 제가 ‘봉봉’이라고 부르는 풍선을 보고 젊은 세대는 비치볼을, 기성세대는 눈깔사탕을 떠올리죠. 오 박사님은 설렘으로 항해를 시작하는 열기구를 떠올렸고요. 무구한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어야 어른이 되어 어떤 일을 하건 순수한 열정을 발휘할 수 있어요. 내 마음에 온기가 남아 있어야 타인에게도 온기를 전할 수 있을 테고요.” 박 작가의 동심 예찬에, 오 박사가 말을 이었다.

“저의 본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고, 세부 전공으로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연구했어요. 0세부터 1백 세까지, 모든 연령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직업이죠. 이 직업을 통해 제가 배운 건 사람은 열심히 살아도 언젠가는 고통과 좌절의 순간을 경험한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시기가 다르고 종류가 다를 뿐, 인간이 막을 순 없어요.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본인의 인생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죠. 극복은 나중 문제고 그냥 겪어내야 하는데, 겪을 때 누구나 아파요. 그런데 아프다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피폐해지면 안 되잖아요. 돈과 권력, 명예도 그 순간에는 큰 힘이 안 됩니다. 내면의 힘이 필요해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죠. 부모님과 행복하던 순간, 그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인생의 고비에서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아요. 행복하던 추억이 인생의 좌절과 어려움에 맞서고 겪어낼 힘이 되어줍니다.”

내면의 힘을 키우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 ‘오은영의 버킷리스트’를 시작한 그는 ‘강아지 1백 마리 키우기’ ‘요알못의 베이킹’ 등에 도전하고 있다. 박현웅 작가는 ‘1년 동안 3백65개의 물건을 팔거나 기증하기’ ‘훌쩍 커버린 딸과 함께 한없이 걷기’를 자신의 버킷리스트에 담았다. 삶의 무게가 가슴에 철렁 얹힐 때 언제라도 꺼내서 보면 좋을 마음 처방전이다.


아들과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그림 그리기에 도전한 오은영 박사.

완성한 작품을 보며 박현웅 화가는 “색을 배합하는 감각이 뛰어나고, 그리는 과정에 즐겁게 몰입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라고 감상평을 전했다.

그림 잘 보는 법


예술 작품은 마음의 힘을 키우는 영양제다_ 의학박사 오은영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예술 작품을 보면 새로운 느낌과 감정이 확 일어납니다. 지쳐 있던 창의성이 탁 살아나고, 상상력이 증폭되기 시작하는 거죠. 눈으로 들어오는 여러 자극이 뇌에 전해지면 굉장히 중요한 일이 생겨납니다. 특히 그림은 아이만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영역이에요. 그림책 속 색감을 보고, 재질을 만져보는 경험도 좋아요.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뮤지컬을 보는 등 다양한 예술적 경험은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필수 요소입니다.

하나의 그림을 열 가지로 해석해보자 _ 조각화가 박현웅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나만의 이야기나 음악, 이미지를 떠올려보세요. 작가 의도와 전혀 다른 상상이어도 괜찮아요.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보는 이의 몫이니까요. 그림에 담긴 역사나 정보도 중요하지만, 그건 한쪽으로만 가리키는 하나의 손가락과 같아요. 우리에겐 열 개의 손가락이 있잖아요. 열 가지 생각을 해보세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입니다.

글 김경민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