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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수강 붓으로 느리게 채색하는 사진
처음 김수강 씨의 작품을 보았을 때, 당연히 수채화인 줄 알았다. 다소 거친 입자로 표현된 곳은 부분적으로 파스텔을 덧칠한 것이리라 추측했다.

“19세기에 유행했던 인화 기법으로 만든 사진이에요. 실크스크린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고요. 판화나 회화 기법이 활용되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김수강 씨는 자신의 작품들이 사진이지만 사진 같지 않은 이유가 검 바이크로메이트gum-bichromate라는 생소한 인화 기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촬영 방식은 일반 사진과 같지만, 찍어낼 때 수채화 물감과 붓 등을 활용한 수작업을 거치는 기법이다. 흑백으로 촬영한 내거티브 필름을 종이에 밀착 현상한 뒤 안료를 푼 물감을 붓으로 칠하고 말리기를 아홉 번쯤 반복하면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회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라고 불러도 저는 괘념치 않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사진의 공로를 강조하곤 해요.” 흑백의 원판에 물감을 칠하고 말릴 때마다 다른 색이 포개어지는 동안 작품은 점점 사진기를 떠나 작가의 붓끝에 자기의 운명을 맡기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원판 사진이 명암과 실루엣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므로 그는 사진기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기법에 대한 궁금증을 얼마쯤 해소하고 나서 다시 그의 최근작인 보자기 시리즈에 시선을 옮겼다. 색색의 고운 보자기들을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하다. 표지 작품에 쓰인 보자기는 흘러간 옛 영화에 나오는 사대부가 규수들의 비단 치맛자락 같다. 작품의 주인공은 보자기가 전부이니, 보자기를 찾는 데 고심했을 것 같다. 작가는 ‘실제 모델’로 삼았던 보자기를 슬며시 가져다준다. 그 찰나, 작가의 장난기 어린 눈을 보고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검은색 단아한 보자기는 어디 가고, 형광 초록색에 가까운 다소 조악한 면 손수건이 등장했다. 작품 속 보자기의 색상과 분위기는 영다르고, 무늬만 어렴풋이 닮은 손수건이었다. “말씀드렸듯이, 실루엣과 음영을 흑백 사진으로 잡고 색상이나 톤, 질감 등은 제가 물감과 붓으로 조절하니까요.

1 김수강 씨의 작업실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장식을 최소화하는 그의 작업과도 닮은 점이다. 오래 묵어 체온으로 데워진 앤티크 소품이 이곳의 유일한 군더더기. <행복> 5월호 표지 작품인 ‘보자기-014’(2004)를 벽에 잠시 걸었다.
2 ‘ In my hand’ 시리즈 중 하나인 ‘연필’(2002)
3 ‘보자기-003’(2007)

”김수강 씨는 어머니 반짇고리 속 자투리 천이랄지 연필, 우산 등 그의 일상에 널려 있는 사물 중 표정이 느껴지는 것을 택해 작업한다. 그것을 실제보다 좀 더 진한 여운이 느껴지도록 감정을 담는 것이 그의 일이다. “허섭스레기 같은 헝겊이지만, 묶고 주름을 잡아 촬영한 뒤에 시간을 겹겹이 쌓아가며 프린트를 하면 처음과는 다른 작품이 됩니다.” 물론 그가 사물을 택하는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과는 ‘정서적 화학 반응’을 하고 어떤 이들과는 그렇지 못하죠. 제가 사물을 택하는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내 성향은 이렇지’라고 미리 가정한 채 사람을 고르지는 않으며 문득 돌아보니 그들 안에서 어떤 정서가 묶여짐을 알 수 있듯 작품 속 오브제들 사이에도 공통 정서가 있겠다 싶어요.”

그렇다면 그 정서가 궁금하다. “일단 화면 안에 혼자 있더라고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숨어 있으려 하는데 제가 꺼내려 한 거고요. 원래는 잠잠하고 고요한 애들이에요. 잘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존재감이 있는 사물들이지요. 근데 그게 바로 저예요.” 도시락을 보자기로 묶어놓았을 때도 그런 존재감이 느껴졌다. 흔한 해석처럼 한국적인 정서나 모성애의 상징으로 보자기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김수강 씨에게 “왜 그 소재를 택했느냐?”만큼 곤란한 질문은 “그럼 다음엔 무슨 작품을 하겠느냐?”다. 이는 마치 연애를 끝낸 이에게 ‘다음엔 어떤 사람 만날 거니?’라고 묻는 것과 같단다. “다들 계획하며 살아가는데, 저에게는 그 ‘피’가 없어요. 항상 뒷일을 모르겠어요. 다음에 무엇이 올지….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사랑을 못할 것 같잖아요? 제가 작업을 할 때 그래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인 ‘해바라기’(1997)

* 김수강 씨는 지난 10년 동안 작업한 작품을 묶어 사진집을 발간합니다. 이를 기념하며 사진집 속 작품 및 신작 ‘보자기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시회가 4월 27일부터 5월 27일까지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문의 02-738-7776

프로필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사진가 김수강 씨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오랫동안 회화 작업을 해오던 그는 대학원 졸업전으로 검 바이크로메이트 기법을 통한 사진 작품을 전시하면서 사진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진가로서 국내 첫 전시는 1998년 갤러리 2000에서 열린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이며, 이후 개인전을 다섯 번 더 열었다. 공근혜 갤러리의 <한국 컨템퍼러리 작가 5인전>(2006) 등 20여 차례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