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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손열음 이제는 정말 음악이 필요한 시간
주목받기를 꺼리던 숫기 없는 강원도 소녀가 세계 무대를 누비는 젊은 거장으로 성장하기까지, 손열음의 곁에는 늘 음악이 함께했다. 음악은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으며, 연주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 돌아온 그는 우리 앞에 베토벤의 메시지를 꺼내 들었다. 음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 시대, 그가 이끄는 올해 음악제의 주제는 ‘그래야만 한다!’이다.

지금 손열음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기획과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고생한 만큼 의미도 각별하다.
유난히 숫기 없던 배우가 카메라만 돌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뜨겁게 폭발하는 순간을 알고 있다. 모두가 정량의 에너지를 지녔다고 믿진 않지만 어쨌든 모든 생물엔 에너지가 존재하고, 평소 그걸 얼마나 적절히 소진하며 사는지는 각자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다를 터. 양껏 쓰지 못한 채 집적된 에너지를 때때로 분출하는 구멍 역시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여기,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서른네 살 피아니스트가 있다. 일찍이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수상 기록을 차례차례 갈아치우고,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비롯해 세 개의 상을 휩쓴 인물. 한때 ‘떠오르는 샛별’이던 손열음은 이미 세계 클래식계의 ‘슈퍼스타’가 된 지 오래다. 피아노뿐인가. 중앙일보에 연재한 음악 칼럼을 묶어 책도 내고(<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1인 기획사를 차려 본격적인 기획자로도 나섰으며, 지금은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까지 맡고 있다. 우리가 아는 그는 다재다능한 30대 아티스트, 소탈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거장…. 하지만 이건 전부 ‘무대 위’ 손열음의 모습일 뿐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손열음은 ‘일이 없으면 종일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심지어 몸조차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평상시 어디를 가도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쉬움이나 절실함이 덜하지 않을까요? 저 같은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잘 증명하지도 못해요.” 그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첫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며, 나는 그가 왜 이토록 강렬한 연주자가 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안으로 파고드는 에너지를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분출하는 것, 그에게 ‘연주’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니 말이다.


뜨겁거나 혹은 차갑거나
최근 몇 년간 손열음은 유럽 무대에서 유난히 협연이 잦았다. 독일 하노버에 거주하며 종종 한국 무대로 돌아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 대륙을 오가는 비행기와 기차 안에서 보냈다. “제가 처음 유럽에 간 게 2006년이에요. 그 때부터 계속 활동하긴 했는데, 사실 기회가 지금만큼 많이 주어지진 않았죠. 오랜 시간 노력해온 것들이 이제야 결실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실제 그의 스케줄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1년 치 공연으로 빈틈없이 차 있었다. 다만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변하는 사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고, 그가 집에 틀어박혀 가만히 있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지금 독일에서 사는 곳이 2년 전 이사한 집인데, 사실 3~4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3월과 4월 사이엔 정말 집에만 있었어요. 집과 친해지는 시간이었죠.”

지난 6월의 리사이틀도 본래 5월로 잡아둔 일정이 코로나19 때문에 늦춰진 것이다. 4년 만의 국내 공연이었는데, 그때 연주한 음악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라 밝혀온 슈만의 곡들. 그는 최근 들어 베토벤과 차이콥스키도 좋아졌지만, 그래도 슈만을 다시 만나니 무척 편했다고 회고한다. 슈만의 음악을 들으면 가장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된다고. 사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그가 ‘이입’이란 단어를 체화하는 모습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가히 압도적이다. 손가락으로, 미간으로, 어깨와 입술로. 그의 음악은 섬세하게 흐르고 격렬하게 휘몰아친다. 드라마 <밀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손열음이 대단한 건 뜨거운 걸 냉정하게 읽어내서야. 그래야 진짜 뜨거운 게 나오지.” 물론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는 여전히 그가 어떤 연주자인지 선뜻 단정하기 어렵다. 뜨거운지 차가운지, 이성적인지 감성적인지. 다만 몇 차례 영상에서 마주한 그는 때로 불에 덴 듯 뜨거웠고, 종종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둘 중 한쪽에 가깝기보다는 그저 중간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확확 바뀌고, 어느 쪽으로든 좀 극단적으로 느끼곤 하죠. 사실 느낌이란 것도 이 분야에서는 재능이니까, 그걸 잘 왔다 갔다할 수 있는 건 연주자로서 축복이지 않나 싶어요.”

분명 클래식 음악은 모두에게 익숙한 장르가 아니다. 클래식을 어려워하고 그만큼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많다. 몇 달 전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에 출연했을 때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손열음’이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방송이 나간 후 저도 놀라긴 했어요. 저로선 평생 해온 일인데, 이렇게 이 분야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 많구나 싶었죠. 슬프거나 한 건 아니고, 그냥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기회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주자이기 이전에 애호가로서 손열음이 말하는 클래식의 매력은 ‘다양함’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각기 다르잖아요. 하지만 웬만한 취향을 다 만족시킬 정도로 카테고리가 다양해요. 지난 몇백 년간 전 세계에서 만든 음악이 쌓여 있으니까요. 클래식을 듣는 데는 단계가 있고 뭔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일단 내가 원하는 것만 듣겠다는 자세로 접근해도 충분해요.”



“누군가 나에게 음악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은 감히 답하고 싶지 않다. 그 대답은 내 음악과 내 인생이 대신 해주었으면.” -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중

그래야만 한다!
지금 손열음은 연주가 줄줄이 잡혀 있던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제17회 평창대관령음악제가 7월 22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2004년 대관령국제음악제로 처음 열린 이 행사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첼리스트 정명화&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자매 등 거장들의 손을 거치며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위촉된 건 2018년. 당시 “파격적 인선”이라는 평가가 안팎으로 쏟아졌지만, 최연소 예술감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 역시(강원도 원주 출신이다) 마냥 설레기만 한 건 아니었다. 부담도 컸고, 실제로 고사도 여러 번 했단다. “다행히 이미 음악제를 좋아하는 관객이 많았어요. 예전 감독님들이 닦아놓으신 부분도 컸고요. 거기서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올해는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이끄는 세 번째 음악제.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고 스태프끼리 손발도 잘 맞아 기대감만큼 자신감도 커진 상태였다. 다만 올해 초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는 ‘0’도 아닌 ‘-3’쯤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3이 어떤 의미냐 하면, 이미 오기로 한 연주자들이 ‘못 갑니다’라고 정확히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2주만 더 기다려달라, 1주만 더 기다려달라, 이렇게 계속 미루니까 어떤 일도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힘든 건 “그럼에도 이걸 왜 해야 하나?”란 질문의 답을 찾는 일이었다. 스스로 납득하고 남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답.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손열음은 결국 ‘하기로’ 결정했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하면 우리가 진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어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통제도 할 수 있으니 서로서로 배려하면 가능할 것이란 판단이 첫 번째였죠.

두 번째는 이제 사람들에게 정말로 음악이 필요한 시간이 됐다는 거예요. 올해 주제가 베토벤이잖아요. 그의 음악이 지닌 희망의 메시지를 어느 때보다 깊이 공유하고, 세포 하나하나로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이미 2018년부터 정해놓았다는 올해 음악제의 타이틀은 실제 베토벤의 노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토벤의 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구,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이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올해 음악제는 더 의미가 깊다. 과감하고 새로운 시도도 많아졌다. 손열음은 모든 공연의 아티스트를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만 꾸렸다. 강원도의 주요 명소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기획했고, 강릉 자동차극장에서의 ‘드라이브 인’ 콘서트도 준비했다. 이제 그가 예술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사실 전 지금 이 시기가 오히려 전통적 공연의 생명력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나 싶어요. 최근 온라인 공연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특히 클래식 음악의 경우 단적으로 말해 그 긴 연주를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요. 공연장에서 느끼는 진동이나 분위기, 이런 것을 배제한 클래식 음악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전통 방식만 고집할 순 없겠지만, 분명 달라진 시대에 부응하는 적절한 시스템이 등장할 터. 사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 과정이다.

인터뷰가 이뤄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무대 위,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 앞에 앉자 손열음은 완전 딴사람이 됐다. 그의 손끝에서, 표정에서, 온몸에서 음악이 흘렀다.
피아니스트로 존재하기 위해
평창대관령음악제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함께 막을 내리면 손열음은 다시 연주자로 돌아간다. 곧바로 이어지는 공연이 9월 클라라 주미 강과의 세 번째 리사이틀. 한예종 선후배 사이로 워낙 친하기도 하지만, 함께 공연할 때 그 누구보다 편안한 사람이란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전부 20세기 곡만 연주하기로 했어요.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가 중심이 되는 공연일 듯해요.” 이 공연이 끝나면 손열음은 다시 유럽으로 간다. 미리 잡혀 있던 일정은 일부 취소되거나 다음 시즌으로 넘어간 상태지만, 어쨌든 곧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사회적 인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저는 길을 좀 터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건 당연히 제 사심 때문이지만, 만약 여기서 포기하고 꿈을 접는다면 그건 제 꿈만 접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매년 한국에서 음악제를 기획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클래식이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예요. 그리고 그 와중에 저는 이러한 사회적 나와 손열음이란 개인이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사는 게 꿈이지요.”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꿈을 꾸는지 알 것 같았다. ‘나로 살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이런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그렇게 분리되어야만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이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사회적 손열음으로서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했을 때 잘되지도 않고요. 완전히 ‘나만의 공간에 있는 내가’ 연주하는 것이어야 해요.” 그의 말을 들으며 사실 마음이 좀 먹먹해졌다. 그는 연주자로서 계속 존재하기 위해 개인의 삶을 온전한 침묵 속에 홀로 두기로 택한 거다. 때로는 사회적 손열음으로 살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그 모든 활동 뒤 개인의 삶으 돌아간 손열음은 지인과도 잘 만나지 않고 휴대폰도 거의 쓰지않는 것처럼. 피아노를 치는 행위가 인생에서 독보적으로 중요한 사람,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태어난 이유라 믿는 사람. 손열음이 그런 사람이기에 가능한 삶이리라.

글 류현경 기자 | 사진 이주연 촬영 협조 세종문화회관(02-399-1114)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