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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수녀사제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이왕 할 것이면 기쁜 마음으로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가 대한성공회 사상 처음으로 수녀로서 사제 서품을 받고 사제로 활동하는 수녀사제가 된다. 여성의 사제 활동을 허락하고 있는 대한성공회지만 수녀사제가 탄생하기는 이번이 처음. 지난 1년 동안 부제로서 사제 활동을 준비해온 그는 4월 29일 서품식이 진행되면 사제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사제나 수녀사제라는 명칭보다 수녀Sister라는 명칭이 더 좋아 앞으로도 지금처럼 불리면 좋겠다고 한다.


촛불처럼 헌신적으로
기도를 올리기 전 성당에서는 촛불을 켜고 법당에서는 향을 피운다. 지난 3월 21일, 천주교 수녀, 원불교 여성 교무, 불교 비구니 스님으로 이루어진 수행자들의 작은 공동체 ‘삼소회三笑會’의 회동이 대한성공회 수도원에서 있던 날, 모임에 참석한 네 명의 여성 수행자들이 기도에 앞서 여러 개의 촛불을 켠다.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초에 불을 밝힌다. 파스텔 톤의 빛깔이 곱다.“촛불은 왜 켜는가요?”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촛불처럼, 헌신하고 어두운 곳을 비추겠다는 것이지요.” 세 번이나 넘어지며 십자가를 끌고 가던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졌던 시몬, 아주 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의 몸에 뿌렸던 막달라 마리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사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예수….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는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된 또 하나의 가족인 삼소회 회원이다. ‘내 것’을 깨뜨려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뭉친 삼소회의 다른 회원들은 곧 성공회 사제司祭가 될 그를 ‘문열이’(처음 문을 여는 사람)라고 불렀다.

대한성공회 83년 역사상 처음으로 수녀사제가 되는 그는 지난 1년을 부제副祭로 지냈다. 그는 부제로 지내며 무얼 했냐는 물음에 ‘봉사’라고 대답한다. 지난해 5월 부제 서품(안수)을 받아 한국 교회사에 큰 획을 그었던 그는 지난 1년 동안 수녀원의 감사 성찬례(예배)를 집전했다. 이전까지는 신부만이 수녀원 감사 성찬례를 집전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가 사제 서품을 받으면 수녀원 감사 성찬례뿐만 아니라 성가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노인 및 정신지체인 요양시설 입소인을 위한 감사 성찬례 등을 집전하게 된다. 성공회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강한 가톨릭은 아직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순 다섯이면 신부님들 대부분이 은퇴하시거든요. 그래서 원장 수녀님께서 저에게 사제 되기를 제안하셨을 때 ‘젊은 수녀들이 했으면 좋겠고 그러면 얼마든지 지원해주겠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원장님께서는 ‘젊은 사람들이 뒤를 따를 수 있도록 길을 닦아달라’고 대답하셨고요. (시간을 갖고 기도를 하니) 마음은 항상 청년 같다고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 나이를 따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령을 인간적으로 컨트롤하지 말고 하느님 안에서 하겠다는 마음에서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의 나이 올해로 예순일곱. 하하 호호 10대 소녀처럼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던 1964년 식목일에 수도원에 입회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번역과 통역 봉사를 해온 그는 이제 다른 부름을 듣고 다른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나 모양은 다르지만 속은 같다.

거처하는 곳은 모두 ‘우리 집’
그는 전쟁 고아다. 6·25 한국전쟁 때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친과 모친을 인민군의 총에 잃었다. 그의 나이 열 살, 여동생 오숙자 씨를 보살피느라 영혼은 훌쩍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던 그의 귓전에 동생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렸던 것. “울지 마, 울지 마” 동생을 다독이다 같이 울고, 다시 깨어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편을 궁리하고, 그러다 학교 담임선생님 댁을 찾아갔다가 1·4 후퇴 피난길에 올랐다. 동생을 데리고 서울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평택을 지나 수원에서 멈춘다. 피난길에는 한길로만 움직이던 사람들이 서울을 수복하자 뿔뿔이 흩어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자매는 한 ‘군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수원 ‘성 베드로 보육원’으로 인도된다.“부모님과 열 살까지 살았으니까 다 기억해요. 동생이랑 부모님과 함께 살던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아름답고 좋은 일이었지만 보육원에서의 10년 생활도 정말 보물 같았어요.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고, 아주 행복한 추억이죠.”

“보육원은 어떤 곳이었나요?”“마리아, 엘리자베스, 이브, 세 분 아주머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처럼 풍요로움을 주셨어요. 그분들은 저의 영혼을 키워주었지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서와 기도를 우리에게 먹여주셨어요. 영혼이 풍요로워지니까 다른 문제들은 해결되었던 것 같아요.”“삼소회 분들이 함께 쓰신 책 <출가>(솝리)에 보면 그곳을 천국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보육원 생활을 하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자기 권익이나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어요. 모두 같은 입장에서 서로 아끼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 걸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신앙 덕분인 것 같아요. 하느님 말씀과 기도 안에서 저를 찾았고, 하느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마음의) 기초가 닦여졌다는 생각이 들어요.”그에게는 ‘우리 집’이 셋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살았던 집, 영국에서 온 수녀들이 처음 세운 성 베드로 보육원,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성공회 수도원이다. 세 곳을 이야기할 때마다 모두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중·고등학교에 재학할 때에는 보육원을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고 고아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레 여겼던 그에 대해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고아원 원장의 딸인 줄 알았을 정도라고 하니, 부러운 주인 의식이다.“부모님을 죽인 분들에 대한 원망이나 복수심은 없었는지요?”

“동생과 둘이서 (피난길에서) 걸어 돌아오면서 군인 아저씨한테 ‘우리 엄마 아버지가 총살당했어요. 원수를 갚아주세요’ 하는 말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보육원에 있으면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원수를 사랑해라’ 하는 것을 배우면서, 그리고 전쟁에 대해 생각하면서 전쟁이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이념의 차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죽인 사람들도 상부의 명령 따랐을 뿐일 거고요. 그렇게 저는 사람들의 다른 입장들을 생각하면서 인간 사회의 시스템과 제도, 정치적인 권익을 위해 서로 죽이는 전쟁(종교적인 분쟁과 전쟁을 포함해서)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게 되셨나요?”
“하느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 했던 것 같아요. 불교 신자였던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수도원에 사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하느님께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하고 무엇이기를 바라실까, 무엇을 하며 살기를 원하실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악의 고리를 이어가는 것밖에 되지 않잖아요?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은 비극이지만 제가 ‘거기’에서 좌절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차츰 ‘거기’보다는 ‘지금 여기hear and now’에서 성실하게 임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어요.내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고 지금 여기서 하느님께서 하라는 것들을 들어가면셔 살자고 하게 되었어요. ”
“수녀님께서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무엇이가요?”“빌립보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이를 따르다 보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사람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힘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경험에 바탕하지만 종교는 그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이지요. 종교는 마음과 영혼, 정신이 건강해지도록 도와줘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삶 속에 현존하는 하느님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부자라고 정말 행복할까요? 경쟁 속에서 (이겨)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점점 위로 올라가면 행복할까요? 그런데 왜 가진 것 많고, 아는 것 많고, 능력 많은 억만장자의 마음이 평화롭지 않은 것은 왜 그럴까요?”

“경쟁에서 이겨서 위로 올라갈수록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요? 수녀님은 아닌가요?”“하느님이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돈이나 명예 때문에 아등바등 속상해하고 안절부절하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런 걸 다 뛰어넘게 되더라고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고, 권력이나 명예, 돈 때문에 슬프거나 좌절하거나 하는 일이 없지요.”“바라는 것은요?”“있죠. 꿈을 꾸는 것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거든요. 꿈을 갖는 게 욕심을 갖는 것은 아니에요. 꿈을 가지면 계획을 하게 되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동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죠.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육체가 약해지더라고요.”


예수와 석가모니는 참사람

그가 수도자 생활을 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뒤로는 대학 생활에 쫓겨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 도서관 다니며 공부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하면서 수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소명 의식으로 선택한 그의 길을 주변에서는 만류했다고 한다. “중세 시대도 아닌데 수녀가 된다고? 너도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수 있을 있어.” 1964년이니 여성 수도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가 지금보다 더 심해서였을 것이다. “수녀원에 오면 자선사업도 할 수 있고, 하느님의 일을 다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왔어요. 저는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네’라고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수도자가 된다고 했어요.”예나 지금이나 영어 원서 책을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그가 수도자 생활을 하게 된 뒤 잃은 것이 있다면 공부와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잃은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수도자 생활을 위해 공부와 관련된 꿈의 일부를 접었다. 장학 후원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박사 후 과정까지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수도자의 길에 들어선 다음이라 제안을 거절했다. 신앙을 가진 뒤부터 그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 하늘의 뜻이 원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최우선이니까.“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지요?”

“수도 생활은 기도와 노동과 공부, 이 세 가지가 리드미컬하게 함께 가야 돼요. 너무 기도만 해도 안 되거든요. 요새는 5시 반에 기상해요. 6시부터 7시 50분까지는 채플에서 아치기도와 미사를 봐요. 그러면 잠깐 모여서 서로 일정을 알리는 시간을 가져요. 아니면 그날 단체로 해야 할 일을 공지하기도 합니다. 어제 같은 경우는 딸기잼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평소에는 12시 30분, 주일에는 12시에 낮 기도를 하고, 오후 5시에 저녁 기도를 해요.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모여서 저녁 8시에 하는 끝기도가 있어요. 8시 기도를 마치면 모두 침묵하면서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시간을 갖지요.”군대처럼 수녀원에도 ‘주특기’ 같은 것이 있다. 그의 주특기는 영어 문서를 작성하거나 번역을 하고 통역을 하는 일. 일반 회사로 치면 국제 업무 담당자인 셈이다. 그가 입회했을 때만 해도 4세기 때 수도회 자료를 그대로 번역해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원서를 보면서 수도회 발전사를 정리하고 그에 관한 논문 쓰는 일을 했다. 나중에는 성공회대 교양학부에서 교양영어를 가르쳤으니 확실한 ‘영어 전문가’라고 해야겠다.“지금은 오히려 친구 분들이 수녀님을 부러워하시겠어요.”(웃음)“예.(웃음)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수도자가 됐니? 참 대단하다’라고 말하면 저는 ‘너희들 결혼 생활도 대단한 거야, 모르는 사람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게 됐는지, 그게 더 용감하다’라고 얘기하죠.”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요?”“자기가 만들어야지 누가 갖다 주는 게 아니지요. 저는 항상 상담을 할 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추상적으로 이야기 나누면 말言로만 그치게 되기 쉽거든요. 가령 어느 분이 ‘시어머니께서 성당에 가는 걸 반대해요’ 라고 말하면 저는 ‘나가지 마세요. 시어머니 마음도 평화롭게 못하면서 성당에 가는 것은 죽은 하느님 만나러 가는 거지요. 하느님은 우리 삶 속에 살아 계시고, (성당에 가지 못하는) 자매님의 고통과 고민을 아시거든요. 이왕 할 것이면 기쁜 마음으로 의지를 일으키고 기쁘게 해야 일의 결과도 좋고, 정말 만족하게 돼요. 무엇을 하고자 하는 그 뜻과 의지가 건강해야 합니다.”

“쉽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웃음) 글쎄, 저는 수녀니까 좀 쉬운지도 몰라요. 의견이 달라 속이 상하더라도 ‘내 의견이 없는 것처럼 접어둬 보자’ 라고 말이에요. 성서에도 ‘끝까지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씌어 있고,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참인간의 초상이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인간은 무엇인가요?”
“사람다운 거예요. 정말 평화롭고 기쁘고 꿈도 있을 때 사람이 사람답지요. 그리고 그 꿈을 싸우지 않고 성취하는 사람입니다. 꿈을 이루는 목적과 방법과 수단이 좋아야 해요. 저는 크리스천이니까 예수님을 참사람이라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그렇다고 얘기하겠지요. 참사람은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가페입니다.” 어디서나 당당한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성격상 “아니오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면이 그것. 그래서 스스로 “예수님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는다. 이런 콤플렉스는 더 커져도 좋지 않겠는가.

성공회의 여성 사제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許하는 안案이 대주교 회의에서 통과된 것은 1992년 12월.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1994년에만 1천5백 명의 여성 사제가 탄생했다. 기다리던 여성들이 그 만큼 많았던 까닭. 여성 사제는 신학을 전공한 뒤 사제의 길을 걷거나, 수녀로서 사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는 신학을 전공한 여성 9명이 사제가 된 적은 있으나 수녀로서 사제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 4월 29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열린다. 문의 02-738-6597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