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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철&이혜원 모든 답은 사람 안에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는다. 의상, 건축, 공간, 제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의 문을 연 이상철 디자이너와 그 뒤를 이어 꿈의 날개를 펼쳐가는 이혜원 디자이너. 이들은 그 누구보다 ‘인간’이라는 문학의 달인이다.


어떤 분야든 대중적 인지도와 실력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다. 사실 대중적 인지도만 높을 뿐 알맹이는 부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로 본업 외에는 다른 외부 활동(SNS가 대표적)에 소극적이어서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묵묵히 한 길을 걸으며 업계 내에서 단단한 신뢰를 쌓아가는 실력자도 드물게 존재한다. 디자인 그룹 아라비 스튜디오를 이끄는 디자이너 이혜원은 후자에 속한다. 사교 활동 대신 인문학 수업이나 관심 있는 이케바나(일본 전통 꽃꽂이) 배우기를 선호하고, 디자인이라는 업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규칙적 일상을 추구한다. 그렇게 20년을 보냈고, 어느덧 BI부터 브랜딩, 공간 디렉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러브콜을 받는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브랜드나 공간의 정체성을 만드는 콘셉트 기획부터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며, 현대백화점 식품관부터 아모레 성수, 오드투스윗 등 미감이 깃든 공간들은 그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완성됐다.

디자이너 이혜원은 존경하는 선배로 서슴없이 이상철 디자이너를 꼽았다. 우리나라에 디자인 개념조차 없던 1960년대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해온 그야말로 한국 최초의 아트 디렉터. 잡지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의 아트 디렉팅과 월간 <디자인>의 컨설팅을 맡기도 한 이상철 디자이너는 한국 현대 잡지 디자인의 장을 연 주인공이며, 편집 디자인을 넘어 CI와 브랜딩은 물론 아트 전시 기획(2014년 <엔조 마리> DDP 전시), 공간 디렉팅(2015년 강릉 씨마크호텔) 등 최근까지도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디자인계 거장이다. 까마득한 후배 디자이너의 만나고 싶다는 청을 흔쾌히 수락한 이상철 디자이너. 인터뷰 내내 “AI 시대에 인간미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수많은 업적을 차치하고라도 현장의 모든 스태프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마음 푸근한 진짜 어른이다.

나의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길이 보인다
이혜원(이하 원) 아버지가 출판업에 종사하셨는데, 선생님의 팬이세요. 그래서 이 자리가 얼마나 영광인지 몰라요. 저는 홍대 영상디자인과에 입학했다가, 원하던 작업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수업을 듣는 대신 독자적으로 공부하고 일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전공 교육을 받지 않고 오롯이 결과물로 인정받으며 커온 셈이죠. 선생님도 학교 대신 조직 생활을 하면서 창작 작업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 마음이 얼마나 전쟁터 같으셨을까요, 궁금해요.

이상철(이하 철) 전공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그에 앞서 중요한 건 그 사람의 관심사라고 생각해요. 내 시대는 부모가 법대나 의대 가라고 말씀하시던 때죠. 난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고 예쁜 것 보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그에 맞는 길을 선택해왔어요. 대학교 진학 대신 산업은행에 들어가서, 지금으로 치면 제안서나 보고서를 멋있게 만드는 일부터 홍보 책자나 브리핑 자료 제작 등 여러 일을 했어요.

그때는 편집 디자인이라는 게 없던 때죠?

그렇죠. 그래서 물어볼 곳도 없고, 가르쳐줄 선생님도 없었죠. 그나마 미군에서 흘러나온 잡지들을 보면서 ‘그리드’ ‘폰트’의 개념을 익혔어요. 명동 뒷골목에 서양 출판물을 접할 수 있는 곳을 매일 드나들었지요.

그러고 보니 저도 어릴 때 아버지 회사에 놀러 가서 늘 접하던 잡지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패션 기업 베네통이 출간하던 <컬러즈COLORS> 그리고 <인 서울 매거진>에서 본 인상적 화보나 마이너 감성이 지금 일하는 데 자양분이 되고 있죠.

은행에서 퇴근하면 저녁에는 ‘계선’이라는 인테리어디자인 회사에서 일했어요. 거기서 한국의 유명 호텔 CI, 매뉴얼, 사이니즈, 메뉴판 등 지금의 브랜딩 실무를 한 셈이죠. 그때도 영국의 <인더스트리스Industries>, 이탈리아의 <도무스domus> 등을 정기 구독하면서 건축· 인테리어·가구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터득하면서 일했 어요. 그렇게 직접 부딪치면서 해온 거죠.


융합의 시대, 종합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
그래픽, 산업, 인테리어 등 각 분야의 디자인 전공이 따로 있을 뿐 융합된 교육이 없다는 게 의아해요. 실제의 일은 매우 융합되어 있는데 말이죠.

그렇죠. 나도 그래픽디자인이 베이스인데, 건축, 브랜딩, 인테리어, 파사드, 제품 개발 등에 관여한다고 하면 다들 특이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시각화하는 사람인데, 요청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마케팅과 매니지먼트 등 종합적 관점에서 전략적 판단을 해야 최적의 결과물을 낼 수 있거든. 한계 속에서 창의를 하는 게 디자이너의 근본 가치니까요.

디자이너는 ‘돈을 알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기도 한데, 저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무언가를 구현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라비에서는 디자이너가 견적, 예산 관리, 계약을 다 직접 하죠. 또 인턴 기간에 가장 타이트하게 가르치는 건 의전이에요. 매너와 커뮤니케이션, 미팅때 어떤 음료를 내놓느냐까지요. 디자이너는 다양한 사 람을 설득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니까요.

일본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디자이너의 역할과 개념이 확대되어 학교 커리큘럼에 경영자가 받는 수업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요즘에야 바뀌는 것 같은데, 종합적 관점을 가르치는 교육은 아주 필요합니다.

이상철 디자이너는 고교 졸업 후 산업은행 홍보팀에서 근무했다. 이후 브리태니커에 입사, 한국 최초의 아트 디렉터로서 잡지 편집 디자인의 틀을 잡았다. 이후 공간, 브랜딩, 전시 기획 등 다방면의 아트 디렉팅을 해왔다.

강릉 씨마크 호텔의 아트 디렉션을 담당했다. 어렵게 공수한 느티나무 롱 테이블을 놓고 잉고 마우러 조명등을 설치한 로비가 인상적이다.

리뉴얼 작업에 참여한 1980년 3월호 월간 <디자인> 표지.
들여다볼수록 진가가 느껴지는 활자 그리고 한글의 멋
영상을 전공했다고요? 과를 잘 선택했네요. 그래서 입체적으로 됐구나.

잘 안 맞아서 그만둔걸요. 활자를 더 사랑해요.

요즘 너무나도 영상이 도배를 하는 시대가 됐는데, 좀 절제해야 한다고 봐요. 활자 세대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활자를 봐야 내용이 머리에 입력되더라고. 영상은 휙휙 지나가버려 남지를 않아. 글이라는 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쓰니까 이치를 알겠는데, 영상은 직관에 호소하니 내가 소화시킬 여유가 없죠.

정말 그래요. 예를 들어 상형문자 ‘米(쌀 미)’를 보면 쌀알이 연상되는 감성이 있는데, 영상을 볼 때는 경험할 수 없죠. 특히 한글은 그래픽적으로 너무 예뻐요.

언어로서는 가장 진보한 글자지요. 한글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글자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나도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글자꼴 ‘샘물체’를 발표했어요. 저작권은 필요 없으니 이걸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써달라는 의미로 만들었지요. 언어는 모든 국민의 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서체를 디자인하지 않으면 죄짓는 일 같았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브랜드들은 한글보다 영어를 더 많이 써요. 한글로 약어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활용도가 낮다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영문 서체에 비해 선택의 폭도 좁은 편이고요. 한글 서체 개발에 대한 제반 지원이 있으면 사용 빈도가 늘지 않을까요?

이혜원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영상디자인과에 입학 후, 학업 대신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현재 아라비 스튜디오 대표로서 그래픽ㆍ공간ㆍ제품 등 다방면의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며, ‘파운데이션 아라비’ 시리즈를 통 해 자체적 문화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선보인 뷰티 라운지 아모레 성수의 공간 스타일링.

성수동 과자점 오드투스윗의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
오래 일하는 길은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롱런할 수 있을까요?

기본 마음이 돼 있는걸요. 다면적으로 흥미 있는 일에 접근하고, 체험을 통해 새로운 걸 배우고 확인하며, 또 배우면서 그렇게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요즘 저의 고민은 세대가 다른 후배들과 친구처럼 일하는 회사로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 친구들은 마음의 밭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외롭게 자란 경우가 많고, 그래서 그런지 속이 허기지고, 힘들고….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들과 잘 소통하고 싶고, 스튜디오를 이어가는 후배가 많아지길 바라요.

중요한 생각이에요. 저쪽에서 부족한 게 있으면 여기서 보태주면서 살아야 하고, 그게 협업이죠. 그런데 요즘에는 인간성이 너무 상실되고 있어요. 부모 형제간에 대화도 단절되고 친구나 동료 사이도 점점 관계가 단절되고 있어요. 누구보다 어른들이 반성해야 해요.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이래도 되나? 되물어야 해요. 그래서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되찾아야 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핸드폰만 들여다보지 말고 눈인사라도 하면 좋지 않겠어요?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안지섭 | 헤어와 메이크업 탁연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