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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생활 윤태성 작가의 숨을 머금은 유리
본디 투명하고 깨끗한 물성으로 청량감을 주는 유리. 보는 이에게는 시원한 해갈을 선사하지만, 정작 이를 만드는 사람은 1200℃가 넘는 고온의 열기를 견뎌야 한다. 윤태성 작가는 유리를 녹이는 뜨거운 가마 속에 자신의 열정을 함께 불태운다.

불에 달군 유리 덩어리를 담담하게 굴리는 윤태성 작가의 숙련된 움직임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제법 볕살이 따뜻해진 여름의 초입, 윤태성 유리공예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이천으로 향했다. 육중해 보이는 검은색 컨테이너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뜨거운 기운이 살갗에 닿는 듯했다. 널찍한 공간에서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나란히 줄 서 있는 대형 가마들. 작업장 안이 후끈한 건 3백65일 쉬지 않고 1200℃ 이상으로 달아 있는 가마의 열기 때문이었다. “용해로는 한시도 꺼져 있으면 안 돼요. 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40℃ 넘는 것은 예삿일이죠.” 작업물의 크기와 용도에 따라 그때그때 사용하는 가마들은 놀랍게도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20년 넘게 유리공예를 하다 보니 기성품을 쓰면서 느낀 불편한 점을 보완해 만들기 시작했죠.” 가마를 비롯해 파이프, 집게, 공예용 유리 등 유리공예에 필요한 설비와 도구만 해도 그 양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마까지 직접 제작하다 보니 무엇보다 넓고 층고가 높은 공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작업 환경을 갖춘 곳이 드물어서 가마가 필요한 작가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화끈 달아오른 작업실 한가운데서 그가 기다란 파이프를 집어 올렸다.

작업실 한편에는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만든 다양한 유리 작업물을 전시했다. 그의 작업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

파이프 끝에서 말랑말랑한 유리 덩어리가 화병 형태를 갖추어가는 모습이다.

영롱한 청록빛을 자아내는 화병은 6월호 ‘이달의 꽃’을 위해 특별 제작한 것.

비정형의 아름다움
유리공예 기법에는 캐스팅, 퓨징, 램프 워킹 등 다양한 가공법이 있지만, 윤태성 작가는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블로잉 기법을 사용한다. 용암이 흘러내릴 듯 뜨거운 가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그가 파이프 끝에 달린 유리를 가마 속에 넣었다 뺐다. 유리가 말린 파이프를 굴리자 반대편에서 그의 아내이자 작업 파트너인 엄중원 작가가 숨을 불어넣고, 그가 부풀어오른 유리 덩어리를 덧대며 형태를 잡더니 다시 가마에 넣어 위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유리 덩어리의 크기는 조금씩 커지면서 어느 순간 화병 형태를 갖추어갔다. 그의 작품은 순간적인 열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형태를 띤다. “초기에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바르고 정형화된 형태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지요. 요즘은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유리가 열로 인해 팽창했다가 자연스럽게 수축한 형태를 살리고 있어요. 이러한 비정형 형태는 절대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어요. 제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훨씬 어렵고, 무엇보다 재미있지요.” 자유롭고 정체되지 않은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는 듯 불규칙적인 형상. 여기에 윤태성 작가는 색유리를 녹여 입히거나, 은이나 금 등 금속을 잘라 안착시켜 특유의 색과 패턴을 만든다. “은박을 얇게 불면 내부 압력으로 인해 부피가 늘어나면서 찢어집니다. 이때 열이 제대로 안으로 들어가야 새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퍼지지요.” 하늘에 오로라가 커튼처럼 펼쳐진 듯 신비로운 색감이 엷게 번진 유리컵은 아내의 아이디어에서 비롯했다. “유리공예의 특성상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2인 1조가 기본인 공동 작업이기에 서로 더 많이 소통하려고 해요.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지요.” 말을 마친 그가 방금 작업을 끝낸 화병을 다시 다른 가마에 넣었다. 형태가 잡힌 유리는 낮은 온도에서 12~15시간 이상 천천히 식히는 과정을 거친다. 유리표면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면 금이 가거나 깨지기 때문. 이렇게 공들여 탄생한 유리 작품에서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건 더 이상 관용적 표현이 아닐 테다. 실제로 그의 날숨이 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니까.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