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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이너 하지훈&문승지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존재로 산다는 것
꿈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선배는 후배에게 등대와도 같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전진한 후배는 세월이 흘러 또 누군가의 등대가 된다.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많아져야 칠흑 같던 세계가 비로소 반짝이며 이목을 끄는 법이다. 우리나라의 가구 디자인계가 주목받는 지금, 여러 가지 신화를 쓴 문승지와 그 터전을 만들어준 선배 하지훈의 인연은 우주가 만들어준 선물처럼 여겨진다.


스웨덴 기업 코스COS, 코오롱 FnC 래코드, 삼성전자 등이 굴지의 기업들은 모두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가 20대 때 쌓은 포트폴리오 리스트다. 가구 디자인계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그가 만나고 싶은 선배는 업계의 북극성 같은 존재, 하지훈. 10여 년 전,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촉망받던 하지훈은 전통적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지금까지 대기업은 물론 국빈을 클라이언트로 둔 스타 디자이너이자 교수다.

“ 가구 디자이너를 꿈꿀 때 제가 다니던 계원예술대학교에 동경하던 하지훈 교수님이 계셨어요. 무작정 찾아가서 부전공을 하고 싶다고 졸랐죠.” 당시 학교에서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던 터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때 하지훈 교수가 거절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보통 학생들은 그렇게 안 하죠. 더 바빠지니까요. 하려고 하는 일에 열정이 있는 친구구나 생각해 기꺼이 허락했고, 승지의 졸업 프로젝트로 가구를 함께 만들었어요.” 하지훈 교수의 회상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청년기를 거치면서 일찌감치 주체적 삶을 살아온 문승지, 그 반대로 8학군 고교와 명문 대학교 · 대학원 그리고 유학에 교육자의 길까지 순탄하게 걸어온 하지훈 교수. 참 다른 생을 살아온 두 사람의 인연이 만들어낸 파장은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가구 디자인계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지금도 문승지와 하지훈이라는 커다란 행성은 활발히 자전 중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또 자신의 색깔대로. 그러던 5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수백 가지의 필연으로 이 둘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관념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라
문승지(이하 문) 언젠가 교수님께 진로 문제로 고민을 털어놨는데, 당연히 유학을 가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죠. 그런데 “작업을 하고 싶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하면 되는 거지 뭐가 걱정이야” 하시는 거예요. 뭔가에 딱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그 말씀은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 있어요.

하지훈(이하 하) 내가 정석대로 살아와서, 승지 나이 때 경험이 부족한 게 콤플렉스였거든. 그래서 후배들에게 관념적인 것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하곤 하지. 세상의 기준대로, 고정관념대로 살다가 30~40대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에 방황하는 중년이 많잖아. 그러니 삶의 안정감을 잠시 보류하면 좀 어때,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최우선으로 해야지. 난 유학도 가지 말라고 말해. 대신 여행을 하라고 하지.

제가 덴마크에 갈 때도 교수님의 영향을 받았어요. ‘교수님께서 유학을 다녀오신 곳이라면 나도 살 만할 거야’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떠났어요. 학교에 등록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않아, 무작정 SNS를 통해 왕립예술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팔로했어요. 조금 소통하다가 두어 번 만나니 친구가 되더라고요. 그들을 따라 수업도 듣고 인턴십도 하며, 그들 주변에 있다 보니 등록금을 안 냈을 뿐 넘치는 경험을 쌓았죠. 이런 게 진짜 유학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어요.

승지가 참 생활력이 강해.(웃음) 나도 그렇게 경험을 통해 안목을 넓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공부나 학문적인 건 구글이나 유튜브로도 가능한 시대니까. 세상이 바뀌었으니 더더욱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잘될 수 없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엔 여러 가지 답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해.


하지훈 가구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국립 덴마크 디자인 스쿨 가구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리빙디자인과 교수이자 디자이너로서 산업, 예술, 교육을 넘나들며, 대중적 의자부터 청와대 가구까지 폭넓은 작업을 하고 있다.

운경고택 전시에서 선보인 호족 의자.

강원도 소반을 재해석한 라운드반.
나다운 것을 찾으면 그것이 곧 한국적이요, 세계적인 것이다
교수님이 소반 시리즈를 선보이거나, 국내 무형문화재 장인과 협업하는 등 한국적 작업으로 세계에 한국을 알려오신 모습도 귀감이 돼요. 저도 보여드리고 싶은 작업이 있어요. 최근 강원도 월정사와 협업을 했는데, 제자를 가르치던 서별당이라는 건물의 보수공사를 하면서 버리게 된 마룻바닥 나무를 소재로 벤치를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철거하면서 나온 목재가 새로 태어난다는 데서 불교철학의 ‘윤회’라는 단어가 와닿았죠. 이 동양적 스토리를 외국 사람도 많이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사비로 메이킹 영상도 만들고 있어요.

멋지네! 예전에는 한국적인 걸 진부하다 치부하며 낮게 평가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참 많이 바뀌었어.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있잖아. 어딜 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했을 때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국가적 배경이 좋은 시대야. 억지로 한국적인 걸 하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고 잘할 것 같으니까 나오는 발상은 바람직한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한국적 작업’이라고 말할 때, 사실은 한국적인 것과 옛것에 대한 혼동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작가들이 하는 것, 그 역시 한국적인 건데 말이죠. 해외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어린 친구들의 작업도 한국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맞아. 그리고 좋은 사례가 참 많아졌지. BTS, <기생충> 등 지극히 한국적 기반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게 예술가에겐 큰 힘이 되잖아. 그래서 디자인과 예술, 어느 분야에서든 따라갈 수 있는 스타가 존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저게 되는구나’를 아는 순간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거야. 승지도 좋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 다만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그런 스토리를 지극히 개인적 작업으로 하는 것도 조언하고 싶어. 불교나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엔 어떤 소재든 한 사람, 그 디자이너가 소화해 서 내놓는 게 가장 중요하지. 필립 스탁이 중국 것을 자기 스타일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듯이 말이야.


문승지 가구 디자이너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감성 경험 제품 디자인(현 리빙 디자인)을 전공했다. 제로 웨이스트 개념 의자 ‘포브라더스’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현재 아티스트 레이블 ‘팀 바이럴스’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윤회 사상을 디자인에 접목한 월정사 프로젝트.

포브라더스의 두 번째 버전인 이코노미컬 체어.
오래도록 지치지 않기 위한 휴식과 생산성의 황금 비율이 있다
저는 요즘 디자인과 삶이 딱 붙어버린 것 같아요. 자기 전까지 온통 디자인만 생각해요. 일과 휴식을 어떻게 조절하며 살아야 하는지가 너무 어려워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 나이가 들수록 더 바빠질 거야. 한 번에 대여섯 개 프로젝트를 같이 하다 보면 디자인할 시간이 없어. 난 디자인을 차 안에서 한다고 말할 정도지. 혼자 있는 시간이 차 안에 있을 때뿐이니까. 그리고 집에 오면 일을 안 해. 그렇게 균형을 찾은 셈이지. 마라톤과 같으니까, 스스로 체득해 나가야 해.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안 그래도 팀을 꾸려서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매우 집중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정말 비워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무슨 일이든 즐겁기도 하고요.

경험이 쌓이면 모드 전환이 빨라져. 이를테면 CGV 같은 공연장 객석 의자를 작업할 땐 몇백 원, 몇십 원 경제성 따지다가 저녁에는 갤러리와 작품의 개념, 철학을 이야기해. 정답이 완전 바뀌는 상황인데, 경험이 쌓이면 그 영역을 오가는 게 쉬워지는 거지.

아, 너무 공감해요. 전 그걸 ‘일교차’라고 표현하거든요. 낮에는 공장 가서 단가 낮추는 이야기를 하다가, 갤러리에서는 추상적 개념 이야기를 하고…. 사실은 제가 가장 지치는 경우가 그 일교차를 경험할 때예요.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데, 조절하는 게 쉽지는 않네요.

그게 가구 디자인계의 장점이고 즐거움이라고 생각해. 상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공존해서 재미있지.

요즘엔 학교 후배들이 DM으로 작업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연락을 많이 해요. 제가 처음 가구 디자인을 해야겠다 꿈을 가진 순간에 교수님을 무작정 찾아간 게 생각나서 저도 가급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요. 교수님이 저에게 그런 존재이던 것처럼 저도 후배들에게 딱 떠올려지는, 꿈을 심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스승이라고 해서 같이 술 마시고 친근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바라보고 갈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진짜인 것 같아. 승지 같은 제자를 보면 보람을 느끼지. 지금처럼 디자이너의 작가주의적 행동을 받아주는 시대에 활동하는 게 부럽기도 하고. 이런 기회를 잘 살리는 승지 같은 후배가 많아지면 좋겠어.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안지섭 | 헤어와 메이크업 탁연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