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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숲을 거닐다 素磚書林소전서림
청담동에 유료 멤버십 도서관 ‘소전서림’이 문을 열었다. 문학과 문화, 예술과 건축, 디자인을 깐깐하게 큐레이션해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최고치를 경험할 수 있다.

국내 문학과 동아시아 문학, 영미 문학까지 총망라한 ‘문학서가’에는 컬렉티브 그룹 ar3(이정형, 임지수, 최병석)와 협업한 다이스 체어를 배치했다. 회전하는 정육면체 좌판에 앉으면 의외로 아주 편안하다. 몸의 균형에 맞춰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예담에서는 매달 문학 및 인문학 강연, 살롱 콘서트, 낭독회 등의 이벤트가 열린다.
청담동에는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Davide Marcullo가 설계한 회벽 건축물이 있다. 정육면체 여러 개를 이어붙인 듯 보이는 구조적인 외관의 이 건물은 더블유에이피WAP 문화재단의 사무실. 이 재단은 예술가와 인문학자를 지원해 국내 지식 생태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최근 이 사옥에 새 도서관 소전서림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들렸다.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란 의미다. 소전서림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첫인상이 압도적인 복도, 소전서림이 추천하는 도서와 긴 테이블이 있으며 세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문학서가’, 예술 서적이 있는 ‘예담藝談’. 총 4만 권의 장서가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편집이사 김영준, 비평가 박혜진, 시인 서효인 등이 문학 도서를, 보안책방 큐레이터 강영희, 철학아카데미 이사 박정하,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이 각각 인문학과 예술 도서를 큐레이션했다. 연간 멤버십으로 운영하며 종일권, 반일권을 구매할 수도 있다.


새로운 형식의 도서관
“유료 도서관이란 것이 화젯거리였지요. 그래도 우리가 사는 도시에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의 말이다. 그는 애서가이자 인문학자를 지원하는 WAP 문화재단의 고문이기도 하다. “책은 누군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발달하는 자아가 아닌,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자아를 발견케 해주는 수단이에요. 인류가 만든 삶 속 수단과 방법이 책을 통해 전수되고 있지 않나요? 책이 주인공인 공간은 늘어나고 있지만, 독서 경험 자체의 깊이를 논할 공간은 아직 없어요.”

이른 아침이라 소전서림엔 손님이 없었지만 소곤소곤 말하는 나를 발견했다. 황보 관장 역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용자의 행동까지 디자인한 공간이라서 그래요. 도서관 내부는 카펫을 깔았지만 복도 바닥은 일부러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소재로 만들었어요. 고요한 공간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조심히 행동하니까요.” 책을 쉽게 빼서 읽을 수 있도록 책장에 책을 꽉 채우는 대신 약간의 여유 공간을 두고, 책 이름이 아닌 작가의 이름으로 정리해 한 명의 작가를 찾으면 그의 아카이브를 모두 볼 수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곳은 지난 2년간 갤러리로 운영했다. 인문학의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고자 하는 재단의 목표를 상징적으로 담아낼 공간을 고민하던 중 문학 도서관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중정과 맞닿은 예담에는 프리츠 한센의 암체어를 배치했다. 예술, 철학, 과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데 근처에 있는 간이 바에서 커피와 다과를 무료로 제공하며, 원한다면 와인을 주문해 마실 수도 있다.

소전서림을 기획한 WAP 재단 황보유미 고문.

1층에 있는 F&B 매장 ‘투바이투(2×2)’ 역시 소전서림의 연장선상에 있다. 도서관 입장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 WAP에서 수입하는 와인과 전문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 등을 즐길 수 있다.

문학서가 안쪽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민 1인용 독서 공간이 있다.
궁극의 독서경험을 선사하는 공간
텅 빈 공간을 목적에 맞게 바꾸자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건축가 최욱이 이끄는 원오원 아키텍츠가 전시 공간과 도서관은 속성이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공간과 기물을 모두 디자인했다. “전시 공간은 과거가 없어야 합니다. 지난 전시의 흔적이나 냄새 등의 기억이 있으면 안 되죠. 반면 도서관은 역사입니다. 도서관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이 지닌 고유의 빛, 냄새, 소리에 민감해져요.” 열린 감각들 사이로 ‘넋 놓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축가 최욱의 생각은 공간 전체에 구석구석 반영됐다. 지하에 위치해 시선이 멀리 갈 데가 없어서 분리되던 벽을 철거해 중정으로 시선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빛을 흡수하는 속성을 지닌 한지로 서가 윗면을 마감해 부드러운 볕이 들어오는 창 같은 느낌을 준다. 공간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의자다. 이 공간은 ‘읽기’를 시작하기 전 ‘앉다’를 먼저 하도록 부추긴다. 핀 율, 칼 한센앤선, 아르텍, 카시나, 프리츠 한센 등. 한곳에서 보기 힘든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들이 1인 좌석, 2인석, 4인석, 긴 테이블 의자 등 필요에 따라 놓여 있다. 젊은 디자이너와 협업한 의자도 있다. ‘리딩체어 프로젝트’는 컬렉티브 그룹 ar3(이정형, 임지수, 최병석)과 협업해 정육면체로 디자인한 좌판이 움직이며 적절한 앉은 자세를 찾아주는 다이스 체어, 그네처럼 움직이는 스윙 체어, 황금알 낳는 거위 체어 등 앉는 행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실현을 시도한 사례다. 소전서림이 주는 경험의 장점은 명확하다. ‘건축가가 섬세하게 디자인한 공간에서/ 조밀하게 설계한 의자에 앉아/ 전문가가 큐레이팅한 책을 읽는다.’ 책 읽기라는 경험에 층위를 두고 각각의 단계를 섬세하게 만져, 그걸 한꺼번에 경험할 때는 대단히 잘 구운 페이스트리처럼 풍미가 좋다. 이날의 첫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시간이 가장 좋아요. 매일 아침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아 침묵을 지킬 때의 고요함요.” 그 말을 끝으로 소전서림에 다시 적요가 찾아왔다.


shop card
건축 다비데 마쿨로
건축인테리어 원오원 아키텍츠
BI & CI 원오원 팩토리
가구 & 조명 핀 율, 아르텍, 카시나, 프리츠한센 등
외부 조경 서원
내부 조경 로얄스케치
음악 몽키사운드, 김경진, 정준호, 황덕호
아트 & 협업작가 로와정, 심아빈, 최대진, ar3
주소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138길 23 지하1층
문의 02-542-0804
입장료 일반 관람객 반일권 3만 원, 종일권 5만 원, 연간회원 66만 원

글 박민정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