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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은지 네가 보는 모든 것이 아름답길
아이는 애교 섞인 표정을 짓고, 말할 때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엉덩이를 실룩댄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마음속에서 통통 뛰어다니면 그 누구라도 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규현이는 예쁜 것에 둘러싸여 산다.

디자이너 엄마, 미술 작가 아빠, 가구 만드는 할아버지가 힘을 합쳐 탄생한 아이 가구 스마일,문 최은지 디렉터와 뮤즈 규현.

스마일,문 가구와 아빠 문연욱 작가의 작품은 서로 닮은 구석이 많다.

가구와 함께 아빠 문연욱 작가의 모빌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정글짐을 닮은 행어,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상시키는 거울, 무지개 꿈을 꿀 것만 같은 침대. 옹기종기 모인 가구들이 아이의 공간을 흥미롭게 만든다.
미감을 찾는 것, 어쩌면 대물림
“아이를 반드시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키우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미술 작가 아빠와 디자이너 엄마의 직업병 때문인 듯해요. 아이가 화장실에서 밟고 올라가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도 예쁜 걸 고르게 되거든요. 그런 일상이 모여 미적으로 정돈된 환경에 노출된다고 해야 할까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중요성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해요.” 금속공예를 전공한 최은지 디렉터는 현대 장신구 작업을 하는 전업 작가가 되려고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작품으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순간이 고된 작업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피드백이 오가는 디자인에 더 매력을 느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아이 가구를 만들고, 테이블웨어와 가구 브랜드를 운영하는 등 브랜드와 관련한 모든 일을 한다. 브랜드 콘셉트부터 아이덴티티, 제품, 패키지 디자인까지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가구가 들어가는 공간을 디렉팅하거나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하지만 창의적 활동을 하는 배경에는 40년 넘게 가구를 만들어온 아버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가 손으로 도면을 그리고 손에 잡히는 가구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랐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사물로 만드는 작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들 규현이 역시 예술 분야에 자주 노출되니 그쪽에 흥미를 느낄 것 같고요.”

“아이가 만지고 쓰는 동안 놀이처럼 느끼고 상상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워야 해요. 아이가 쓰는 가구이니까요.”

책을 꽂거나 아끼는 소품을 진열할 수 있는 책장은 포인트 아트 퍼니처로 활용할 수 있다.

굴러다니는 색연필, 책상 위에 그어놓은 색연필 자국…. 아이가 자라는 집에는 아이의 존재감이 선명하다.

플라스틱 의자 하나도 예쁜 것을 고르는 일상이 모여,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늘 미적으로 정돈되어 있다.

밝은 에너지로 가득한 규현.
볼 때마다 행복한 순간이 떠올라
단출한 신혼살림은 아이의 탄생으로 변화를 겪는다. 부부 공간의 분위기에 어울리면서도 쓰임새 좋은 아이 가구를 찾는 일은 의외로 고단하다. 마음에 드는 가구를 찾지 못한 최은지 디렉터는 아이를 위해 신생아 침대와 옷장을 직접 만들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엄마와 설치 조형 작업을 하는 작가 아빠, 40년 넘게 가구를 만들어온 할아버지가 힘을 합친 아이 가구 브랜드 ‘스마일,문’의 시작이기도 하다. 스마일,문 아이 가구는 동글동글한 생김이 귀여운 장난감 같다. 전형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작은 놀이터처럼 보인다. 컬러 조합이 세련된 아이 가구는 집 안 어디에 두어도 훌륭한 오브제다.

“아이가 형태를 인식할 때부터 보고 배우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 같은 기본 도형을 활용해 디자인해요. 아이가 가구를 만지고 쓰는 동안 놀이처럼 느끼고 상상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워야 하고요. 아이가 좋아하는 요소를 넣었어요. 아이가 자라는 동안 가구를 쓰면서 받는 영감도 함께 자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반영한 가구가 서클 캐비닛(본문 첫번째 사진 참고)이에요. 오른쪽 문에 손잡이로 쓰는 공이 아홉 개 달려 있는데요. 아이가 자라는 동안 문을 열 때 주로 잡는 공의 위치가 달라질 거예요. 다섯 살 때 아래쪽에 있는 공을 주로 잡겠지만 여덟 살이 되면 키가 훌쩍 커서 위쪽에 있는 공을 잡게 되겠죠. 아이 스스로 ‘나도 이만큼 자랐구나’ 느끼고, 그렇게 아이의 성장과 함께하는 가구가 되면 좋겠어요.”

가구 곳곳에 행복한 기억이 서려 있다. 집은 따뜻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다. 집의 편안함을 연상할 수 있도록 창문이나 문 형태를 도형화해서 캐비닛과 거울에 담았다. 어린 시절 놀이터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정글짐은 행어의 모티프로 삼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수영장 속 사다리에서 영감을 받아 의자를 만들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소재의 안전성은 기본 중 기본 조건이다. 가구는 핀란드산 자작나무 합판에 친환경 수성페인트로 마감한다. 가공이 까다롭고 비용이 더 들지만 안전을 위한 선택이다. 가구 다리는 중금속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도료로 분체 도장한다. 분체 도장 자체가 친환경적이지만 인체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재료는 무조건 배제한다.

“아이들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힌트를 찾고 있어요. 아이는 어디서든 상상력을 발휘하고 흡수하는 깨끗한 스펀지 같잖아요. 아이와 길을 걷다가 발견한 건물의 벽돌과 창틀의 조합이라든가, 함께 읽던 동화책 속 한 페이지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거실에 굴러다니는 크레파스 조각, 책상 위에 그어놓은 색연필 자국, 식탁 옆에 툭 떨어진 장난감 등 아이가 자라는 집에는 아이의 존재감이 선명하다. 아이 물건의 쓰임과 개성은 발현하되, 기존 공간에 방해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늘 새로운 영감을 받으며 자라기를 기대한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
슬기롭고 현명하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나는 일에 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믿는 최은지 디렉터의 육아법.

1 목표 없는 경쟁 말고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끈기
올해 여섯 살이 된 규현이를 어떤 환경에서 키울 것인가가 최은지 디렉터의 최근 관심사다. ‘전 세계의 미술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난관’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는 아이 스스로 원하는 걸 찾고, 그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끈기와 긍정적 힘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2 키우는 것이 아닌 상생하는 육아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가족 공동체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관계를 맺는 육아를 하려고 한다. 일하는 엄마를 인정하고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아이와 함께 노력하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3 “안 돼” 대신 “괜찮아”
손에 쥐고 다니던 색연필이 옷에 잔뜩 묻은 아이에게 그 모습을 일러주자, 아이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엄마를 위로하는 말이었을까,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이었을까? “안 돼”라는 말을 상황에 대한 제약보다 비난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엄마는 아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유쾌한 대화법을 쓴다.

글 한미영 사진 한수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