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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 스님의 일상 예술 무명 속에 풀꽃 들이다
정위 스님의 무꽃 자수를 보며 ‘무꽃이 이토록 예뻤나’ 싶었다. 아니, 무꽃을 눈여겨 본 기억이 없다. 텃밭 채소에 핀 꽃을 살피는 수행자의 마음. 정위 스님이 기거하는 길상사 곳곳에도 스님의 심미안과 섬세함이 엿보인다.

보라색 꽃과 하늘거리는 이파리가 참 예쁜 무꽃 자수.

다구와 간단한 자수 몇 가지로 식탁이 한층 고와진다.

뒷산 들풀 사이에 선 정위 스님.

정위 스님의 자수 상자에는 오래 간직한 실과 자수 도구들이 들어 있다.

관악산 자락 낙성대에 자리한 길상사는 기와 없는 현대식 건물이다. 정위 스님은 20여 년 전 절을 지으면서 ‘1백 년후의 사찰도 기와집이어야 할까’를 고민했고, 그 결과 절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현대식 건물 곳곳에 오래된 물건이 눈에 띈다. 옛사람들이 쓰던 은방울꽃 수놓은 베갯모를 액자로 만든 것이며, 스님이 수놓은 자수 액자가 있는 듯 없는 듯 단아하고 다정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 꽃을 만드는 재미
20여 년 전 정위 스님은 무명천에 싸리꽃 한 줄기를 수놓으며 자수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출가出嫁하는 딸에게 자신이 손수 길쌈한 무명을 한 필씩 주셨다. 출가出家한 스님 몫도 있어 받아왔지만 용도가 없어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어느 날 싸리꽃으로 운을 뗐다. “수를 놓으려고 놓은 것이 아니라 필요해서 시작했습니다.” 콘센트 가리려고 네모난 천에 수를 놓고, 냅킨 덜 쓰려고 들고 다니던 손수건에 수를 놓았다. 그렇게 수놓은 생활 소품을 보는 이들이 좋아해 어느 집에 초대받아 갈 때 선물로 주기도 하고, 새살림 시작하는 신부에게도 건넸다.

무꽃, 쑥갓꽃, 부추꽃. 정위 스님의 자수책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에는 텃밭 채소의 꽃이 가득하다. 꽃 피지 않는 풀이 어디 있으련만, 꽃 핀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소들의 꽃이 장미나 백합 못지않다. 스님은 뒤뜰 텃밭에 심은 채소, 앞마당에 가꾸는 패랭이·한련·여우꼬리, 여행길에 만난 자운영과 접시꽃·당귀를 수놓았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존재감 없는, 흔한 풀과 꽃은 이렇게 주인공이 되었다. 스님이 수놓은 꽃을 보면 꽃잎도 초록 잎도 하늘하늘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 같다. 꽃받침 젖혀진 모양과 초록 잎의 농담을 다양한 톤의 실로 표현했다. 자연을 섬세하게 살펴 담으면서도 그 모습이 눈에 편하다. 자연이라는 것이 거스름이 없으니 그대로 표현하면 그럴 수밖에. 이 섬세한 수를 스님은 서너가지 쉬운 기법으로 놓았다고 한다. “저는 롱앤드쇼트스티치와 새틴스티치를 주로 씁니다. 학교 가사 시간에 배운 홈질 정도면 충분하지요.” 스님은 자수에서 바느질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내 꽃을 만드는 재미’라고 한다. 그래서 스님은 자수책에 으레 있는 색실 번호를 넣지 않았다. “서늘하고 달콤한 매화 향을 색으로 나타내면 무슨 색일까 생각하며 하늘색, 연두색, 분홍색으로 매화꽃을 표현했습니다.” 파스텔 톤으로 수놓은, 세상에 없는 ‘스님의 매화’는 매화를 본 창작자의 즐거운 마음을 전한다.

바람결에 부러진 남천나무 가지를 주워 빈 병에 꽂아둔 모습을 수놓았다.

작은 화병에 비운 듯 꽂는 맛. 뒤뜰에 핀 꽃 한 줄기면 충분하다.

뒷산 자락에 마련한 작은 텃밭에 겨울 무를 심었다.

벽에는 곡선이 아름다운 가마채를 걸고, 우물전을 테이블로 삼았다.
해진 앞치마는 깁고, 이 나간 그릇도 쓰고
차를 내주시는 스님의 앞치마를 보니 거기에도 꽃수가 놓여 있다. 가만히 보니 오래 써 해진 부분에 조각 천을 덧대 기우면서 수를 놓은 것이다. 스님은 물건도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매만지고 고쳐가며 오래오래 쓴다. 옷도 여러번 기워 입는다. 이 나간 그릇도 쓰는 데 큰 지장이 없다며 버리지 않고, 깨진 화병도 곱게 붙여 안쪽에 물컵을 넣어 꽃을 꽂고, 심지어 갈라진 박 바가지도 기워 쓴다. 책에도 주변을 살피고 아끼는 스님의 일상이 담겨 있다. 가을바람에 똑 떨어진 앞마당의 남천나무 가지가 아깝고 불쌍해 병에 물 담아 꽂아둔 이야기, 찬 바람 불면 겨울나라고 산동백 화분을 낑낑대며 현관 안으로 들이는 연례행사. 특히 새끼손가락 마디만큼 남은 무 쪼가리도 물이 있고, 볕이 있고, 시간이 가면 꽃을 피운다는 구절에 마음이 머문다. 스님은 자수 작업이 “건조한 절집 생활에서 만난 뜻밖의 호사”라고 말한다. 자수를 하려면 실 고르는 것부터 바늘한 땀 뜨는 것까지 고심하고 조심하느라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스님의 말은 의외였다. “잎을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하고, 이 색이 좋을까 저 색이 나을까 고심하지요. 색실을 못 골라 허송세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옆으로 밀어두었다가 다시 하는 법도 배우지요.” 잠시 밀어두었다가 다시 보면 그렇게 안 보이던 마땅한 색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사는 일도 그러하다고. 스님의 자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공부를 한다.


정위 스님과 함께하는 자수 클래스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브.레드)
정갈한 무명에 주전자와 찻잔, 연근 등 쉬운 수를 놓아 티매트를 만드는 자수 클래스를 진행합니다.

일시 10월 30일(수) 오후 2~4시
장소 서울시 관악구 인헌동 180-2 길상사
참가비 8만 원
인원 10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클래스’ 코너 또는 전화(02-2262-7222)로 접수합니다.

글 이나래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