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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 아름다움이 나를 새롭게 하리라
‘완벽한 제품만 시장에 내보낸다’라는 원칙으로 지난 50년간 국내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 신화를 써 내려간 박영춘 회장.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준 그는 인적 드문 강원도 인제 산골의 압도적 자연 속에 자신만의 고유한 미감으로 독자적 풍경을 완성해냈다.

숲과 산과 물과 바위가 절경을 이루는 내린천의 가장 윗물, 미산계곡을 향해 툭 튀어나온 회색 콘크리트 건물 두 채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른쪽 갤러리 건물의 테라스에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이 서 있다.
“산 좋고 물 좋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산 높고 숲이 울창해 새가 아니면 넘지 못한다 해서 비조불통非鳥不通이라 부르는, 태고의 원시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골짜기 바로 옆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3천여 평대지. 오대산을 지나 설악산으로 달리던 백두대간이 인제ㆍ홍천ㆍ양양의 경계를 이루는 갈전곡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지를 뻗은 개인산을 뒤로 두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내린천 상류의 세찬 물줄기를 앞으로 품은 인적 드문 산속에 계곡 바위를 닮은 회색 건물 두어 채가 새로 들어섰다.

50년을 앞서간 스타트업 기업
국내 최초의 디자인 회사 바른손의 창업주 박영춘 회장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나이 서른에 강원도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상경한 그는 남다른 손재주와 미감으로 을지로 인쇄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업종을 바꿔 풍속도와 미인도 등 동양화를 그대로 옮긴 카드나 연하장이 태반이던 1970년에 ‘바른손’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엠보싱 카드를 제작해 그해에만 1백20만 장의 연하장을 판매했고, 1980년대엔 ‘바른손팬시’로 영역을 확장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문구 시장 1위를 고수해왔다. 1983년 국내 최초로 자체 디자인한 캐릭터 상품을 개발해 제조와 유통까지 모두 컨트롤하는 시스템을 개척했고,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바른손팬시가 부도 처리된 후에도 온라인 사업, 중국 진출 등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처음으로 디자인 경영을 앞세워 바른손 카드와 문구, 팬시 사업을 벌인 그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이 얼마 전 출간한 <0.1cm로 싸우는 사람>이다. 책 제목은 박영춘 회장과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행복이 가득한 집> 발행인 이영혜 대표의 말에서 착안한 것. 누구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 높고, 세세한 부분에 대한 집중력과 집념이 남다르던 박영춘 회장은 ‘완벽한 제품만 시장에 내보낸다’는 원칙을 지키며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바른손 신화를 써 내려갔다. 그는 자체 제작한 캐릭터로 보기 좋게 디자인한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상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특히 아이들이 아름다움에 눈뜨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바탕에 두고 있었다. 앞서가는 아이디어와 디자인 감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간 바른손은 어쩌면 50년을 앞서간 스타트업 기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을 국내 여섯 번째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처럼 극히 희소한 존재라는 의미)으로 키워낸 김봉진 대표는 책 추천사에서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경영 철학을 이미 50년 전부터 지켜온 박영춘 회장의 예지력과 발 빠름에 놀랐다”는 소감을 밝혔다.

음악 감상실 옆 레지던시 건물과 연못. 안온한 분위기가 기암괴석과 거센 물살이 부딪치는 내린천 쪽 역동적 풍경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0.1cm로 싸우는 사람>(몽스북). 박영춘 회장과 바른손의 50년 역사를 현재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연결지었다.

갤러리 공간에 전통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를 전시했다. 왼쪽 벽의 물고기를 닮은 조형물은 닥종이 작가 김영희의 작품. 박영춘 회장은 꼭두, 전통 목가구 등 서민적 일상 예술을 수집하고 즐긴다.


갤러리와 연결된 게스트룸 침실과 욕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집념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후, 건강 문제로 요양할 곳을 찾던 박영춘 회장에게 내린천의 세찬 물결이 굽이치는 강원도 인제 비조불통 계곡의 아름다운 대지의 존재를 알린 이는 그의 맏딸 박소연 비핸즈 대표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렀죠. 어쩜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좋았어요. 아버지와 이 근처를 지나다 한번 구경이나 하고 가자며 함께 들렀는데, 평생 세계를 오가며 이름난 명승지를 다녔지만 개인이 소유한 곳에서 이렇게 압도적 풍경을 본 적은 없었다고 감탄하며 말씀하시더군요. 주변 모든 풍경이 마치 이곳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공간을 직접 꾸며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이전엔 ‘개인산방’이라 부르던 이곳은 사업가로 활동하던 신남휴 선생이 1990년대 중반부터 은거하던 곳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차가 다니는 길도, 내린천 건너편을 잇는 다리도 없어 근처 마을에서 한참 걸은 후 도르래에 매달려 천을 건너야 겨우 닿을 수 있다. 입구에 자리한 표지석에 쓰인 ‘開仁山房’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등의 저서를 남긴 실천적 지식인 故 신영복 선생의 글씨. 그는 2001년 처음 방문한 후 틈 날 때마다 책 몇 권 배낭에 넣고 이곳을 찾았다. 그의 주도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더불어숲학교’라는 이름으로 매달 한 번씩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지성을 초청해 강연을 열고, 밤 늦도록 모닥불 주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2011년부터 박영춘 회장은 신영복 선생과 신경림 시인, 건축가 승효상 등이 강의하고, 배움을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던 강당 건물을 집으로 고쳐 기거하면서 차근차근 이곳을 완성해나갔다. 그중에서도 조경, 특히 야생화 정원이 백미인데, 꽃 피는 시기와 색깔, 식물이 자라는 높이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박영춘 회장이 직접 심고 가꾼 것이다. 책으로 공부한 것과 실제 식물의 생장은 다르게 마련. 그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완성할 때까지 수많은 꽃과 나무를 심고 파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행복> 이영혜 발행인은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천착해 들어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박영춘 회장의 집념은 ‘정말 저렇게까지…’ 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렇게 조성한 야생화 정원은 조경 전문가도 감탄하는 수준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박영춘 회장이 사는 본채로 가는 길에 자리한 야생화 정원과 온실. 커다란 수국과 색색깔 여름 꽃이 피어 있다. 꽃 피는 시기와 꽃의 색, 자라는 높이까지 고려해 박영춘 회장이 꽃나무 하나하나 손수 배치했다.

박영춘 회장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있던 게스트 하우스 공간. 창밖으로 가히 비현실적인 계곡 풍경이 펼져친다.

본채와 연결된 온실. 지붕은 사진을 촬영한 쪽에서 보면 직삼각형이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박공 형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설계다.

본채의 다이닝룸. 재미 삼아 의자 등받이와 상판에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색을 칠했다.


백자 연적과 대나무 줄기, 이곳에서 며칠 묵은 화가 노은님이 그림 그린 돌이 박영춘 회장의 수집품인 오랜 목가구와 청량하게 조화를 이룬다.
풍경에 힘 있게 맞서는 건축
건축은 1994년 방배동 바른손 사옥 건축부터 2008년 파주 사옥에 이르기까지 박영춘 회장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건축가 故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설계까지 완료했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나 실현하지 못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할 때도, 땅을 보러 다닐 때도 이종호 교수가 늘 함께하셨어요. 이곳에 와서도 신영복선생의 높은 정신을 잇는 의미가 있다며 건축가로서 무척 욕심을 내셨지요. 저도 아버지와 이종호 교수의 관계처럼 문화와 예술에 대한 철학을 나누고 함께 공간을 만들어갈 건축가를 수소문하다가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을 만났습니다.”

박영춘 회장은 박소연 대표의 소개로 만난 젊은 부부 건축가에게 이종호 교수의 설계안을 보여주지도, “주변 자연과 조화롭고, 새것 같지 않을 것” 외에는 별다른 요구 사항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네임리스 건축의 나은중 소장은 “설계와 관련한 구체적 요구 사항이나 조건보다는 미적 취향과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박영춘 회장은 30대 중반에 갓 데뷔한 이종호 교수에게 방배동 바른손 사옥 건축을 맡긴 것처럼 네임리스 건축의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뜻을 마음껏 펼치도록 했다. 자신의 미감에 확신이 있기에 그리 탁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 풍경의 스펙터클에 힘 있게 대응하는 건축을 위한 건축가의 고민과 세부까지 천착하는 건축주의 집념이 더해진 결과물이 무심하게 빈 공간에 툭툭 던져놓은 듯한, 근처에 널려 있는 계곡 바위를 닮은 회색 건물 세 채다.

음악 감상실. 1920~1930년대 극장에서 쓰던 대형 스피커의 위용이 인상적이다. 오른쪽으로 중국에서 사업하던 시절 사들인 차탁과 의자가 보인다.

신영복 선생이 이곳에 머물 때 사용한 별채.

화가 노은님이 특유의 동그란 점을 찍은 새집이 본채의 박공지붕 처마에 나란히 매달려 있다.

온실 안에 모인 박영춘 회장 가족. (왼쪽 위부터) 아내 김영이 여사, 맏딸 박소연 비핸즈 대표 내외, 손녀 이예린, 박영춘 회장.
나무 덱을 중심으로 각각 갤러리와 음악 감상실, 작가나 손님이 머무는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용한다. 하천 변을 향해 돌출된 방향으로 큰 창을 내 주변 자연을 최대한 안으로 끌어들였다. 공간 내부에선 ‘압도적’이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내린천 풍광이 펼쳐지고, 반대편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개인산이 부드럽게 감싸 안은 평지의 안온한 분위기가 극적 대조를 이룬다. 각각의 건물은 얼핏 단조로운 직육면체처럼 보이지만, 사진가가 좀처럼 수평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할 정도로 공간을 구성하는 선의 각도가 미묘하게 비틀어져 사선을 이룬다. 연못 물의 선과 땅의 선, 건물 지붕과 창을 이루는 선의 각도가 제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어긋난 느낌 없이 흥미로운 리듬감을 만든다. 이 건물들을 지나 야생화 정원과 박영춘 회장이 사는 본채 사이에 온실도 새로 지었다. 투명한 지붕의 넓은 면이 정남향을 향하게 지어 햇볕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했다. 해 드는 시간이 짧아 유난히 추운 이곳의 겨울에도 낮에는 18℃를 유지하는 쾌적한 공간. 주변이 눈으로 덮이면 녹색 섬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낼 것이다.

박영춘 회장은 이곳에 삼경三景이 있다고 말한다. 내린천 건너 우뚝 솟은 암반 절벽의 압도적 풍경과 비조불통 계곡의 막다른 길에 자리한 선녀탕, 개인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 단풍이다. “마당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는 그. 늘 아름다움을 가까이두고 즐기기에 박영춘 회장은 팔십 평생 새로워지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래된 목가구와 전통 상여 장식물인 꼭두 등 일상 예술품을 수집하고, 1920년대 극장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과정 자체가 그의 행복이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오랜 구상을 마침내 실현해낸 이 공간은 박영춘 회장이 지닌 고유한 미감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오픈 하우스
강원도 인제의 아름다운 자연 속, 바른손 창업주 박영춘 회장이 고유한 미감으로 독자적 풍경을 완성한 공간에 독자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10월 23일(수) 오후 2시
장소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계곡 일대(주소 추후 공지)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6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