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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 이겨낸 선조의 지혜 복날이 오면

예로부터 농민 입장에서는 설과 정월대보름이 최대의 명절이긴 하나, ‘보릿고개’로 시련을 겪는 최악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여름 내내 힘겨운 세벌 김매기 노동에서 해방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의 한 때에 삼복이 끼어 있으니 이보다 귀한 세시가 어디 있을까. 선조들은 복날을 잘 이겨내기 위해 세 번에 걸친 단계를 마련했다. 첫 번째 복날인 초복, 두 번째인 중복, 그리고 세 번째인 말복이 그것이다. 삼복은 여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절기이기에 ‘삼복더위’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여름 나기에 빠질 수 없는 것으로는 역시 보양 음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삼복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 지금은 개고기 풍습을 ‘야만’ 등의 이름으로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회 분위기지만, 오래전에 농촌에서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아무래도 힘겨운 농사일과 관련이 깊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농사를 짓다 보면 뱃가죽은 등에 붙고 옷은 땀에 푹 젖고 만다. 아시, 두벌, 만물을 매고 나면 복날이 걸쳐 있기 마련이어서 개고기로 마을 주민들이 나누어 먹는 풍습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러한 마을 잔치로서의 개고기 풍습은 현재 급격히 사라지는 중이다.

복날의 또 다른 음식으로는 민어탕이 별미였다. 예전에는 복달임에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일제강점기나 해방 이후에도 서울의 대갓집이나 부유한 사람은 복날이면 민어와 민어탕에 필요한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해 숲의 그늘진 냇가로 나갔다. 그곳에서 큼직한 민어를 회 뜨고, 살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깔끔하게 손질해 끓여냈다. 민어는 여름철 수산물의 귀족이었다. 20세기 초만 해도 흔한 물고기였으나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민어가 여전히 잡히기는 하지만, 남획으로 귀한 몸이 되어 ‘민어 복달임’ 운운하면 조금은 호사스러운 말치레가 되기도 했다. 개고기나 민어나 이렇게 복달임 음식 풍습도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영양분 섭취를 위한 보양 음식으로는 쌀죽이나 콩죽, 콩국수도 많이 먹었다. 지금은 다이어트가 일상화되었으나 식량 자체가 극도로 빈한하던 예전에는 영양분 섭취가 중요한 생존 조건이었다. 통통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는 천렵도 좋은 피서법이었다. 원두막에서 수박이나 참외 등 여름 과일을 먹는 풍습은 비교적 근래에 생긴 것이다. 대개는 동네 모정(모가 나게 지은 정자)에 모여 한가롭게 하루를 보냈다. 복날에는 산간 계곡으로 들어가 발을 담그는 탁족도 즐겼다.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 탁족을 즐기는 선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면 찬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복날을 견뎌내는 데 그만이었다. 

양반의 복날 피서법은 조금 유별났다. 사대부가 가장 아끼던 여름용품으로 죽부인이라는 게 있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죽부인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긴 통으로, 죽부인을 껴안고 잠을 자면 대나무 통의 빈 공간으로 공기가 통하면서 여름 한 철 시원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양반이 또한 아끼는 것으로는 부채를 들 수 있다. 대개 단오 부채라 하여 양기가 가장 그득한 날에 백부채를 선물 받는다. 거기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서 멋을 부려 여름 한 철 복날을 난다. 시원한 산수 그림들이 주종인바 그림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여자들 피서법은 남자에 비해서는 어려웠던 것 같다. 남자들이야 웃통 벗고 돌아다니는 일도 많았지만, 여염집 여자들이 그럴 수야 없었다. 역시 여름 나기에 가장 결정적인 효과는 목욕이었다. 여염집 여자들은 부엌이나 집 뒤꼍에서 통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으나, 대개 민촌의 여자들은 냇가에 나가서 목욕을 했다. 조선 후기 혜원의 풍속화를 보면 이를 훔쳐보는 선비들의 짓궂은 정경이 잘 드러나 있어 이 시대 풍습의 일면을 전해준다. 

삼복 무더위에는 의생활 역시 중요했다. 농민의 일옷으로는 성긴 삼베로 베잠방이를 만들어 입었다. 깔깔하고 등에 붙지 않아 여름옷으로는 그만이었다. 여인들이 제일 높게 치는 옷감은 세모시였는데, 곱게 짠 질감이 그만이고 보기에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세모시 옥색치마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풍습들은 거개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생활 속에서 관철되고 있음도 알게 된다. 여름철에 삼계탕과 콩국수를 즐겨 먹고, 모시옷을 입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는 흔하고 값싸게 즐기던 것이 이제는 매우 사치스러운 것으로 바뀐 것도 많다. 그러나 여름을 지혜롭게 나려고 머리를 짜내던 선조의 멋과 풍류만은 지금도 의연히 살아남아 전승되고 있다. 삼복 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평정심이 가장 중요하겠거니와 삼복더위일수록 매사 거동에 신경을 쓴 선조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쓴 주강현은 경희대학교에서 민속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문화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어 한국역사민속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제주대학교 석좌교수이자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해양문화재단 이사, 해양문명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과 아시아의 역사와 민속을 연구해오며 문화관광부의 ‘대한민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 선정위원회의 책임연구원을 맡기도 했다. 

주강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