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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츠파츠 랩 인류 패션의 미래를 연구하는 곳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이 ‘제로 웨이스트’ 철학으로 설립한 파츠파츠의 신사옥이 부암동에 자리 잡았다. 단순히 한 브랜드의 숍으로 치부하기에는 이곳이 지닌 의미와 가치가 남다르다. 머지않은 미래, 어떤 거대한 물결의 시작으로 기억될 잠재력이 충분한 곳. 미래지향적 패션 실험실, 파츠파츠 랩에 다녀왔다.

파츠파츠 랩 건물의 통창에 붙여놓은 붉은 자화상 앞에 선글라스를 낀 똑같은 모습으로 선 디자이너 임선옥. 그가 입은 파츠파츠 의상은 편안해 보이면서도 참 멋스럽다.

부품처럼 진열한 천 조각들. 파츠파츠의 의상은 마치 자동차처럼 부품 간의 해체와 조립을 통해 완성된다. 오렌지 컬러가 트렌드인 이번 시즌을 위해 아카이브에서 오렌지색 천 조각을 꺼내놓았다.
취재차 파츠파츠 랩을 방문한 날은 하늘이 맑고 가시거리도 긴 쾌청한 날이었다. 그 때문인지 부암동은 유독 평화로웠고 시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마음을 평안하게 다독였다.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면 어떠한 근심도 사라지겠다 싶었다. 디자이너 임선옥이 2011년 파츠파츠 쇼룸을 부암동에 오픈한 이래 이곳을 줄곧 지켜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나요?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사방으로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이 눈에 들어오는, 좋은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여기 아닐까요?” 유동 인구가 많은 상업 지역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자, “아티스트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예쁜 카페나 편의 시설은 따라오더라고요.” 사실 20여 년 전, 패션 브랜드 임선옥을 운영하던 때 그의 터전은 가로수길이었다. 편의점조차 없는 황무지 같던 가로수길에 둥지를 틀었고, 그의 말대로 가로수길은 세월이 흘러 온갖 대중적 상업 공간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임선옥은 진작에 가로수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부암동에서 새로운 미래를 그리며 파츠파츠를 설립,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온 지 9년째다.

“가장 트렌디하다고 부르는 압구정과 가로수길에서 지내오면서, 그렇게 핫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 실패가 있었기에 파츠파츠가 만들어졌지요.” 파츠파츠는 네오프렌이라는 단일 소재를 사용해 재단부터 디자인, 봉제(접착), 재고 문제 등에서 버리는 것을 최소 화하는, 즉 ‘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실천하는 패션 브랜드. 고도의 과학적 사고와 전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어떻게 단일 소재로 여성복 브랜드를 운영하겠냐’는 주변의 우려에도 꿋꿋한 신념과 확신으로 제로 웨이스트 가치와 철학을 견고하게 다지고 발전시 켜온 지난 9년간의 성과. 그 아카이브와 시스템을 이제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를 나누기 바라는 마음으로 오픈한 공간이 바로 파츠파츠 랩이다. 누구나 환영하는 공간이고, 7월 말부터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 작업 과정을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세계적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를 맡은 파츠파츠 랩. 왼쪽 계단을 오르면 3층에 다다르고 우측에 1층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있다. 공간의 옹골찬 구성, 효율적 동선이 돋보인다. 

천고가 높은 3층 응접실은 공간의 일부를 나누어 다락방을 만들었다. 

북한산 보현봉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 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창문의 위치와 크기가 기가 막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듯.

공간은 철학을 규정하고 삶을 변화시킨다
약간 언덕배기에 위치한 파츠파츠 랩은 원래 주택이었다. 기존의 쇼룸과 그리 멀지 않은 주택을 매입하고, 이곳에 담을 콘텐츠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설계와 시공을 마무리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단다. 1층은 디자인실, 2층은 직원들의 사무실, 3층은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고객을 맞을 수 있는 공간으로, 큰 유리 창문을 통해 하늘 아래 북한산 보현봉과 부암동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압권이다. 설계는 조민석 건축가가 맡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로, 지금까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을 비롯해 제주도 다음Daum 사옥, 강남역의 부티끄 모나코, 송원 아트센터 등 대규모 건축을 맡아온 인물. “2013 년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에서 임선옥 선생님을 처음 만났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디자이너가 있구나, 파츠파츠 프로젝트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고, 들여다볼수록 참 건축과 닮은 브랜드라고 느꼈어요. 또 제가 초ㆍ중ㆍ고교를 다니는 동안 부암동에서 살았어요. 이 동네가 지닌 귀한 정기를 만끽하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부럽더라고요.” 좁은 골목, 경사, 제한된 지붕 면적 등 여러 한계와 난점이 보이는 작업이었음에도 기꺼이 설계를 맡은 이유라고 조민석 건축가는 말한다. 그가 가장 주력한 부분은 좁은 면적에서 최대한 낭비 없이 유효 공간을 만들고, 멋진 전망을 담는 것. 그래서인지 실내는 군더더기 없고, 구석구석은 그 나름의 용도를 알차게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그대로 구현한 공간. “때에 따라 전시장이나 강연장으로 쓸 수 있도록 천장에 철제 봉을 달아 커튼을 걸었어요. 그리 넓지 않은 면적이지만, 그 안에는 최대치의 활용도를 담았지요.” 벽과 벽 사이 좁은 틈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앉을 수 있는 높이의 턱을 만들고, 방석을 깔아 중정처럼 만든 것도 인상적이었다. 파츠파츠 랩의 가장 핵심 공간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선반. 바로 지난 9년간 쌓아온 파츠파츠의 아카이브 저장고다. “우리의 자산이자 스탁 창고이기도 해요. 10여 년간 운영했는데도 이렇게 정리가 된다는 건 일반 어패럴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디자인 단계부터 남은 천은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까지 계획을 세우는 ‘디자인 싱킹’을 하려고 노력하죠.” 일반적으로 패션 브랜드는 매년 수많은 재고가 쌓인다. 시즌마다 다른 소재와 장식물을 사용하고, 팔리지 않은 물품은 창고에 쌓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 반면 파츠파츠는 소재가 한 가지이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 재고 의상은 접착 부분을 잘라내면 얼마든지 다음 시즌에 재활용할 수 있는 원단이 되는 식이다. 재고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선순환이 가능 하다. 파츠파츠 랩을 완성하는 과정은 지난 세월의 재고를 정리하며 아카이브를 재정비하는 작업이기도 했다고. 그 결과 모든 과정이 한결 수월해지고, 제로 웨이스트 실현에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재독 화가 노은님과 협업해 완성한 2019 봄ㆍ여름 컬렉션으로, 오는 7월 가나 아트센터에서 열릴 그의 전시에 발맞춰 다시 한번 노은님 작가와의 협업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1층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보이는 기계가 낯설다. 봉제를 대신하기 위한 접착 기기다. 

다음 시즌을 위해 구상 중인 샘플 의상들 사이에 선 디자이너 임선옥. 

곳곳에 제로 웨이스트 슬로건을 붙여놓았다. 이 철학을 디자인 이상으로 삶 속에서도 지키고자 하는 디자이너의 선언이다.


인류 패션의 진보를 꿈꾸다   
파츠파츠는 요즘의 여느 패션 브랜드처럼 SNS를 통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이 늘어가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입어 보고 브랜드를 온전히 이해한 후에 구입하기를 바란다. 아날로그적 브랜드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처럼 미래 지향적 브랜드도 없다.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계는 가장 진보해야 하지만, 여전히 2차 산업적 봉제 작업에 의존한다는 건 아이러니예요. 4차 산업을 넘나드는 지금, 더 진보한 기기의 개발이 필요하지요. 실제로 봉제 기술자는 줄고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기술을 익히면 할 수 있도록 봉제 대신 기계로 접착하는 방식을 개발했어요. 미래를 위해 어떤 대비를 할 수 있는가? 근본적 디자인 싱킹에 대해 제가 얻은 답입니다.” 소재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는 한계도 있었지만, 한 가지 소재를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 후가공법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 이제는 “실크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발전했다. 2019 봄ㆍ여름 컬렉션은 재독 화가 노은님 과 협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제로 웨이스트 의상 제작 시스템은 매해 진보를 거듭했고, 이제는 해외에서 배우러 올 만큼 체계를 갖췄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요. 이 프로젝트를 응원해준 얼리 어답터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왜 당장 하지 못하냐고 질책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거쳐 충분히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봐준 고객이야말로 파츠파츠가 지금까지 올 수 있는 힘이었다고 임선옥 디자이너는 말한다. “대중적 꽃을 피우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걸 좇다 보면 연구를 소홀히 하게 돼요. 하지만 나에게는 연구가 더 가치 있죠. 결국은 선택 아닐까요? 가치는 저마다 다르니까요.” 한데 ‘대중적 꽃’이라는 건 기본이 탄탄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인 법. 없던 길을 개척하면서 올곧게 시간을 축적해온 파츠파츠의 미래를 응원하고 기대하는 이유다. 

독자 워크숍
파츠파츠의 ‘제로 웨이스트’ 작업 과정을 체험하고, 디자이너와 만나는 시간. 파츠파츠 에코 백을 직접 디자인해 자신만의 가방을 만들어보세요.

일시 7월 18일(목) 오후 2시 30분
장소 파츠파츠 랩(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78-23)
초대 인원 6명
참가비 4만 원(정기 구독자 3만 원)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