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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전시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오래되고 익숙하지만 평소 거닐어볼 기회조차 드문 것이 한국의 정원이다. 그림처럼 낭만적인 영국 정원이나 흠결 한 점 없이 단정한 일본 정원보다 오랫동안 우리 것이었지만 도리어 우리에게는 타국의 정원보다 낯선 한국 정원을 온몸으로 아름답게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이 봄에 우리를 비밀스럽게 찾아온다.

‘꿈꾸는 정원사’라는 이름으로 한국 정원의 사계를 기록하며 소요하고 있는 23년 차 정원사이자 정원 기록가인 꿈정이 찍은 소쇄원의 비밀스럽고도 꿈결 같은 풍경. 2003년 천리포수목원을 기록하기 시작해서 2백 회 이상 다녀간 정원 구경광답게 소쇄원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실제와 신비가 묘하게 중첩되어 있다.
중국 명나라의 계성이라는 정원사가 쓴 책 <원야園冶>에 수유인작 완자천개雖由人作 宛自天開, 즉 “비록 사람이 만들되 하늘에서 만든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다”는 구절이 있다. 동양의 자연관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정복하고 알아내기보다 자연에 순응하고 이치를 깨닫는 순리의 생각이 오랜 시간 우리의 정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일까, 서양의 정원 형태와 문화에 더 익숙해진 우리에게 5백 년 전 우리의 정원 소쇄원瀟灑園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양의 정원보다 더 낯설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 정원으로 양산보가 스승 조광조가 전라남도 화순 농주로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전남 담양으로 돌아와 만든 원림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며, 그 뜻에 맞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과 하나 되어 내면의 환희를 즐기던 한국의 대표적 정원이다. 서양의 정원은 노동의 수고가 필요한 생산적 공간이고, 생명과 교감하며 다양한 나무와 꽃으로 구성해 사계절의 시각적 변화가 다변한 즐거움의 공간이다. 반면 한국의 정원은 사대부나 반가의 부속 공간으로서 소박하면서도 풍류와 은유, 여백과 격을 보여주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었고, 그 중심에 소쇄원이 있었다.

5백 년 전 선비들의 안식처이자 사색의 덕을 쌓던 소쇄원을 한국의 정원을 아끼는 이 시대의 크리에이터 20여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오늘의 감각으로 기록한 전시를 펼친다. ‘All That Garden’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크리에이터들은 ‘한국의 정원’이라는 화두로 모임을 만들었다. 아직 어떤 세력을 형성하지 않은 무림의 외톨이들 모임이라는 것이 어쩌면 한국의 정원과 닮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상 예술, 공간 연출, 동양화, 설치 작품, 그래픽디자인, 사진, 공예, 인간 환경 디자인 연구, 에세이 등 장르를 초월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된 정원인 소쇄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소쇄원이 품고 있는 5백 년이라는 시간의 층만큼이나 겹겹이 무한한 듯 보인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새로운 시선으로 소쇄원을 보여주는 사진부터 촉각과 청각으로 정원과 신선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설치 작품까지 이제껏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정원 소쇄원을 여행하게 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뒤로 두고 네 개의 섹션으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정원을 외관으로 펼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소쇄원의 땅, 물, 나무, 바람, 달, 별, 풀, 담장, 정자, 꽃과 만난 크리에이터들이 전하는 순간순간이 소쇄원의 거친 원시적 숨결처럼 드러났다 숨었다 하면서 한 편의 영화처럼 흐른다. 한겨울에도 빛이 가득 모이는 애양단,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한다는 제월당을 거쳐, 멀리서부터 찾아온 손님이 이 정원에 편히 섞일 수 있도록 마련한 응접실 같던 정자 광풍각까지. 소쇄원의 동선을 세심히 재해석한 섹션별 공간은 사실 예측 불허다. 마치 처음 소쇄원을 방문했을 때 느낀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신선우의 모션 그래픽 ‘그곳에 피우다’. 한 마리 나비로 시작해 꽃과 나무들이 자라나고 그 자리에 소쇄원이 피어나는 고요와 환희가 함께하는 소쇄원을 표현했다.

조경 디자이너 스무드 유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전시의 시작을 여는 유니트폼의 설치 작품 ‘Biophilia’.

섬유 예술가 송계영의 ‘환영의 공간’. 소쇄원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을 ‘접힘과 펼침’이라는 커다란 터널 공간을 통해 표현했다. 한지로 제작한 건축 구조물을 페이퍼 커팅 기법으로 폐쇄된 공간이 아닌, 빛과 공기가 흐르는 환영의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윤남의 도예 작업 ‘Snow Waltz’.

이 전시의 전체 공간 연출을 맡은 오창열의 전시 플랜 모형. 소쇄원 공간의 ‘열림과 닫힘’ ‘중첩’의 반복, ‘여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보여주는 소쇄원의 풀과 나무 표본. 과거와 현재의 식물을 통해 소쇄원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어본다.

미디어 아티스트 강성남의 ‘소쇄원 이야기’. 소쇄원의 시작과 양산보의 삶, 그곳을 지키는 진돗개 이야기를 영상 효과와 수묵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군데군데 밟히는 무성한 잡초와 거친 돌부리, 흙길에 거칠고 투박하게 쌓여 있는 석축들과 담장, 거친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류처럼 소쇄원에서 크리에이터 20여 명이 마주한 시간과 경험은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스크린을 가뿐히 벗어나는 영상으로, 원시림의 향기로, 촉각으로,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소리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중첩되고 섞이면서 그야말로 ‘낯선’ 산책으로 우리를 이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으로부터 달아난’ 시간을 마주하게 하는 유니트폼의 설치 작품 ‘Biophilia’와 신선우 작가의 묵이 번지며 만들어내는 수묵 영상, “서재는 나에게 정원이다”라고 말하는 북 큐레이터 김명수의 북 디오라마 ‘서원’, 경계가 허물어진 창을 넘어 한 폭의 풍 경화가 쏟아져 내리는 공간 연출가 오창열의 풍경들, 그리고 오랜 시간 소쇄원의 빛을 기록하고 관찰해온 꿈정의 꿈결 같으면서 비밀스러운 사진들. 상상의 정원 소쇄원을 그래픽으로 재현한 오디너리피플의 ‘몽타주’와 5백년 시간의 기억을 종이의 주름으로 표현한 송계영의 설치 작품 ‘환영의 소쇄원’을 차례로 지나다 보면 현실 공간인 소쇄원을 경험한다는 체험의 기분이 아니라, 옛 선비에게 완벽한 이상향이던 소쇄원이 자신만의 마음에 그려지는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소쇄원은 개인이 만든 안락한 정원이 아니었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길 잃은 선비들이 현실 너머의 세상을 꿈꾸던 곳이고,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어떤 마음을 길러왔는지 그 마음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정원 이상의 정원이었다. 영역과 프레임에서 해방된 21세기 작가들이 빛과 소리와 향기와 영상으로 그려낸 16세기의 한국 정원을 ‘낯설게’ 산책하는 시간이 지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info

<한국의 정원展: 소쇄원, 낯설게 산책하기>
기간 4월 18일~5월 19일 오전 11시~오후 8시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제1, 2전시관)

글 김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