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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와 도러시 보걸Herb&Dorothy Vogel 오로지 예술만을 위한 삶
예술품 수집의 가장 필수 조건은 경제력이 아니라 열정임을 증명하며 그동안의 편견을 깬 부부가 있다. 평범한 노동자 출신의 수집가 보걸 부부가 모은 예술품은 매우 수준이 높았으며, 그래서 더욱 신선했다.

허브와 도러시가 평생 머문 12평 남짓한 이 아파트는 부부가 수집한 작품의 수장고이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간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2천4백여 점의 작품을 이 작은 아파트에 보관했다는 것이 경이롭다. Herbert and Dorothy Vogel in Their Apartmen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Gallery Archives.

보걸 부부는 덴버의 어느 컬렉터 집에서 점토나 세라믹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조각 위에 페인팅을 한 마이클 루세로의 작품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었다. 다행히 루세로가 뉴욕에 살고 있어 작가의 아틀리에를 직접 방문해 여러 점을 구입했다. 마이클 루세로, ‘무제(Head Study)’, 1982, glazed ceramic with incised line, 16 1/2 x 11 3/4 x 8 3/4 in. Michael Lucero, Untitled (Head Study), 1982, glazed ceramic with incised line, 16 1/2 x 11 3/4 x 8 3/4 in. The New Orleans Museum of Art: Gift of Dorothy and Herbert Vogel through the National Gallery of Art, 2008.74.22
훌륭한 작가와 만남에 가슴이 뛰고 그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결코 예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허브&도러시 보걸 부부의 수집가로서 삶은 21세기 현대인에게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을 알려준다. 허브와 도러시는 그들의 행복을 위해 예술품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술을 위한 삶’을 산 특별한 부부이다.

매달 작품을 살 수 있었던 이유
도러시 페이 호프먼Dorothy Faye Hoffman은 1935년, 뉴욕에서 유대인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시러큐스Syracuse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덴버Denver 대학에서 도서관학 석사과정을 마친 엘리트다. 1958년 브루클린으로 이사한 후 1990년 은퇴하기 전까지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반면 남편 허브 보걸Herbert Vogel(1922~2012)은 러시아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않았으며, 평생 동안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허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에 복무했고, 1979년 은퇴하기 전까지 우편 서비스를 담당하는 우체국 직원으로 일했다. 허브는 청소년기부터 섬세한 미적 감성을 지녔고 아티스트를 꿈꿨다. 그는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뉴욕 대학에서 예술사 강의를 들었으며 밤에는 Institute of Fine Art에서 그림을 그렸다. 허브는 도러시를 만나기 전부터 예술 작품을 수집했는데, 주세페 나폴리Giuseppe Napoli의 작품이 당시 그가 소장한 작품 중 하나였다 . 취미가 같은 상대를 만나거나, 배우자의 취미를 따라가는 부부는 행복하다. 여행, 요리, 와인 등 어떤 취미이든 열정은 부부를 한마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도러시는1960년 11월 엘미라에서 지난해 여름 리조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허브를 만났다. 도러시와 허브의 공통점은 예술이었고, 1961년 열세 살의 나이 차이가 있던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약혼을 기념하기 위해 둘은 무언가를 상징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충분한 예산이 없었다.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피카소의 세라믹 화병이었다. 이것이 부부의 예술을 위한 삶의 첫걸음이었다.

1962년 1월, 워싱턴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허브는 도러시에게 내셔널 갤러리 방문을 제안했다. 그곳에서 도러시가 발견한 것은 대가들의 작품과 함께 허브가 지닌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녀는 작품에 대한 허브의 깊은 이해력과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도러시는 허브와 손잡고 예술이라는 매력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뉴욕으로 돌아온 도러시는 자연스럽게 허브와 함께 뉴욕 대학 주말 회화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뉴욕의 갤러리들을 방문하며 새로운 작품을 탐색했다. 뉴욕 대학의 회화반 수업은 난생처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는 도러시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1965년 부부는 그림을 그리는데 노력을 쏟기보다 컬렉터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보걸 부부는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갤러리와 박물관을 방문하며 전시를 보는 것이 더욱 흥미롭고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허브와 도러시는 컬렉터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않은 기막힌 합의점에 도달했다. 도러시의 수입은 생활비로 쓰고, 허브의 수입은 아트 컬렉션에 온전히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도러시의 월급으로 아파트 임대료는 물론 세금과 식비, 교통비, 은퇴 연금 등 두 사람의 모든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앞으로 예술품을 수집하면서 쇼핑·여행·외식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함을, 즉 두사람의 빠듯한 삶을 예고하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앞으로 하나씩 늘어날 소장품 리스트의 초석이 되었다. “여윳돈이 생기면 작품을 사야지” 하고 막연하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매달 꼬박꼬박 예술 작품을 구입하기 위한 배당금이 들어오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컬렉터로서 안목이 생기다
수집가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1965년 봄, 스터블 갤러리Stable Gallery에서 윌 인슬리Will Insley의 페인팅을 구입했다. 8월에는 대니얼스 갤러리Daniels Gallery에서 솔 르윗Sol LeWitt의 전시를 본 후 작가의 아틀리에를 직접 방문해 작품을 구입했다. 이 경험으로 숨어 있던 수집 열정이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브와 도러시는 훌륭한 팀이었다. 도서관 사서이던 도러시는 작품 구입 과정 전체를 기록하고 보관했다. 작가와 주고받은 편지, 카탈로그와 갤러리 전시 평론, 포스터 등은 물론이고 박물관 입장 티켓, 작가의 아틀리에 방문을 위해 구입한 기차표까지 모두 보관했다. 침대는 보걸 부부의 수장고였다. 구입한 작품이 침대 아래 차곡차곡 쌓여 침대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동안 임대 아파트의 한 귀퉁이에 자료 역시 하나씩 쌓여갔다. 허브와 도러시는 서로 취향이 달랐다. 허브는 색이 강렬한 작품을 선호했고, 도러시는 구성이 단순한 단색 작품을 선호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높은 안목을 겸비한 수집가였다. 그들의 수집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깊은 존경과 이해를 바탕으로 했고, 결국 작가에 대한 믿음은 한 작가의 작품을 장르 구분 없이 모두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시대별로 그 작가의 드로잉, 수채화, 사진, 유화, 조각, 설치, 비디오 등 장르 구분 없이 모두 구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다”라는 것이 부부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부부는 마틴 존슨Martin Johnson의 드로잉, 페인팅, 조각, 콜라주, 사진 작품을 모두 수집해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했다. 이는 훗날 작가들이 부부가 박물관에 기증한 자신의 작품 컬렉션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평범한 노동자 계급 출신의 수집가가 자신의 작품을 시대별, 장르별로 모아 박물관에 기증해 총체적으로 볼 수 있게 했으니 그 존경심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허브와 도러시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아티스트였다. 젊은 무명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해서 작품을 구입할 때 일석이조의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작가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대부분 갤러리조차 없었기에 작품 가격이 저렴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던 보걸 부부에게는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동시에 부부는 집의 크기를 고려해야 했다. 집에 소장하며 작품을 감상하려는 것이 아트 컬렉션의 첫 의도였기에 작품 크기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페인팅이든, 조각이든, 설치 작품이든 크기가 크지 않아야 운송하기 수월했다. 부부는 아틀리에를 방문해 작품을 구입하면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직접 작품을 운송했다.

평생 동안 수집한 예술품을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한 보걸 부부는 모든 미국인에게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고자 했다. Herbert and Dorothy Vogel at the National Gallery of Ar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Gallery Archives..

보걸 부부는 자녀가 없었다. 대신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딴 물고기와 거북이, 고양이와 가족을 이루었다. 허브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도러시와 고양이 아치 단둘이 살고 있다. Herbert and Dorothy Vogel with their cats, in front of their fish and turtle tanks, 1992.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Gallery Archives. Photograph by John Dominis.

예산이 넉넉지 않던 부부에게 가장 이상적인 수집은 아직 무명인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뉴욕에 위치한 작가 팻 스타어Pat Steir의 스튜디오에서 남긴 기념사진. Herbert and Dorothy Vogel with Pat Steir in the artist's New York studio, April 4, 2008.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Gallery Archives. Photograph by Steve Konick.

50개 주의 박물관에 50점의 작품을 기증하다
1970년대부터 보걸 부부의 수집 이야기는 미술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 큐레이터들이 부부의 아파트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수준 높은 수집품을 너도나도 자신이 일하는 박물관에서 전시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수집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나타난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의 수집가가 모은 작품으로 보기에는 개념 미술, 미니멀 아트,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품들의 수준이 매우 높았으며, 그래서 더욱 신선했다. 1975년 맨해튼 클락타워 갤러리Clocktower Gallery에서 열린 < Selections from the Collection of Dorothy and Herbert Vogel >이 첫 전시였다. 198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그들의 컬렉션 전시가 이어졌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허브와 도러시는 컬렉터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않은 기막힌 합의점에 도달했다. 도러시의 수입은 생활비로 쓰고 허브의 수입은 아트 컬렉션에 온전히 할애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하나씩 늘어날 소장품 리스트의 초석이 되었다. “여윳돈이 생기면 작품을 사야지” 하고 막연하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매달 꼬박꼬박 예술 작품을 구입하기 위한 배당금이 들어오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리처드 페티본, ‘Warhol’s Marilyn Monroe’, 1973, acrylic and silkscreen on canvas, six panels, 6.3 x 5cm(each) Richard Pettibone, Warhol’s Marilyn Monroe, 1973, acrylic and silkscreen on canvas, six panels, 6.3 x 5 cm (each) credit : Blanton Museum of Ar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The Dorothy and Herbert Vogel Collection: Fifty Works for Fifty States, a joint initiative of the Trustees of the Dorothy and Herbert Vogel Collection and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ith generous support of 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and the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 2008
리처드 페티본 작품은 맨해튼의 오케이 해리스OK Harris갤러리에서 구입했으며, 부부가 작가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리처드 페티본은 1960년대부터 다른 현대미술 작가의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는데,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에서 스타일과 물질, 예술과 영향 사이의 비판적 의문을 제기했다. 보걸 부부는 워홀의 복사 작품을 다시 복사한 페티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 소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9년 마침내 부부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NGA)에 작품을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은퇴 후 부부의 관심은 작품을 어떻게 기증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NGA 팀은 1990년 9월부터 총 2천4백 점을 박물관으로 옮겨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품을 모두 옮겨간 후 부부는 밤새도록 부둥켜안고 울었다. 지극히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 같았으리라. 부부에게 남은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수집을 멈추지 않는 것. 수집한 작품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지면서도 여전히 다른 곳에 쌓여갔다. 2000년에 접어들어 보걸 부부와 NGA 팀은 부부가 기증한 작품을 모든 미국인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들의 심층적 토론은 ‘The Dorothy and Herbert Vogel Collection: Fifty Works for Fifty States project’로 발전했다. 이 기획은 2008년 4월에 발표했다. 50개 주의 박물관에 50점의 작품을 기증하고, 박물관들은 5년 내에 기증한 작품을 전시하기로 했다. 2008년 그들의 컬렉션 과정을 공개한 영화가 제작되었고 카탈로그가 출판되었다. 평생 작품 수집을 위해 절약해온 부부는 단 몇 번의 유럽 여행을 제외하고 뉴욕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50개 주의 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한 후 이들의 삶은 미국 각 주에 있는 박물관을 여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허브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는데도 작품을 보러 장거리 여행을 꺼리지 않았다. 박물관에서 도러시는 허브가 탄 휠체어를 밀며 그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인도했다. 그들은 둘만의 추억을 상기하며 작품 앞에서 회상하고 감동했다.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은 그동안의 편견을 깨고 예술품 수집의 가장 필수 요인이 경제력이 아니라 열정이라는 것을 증명한 두 사람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허브는 2012년 7월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도러시는 허브가 떠나자 수집을 멈추었다. 예술품 수집의 열정은 두 사람이 함께했기에 흥미로웠던 일이기 때문이다. 도러시가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허브가 1961년에 그린 유화 작품이다. 지금도 도러시는 거실 중앙 벽에 걸려 있는 허브의 작품을 보며 늘 남편과 함께한다. 보걸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다. 결혼한 1962년 첫 고양이를 입양한 이후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따온 물고기, 거북이, 그리고 고양이들과 가족을 이루었다. 보걸 부부는 평생을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 수집가로, 그렇게 특별한 삶을 살았다.

글 박은주 | 사진 제공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 www.nga.gov) | 담당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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