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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반칠환이 선정한 올해의 문장
‘귀 기울여 들어보니’ 인터뷰를 통해 특유의 입담과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따스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반칠환 시인이 한 해 동안 가장 인상 깊게 읽고 들은 올해의 말, 올해의 문장.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인생을 등에 지면 짐이 되고 가슴으로 안으면 사랑이 되는 거야.”_신광철, ‘느릅실 할머니와 홍시’ 중에서
시인이 만난 진천 느릅실 마을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앞산처럼 등이 굽은 할머니는 먼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은 홑이불같이 가볍기도 하지만 비에 젖은 솜이불 같기도 한 거야.” 하지만 단언한다. “인생이 짐이라고? 아니야, 사랑이야.” 글이 아니라 몸으로 할머니가 쓰신 필생의 문장.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_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018년 4월 27일이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성큼 넘어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나는 언제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그가 즉석에서 제안한 말이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고 10여 초간 깜짝 월경을 했다. 한 외신은 “신중하게 연출된 외교적 댄스에 또 하나의 놀라운 스텝이 추가됐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그때 보았다. 남북을 65년 동안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뛰어넘는 ‘놀라운 스텝’이 훈련된 무용수나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아니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필자는 그때 높이 5cm의 콘크리트 경계석이 수줍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봤지? 나 때문이 아니야.” 이후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하면서 새로운 남북 관계의 물꼬를 텄다.


“우리는 하늘이 도와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인 한글과 가장 우수한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입니다.”_서예가 김병기, 2018년 2월호 ‘귀 기울여 들어보니’ 인터뷰 중에서
서예가로서 직관과 학문적 내공으로 일본의 광개토대왕비 조작을 정교하게 분석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그는 미 군정이 시행한 한글 전용 정책에 숨은 문화 식민 정책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주적 말글살이’라는 명분 속 한글 전용이 실은 한자로 기록된 2천 년 역사에 대한 망각을 위해 기획했으며, 한글 전용 강박이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를 외국어로 분리해 한자 병기 방안을 폐기하고, 한류 스타 이영애를 ‘리링아이’로 부르는 원음주의의 희극성을 개탄한다. 그는 한글과 한자라는 두 개의 문자 수레바퀴로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글 반칠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